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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AI는 없다?

최첨단 기술은 고령자에게 무용지물
건강 상태 세분화해 각각 니즈 파악 먼저

공경철,정리=강지남 | 402호 (2024년 10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AI 기술이 고령자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킬 것이란 기대감이 형성된 지 몇 해가 지났지만 우리 주변에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노인을 찾아보긴 힘들다. 이는 ‘새롭고 신기한’ AI 기술에만 집중하고 ‘고령자에게 진짜 필요한’ AI 기술에 대한 고민이 적었기 때문이다. 실버산업에서 AI 기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우선 고령자를 하나의 집단이 아닌 운동 및 건강 상태에 따라 여러 계층으로 세분화해 각각의 니즈를 파악해야 한다. ‘고령자의 삶의 질 개선’과 같은 주관적 목표 말고 결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해 비즈니스를 설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고령자가 사용하기 쉽고 편한 인터페이스를 개발하고 대형 AI 모델보다는 개인에게 맞춤화된 생애 전 주기적 데이터 수집에 집중하는 것도 핵심 과제다.



노년의 삶의 질 향상시키는 AI에 대한 기대

AI(인공지능) 기술은 실버산업에서 노인의 건강관리와 돌봄 서비스에 혁신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예를 들어 AI 기반의 웨어러블 기기로 노인의 심박수, 혈압, 활동량 등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수집된 데이터는 AI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돼 이상 징후를 조기에 감지하고 필요시 의료진에 알림을 전달해 응급 상황을 예방할 수 있다. 또한 AI는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해 사용자의 건강 상태에 맞는 운동, 식단, 수면 등을 추천하고 건강관리 목표 달성을 지원할 수도 있다.

한편 AI 기반 로봇이 노인의 일상생활을 돕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여러 제품이 출시됐다. 예를 들어 AI 로봇은 노인의 집안일을 도와주거나 약 복용 시간을 알려주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노인의 자립적 생활을 지원한다. 스마트홈 시스템을 통해 원격 모니터링과 응급 상황 대처가 가능하고 사회적 고립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기여한다. 이처럼 AI 기술 도입은 노년기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실버산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실버산업에 AI 기술을 활용하는 기업들 중 중 현재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곳 중 하나로 2013년 설립된 케어프레딕트(CarePredict)가 있다.1 이 회사는 AI와 웨어러블 센서 기술을 결합해 노인의 활동 패턴을 모니터링하고 일상생활의 변화를 감지해 건강 문제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솔루션을 개발했다. 케어프레딕트는 이 솔루션을 통해 치매 초기 증상이나 낙상 위험을 예측하고 적시에 가족이나 의료진에게 알림을 보낸다. 노인의 신체에서 다양한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웨어러블 센서 제품들을 출시했으며 위치 및 행동 추적 서비스를 제공하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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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고독감과 사회적 고립을 줄이기 위해 설계된 AI 기반의 반응형 로봇 엘리큐(ElliQ)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인튜이션 로보틱스(Intuition Robotics)2 가 개발한 엘리큐는 사용자와 대화를 나누고 활동을 권장하며 건강관리와 관련된 리마인더를 제공하는 등 사용자의 일상생활을 돕는다. 엘리큐 로봇은 먼저 사용자에게 말을 거는 등 다른 소셜 로봇들과 달리 항상 노인 케어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노인의 정신 및 육체적 활동 수행을 돕도록 개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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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카탈리아 헬스(Catalia Health)3 의 마부(Mabu)는 만성질환을 가진 노인의 약물 복용을 관리하고 치료 지침을 따르도록 돕는 AI 기반 소셜 로봇이다. 마부는 환자와 일상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치료 계획을 맞춤화하고, 필요한 경우 의료진과 연결해준다. 이를 통해 치료 효과를 높이고 의료비를 절감하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실버산업에서 실패한 AI 기술들

케어프레딕트, 엘리큐, 마부 등은 성공 사례라기보다는 ‘성공할 것으로 기대되는’ 사례다. 사실 실버산업에서 AI 기술이 기대만큼 상업적 성과를 거두는 데 실패했거나 최소한의 소비자 만족을 이끌어내지 못한 사례들이 적지 않다.

