SR1. 소비의 미래, 중고 거래 비즈니스 전략
DBR mini box: 리세일 성공 전략 수립 희소성과 인기는 기본, ‘시간차’에 부가가치를 더하라 두 명의 아티스트가 있었다. 이들의 초기 작품은 누가 무엇을 그렸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작품 가격에 차이가 벌어졌다. 한 명은 살아 있을 때부터 스타였고, 사후 1200억 원에 낙찰되는 작품이 나왔다. 반면 다른 한 명은 잘 알려지지 않았을뿐더러 작품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했다. 전자는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1960∼1988), 후자는 디아즈(Al Diaz, 1959∼)다. 어떤 이유로 둘의 명성에 큰 차이가 생긴 걸까? 바스키아와 디아즈는 무엇이 달랐나 바스키아와 디아즈의 예술적 기교는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기질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바스키아는 적극적으로 예술계 인맥을 쌓았다. 당시 뉴욕 예술계의 거장 앤디 워홀, 그리고 가장 주목받는 아티스트 키스 해링과 친분을 쌓았다. 뉴욕 예술계의 마당발, 디에고 코테즈와도 친했다. 반면 디아즈는 외톨이처럼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지냈다. 예술 작품은 가격을 산정하기가 애매하다. 작품의 크기나 제작 원가로 판단하기 어렵고, 통상적으로 정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주관적 평가와 대중적 인기로 예술 작품의 가치가 결정되는데 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회적 인맥이다. 유명 작가나 갤러리 운영자, 큐레이터 등과 친분이 있다면 예술계에 이름이 언급되거나 작품이 노출될 확률이 높아지고, 그럴수록 작품에 대한 인지도 및 호감도가 올라간다. 자연스레 작품 가격도 비싸진다. 바스키아의 작품이 그랬다. 작품 가치와 사회적 인맥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을 수 있다 해도 작품 하나에 1200억 원이나 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예술 작품을 거래하는 시장의 구조를 들여다보자. 예술 작품을 사고파는 시장은 크게 1차 시장과 2차 시장으로 나뉜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처음으로 파는 갤러리 같은 곳이 1차 시장이고, 2차 시장은 누군가 소장하던 작품의 소유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경매 시장 같은 곳을 말한다. 그런데 보통 1차 시장에서 거래된 ‘새 작품’의 가격보다 2차 시장에서 거래된 ‘헌 작품’의 가격이 더 높다. 소모품을 중고로 판매할 때와 반대의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2차 시장에서 거래되는 예술 작품도 어찌 보면 중고인데도 가격이 더 비싸지는 것은 희소성 때문이다. 판화나 프린팅으로 완성한 작품이 아니라면 작품 하나하나가 사실상 유일성을 갖는다. 공급은 제한돼 있는데 찾는 사람이 많으니 2차 시장에 등장했을 때 더 높은 가격을 부르는 수요자가 나오기 마련이다. 가격을 높이는 구조적 장치 예술 작품이 거래되는 2차 시장에서 리세일(Resale)과 중고 판매의 핵심적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둘 다 헌 제품을 다시 판다는 점에서는 같다. 하지만 리세일이 ‘새 제품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하는 행위’라면 중고 거래는 ‘새 제품보다 저렴한 가격에 거래가 성사되는 행위’라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따라서 리세일은 리셀(利sell), 즉 ‘이득을 보는 판매’라고 정의할 수 있다.i 그러나 희소성이 있고 인기가 많다고 해서 리셀(Resell) 비즈니스가 성사되는 것은 아니다. 가격을 높일 수 있는 구조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다음 사례를 통해 리셀 비즈니스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적 장치에 대해 살펴본다. ① 피터해링턴: 제품을 업그레이드시킨다 영국 런던의 피터해링턴(Peter Harrington)은 헌책을 판다. 