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결제 단말기 시장 진출을 통해 오프라인 결제 시장 혁신에 도전하는 토스플레이스가 제품 출시 1년 만에 시장의 주목을 받게 된 비결은
1. 매장과 고객의 중요한 접점으로 결제에 필수적이지만 오랫동안 변화가 없었던 결제 단말기의 사용성에 주목했다.
2. 공급자 중심의 단말기 시장의 한계를 파악하고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춰 결제 단말기의 역할을 안면 인식 결제를 포함한 서비스 플랫폼으로 확장했다.
3. VAN과 VAN대리점 중심의 단말기 유통 시장의 생태를 이해하고 VAN대리점과 상생하는 비전을 공유함으로써 신뢰의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4. 하드웨어팀과 소프트웨어팀이 협업해 예쁘면서도 궁극적으로 기기에 탑재된 다양한 서비스를 돋보이게 하는 중립적 디자인의 단말기를 설계했다.
5. 고객 목소리 분석과 필드 테스트를 통해 키오스크 모드, 포인트 적립 등 단말기 기능을 빠르게 업데이트해 가맹점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결제 단말기는 오프라인 결제에 핵심적인 기기이다. 매장에서 매일 수백에서 수천 건씩 신용카드 결제가 이뤄지는 이 단말기에 자영업자들의 생계가 달려 있다. 그런데 1980년대 결제 단말기가 처음 도입된 이래로 지난 40여 년간 이 시장에는 사용자가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이렇다 할 혁신이 없었다. 신용카드에서 각종 페이로 결제 수단은 늘어났지만 결제의 핵심인 단말기의 디자인과 사용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가뜩이나 좁은 계산대의 공간을 차지하는 볼품없는 기계는 매장에서 너무나 중요하지만 가급적 ‘숨기고 싶은’ 존재였다.
그런데 빅테크 회사인 비바리퍼블리카(이하 토스)의 자회사인 토스플레이스가 계산대 앞(front)에 당당하게 앞세울 수 있는 미니멀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의 결제 단말기, ‘토스 프론트’를 새롭게 선보였다. 결제만 가능했던 기존 기기와 달리 앱을 탑재해 결제 말고도 다양한 서비스 기능을 수시로 업데이트할 수 있는 신개념 단말기다. 예컨대 결제할 때는 결제 내역, 평소에는 새 메뉴나 이벤트 이미지, 직원이 바쁠 때는 키오스크 모드로 화면을 바꿔 상황별로 맞춤형 고객 응대가 가능하다.
토스 프론트는 카페, 베이커리 등의 업종에서 1인 혹은 소규모 창업을 하는 젊은 자영업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토스플레이스에 따르면 2023년 3월 출시 이후 토스 프론트와 영수증 프린트 겸용 결제 단말기인 ‘토스 터미널’ 등 토스 단말기의 누적 가맹점 수는 1년 만에 3만 개를 돌파했다. 출시 이후 1년간 월평균 신규 가맹점 수 증가율은 43%를 기록했다. 2024년 5월 기준 누적 가맹점 수는 4만 개이며, 특히 5월 한 달간 신규 가맹점 수는 5260개였는데 이는 월 3만6000개로 추산되는 신규 가맹점 시장의 약 15%에 해당한다. 아직 전체 시장에서 토스플레이스 단말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지만 빠른 성장세는 이 시장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오프라인 비즈니스 경험이 없는 핀테크 기업이 수십 년 업력을 자랑하는 전문 업체들이 장악한 B2B 시장을 뚫고 지각변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온라인 간편 송금 서비스에서 출발해 이제는 금융 분야의 빅테크 기업으로 자리 잡은 토스지만 오프라인, 더군다나 금융업이 아닌 단말기 제조업에서는 존재감 없는 신생 업체였다. IT 개발자 등 모바일 비즈니스에 최적화된 토스 조직에 결제 단말기는 굉장히 낯선 제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장에 토스플레이스가 도전장을 내민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토스플레이스는 어떻게 새로운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을까? 결제 단말기를 중심으로 오프라인 결제 시장을 혁신하고자 하는 토스플레이스의 창업 스토리와 혁신 전략을 DBR이 분석했다.
토스플레이스가 제품 출시 1년 만에 거둔 성과 뒤에는 새로운 시장을 이해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준비 기간이 있었다. 2022년 3월 토스플레이스가 출범하기 전부터 사업 전략을 구상한 최지은 대표와 박용원 사업개발매니저(Business Development Manager, BDM), 백인범 프로덕트 오너(Product Owner, PO), 단말기 제품 디자인을 총괄한 류관준 산업디자이너(Industrial Designer), 제품에 탑재된 서비스 개발을 총괄한 이승훈 프로덕트 오너를 인터뷰했다.
