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인간의 사고방식을 다시 쓰는 문명이다.”
이제 이 문장을 공허한 수사가 아닌 체감 가능한 명제로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묘한 아이러니도 함께 생겼습니다. 인간은 AI 덕분에 이전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다룰 수 있게 됐지만 사고의 깊이는 되레 얕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빠른 답’을 얻을수록 ‘왜’라는 질문은 사라집니다. 클릭 한 번으로 해답이 생성되는 시대, 인간은 생각하기보다 확인하는 존재로 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떠올릴 만한 질문이 있습니다. “기술이 사고를 대신하는 시대에도 인간은 여전히 ‘왜’를 물어야 하는가?”
이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개념이 바로 ‘소크라틱 AI(Socratic AI)’입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사용한 문답법, 즉 산파술을 기술적 언어로 재구현하려는 시도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질문 자체를 인간의 핵심적 역량으로 파악한 철학자로 제자들에게 지식을 주입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질문을 통해 스스로 사유의 근거를 찾아내도록 도왔습니다. “너는 그것을 안다고 말하지만 정말 아는가?” “그 믿음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 대화의 목적은 지식 전달이 아닌 사유 능력을 기르는 것이었습니다.
UNSW시드니 경영대학원에서는 최근 이를 실제 수업 환경에 적용한 실험이 하나 진행됐습니다. 교수는 자신의 암묵지를 지식그래프 형태로 구조화해 학생에게 먼저 질문을 던지는 ‘소크라틱 AI 에이전트’를 개발해 수업에 적용했습니다. 이 AI는 학생의 답변 수준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면서 “그 전략적 선택의 전제는 무엇인가?” “사례 간 논리는 어떻게 연결되는가?”와 같은 추가 질문을 이어갑니다. 단순 정답 여부가 아니라 사고의 구조, 연결, 깊이를 평가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이 실험은 AI가 교육의 본질인 ‘생각하는 인간’을 복원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기업 현장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AI는 박학다식하긴 하지만 맥락을 모르는 신입 사원과 비슷합니다. 무엇이든 빠르게 처리하지만 조직의 역사·문화·우선순위, 즉 ‘왜 이것을 이렇게 하는가’를 이해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입 사원을 동료로 맞아 성과를 내려면 인간의 역할은 사용자(Operator)를 넘어 설계자, 비평가, 코치로 확장돼야 합니다. 이미 일부 글로벌 기업은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검증하고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AI 비평가’ 역할을 공식화했습니다.
‘뉴로심볼릭(Neuro-Symbolic) AI’는 이러한 변화의 기술적 기반을 설명합니다. 금융 규제 준수, 의료 진단 보조, 법률 계약 분석 등 ‘정답이 아니라 근거를 요구하는 영역’에 이미 활용 사례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HR과 조직 운영 관점에서도 변화는 감지됩니다. 세일즈포스와 모더나는 HR과 IT 기능을 통합해 인간과 AI가 함께 일하는 새로운 조직 구조와 교육 체계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결국 미래의 인재는 ‘AI를 능숙하게 쓰는 사람’이 아니라 ‘AI와 함께 사유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협업자’로 정의될 것입니다.
따라서 질문은 다시 인간으로 귀결됩니다. 기술이 ‘어떻게’를 해결해 줄수록 인간은 ‘왜’를 물어야 한다는 것. “이 문제를 이렇게 정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데이터가 말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AI를 활용하는 단계를 넘어 AI에 의해 사고하고 있다는 의심이 될 무렵 꼭 한번 스스로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이번 호 스페셜 리포트는 AI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잃지 말아야 하는지, 문제의식과 통찰을 한데 모았습니다. 기술의 목적이 인간 능력의 확장이라면 이 목적을 우리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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