2016년 지보(Jibo)는 동명의 가정용 소셜 로봇 ‘지보’를 출시하며 이 제품이 노인과 상호작용하며 감정적 교류를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도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판매 초기 지보는 많은 관심과 기대를 받았지만 여러 문제로 인해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첫째, 지보는 사용자가 기대한 만큼의 기능과 가치를 제공하지 못했다. 둘째, 지속적인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유지보수가 부족했고 그로 인해 사용자 경험이 저하됐다. 결국 지보는 2018년 사업을 공식적으로 철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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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점에서 지보를 AI 기술이 적용된 소셜 로봇이라고 정의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지보의 사업 철수 이후 AI 기술에 대변혁이 일어났고 그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자연어처리, 데이터 검색, 감정 및 상황 분석 기능 등이 개발됐기 때문이다. 사실 앞서 소개한 엘리큐나 마부 또한 큰 틀에서 개념이나 형상이 지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만약 머지않아 엘리큐나 마부가 상업적으로 성공한다면 현재의 고도화된 AI 기술이 게임체인저로 역할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엘리큐나 마부가 결국 지보의 전철을 밟게 된다면 기술의 고도성보다는 수요자가 원하는 기술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비즈니스 원칙을 재확인하게 될 것이다.

사이버다인(Cyberdyne)은 2014년 설립된 일본의 대표적 로봇 기업이다. HAL(Hybrid Assistive Limb)이라는 웨어러블 로봇을 개발해 재활 치료, 일상 보조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를 해왔으며 창업 초기부터 실버산업을 비즈니스의 큰 축으로 내세웠다.

사이버다인은 노인 요양시설 등 실버산업에 적극적으로 진입하고자 노력했지만 높은 비용과 센서를 맨몸에 붙여야 하는 번거로운 사용법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AI 기술이 적용된 바이오센서’라는 기술적 차별성을 강조했지만 노인 사용자에게 기술적 차별성은 불편함을 극복하는 요인이 되기 어려웠다. 노인들은 HAL을 착용하고 사용하는 데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의료진에게도 추가적인 훈련이 필요하다는 등의 한계로 HAL은 널리 보급되는 데 실패했다. 최근 사이버다인은 사업 방향을 전환해 재활센터와 병원을 위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한편 AI 기술 개발 및 투자가 활발한 분야 중 하나는 ‘낙상 예측 AI 시스템’이다. 낙상은 한순간에 노인의 건강 상태에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이에 카메라 비전이나 웨어러블 센서, 레이더나 라이다(lidar) 등으로 노인의 행동 상태를 측정하고 낙상의 위험성을 예측하려는 목적으로 AI 기술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기술 개발과 투자가 활발한 만큼 실패 사례도 여럿 존재한다.

2023년 학술지 ‘BMC 의료정보학과 의사결정(BMC Medical Informatics and Decision Making)’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병원 내 급성 뇌졸중 환자들을 대상으로 낙상 예측 AI 시스템을 사용했으나 기존의 낙상사전도구(MFS, Morse Fall Scale)와 비교했을 때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 연구에는 156건의 낙상 사건을 포함한 데이터가 사용됐으며 AI 모델의 예측 정확도는 기존의 고식적인 방법과 유사한 수준이었다.

2022년 ‘신경학저널(Journal of Neurology)’에 발표된 논문은 웨어러블 센서 데이터를 사용해 낙상을 예측하려 했으나 데이터의 품질 문제로 인해 예측 정확도가 낮았다고 보고했다. 이는 낙상 예측 AI 기술이 갖는 원론적 난제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센서 데이터가 부정확하거나 불완전할 경우 AI 모델은 잘못된 예측을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AI의 본질적 특성이다. ‘낙상이 일어나는 노인’의 데이터를 정확하고 광범위하게 얻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라서 AI 기술을 활용한 정확한 낙상 예측은 매우 어려운 과제다.

2020년 ‘로봇공학 및 인공지능 프런티어(Frontiers in Robotics and AI)’에 발표된 낙상 예측 AI 기술 관련 리뷰 논문에 따르면 AI 시스템이 사용자의 환경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낙상 예측에 실패한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어 가구 배치가 변경됐거나 새로운 장애물이 생겼을 경우 AI 알고리즘이 이를 반영하지 못해 낙상 예측 정확도가 떨어졌다. 낙상이 너무나 많은 환경적, 신체적, 심리적 상태가 복잡하게 반영돼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제한된 데이터로 예측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준 사례다.