결제 단말기의 ‘범용성’에 주목안면 인식 결제부터 고객 관리까지 가능토스플레이스의 출발은 2020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토스가 송금 플랫폼의 성공을 바탕으로 토스페이먼츠, 토스뱅크, 토스증권 등 모바일 금융 사업의 본격적인 확대를 추진하던 때였다. 다른 한편 오프라인 시장에서도 모바일만큼 편리한 결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온라인 결제 시장이 빠르게 확대됐지만 여전히 전체 결제 시장의 70% 이상은 오프라인에서 이뤄진다. 그렇지만 지갑 없이도 휴대폰으로 1초면 결제할 수 있는 한국의 편리한 결제 환경에서 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혁신이 가능할지는 물음표였다. 토스도 일찍이 토스페이로 오프라인 진출을 시도했지만 가맹점 확보가 어려워 철수한 경험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결제 시장은 금융에서 놓칠 수 없는 영역이다. 이에 박용원 당시 토스페이먼츠 BDM 등 3명이 ‘길드’
1
를 만들어 오프라인 결제 비즈니스에 대한 브레인스토밍을 시작했다. 여기에 페이먼츠 설립 업무로 박 BDM과 협업했던 최지은 당시 토스 기업개발매니저(Corporate Development Manager, CDM)도 의기투합했다.
DBR mini box I
토스플레이스는?
토스플레이스는 금융 플랫폼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가 오프라인 매장 혁신을 위해 만든 결제 단말기 제조 및 결제 솔루션을 공급하는 자회사이다. 비바리퍼블리카가 400억 원을 투자해 2022년 3월 설립했다. 비바리퍼블리카가 2024년 1월 149억 원을 추가 출자해 2024년 3월 말 기준 93.26%의 토스플레이스 지분을 갖고 있으며 다른 주요 주주로 섹타나인, 나이스디더블유알이 있다. 자회사로 VAN대리점인 한국크레딕라이프를 두고 있다.
2022년 10월 결제 단말기를 공개하고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2023년 3월 오프라인 결제 단말기인 ‘토스 터미널’과 ‘토스 프론트’를 정식 출시했다. 이와 함께 매장 관리를 위한 무료 소프트웨어인 ‘토스 포스’도 함께 출시했다. 토스 프론트는 애플페이와 삼성페이, 간편 결제 등 모든 결제 방식을 지원하는 결제 단말기이며, 토스 터미널은 영수증 프린터 겸용 결제 단말기이다. 토스 POS는 고객, 재고 관리 및 매출 비교 분석, 키오스크 모드 전환 등의 기능을 갖춘 프로그램으로 태블릿, 노트북 등 어떤 기기에서든지 무료 다운로드해 사용할 수 있다.
|
처음 길드를 구성했을 때만 해도 그 누구도 결제 단말기를 직접 만들게 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사업 방향성에 대한 아이디에이션(ideation)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이뤄졌다. 첫째,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는 소상공인을 토스의 고객 풀로 끌어모아야 한다. 소상공인을 새로운 고객 층으로 확보하면 이들의 결제 데이터를 바탕으로 토스, 토스뱅크 등과 연계해 더 많은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잠재력이 커질 것이다. 둘째, 각종 페이와 신용카드의 편리성을 뛰어넘는, 획기적인 결제 방식으로 ‘안면 인식’ 기술에 주목했다. 하지만 기술개발보다 더 어려운 문제가 수십 년간 굳어진 결제 습관을 바꾸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결제를 위해 신용카드를 단말기에 긁거나 꽂고, 대는 방식에 너무나 익숙하다. 각종 페이의 QR결제 방식이 확산되지 못한 이유도 이런 굳어진 습관 때문이다. 기술이 활용되려면 이런 소비자의 습관부터 바꿔야 하며, 그러려면 우선 누구나 쉽고, 보편적으로 쓸 수 있는 ‘범용성’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길드는 ‘모든’ 매장에서 ‘모든’ 이해관계자, 즉 사장, 직원과 소비자 모두가 반드시 사용할 수밖에 없는 기기인 결제 단말기에 주목했다. 만일 이 단말기에 안면 인식 기술이 탑재된다면 지갑뿐 아니라 휴대폰을 꺼내지 않고도 빠르게 결제하는 미래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길드는 사내 편의점의 안면 인식 결제 환경을 가상으로 꾸미고, 토스 유저 일부를 대상으로 유저 테스트(user test)를 실시했다. 그 결과, 테스트 참가자 10명 중 6명가량이 매끄럽고 빠른 결제 경험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박 BDM은 “과거 토스가 간편 송금을 출시하기 전 진행한 유저 테스트에서 ‘와우 모먼트’를 경험한 유저는 10명 중 2명에 불과했다”며 “2명에서 시작된 바이럴이 오늘날 슈퍼 앱을 만든 것을 감안했을 때 안면 인식 기술의 임팩트는 훨씬 더 크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다른 한편, 소상공인이 처한 문제를 파고드는 과정에서 길드는 결제 뒷단에서 매장 운영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사장들에게 결제 방식이 무엇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카드든 페이든 결제 수단이 바뀐다고 해서 매장에 더 이득이 될 것이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장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더 많은 수입을 얻는 것, 즉 매출 증대와 비용 절감이었다. 그런데 매장에서 고객과 만나는 가장 중요한 접점인 결제 단말기는 돈을 받는 수단일 뿐, 그로부터 나오는 데이터가 사업에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었다. 최지은 대표는 “소상공인들이 디지털 기술로부터 한참 소외된 현실을 목격하고 그들을 위해 결제 방식에서 더 나아가 매장 운영 방식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결제 단말기를 매개체로 삼아 소상공인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콘셉트는 비즈니스로서 확장성이 충분했다.
