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호 (2020년 4월 Issue 1)
2002년 독일의 고급 스포츠카 제조사 포르셰는 SUV 카이엔을 론칭했다. 이미 자동차 시장은 SUV 붐이었지만 럭셔리 자동차 시장에서는 아직 이런 시류에 편승하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이때 포르셰가 업계 최초로 럭셔리 SUV를 출시했다. 출시 초기 언론과 전문가들은 악평을 늘어놨지만 2만5000대 이상을 판매해 시장의 환대를 받았다. 출시 11년 만에 50만 대를 판매했고, 2018년엔 7만 대가 넘게 판매됐다. 포르셰 판매량의 70%를 SUV와 세단이 차지하는 기현상이 빚어진 것이 포르셰의 브랜드 속성에 반한다는 비난도 받았지만 포르셰는 고급 차 시장도 변화하고 있음을 제대로 보여줬다. 소위 ‘하이퍼카’라고 하는 수제 슈퍼카 브랜드들은 일상생활에 사용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포르셰는 슈퍼카의 DNA를 가지고도 데일리카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로 단숨에 시장을 평정해 버렸다. 이후 람보르기니, 벤틀리, 롤스로이스 등 거의 모든 럭셔리카 브랜드가 SUV를 만들어내며 경쟁자로 등장했다. 포르셰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9년 테슬라가 독점한 고성능 전기차 시장에 타이칸이라는 전기차를 내놓고 전기차도 포르셰가 만들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자동차 등장 초기 전기차는 상류층 여성들에게 인기였는데 100여 년이 흐른 지금 다시 그들의 지갑을 두드리게 된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