그런데 매장 한쪽 코너에 세워둔 유리 진열장 안에 있는 헌책 가격을 더하면 6만6500파운드(약 1억 원)나 된다. 진열장 안에 9권의 책이 있으니 1권당 평균 1000만 원이 넘는 셈이다.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 1만5000파운드, 월트디즈니가 만화로 제작한 『밤비』가 8750파운드다. 특별히 비싼 책을 유리 진열장에 모아둔 것이긴 하지만 이 서점에서 판매하는 헌책은 기본적으로 비싸다. 정가보다 저렴한 책은 한 권도 없다. 헌 물건은 중고 시장에 나와 신제품과 경쟁한다. 몸값을 낮춰야 선택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 헌 물건이 세월을 버텨내면 가치가 올라간다. 더는 생산되지 않기에 희소성이, 물건이 사용되던 시대를 등에 업기에 차별성이 생긴다. 또한 누구의 손때가 묻었는지에 따라서도 가치가 달라진다. 저명인사가 사인을 하면 증서를 붙인 셈이 돼 가치가 올라간다. 특히 저자/제작자가 직접 서명했다면 가치는 더 커진다. 피터해링턴은 이런 헌 물건의 속성을 이해하고 책에 적용했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 희귀해진 헌책이나 작가가 직접 서명한 헌책을 수집해 일개(?) 책의 가격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가격에 재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헌책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또 어렵사리 구했다고 하더라도 오래된 책들은 책 표지나 페이지가 훼손돼 읽기도, 보관하기도 불편할 수 있다. 이는 가치 있는 헌책의 값어치를 떨어뜨리는 요소다. 그래서 피터해링턴은 헌책을 양장본으로 리커버해 새 책처럼 만들어 판매한다. 리커버를 통해 너덜너덜하던 헌책이 고급스러운 책으로 거듭난다. 가죽 등 고급 소재로 표지를 다시 씌우기 때문에 소장 가치가 높아진다. 비교적 최근 작가의 헌책도 이처럼 소장 가치를 높인 리커버를 통해 판매한다. 리커버 양장본은 전집일 경우 더 빛을 발한다. J.K.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 일곱 편의 초판을 모아 양장본으로 리커버한 전집은 1만8000파운드(약 2700만 원),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이 포함된 24권짜리 마크 트웨인 전집은 1만5000파운드, 『동물 농장』 『1984』 등으로 구성된 8권의 조지 오웰 전집은 6000파운드 수준이다. 피터해링턴에서 판매하는 책은 일반 서점에서 같은 제목으로 나와 있는 책과 당연히 그 내용이 다르지 않다. 하지만 소장 가치 있는 헌책을 양장본으로 리커버해 업그레이드하니 리셀할 수 있는 제품으로 거듭났다. ② 베리 브로스 앤드 러드: 제품을 대신 관리한다 와인도 투자의 대상이다. 고급 와인은 숙성될수록 맛이 좋아지고 희소성이 생겨 가치가 올라간다. 기후가 좋은 해에 재배한 포도로 만든 와인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와인은 민감한 술이기 때문에 제대로 보관하지 않으면 맛이 떨어져 가치가 낮아진다. 와인을 제대로 보관하려면 온도, 습도, 빛, 냄새 등은 물론이고 심지어 진동도 잘 관리해야 한다. 습도가 낮으면 와인병의 코르크 뚜껑이 말라 산소가 과하게 유입되고, 반대의 경우엔 곰팡이가 핀다. 또한 직사광선은 와인의 산화를 촉진하고, 강한 냄새는 와인의 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진동은 와인의 노화를 앞당긴다. 이쯤 되면 가정에서 와인을 최상의 조건에 보관하는 게 불가능한 미션처럼 보인다.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숍 ‘베리 브로스 앤드 러드(Berry Bros & Rudd)’는 바로 이 지점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잡았다. 와인의 현재가 아닌 미래 가치를 보고 구매하는 고객들에게 와인 저장고를 대여해주는 것이다. 매장 내 작은 저장고가 아닌 런던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베이싱스토크(Basingstoke)에 위치한 거대한 와인 저장고를 빌려준다. 약 900만 병의 와인을 보관할 수 있는 곳이다. 와인 저장고 대여 서비스를 ‘셀러 플랜(Cellar Plan)’이라는 와인 정기 구매와 결합해 판매하고도 있다. 셀러 플랜은 고객으로 하여금 매달 일정 금액 이상의 와인을 구매하게 하고, 그 와인을 와인 저장고에 보관해주는 서비스다. 