그렇게 결제 단말기를 200만 자영업자의 매장 운영 효율화를 위한 서비스 플랫폼으로 만들겠다는 담대한 목표를 세운 길드는 제조, 제품/서비스 개발, 유통 등의 전문가를 영입하면서 2021년 8월 정규 조직인 ‘헥토 트라이브
2
(이하 헥토)’로 커졌다. 매장 웨이팅 서비스인 ‘나우웨이팅’을 창업해 야놀자에 매각한 백인범 PO도 이 시기에 합류했다. 백 PO는 “재창업을 고민하던 차에 토스에서라면 기존 서비스들의 한계를 뛰어넘는 임팩트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합류하게 됐다”고 말했다.
공급자 중심 단말기 시장에서 가맹점의 페인포인트를 발견단말기 시장에서 신규 진입자인 토스플레이스는 기존 시장의 구조부터 이해해야 했다. 왜 오랫동안 오프라인 결제의 핵심 기기인 단말기 시장에서 이렇다 할 혁신이 어려웠을까? 그동안 오프라인 결제 시장은 결제망 공급자인 VAN(Value Added Network, 부가가치통신망)사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VAN사는 오프라인 상점에서 입력한 고객의 결제 데이터를 카드사로 안전하게 보내주는 ‘연결망’ 역할을 한다. 매장에서 사용하는 카드 단말기와 포스(POS
3
) 단말기는 결제를 처리하는 기기로 모두 VAN을 기반으로 한다. 즉 VAN사가 신용카드사를 대신해 가맹점을 모집하고 신용카드 단말기를 제공하기에 가맹점은 카드 결제를 받으려면 반드시 VAN대리점과 계약해야 하는 구조다. 국내에 13개의 신용카드 VAN사가 있는데 이들이 전국 200만 신용카드 가맹점을 커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회사가 바로 2200여 개의 VAN대리점이다. VAN대리점들이 자영업자들과 직접 만나 가맹 청약과 더불어 결제 단말기를 설치하고 관리까지 해주는, 실질적인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다.
VAN사와 VAN대리점의 주 수익원은 결제 건당 신용카드사로부터 받는 수수료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단말기를 통해 결제를 안정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단말기 제조사들도 이들에게 결제만 처리할 수 있는 최소 사양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결제 이외의 다른 기능이나 디자인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기능이 복잡해질수록 관리자 입장에서 설치와 관리 부담만 커질 뿐이다. 백 PO는 “VAN사 입장에서는 신용카드사로부터 결제 수수료만 잘 받으면 되기 때문에 단말기 디자인이 예쁘거나 다른 기능이 추가될 필요가 없었다”며 “토스플레이스가 만든 사용자 친화적인 새로운 콘셉트의 단말기가 이 시장에서 새로운 경쟁을 일으키기를 기대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오랜 기간 정체된 단말기 시장에서 사용자인 소상공인의 불편은 점점 커져갔다. 각종 페이가 등장할 때마다 추가로 설치해야 하는 기기와 비용이 늘어났다. 또 POS 소프트웨어에 새로운 기능이 탑재돼도 복잡한 유저 인터페이스(UI)와 사용자 경험(UX) 때문에 활용하기 어려웠다. 서울 양천구에서 카페 ‘신월커피’를 운영하는 고서희 대표는 “기존에 쓰던 단말기 POS는 많은 메뉴의 카테고리를 만들고 수정하는 과정 자체가 굉장히 불편하고, 애플페이 등 새로운 페이를 추가하려면 추가로 기기를 설치하고 돈을 내야 했다”고 말했다. 기존 제품을 해지하고 싶어도 위약금 때문에 못하거나 더 좋은 제품을 사고 싶어도 시중에 판매되는 단말기들의 가격과 디자인, 사양 등이 천편일률적이라 사실상 선택권이 없었다. 부산 해운대구에서 베이커리 ‘베이커리토끼굴’을 운영하는 최정민 대표는 “보통 처음 매장을 열면 인테리어 공사 등 챙길 게 워낙 많아서 VAN대리점 영업사원과 계약서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서명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때 포스 월 비용이나 해지 위약금 등 중요한 내용을 제대로 듣지 못하거나 들어도 잊어버리고는 다음에 비용을 내야 할 때 당황하곤 한다”고 말했다.