진짜 필요한 AI 기술을 찾아내야

앞서 실버산업에서 AI 기술이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사례와 그 반대의 상황에 놓인 사례를 알아봤다. 이제는 AI 만능주의 혹은 신비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급자 관점에서 새롭고 신기한 기술이 아닌 수요자 관점에서 진짜 필요한 AI 기술이 무엇인지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그 수요자가 고령자라면 더욱 정교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다.

실버산업은 비즈니스의 대상과 목적, 방법을 정의하기가 무척 까다롭다. 연령이 65세 이상이 됐다고 해서 모두 다 노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실버산업에서 기술이 행한 오류의 대다수는 수요자를 공급자 관점에서 임의로 해석하고 정의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인은 힘이 없고, 외롭고, 보살펴야 하는 존재로 일반화해서는 실버산업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특히 AI 기반 기술은 정교하고 정확한 인과관계에 대한 가설, 그리고 이를 검증할 데이터 수집이 필수불가결하다. 그런데 노인을 정의하는 복잡다양한 변수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 더해 복잡다양한 변수를 구분하는 것을 간과할 경우 제대로 된 가설을 수립하기조차 어렵다.

지난 수년간 AI 기술이 실버산업에서 보여준 한계점은 분명하다. 첫째, 많은 노인이 첨단 기술에 익숙하지 않아 AI 기반 기기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둘째, 일부 노인은 AI 기술을 사용하는 데 대해 심리적 저항을 느끼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이는 기술에 대한 불신과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AI 기술이 노인 돌봄에 사용되면서 오히려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줄어 사회적 고립감이 증대된 경우가 있다. AI 기술이 노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돌봄 제공자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한 기술이라는 분석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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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건강 상태로 구분한 고령자 3단계와 사업 기회


1단계 액티브 시니어 : “나이는 숫자일 뿐”

나이와 상관없이 상대적으로 신체 기능 저하 속도가 느리고 활동적인 삶을 추구하는 노인을 ‘액티브 시니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들은 건강관리에 유난히 관심이 많고 다양한 취미와 레저 활동을 영위하는 특징이 있다. 또한 미래지향적으로 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액티브 시니어는 젊은 세대의 문화와 제품, 기술을 있는 그대로 공유하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별도의 수요를 정의하기는 어렵다.

2단계 일반 고령자 : “예전 같지 않네”

일상생활은 무리 없이 가능하지만 고령으로 인해 신체의 일부 기능이 분명히 저하되고 노화가 자연스럽게 진행 중인 고령자가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아직 위험한 질병은 없으나 근육, 뇌, 심혈관 등 여러 신체 기관에서 기능의 저하를 실감하며 그에 대한 공포심과 스트레스를 갖고 있다. 건강관리와 질병 예방에 큰 관심을 보이지만 그렇다고 예방 목적으로 적정 수준 이상의 시간과 비용 투자는 거부하는 모순된 성향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전체 고령자 중 일반 고령자의 비중이 워낙 높기 때문에 이들을 가장 큰 시장으로 간주할 수 있다. 다만 이들이 가장 지갑을 열지 않는 보수적인 소비자층이라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3단계 만성질환자 : “병원 근처에 살아야”

질병을 지닌 환자이면서 동시에 고령으로 인해 치료 효과가 높지 않아 의료 시스템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일상생활에서도 지장을 겪는 이들이다. 이들은 질병 치료와 집중적 건강관리가 필요한 집단으로 심각한 경우에는 치매/알츠하이머와 같이 주변인과의 사회적 관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질환자도 포함된다. 또한 대부분의 경우 운동 기능의 저하로 이동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만성질환자는 병원 진료 및 치료와 치료약 등 건강관리를 위해 막대한 비용과 시간 지출을 아끼지 않는다. 국가 차원에서도 이들은 건강보험공단의 재정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만성질환자는 실버산업보다는 의료산업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건강을 위한 강력한 소비 의지와 건강보험 등 사회적 제도까지 더해진 만큼 이미 충분한 투자와 기술 개발이 이뤄진 영역이기도 하다.