고객에겐 전담 매니저가 배정된다. 고객은 전담 매니저에게 와인 선택을 위임할 수도, 조언을 듣고 자신만의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도 있다. 적립식 펀드처럼 와인에 투자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시간이 흘러 와인의 가치가 높아진다 해도 되팔 방법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이에 베리 브로스 앤드 러드는 2010년 자체적으로 와인 거래 플랫폼 ‘베리스 교환 중개소(Berrys’ Broking Exchange, 이하 BBX)’를 오픈했다. BBX는 고급 와인을 개인 간에 거래하는 온라인 마켓이다. 현재 2000종 이상의 와인이 BBX에 올라와 있으며 구매자는 판매자가 제시한 가격에 바로 와인을 살 수도, 입찰을 제의할 수도 있다. 이 BBX에 한 달에 24만 명 이상이 접속한다. 거래되는 와인 리스트가 탄탄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합리적인 가격도 BBX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개인이 보유한 희소한 와인을 거래하는 플랫폼이다 보니 판매자가 터무니없는 가격을 책정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잦으면 플랫폼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 그래서 업자들의 와인 거래소인 ‘리벡스(Liv-ex)’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와 데이터를 공유해 개인 간 거래에 참고할 수 있게 한다. 리벡스는 글로벌 고급 와인 시장에 관한 종합적인 데이터를 제공한다. 36개국에서 참가하는 400개 이상의 리벡스 회원사들은 전 세계 고급 와인 거래의 95%를 차지하기에 거래량만으로도 시장 표준이 되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더해 리벡스는 회원사들의 거래에 관한 정보를 데이터로도 가공해 제공한다. 예를 들어 ‘리벡스 파인 와인 100(Liv-ex Fine Wine 100)’은 시장에서 가장 인기 많은 100개 와인의 가격을 추적해 지수화한 지표다. 이처럼 BBX가 리벡스의 데이터를 통해 와인 가격의 기준을 제시하고 거래가 이뤄졌을 때만 수수료를 책정하니 고객은 자신이 보유한 와인을 되팔기가 쉬워졌다. 투자 개념으로 사들인 와인을 원하는 시점과 가격에 팔 수 있게 되자 와인의 미래 가치에 투자하는 문턱이 낮아지고, 문턱이 낮아진 만큼 와인 리셀 시장은 활성화되고 있다. ③ 브릭이코노미: 제품의 미래 가치를 알려준다 지금은 마음에 들어서 사려고 하지만 나중에 이득을 보고 되팔고 싶은 제품이 있다고 할 때, 해당 제품의 미래 가격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어떨까? 제품을 구매할 때 한결 마음이 편해지고 진짜 구매를 결심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이 레고(Lego)의 세계에서 현실로 일어나고 있다. ‘브릭이코노미(brickeconomy.com)’를 통해서다. 브릭이코노미는 레고를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레고를 거래하는 데 필요한 정보와 데이터를 제공하고 아마존이나 이베이 등의 판매 사이트로 연결해준다. 단, 레고 중에서도 리셀이 가능해 투자 가치가 있는 제품만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레고는 레고스토어나 장난감 전문점에서 언제든 살 수 있는 공산품임에도 어떻게 리셀이 가능한 걸까? 레고 중에서 세트로 출시하는 제품과 미니 피겨는 단종된다. 일정 기간이 지나거나 일정 물량이 소진되면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다. 요즘은 단종되더라도 인기가 너무 많을 경우 재생산하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단종 정책이 매우 철저했다. 이러한 레고의 단종 정책으로 자연스럽게 레고 세트와 미니 피겨가 한정판이 되고, 리셀이 가능해진 것이다. 레고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기 때문에 다양한 레고 리셀 플랫폼이 존재한다. 브릭이코노미가 이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리셀에 최적화된 데이터에 있다. 