토스플레이스는 결제 단말기의 실사용자인 가맹점의 페인포인트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현 시장에서 가맹점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VAN사와 VAN대리점을 거치지 않고는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해서 토스플레이스는 VAN 시장에 직접 뛰어드는 전략을 택하지 않았다. 가맹점이 느끼는 가장 큰 불편은 결제 인프라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토스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안면 인식 같은 새로운 결제 방식이 보편화되려면 모든 VAN사에 통용돼서 누구나 쓸 수 있는 게 더 중요하다. 그래서 토스플레이스는 VAN사와 경쟁하기보다 사용자 친화적인 단말기를 제작하고 VAN대리점에 납품함으로써 이들과 상생하는 길을 택했다. 최 대표는 “토스가 이 시장에 진출한다고 하니까 업계에서는 VAN사를 하려고 하는 게 아니냐, 혹은 토스페이용 단말기를 만드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많이 받았다”며 “하지만 토스플레이스는 철저하게 사용자 편의성 관점에서 각종 페이 등 모든 결제 수단을 지원하고 또 모든 VAN사와 거래할 수 있는 결제 단말기
4
를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VAN대리점을 감동시키다아무리 훌륭한 제품이더라도 기존 시장에서 유통이 안 되면 소비자들을 만날 수 없다. 특히 B2B 유통 시장을 뚫기 위해서는 최종소비자 이전에 유통 이해관계자들의 신뢰를 얻는 게 중요했다. 단말기 유통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는 VAN대리점이었다. 박 BDM은 “VAN대리점들은 단말기를 판매할 뿐 아니라 가맹점이 제품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초기 교육, 유지보수 업무를 제공함으로써 매장 운영의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유통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수적이었다”고 말했다.
토스플레이스는 VAN대리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그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는 정공법을 택했지만 전국의 수많은 VAN대리점과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별다른 묘수가 없어 대리점 사장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카페, 단톡방 등 온라인 커뮤니티를 찾아가 알음알음 대형 대리점을 소개받았다. 그렇게 200여 곳의 VAN대리점을 직접 찾아갔다. 단말기 제품이 개발되기도 전이었다. 제품 대신에 토스가 꿈꾸는 미래의 결제 환경을 묘사한 콘셉트 동영상을 보여주며 아직 출시되지도 않은 단말기의 차별화된 강점과 그에 담은 비전을 호소했다. 소비자는 지갑, 휴대폰 없이도 단말기에 안면 인식 한 번으로 편리하게 결제하고, 직원은 고객의 과거 방문, 주문 정보를 파악하고 포인트 적립과 맞춤형 쿠폰까지 제공해 고객의 재방문을 이끌어내는 모습을 실제처럼 그린 영상이었다.
이렇게 VAN대리점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토스플레이스는 VAN대리점의 운영 환경 역시 가맹점만큼이나 열악함을 알게 됐다. 몇 명 안 되는 직원으로 영세하게 운영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도입할 여력이 없는 곳들이 많았다. 한 대리점이 많게는 수만 곳의 가맹점을 관리하는데 관련 데이터를 엑셀에 수기로 입력해 관리했다. 또 가맹점주들의 개인정보들도 시스템적으로 보호하지 못했다. 한 대리점이 보통 여러 VAN사와 거래하는데 결제 이슈가 생길 때마다 개별 VAN 시스템에 접속해 데이터를 찾아야 하는 불편도 감수하고 있었다. 이런 VAN대리점들의 비효율적인 운영 방식은 토스플레이스가 보유한 기술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토스플레이스는 VAN대리점이 관리하는 가맹점들의 카드 승인 건수, 금액 등 통계 정보를 손쉽게 분석 정리해 관리할 수 있는 ‘토스 매장 파트너’ 시스템을 개발해 무상으로 배포했다.5
VAN대리점을 위한 맞춤형 디지털 비서를 만들어준 셈이었다. VAN대리점들이 극심한 생존 위기를 느끼고 있던 때였다.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와 간편결제의 증가로 결제 수수료 수입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VAN대리점을 위한 솔루션을 만들면서까지 그들을 돕겠다는 토스플레이스의 진정성은 궁지에 몰린 대리점 사장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한번은 팀원 전체가 대구 경북 지역의 대형 대리점 여러 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박 BDM은 “대리점 사장님들이 결제 단말기 제조사가 대구까지 찾아온 것은 토스플레이스가 처음이라며 굉장히 놀라면서 환영해줬다”며 “밴 대리점을 파트너로 생각해줘 고맙다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 우리의 진정성이 통한 것 같아 뿌듯했다”고 말했다.단말기 개발 전부터 쌓아온 VAN대리점과의 신뢰 관계는 단말기가 출시된 후 더욱 굳건해졌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대리점들도 직접 사용해본 가맹점의 우호적인 반응을 보면서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또 토스 단말기는 설치나 구동 방법이 쉬워 대리점 입장에서 관리와 AS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최 대표는 “기존 결제 단말기는 간단한 업데이트를 할 때도 대리점 직원이 현장에 출동해야 했는데 토스 단말기는 사용법이 쉽고 문제가 생기더라도 가맹점이 원격 업데이트로 해결할 수 있어 대리점들이 출동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처음에는 토스플레이스가 VAN대리점을 직접 찾아가 그들에게 토스 단말기를 유통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해야 했다면 최근에는 가맹점들이 먼저 VAN대리점에 토스 단말기 납품을 요청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결제 단말기는 대개 오프라인에서 만난 VAN대리점 영업사원의 추천이 구매로 이어졌다. 