로코모티브 신드롬과 ‘보행건강’ 지표

실버산업에서 AI 기술의 새로운 비전에 대해 논의하려면 우선 고령인구라는 복합 집단을 ‘운동건강 상태’를 기준으로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물론 고령인구에게는 운동건강 외에도 심리건강이나 지역적 요인, 부의 수준 등 매우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그러나 운동건강 상태는 심리건강이나 사회성 등에 큰 영향을 주는 원인적 요소이므로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또한 고령인구를 운동건강 상태를 기준으로 바라보면 실버산업과 헬스케어산업을 동시에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생긴다. 최근 헬스케어산업의 가장 중요한 트렌드가 ‘디지털 헬스케어’이고 디지털 헬스케어의 핵심이 바로 데이터와 AI 기술이므로 실버산업과 AI 기술의 접목을 논의하는 데 있어 디지털 헬스케어를 빼놓을 순 없다.

고령자는 △액티브 시니어 △일반 고령자 △만성질환자의 3단계로 세분화할 수 있다. (DBR mini box I ‘운동건강 상태로 구분한 고령자 3단계와 사업 기회’ 참조.) 이는 고령자를 나이가 아닌 운동건강 상태를 기준으로 구분한 것이다. 실제로 고령자의 운동건강 상태를 진단하고 이에 맞춰 고령자에게 적합한 의료 및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로코모티브 신드롬(Locomotive Syndrome)이라는 개념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로코모티브 신드롬은 2007년 일본 정형외과학회에서 처음 발표된 개념으로 고령화사회에서 노인의 운동 기능 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됐다. 한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일본은 운동건강을 기준으로 고령인구를 분류하면 국가가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의료 및 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궁극적으로는 국가 의료비의 재정건전성 강화를 위해 의료, 기술, 정책 등 다양한 영역에서 로코모티브 신드롬에 대해 활발한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원래 로코모티브 신드롬은 복잡한 의학적 개념이지만 아주 쉽게 설명하자면 ‘얼마나 잘 걷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해도 무방하다. 건강하게 걸어 다닐 수 있으면 액티브 시니어, 걷기는 하지만 다소 불편하게 걸어야 하면 일반 고령자, 걷기 어려워진 상태가 되면 만성질환자가 될 확률이 높다. 결국 운동건강 상태를 대표하는 ‘보행건강’이라는 지표로 실버산업의 소비자층을 구분할 수 있고, 시장을 수요맞춤형으로 공략할 수 있는 전략을 도출할 수 있다.


로봇과 결합해야 진짜 ‘헬스케어’

그렇다면 보행건강은 AI 기술에 어떤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가. 우선 보행건강은 신체의 운동능력으로부터 정의되고, 운동능력은 물리적인 운동 상태로부터 평가할 수 있다. 물리적인 운동 상태는 각종 웨어러블 센서나 영상 등으로 측정할 수 있는데 이를 인체 모델을 기반으로 분석하는 데 AI 기술이 폭넓게 사용될 수 있다. 이때 사람의 감정, 경험, 성향 등 객관화하기 불가능한 인적 요소(Human Factors)를 최대한 배제하고도 보행건강 상태는 비교적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다. 인체 신경계의 제어 능력, 근육의 활성도, 관절의 건강 상태 등 보행건강과 관련한 요인들에 입출력 관계가 물리적으로 정의되고 비교적 명확하기 때문이다.

사실 위의 내용은 관심 분야를 ‘보행건강’으로, 대상자를 ‘고령자’로 한정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기존의 디지털 헬스케어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사용자의 보행 및 운동 정보를 웨어러블 센서나 카메라로 측정해 빅데이터와 비교하며 건강 상태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의료적 진단을 하거나 자동으로 식습관 교정 또는 운동 제안을 하는 것은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의 전형적인 서비스 형태다.

그런데 보행건강은 일상에서의 꾸준한 관리와 물리적 보조를 통해 예방과 치료가 가능하다. 즉 AI 기술이 직접적으로 ‘건강(Health)’을 ‘관리(care)’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려면 AI 기술이 현실 세계에서 사람의 몸에 물리적인 보조를 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로봇이다. 실버산업에서의 AI 기술은 로봇과 접목해야 비로소 그 가치가 살아날 수 있다.