브릭이코노미에서는 레고 세트와 미니피겨의 공식 판매가, 과거 리셀로 거래됐던 가격, 레고 세트별 연평균 수익률을 제공한다. 여기에 더해 중고 시장의 판매 트렌드, 통계학 및 머신러닝 분석을 통한 미래 가치 평가 데이터 등을 제공한다. 아직 판매 중인 레고 세트나 미니 피겨라면 단종 예상 시점과 단종 이후 가격 변화 예측치를 알려준다. 고객은 지금 사면 몇 년 후 얼마에 리셀할 수 있는지 예상할 수 있다. 레고 ‘스타워즈 클라우드 시티’ 세트를 예로 들어 보자. 이 세트는 2003년에 출시됐다. 당시 판매가는 99.99달러였다. 현재 리셀 시장에서의 가격은 2707.92달러다. 20년도 안 돼 약 2600%가 넘는 수익률을 올렸다. 연평균으로 환산하면 연간 수익률은 11.8% 정도 된다. 브릭이코노미가 제공하는 데이터에 따르면 이 제품을 2022년에 재판매한다면 2868.16달러 수준에서 판매할 수 있다. 1년을 더 기다리면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지만 추가되는 수익률을 계산해보면 5.9%로 그간 연평균 수익률의 절반에 그친다. 절대 금액의 상승분이 중요하다면 내년에, 수익률에 더 무게중심을 둔다면 지금 리셀하면 된다. 브릭이코노미가 돈을 버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고객을 레고 공식 홈페이지, 아마존, 이베이 등 실제 구매나 판매를 할 수 있는 사이트로 링크를 연결해주는데 이때 실제 거래가 일어나면 판매처로부터 1%의 수수료를 받는다. 또 패트리온(Patreon)이라는 멤버십을 운영하며 정기 구독 모델로도 수익을 올린다. 이 멤버십에 가입을 하면 새 레고 제품이 나왔을 때 먼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또 페이팔을 통해 기부를 받는다. 고급 정보를 무료로 볼 수 없다는 선의를 가진 사람들에게 창구를 열어놓은 것이다. 사고 되팔기 사이, 시간차의 의미 리셀 비즈니스의 중심에는 ‘희소성’ ‘인기’, 그리고 ‘시간차’가 있어야 한다. 희소하지 않고 꾸준히 공급되는 제품이라면 리셀이 아닌 중고 시장에서 거래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희소하지만 인기 없는 제품이라면 높은 리셀가가 형성될 리 만무하다. 여기에 더해 시간차가 없다면 수요자가 현재 판매하는 곳에서 동일 가격에 구매할 수 있으니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리셀 시장이 성립하기 어렵다. 위의 세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리셀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려면 희소성, 인기, 시간차 중에서도 특히 시간차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피터해링턴은 헌책의 특성상 시간의 흐름에 의해 낡고 헤진 부분을 보강해 리셀 비즈니스를 업그레이드했다. 베리 브로스 앤드 러드는 리셀하기 전까지 와인을 제대로 보관하기 어려운 투자자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리셀 비즈니스를 더 편리하게 만들었다. 브릭이코노미는 시간이 흐른 후의 제품 가치를 평가해줌으로써 리셀 비즈니스를 팬덤에 기반한 감성의 영역에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는 과학의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이처럼 사고 되팔기까지의 시간 사이에 새로운 부가가치를 더할 수 있다면 리셀은 취미를 넘어 비즈니스가 된다. 참고문헌 1.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성공의 공식 포뮬러』, 2019 2. 이동진 외, 『퇴사 준비생의 런던』, 2018 3. 이동진 외, 『뭘 할지는 모르지만 아무거나 하긴 싫어』, 2019 4. 브릭 이코노미 홈페이지(www.brickeconomy.com) 이동진 트래블코드 대표 dongjin.lee@travelcode.co.kr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올리버와이만에서 컨설팅 업무를, CJ E&M에서 전략기획 관련 업무를 수행했다. 현재는 ‘여행의 이유’를 만드는 여행 콘텐츠 기획사 트래블코드를 운영하고 있다. 『퇴사준비생의 런던』 『퇴사준비생의 런던』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뭘 할지는 모르지만 아무거나 하긴 싫어』를 공동 저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