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새빛가속기 오창에 착공
1.1조 들여 2029년까지 짓기로
3세대의 100배 밝기 원형가속기
미세한 구조-결함까지 포착 가능
2029년 말 충북 청주시 오창읍에 들어설 ‘한국새빛가속기’ 조감도. 이 연구시설은 태양보다 밝고 파장이 짧은 방사광을 이용해 반도체와 배터리의 미세한 결함을 들여다볼 수 있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 제공
27일 충북 청주시 오창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의 한 부지. 현재는 황토색 흙바닥이 드러난 드넓은 빈터지만 3년 뒤인 2029년이면 반도체, 신약, 첨단소재 연구의 핵심 기지로 변모할 곳이다. 둘레 약 800m의 원형 저장링을 갖춘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이곳에 들어서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은 27일 한국새빛가속기 착공식을 열고 총사업비 1조1643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첫 삽을 뜬 새빛가속기는 한마디로 반도체와 배터리, 신약 후보물질의 안을 들여다보는 ‘초대형 현미경’이다. 작은 입자를 빠르게 움직이게 만드는 장치를 가속기라고 하는데, 방사광가속기는 전자를 가속해 ‘저장링’이라는 원형 궤도를 돌게끔 해, 아주 밝은 빛 ‘방사광’을 만들어낸다. 이 빛을 물질에 비추면 병원의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이 사람 몸속을 들여다보듯, 물질을 뜯거나 부수지 않고도 내부 구조와 변화를 정밀하게 살펴볼 수 있다.
방사광가속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구조와 결함은 물론이고 물질이 변하는 순간까지 포착할 수 있어 첨단 산업 연구의 핵심 인프라로 꼽힌다. 예를 들어 반도체 칩이 고장 났을 때 어느 미세한 구조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전기차 배터리를 반복해 충전할수록 왜 성능이 떨어지는지 기존 분석 장비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방사광을 이용하면 완제품을 부수지 않은 채 내부를 3차원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방사광가속기는 신약 개발에도 사용된다. 제약사는 방사광을 이용해 질병과 관련된 단백질의 입체 구조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거기에 꼭 들어맞는 치료제 후보를 설계할 수 있다. 신종플루 치료제로 잘 알려진 ‘타미플루’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단백질의 구조를 방사광으로 분석한 연구를 토대로 개발된 대표적인 사례다.
이미 경북 포항시에 3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PLS-II)가 있지만 새빛가속기는 이보다 100배 밝은 빛을 만드는 4세대 원형 가속기다. 신승환 다목적방사광가속기구축사업단장은 “3세대보다 더 밝은 빛을 만들어 실험 시간을 단축시키고, 더 작은 결함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준공 시까지 새빛가속기에 실험시설인 ‘빔라인’ 10개를 만들고, 향후 이를 40개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특히 초기 빔라인 중 3개를 산업체가 우선 이용하도록 해 반도체와 2차전지, 바이오 산업에 직접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신 단장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관련 기업과 협력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향후 새빛가속기에서 생산되는 실험 데이터를 인공지능(AI)이 학습할 수 있도록 체계화해 피지컬 AI 등 첨단산업 연구에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다.
첨단산업 경쟁력이 물질을 얼마나 미세하게 분석할 수 있느냐와 연결되면서 우리뿐 아니라 세계 각국이 최신 방사광가속기를 새로 짓거나 기존 시설을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일본은 2024년 최신 원형 방사광가속기 ‘나노테라스’ 가동을 시작했고, 중국도 4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 HEPS 구축을 마치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가고 있다. 한국도 2029년 새빛가속기가 완공되면 세계 최고 수준의 4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 경쟁에 합류하게 된다.
구혁채 과기정통부 제1차관은 “이번 가속기 구축은 반도체와 2차전지의 성능을 높이고 바이오 신약 개발을 앞당기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주=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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