생애 전 주기적 건강관리의 실현

앞서 보행건강의 상태에 따라 고령자를 액티브 시니어, 일반 고령자, 만성질환자의 세 부류로 구분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우리 모두가 생애주기에 따라 이 세 가지 상태를 모두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누구나 보행 또는 운동건강에 전혀 문제가 없던 시기에서 질병이나 사고로 운동건강 수준이 급격하게 하락하는 시기, 전문적 치료를 통해 건강 상태를 회복하는 시기, 가정과 일상에서 꾸준한 관리를 통해 건강 상태를 유지하는 시기를 순서에 관계없이 한 번씩은 경험하게 된다. (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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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액티브 시니어라 해도 누구나 나이가 들면 보행건강은 점차 쇠퇴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AI 기술과 로봇을 접목해 일상생활에서의 보행 능력 유지를 위한 운동과 보조를 제안받고, 지속적으로 보행 관련 데이터를 축적하며, 보행건강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이때 AI 기술은 보행건강 상태의 정교한 분석 및 질환 가능성 예측, 운동 처방 제안 등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로봇은 AI 기술로 결정된 운동 또는 보조 패턴을 물리적으로 구현해 신체에 전달하고 사람의 몸에서 데이터를 광범위하게 취득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로써 AI와 로봇을 활용하지 않았을 때에 비해 보행건강을 더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

필자의 연구팀은 이러한 목적으로 오랜 기간 웨어러블 로봇 기술을 개발해왔고 엔젤로보틱스를 통해 고관절 보조 로봇, 무릎 관절 보조 로봇 등을 제품화했다. (그림 2) 그러나 아직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한 정식 출시를 미루고 있는데 액티브 시니어와 같이 건강한 사람들이 굳이 돈을 들여 보행 보조나 운동 보조를 받을 이유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로봇을 착용하기만 하면 데이터 측정, 보행건강 분석 등 기술적으로 다양한 기능을 이용할 수 있지만 이러한 기능에 소비자가 소비 의사를 밝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러한 비즈니스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플랫폼과 연동하는 작업이 유리한 전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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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환이 발생하거나 사고를 경험하면 일정 수준 이하로 보행건강 수준이 떨어진다. 이때 병원에서 로봇과 AI 기술을 활용하면 더 빠르게 지면 보행을 시작할 수 있고 근육과 균형 감각의 소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비즈니스는 실버산업이라기보다는 로봇과 AI 기술이 접목된 의료산업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보행건강과 관련한 의료 기술은 병원에만 머무르지 않고 반드시 가정 및 일상에서의 건강관리와 연계돼야 하기 때문에 고령자를 위한 보행건강 의료 기술은 AI 및 로봇 기반 실버산업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한편 만성질환자가 되면 막대한 의료비 지출과 시간 투자를 피할 수 없다. 이는 개인, 가정, 나아가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다. 따라서 병원 치료가 마무리되는 시점에는 회복된 신체 능력을 유지하거나 점진적으로 회복시키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병원에서 받았던 전문적인 진단/치료와 유사한 수준의 집중적이고 효과적인 개인맞춤형 건강관리가 필요하다.

가정에서의 건강관리를 위해 [그림 2]와 같은 웨어러블 로봇을 활용할 수 있다. 이 경우 병원 등 의료기관이 연계된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기 때문에 단순히 일상에서 건강관리를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의료기관의 전문적 서비스를 가정으로 확장한다는 개념이 더 정확하다. 물론 의료진이 가정에 동행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빈자리는 AI 기술로 채워야 한다.