그런데 최근 젊은 창업자들을 중심으로 온라인상에서 직접 제품을 비교 검색해 꼼꼼하게 정보를 따져본 뒤 선택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온라인에서 디자인과 성능 등에서 차별화된 토스 단말기가 주목받으면서 VAN대리점도 온라인에서 토스 제품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판매하고 있다. 토스플레이스 고객센터로 직접 제품 상담과 구매 요청을 문의하는 고객도 늘어나고 있다. 최 대표는 “아이폰이 나오기 전에는 휴대폰을 뭘 쓰는지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아이폰이 출시된 후 휴대폰 기기 자체의 가치가 커진 것처럼 결제 단말기 시장에도 특정 제품과 서비스를 쓰고 싶다는 사용자의 수요가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개념 결제 단말기의 탄생1) 예쁘지만 중립적인 디자인2021년 여름, 토스플레이스가 최초로 제작한 결제 단말기는 지금처럼 콤팩트한 디자인이 아니었다. 토스 프론트는 가로 길이가 길고 사이즈도 지금보다 크고 무거웠다. 키도 낮아서 안면 결제를 하려면 디스플레이를 향해 구부정하게 고개를 숙여 목을 내밀어야 했다. 토스 터미널도 영수증 종이를 교체하려면 디스플레이를 들어 올려야 하는 형태였다. 무거운 디스플레이를 자주 열고 닫으면 파손될 위험이 커질 수 있었다. 내부에 단말기를 제작해 본 전문 인력이 없다 보니 급하게 외부 디자인 업체와 협업해 제작해 본 프로토타입이었다. 기존 단말기의 외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 외주이다 보니 아무래도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와 사용성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가 분명해 보였다. 2021년 하반기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토스에 합류한 류관준 디자이너는 “입사 한 달 만에 기존의 단말기 디자인을 완전히 뒤엎고 처음부터 다시 만들자는 의사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제작 과정을 전부 지우고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 즉 제로 베이스에서 새롭게 설계를 시작하자는 과감한 의사결정이었다.
삼성전자 산업디자이너 출신인 류 디자이너에게 결제 단말기는 낯선 제품이었다. 제품에 카드를 넣고 긁는 등의 움직임이 많다는 점이 특히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오히려 이방인이라는 입장이 기존 제품에 대한 선입견에서 벗어나 사용자의 필요에 집중해 디자인의 콘셉트를 처음부터 새롭게 구상하는 데 도움이 됐다. 류 디자이너는 입사 후 첫 세 달간 카페와 식당 등을 돌아다니면서 고객과 사장의 결제 과정에서 동선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관찰했다고 한다. 매장에서 만난 사장들의 가장 큰 니즈는 결제 단말기를 숨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류 디자이너도 단말기를 어떻게 하면 잘 숨길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런데 토스플레이스가 지향하는 단말기는 직원과 고객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 접점이 돼야 했다. 사장들이 단말기를 숨기고 싶은 마음의 본질은 예쁘지 않고 인테리어와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에 대한 불만족이었다. 이런 불만족을 만족감으로 전환시킨다면 단말기도 충분히 계산대 위에 당당하게 올라올 수 있을 것이다. 류 디자이너는 “뭐든지 예쁘면 남들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어지는 심리를 노렸다”며 “‘심미성’에 가장 큰 주안점을 두고 단말기를 디자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전에 없던 예쁜 단말기를 만들려면 먼저 기존 단말기에 얽매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는 가로형이 아닌 세로형 디스플레이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당시만 해도 카드 결제 단말기의 디스플레이는 가로형이 표준처럼 여겨졌다. 세로형 디스플레이는 이런 업계의 오랜 관행을 무시하는 파격적인 아이디어였다. 토스플레이스 내에서도 의구심이 컸다. 하지만 류 디자이너는 “사용자 관점에서 편리성과 경제성 등을 감안했을 때 세로형이 가로형보다 훨씬 더 유리한 점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이제 굳이 가로형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과거에는 PC의 영향으로 가로형 디스플레이가 익숙했을지 몰라도 스마트폰 시대에 사람들은 세로형 디스플레이로 콘텐츠를 보는 데 훨씬 더 익숙하다. 안면 인식 결제를 탑재할 경우를 가정했을 때도 가로형보다 세로형이 훨씬 더 자연스러웠다. 사람들은 셀카를 찍을 때 기기를 가로로 돌리기보다(landscape) 세로로 두는 것(portrait)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또 세로형이 가로형보다 계산대 공간을 덜 차지해 효율적인 공간 활용에 유리하다는 장점도 있었다.
심미성 다음으로 세운 원칙은 ‘중립성’이었다.
