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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혁신의 사상가들을 소환하다

김현진 | 430호 (2025년 12월 Issue 1)
2025년 10월 발표된 노벨경제학상은 혁신이 어떻게 경제의 성장 경로를 스스로 재편하는지를 정교하게 규명한 연구자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이들은 기술의 축적과 새로운 기업의 진입이 경쟁을 촉발하고 그 과정에서 기존 기술과 산업 질서가 대체되는 ‘내부 혁신의 순환’을 수학적, 역사적, 제도적 관점에서 입증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흐름은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이 말한 ‘패러다임 전환’의 원리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과학이 누적된 변칙 사례를 계기로 낡은 이론을 밀어내며 진화하듯 경제도 스스로의 질서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된 셈입니다. 이로써 혁신은 성장을 보조하는 부수적 요소가 아니라 경제를 진화시키는 핵심 메커니즘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강조됐습니다.

하지만 기술 변화는 빠르게 진행되는 데 비해 기업들은 여전히 기존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도 변화가 정착되지 않는 이유는 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변화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관점이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DBR 편집진은 이번 스페셜 리포트를 ‘기법’이 아닌 ‘관점’을 되짚는 기획으로 설계했습니다. 변화에 쫓겨 최신 도구만 소개하는 대신 경영·경제·과학철학을 구축해온 석학들의 공고한 이론으로 돌아가 AI 시대의 경영자가 무엇을 다시 질문해야 하는지 차분히 짚어보고자 했습니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필요한 ‘초심의 좌표’를 사상가들에게서 다시 소환하는 시도입니다.

첫 번째 좌표는 과학혁명 이론을 세운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 개념입니다. 쿤이 말한 패러다임은 단순한 학문적 지식의 모음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현상을 ‘문제’로 보고, 무엇을 ‘정상’으로 보는지까지 결정하는 사고의 틀입니다. 이 틀이 바뀌지 않으면 새로운 정보가 들어와도 해석 방식은 그대로 머무르게 됩니다.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평생의 저항(lifelong resistance)’이 산업 현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셈입니다.

이 통찰은 창조적 파괴론을 정립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의 혁신 이론과도 결이 맞닿아 있습니다. 슘페터는 경제가 외부 충격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과 기업이 등장해 기존의 것을 밀어내는 내부 순환 과정을 통해 스스로 진화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연구 역시 경제의 성장 경로가 스스로 바뀌는 과정을 수학적으로 확인하면서 경제가 외부 충격이 아닌 내부 혁신의 누적으로 진화한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오늘날의 AI는 이 변화 메커니즘을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하고 있지만 기술만으로 혁신이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린다 힐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의 연구는 혁신이 한 천재의 작품이 아닌 조직 전체가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구성원 각각의 ‘작은 천재성(slice of genius)’이 모이고 연결될 때 비로소 기술은 조직 안에서 살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또한 레베카 카프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단순히 역량이나 의지가 부족해서 혁신에 실패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업이 혁신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잘못 진단했기 때문입니다. 산업의 단계, 경쟁자와의 거리, 기업의 역량 성숙도에 따라 혁신과 모방의 최적 전략은 달라져야 하기에 올바른 진단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 모든 논의가 가리키는 결론은 확실합니다. 혁신의 핵심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다시 정렬하는 일’임을 깨달아야 기업은 AI 시대를 단순한 변화가 아닌 ‘재탄생의 시간’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입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신년을 준비하는 시기, 혁신은 ‘해답을 더하는 것’이 아닌 ‘다시 질문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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