개개인의 ‘보행건강 데이터’ 축적해야

보행건강 관점에서 바라보는 실버산업과 디지털 헬스케어는 그 필요성이나 수요가 분명하고 또한 AI와 로봇 기술이 게임체인저 역할을 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보행건강의 수준에 따라 세분화되는 대상자 그룹은 서로 다른 기술과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는 점은 분명한 도전 과제다. 액티브 시니어가 사용하는 ‘AI+로봇’이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사용하는 ‘AI+로봇’과 같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파편화된 개별 시장들을 동시에 공략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 [그림 1]과 같은 생애 전 주기적 보행건강관리 솔루션이 동시에 제공되지 않으면 보행건강 관점의 실버산업이나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은 폭발적으로 열리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파편화된 개별 시장들을 어떻게 하나로 묶을 것인가? 개인의 생애 전 주기적 보행건강 데이터가 그 매개체가 될 것이라고 본다. 건강할 때의 보행건강 데이터는 여러모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각자의 신체 구조에 최적의 보행 양상이 무엇인지 기록해두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지만 로코모티브 신드롬의 개념에 따라 보행 양상의 변화는 곧 건강 상태의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각자의 건강을 객관화하는 지표로서도 보행건강 데이터는 매우 중요하다. 또한 여기에 게임 효과를 적용한다면 제2, 제3의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할 수도 있다. 일상생활에 걸음 수에 비례해 리워드를 주는 등 소소한 재미를 더해주는 수준에서 나아가 실제 오감을 자극하는 격렬한 VR 게임 등과 골프 스윙 등 운동 자세 교육까지 실현할 수 있다. 물론 생애 전 주기적 데이터가 취합될 때 가능한 시나리오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실버산업에서의 데이터는 모든 서비스에서 공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빅데이터와 이를 기반으로 한 대형 AI 모델보다는 개인에게 맞춤화된 생애 전 주기적 데이터가 더 중요하고 유용하다는 것이다. 다수의 사람에게서 측정된 데이터를 통합하고 정규화하기보다는 오랜 시간 개인의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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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고도한 알고리즘 이상이 되려면

AI 기술이 실버산업에 혁신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된 지도 벌써 수년이 지났다. 수많은 AI 기반 실버 서비스 기업이 등장했지만 현실에서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고령자나 AI 기반 실버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분야를 찾아보긴 쉽지 않다. 이제 AI 기술에 대한 신비감이나 기대감을 잠시 접어두고 실버산업의 세부 영역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아주 정교하게 수립해야 할 시점이다. 기술은 비즈니스의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실버산업과 접목되는 AI 기술은 첫째, 철저하게 사용자 관점에서 개발된 기술이어야 한다. 고령자는 IT 기기나 소프트웨어에 익숙하지 않다고 가정하는 것이 안전하다. 고령의 사용자가 거부감 없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다. 둘째, 비즈니스 대상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나이가 많다고 모두 같은 고령자가 아니고, 고령자라고 모두 실버산업이 타깃으로 하는 고객이 아니다. 게다가 질환을 앓는 고령자는 이미 의료/헬스케어 관점에서 오랫동안 다뤄온 대상자다. 마지막으로 비즈니스의 목적을 분명하게 정의해야 한다. ‘고령자의 삶의 질을 개선한다’는 목표는 주관적이고 불분명하여 검증하기 어렵다. 이보다는 ‘국가 의료비 지출을 줄인다’거나 ‘돌봄 제공자의 업무 효율을 높인다’ 등 객관화할 수 있는 목표가 바람직할 것이다. 목표가 분명해 해당 비즈니스의 자본이 어디서 비롯돼야 하며 비즈니스의 피드백 루프가 어떻게 형성돼야 하는지 명료하게 정의할 수 있다. 이 과정을 간과한다면 AI 기술을 적용한 고령자 타깃의 제품/서비스가 B2G, B2B, 또는 B2C 비즈니스에 해당하는지부터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명심하자.
  • 공경철kckong@kaist.ac.kr

    KAIST 기계공학과 교수·엔젤로보틱스 대표이사

    공경철 교수는 서강대 기계공학과 및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2006년 동 대학원 기계공학 석사를 거쳐 2009년 UC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2011년 서강대 기계공학과 교수로 부임했으며 2019년부터는 KAIST 기계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제어이론을 전공하고 로봇공학을 연구하고 있으며 인간의 능력을 로봇기술로 보완하기 위한 여러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웨어러블 로봇을 상용화하기 위해 2017년 엔젤로보틱스를 창업하고 CEO 및 CTO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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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리=강지남jeenam.kang@gmail.com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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