아무리 심미성이 중요하더라도 단말기 디자인 자체가 너무 튀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토스플레이스 단말기의 핵심 기능은 단말기 자체가 아니라 고객과 마주하는 디스플레이 속의 내용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다른 단말기와 토스 프론트의 가장 큰 차별점은 단말기 자체가 인터넷과 연결돼 새로운 기능이 나올 때마다 별도의 기기 변경 없이 수시로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장점이 극대화되려면 어떤 분위기의 공간이든 잘 녹아들 수 있는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류 디자이너는 “디스플레이 속의 내용이 주인공이고, 단말기 자체는 그 내용이 돋보이도록 받쳐주는 ‘조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전체적으로 심미성이 있으면서도 소프트웨어가 더욱 돋보이도록 중립적으로 디자인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고 말했다.2) 결제 안정성 확보를 위한 노력결제 단말기에 탑재되는 소프트웨어와 POS기 소프트웨어를 제작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이승훈 PO는 “앱 개발은 많이 해봤지만 이처럼 오프라인 현장에서 변수가 많은 소프트웨어는 처음이었다”고 회고했다. 모바일 앱이라면 내부 QA(품질 보증) 과정을 거쳐 배포하고 유저들의 로그 기록을 체크해 수정하는 식으로 테스트 과정이 비교적 간단했다. 그런데 결제 단말기는 하루 종일 수백 번 이상 쓰는 장비이다 보니 아무리 반복적으로 사전에 테스트를 한 다음에도 현장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매장의 네트워크 환경의 불안이나 전파의 방해로 결제가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또 시중에 출시된 카드 종류가 너무 많다 보니 사전에 테스트해 보지 않은 카드 결제가 안 되는 경우가 더러 발생하기도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팀은 토스 사내 카페에서 2000여 명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본인이 가진 카드를 가져와 결제를 테스트한 뒤, 결제가 안 되는 카드가 나올 경우 선물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PO는 “200여 장의 카드를 가져온 임직원이 있을 정도로 카드 종류가 많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매장 점주의 생계가 달려 있는 결제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그래서 카페 같은 매장에서 필드테스트를 진행할 때는 개발자들이 종일 매장에 상주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바로 달려가 백업 장치로 교체해 줌으로써 불편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IT 개발자로서 처음 경험하는 오프라인 현장의 변수들에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만큼 현장에서 사장과 소비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직접 확인했을 때의 뿌듯함도 어느 때보다 컸다. 이 PO는 “현장에서 자영업자들의 고된 일상을 매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봤다”며 “점점 결제가 빨라졌다, 편해졌다는 피드백을 들으면서 더 나은 프로그램으로 이분들의 성공을 돕고 싶다는 바람이 커졌다”고 말했다.
3)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팀의 협업토스플레이스 인력의 70%는 제품 조직으로 단말기를 설계, 제조하는 팀과 IT 서비스를 개발하는 팀으로 나뉜다. 그동안 IT 개발자 중심으로 금융 앱을 출시해 온 토스에서 결제 단말기를 출시하기 위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제작자가 협업하는 과정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2022년 10월 결제 단말기를 공개하고 시범 서비스를 시작하기까지 걸린 1년이 넘는 시간은 소프트웨어 개발자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긴 기간이었다. 토스의 IT 조직은 업계 내에서도 개발 속도가 빠른 것으로 유명하다. 이 PO는 “보통 개발자들은 2, 3일 내로 서비스를 개발해서 배포한 후 결과를 보고 디벨롭하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하드웨어가 나와서 고객 반응을 보기까지 수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하드웨어 제품이 나오기 전에 개발자들이 의욕을 상실하지 않게 하려면 최대한 빨리 고객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이 PO는 “사내 카페를 수시로 활용하고 POS 프로그램을 매장의 기존 기기에 먼저 설치해 테스트하는 방식 등으로 고객 피드백을 최대한 빨리 받음으로써 개발자들을 동기부여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다른 한편, 제조 대기업에서 일했던 류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디자인부터 양산까지 걸린 1년이란 시간이 결코 길지 않았다. IT 중심의 애자일과 빠른 실행 속도를 중시하는 조직에서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일을 진행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류 디자이너는 “하루하루를 갈아 엄청 빠르게 진행시키고 있는데도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다”고 털어놨다.
제품 조직은 하드웨어 제작과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의 성격과 속도 차이로 인해 생기는 오해를 조율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위클리 미팅에서 서로의 업무 내용을 자세하게 공유했다. 특히 하드웨어팀은 소프트웨어팀이 모르는 제작 과정을 상세히 공유하는 데 공을 들였다. 류 디자이너는 “제조 과정을 A부터 Z까지 공유하고, 실제로 우리가 공장에 가서 일하는 모습까지 사진과 영상으로 찍어서 보여줬다”며 “이런 정보 공유를 통해 서로의 업무를 좀 더 이해하고 기대치를 맞춰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VOC 기반 필드 테스트를 통한 진화토스 단말기가 출시되자마자 빠르게 확산된 것은 아니었다. 처음 3개월가량은 VAN대리점도 안정성에 확신을 갖지 못해 판매에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출시 한 달 만에 애플페이가 나오면서 애플페이에 대응할 수 있는 단말기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뒤이어 키오스크 전환, 프론트 꾸미기 등 시장에 없던 새로운 서비스가 단말기에 업데이트되면서 확산 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졌다.
토스플레이스는 제품 출시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고객 목소리(VOC)를 분석해 업데이트에 반영했다.
POS 내 곳곳에 ‘의견 보내기’ 버튼을 만들어 가맹점들이 수시로 자유롭게 의견을 보낼 수 있게 했다. 또 설치일부터 주기적으로 의견과 만족도를 묻는 설문을 보내 고객의 만족도가 개선되고 있는지를 체크하고 있다. 2023년 1년 동안 2만6000건의 고객 의견이 쌓였다. 구성원 모두가 슬랙을 통해 실시간 업데이트되는 고객 의견을 보고, 텍스트 분석을 통해 DB화해 업데이트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있다. 고객 의견의 맥락을 더 자세히 파악해야 할 때는 매장을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해 인터뷰를 진행한다. 이 PO는 “2023년에만 1000여 번 이상의 업데이트, 올해 상반기에만 800여 번 이상의 업데이트를 진행했다”고 말했다.또 개발자들은 필드 테스트를 통해 오프라인 현장에서도 애자일(agile)한 개발 방식을 적용해 실천하고자 한다. 수시로 고객 매장을 방문해 관찰하고, 그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최소기능제품(MVP)을 개발해 배포하고, 의도한 대로 매장이 사용하고 있는지, 가치를 충분히 경험하는지를 분석한다. 그리고 직원 인터뷰를 통해 더 잘 쓰게 하기 위한 개선점을 찾고 그것을 차주에 반영하고 있다. 이 PO는 “애자일하고 빠른 실험을 중시하는 토스 조직이지만 매장 운영 환경은 변수가 많아 원하는 실험 결과를 모바일만큼 빠르게 확인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목소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필드테스트를 꾸준히 진행해 가설 검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예로 2023년 4월 어느 카페에서 직원이 커피를 제조하고 있는 사이에 새로운 고객이 들어왔는데 그것을 눈치 못 채 고객이 뻘쭘하게 서 있는 모습을 관찰했다. 이를 보고 떠오른 아이디어가 바로 ‘키오스크 모드’였다. 프론트 단말기를 평소에는 대면 결제용으로 사용하지만 바쁠 때는 고객이 직접 주문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착안해 한 달 만에 개발해 반영했다. 고서희 대표는 “키오스크 모드는 직원들도 편리하지만 직접 결제를 하는 고객들도 UI가 귀엽다고 만족해 한다”고 말했다. 최정민 대표는 “베이커리에서 포장하기 위해 빵을 만졌다가 카드를 주고받으며 결제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오염을 방지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또 최근에는 회사 근처의 한 식당에서 직원분이 테이블을 치우고 있는데 고객이 계산해달라고 하니 직원이 급하게 달려가서 계산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객이 나갈 때 알아서 결제하면 낫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리고 주문 바코드로 고객이 알아서 계산할 수 있도록 MVP를 개발해 해당 매장에서 필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PO는 “고객이 알아서 결제하니까 직원분들의 일이 줄고 테이블을 빨리 치울 수 있어서 회전율이 올라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토스플레이스는 심지어 제품의 사용성을 테스트하기 위해 회사 근처에 카페를 직접 차리기까지 했다. 일부 팀원이 길드를 만들어 카페 창업을 위한 입지 분석, 매장 인테리어, 메뉴 구성 등까지 직접 참여해 2022년 12월 카페 ‘Simplicity’를 열었다. 이를 통해 팀원들은 자영업자들의 창업 과정을 몸소 체험했을 뿐 아니라 매장에서 직접 일하면서 토스 단말기와 POS를 사용해보고 사용자 입장에서 개선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최 대표는 “토스가 운영하는 카페인 줄 모르는 고객들이 카페에 와서 우리 제품을 쓰고 신기해 하는 반응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2024년 매장의 고객 관리를 돕기 위해 도입한 포인트 적립 및 쿠폰 발송 기능이 가맹점의 실질적인 매출 상승에 기여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포인트 적립률을 높이는 데 최적화된 고객 동선을 짜는 데 초점을 맞췄다. 주문할 때 적립될 포인트를 실시간으로 프론트에 보여주고, 결제 전에 자연스럽게 적립을 유도하고, 카톡 메시지로 적립된 포인트와 누적 포인트를 알려준다. 또 고객이 적립 번호를 입력하면 직원은 고객의 최근 방문일, 자주 주문하는 메뉴 등 고객 정보를 확인해 그에 맞춰 단골에게 세심한 응대를 할 수 있다. 적립률이 높은 고객에게는 할인 쿠폰을 발송할 수도 있다. 첫 방문, 단골, 예비 단골 등으로 고객 세그먼트를 분류해 고객군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주고 할인, 이벤트 등 재방문을 유도할 수 있는 쿠폰을 자동 발송하는 기능도 추가했다. 최정민 대표는 “토스 포스의 할인 쿠폰 발송 기능을 활용한 결과, 재방문율이 90%를 기록한 성과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이런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이벤트를 기획하면서 매출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 PO는 “그동안 직원이 고객을 잘 응대하는 방법은 사실상 ‘친절’ 말고는 없었다”며 “가맹점들은 토스 프론트를 활용해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스킬을 직관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과제젊은 사장들의 신규 창업 매장을 중심으로 토스플레이스가 빠르게 가맹점을 확보해 나가고 있지만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현재 약 2%로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앞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이려면 이미 다른 단말기를 사용하고 있는 가맹점이 토스로 갈아탈 만한 유인을 강화해야 한다. 가맹점들은 불편하더라도 오랫동안 써온 기존의 익숙한 UI와 UX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또 결제 단말기를 바꿨을 때 당장 추가적인 이득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굳이 비용을 지불하거나 새로운 기술 도입을 고려할 마음의 여유도 없는 게 자영업자들의 현실이다. 백 PO는 “기존 가맹점이 토스 단말기로 갈아타게 하기 위해서 가맹점 사장님들의 전환 비용을 상회하는 10x의 제품 가치를 제공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결제 범용성을 달성하기 위해 프랜차이즈와의 협업도 추진하고 있다.
서비스 유료화를 통한 수익화 방식도 고민하고 있다. 현재 토스 프론트와 토스 터미널 단말기를 구입하는 일회성 비용을 제외하고 단말기에 탑재된 서비스와 업데이트, POS 프로그램과 업데이트 비용은 모두 무료이다. 토스플레이스는 사업 초기 사용자들을 플랫폼에 진입시키기 위한 유치 비용의 일환으로 무료 정책을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서비스 유료화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검토하고 있다. 최 대표는 “주요 서비스의 월 구독 서비스 전환 계획이 있으나 가맹점이 돈을 내고라도 꼭 쓰고 싶다, 아니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비스가 유틸리티 이상의 생존에 필수적인 도구로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현재 테이블 오더, 모바일 오더, CRM 같은 서비스들을 가맹점이 기꺼이 유료로 사용할 정도의 제품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고도화하고 있다.
토스플레이스는 토스 프론트와 토스 POS를 가맹점에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올인원 서비스 플랫폼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외부 솔루션 업체와의 협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2024년 1월에는 미용실 가맹점을 위해 토스 프론트에 미용실 고객 관리 프로그램인 ‘뷰카’를 연동시켰다. 백 PO는 “토스플레이스는 사용자에게 도움이 된다면 어떤 B2B 솔루션 플레이어와도 파트너사로 협업할 의지가 있다”며 “헬스장, 약국, 의료 등 다양한 업종의 전문 솔루션들이 토스플레이스 단말기를 통해 더 편리하게 사용되고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단말기 비즈니스의 시발점이 됐던 안면 인식 결제 서비스가 시장에 무사히 안착하게 될지도 관심사다. 현재 토스플레이스의 사내 카페에서 임직원을 대상으로 안면 인식 결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올 하반기부터 강남구 일대에서 필드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토스, 토스뱅크 등 토스 자회사들과의 협업을 바탕으로 한 서비스 출시도 준비하고 있다. 예컨대 토스뱅크와 협업해 소상공인을 위한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가맹점이 토스의 2600만 유저와 더 자주 만날 수 있도록 광고 마케팅을 지원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애플이 아이폰과 애플스토어로 단말기를 중심으로 획기적인 모바일 플랫폼 생태계를 구축했듯이 토스플레이스가 오프라인 결제 시장에서 B2B 플랫폼으로 성장해 혁신의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DBR mini box II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❶
소모적 레드오션 대신 공생적 블루오션을 찾다 |
이주일 충남대 경영학부 교수 juil@cnu.ac.kr
|
토스플레이스는 제품 및 서비스의 차별화와 비용 절감을 동시에 추구함으로써 새로운 시장과 수요를 창출해 기존의 경쟁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가치 혁신(Value Innovation)을 이뤄냈다. 즉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이 아닌 소모적 경쟁이 없는 블루오션을 창출하고 있다. 특히 토스플레이스의 가치 혁신은 기존의 산업, 기업, 일자리를 무너뜨리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 아닌 공생적 블루오션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i
토스플레이스의 발자취와 앞으로의 행보는 핏빛 레드오션에서 고군분투하는 비즈니스 실무자들에게 공생적 블루오션을 찾는 데 유용한 통찰을 제공한다.
발상의 전환과 창조적 사고로 문제 재정의
인시아드(INSEAD)의 김위찬 교수와 르네 마보안 교수의 블루오션 전략ii
에 의하면 블루오션 전략은 기업이 지금껏 해 온 경쟁의 양식에서 벗어나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시장과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다. 즉 기존의 산업 구조나 경쟁 구도를 넘어 제품과 서비스의 가치를 크게 증진시키면서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전략을 의미한다.
블루오션 전략은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문제를 재정의하는 것에서 출발한다.iii
기업이 문제를 재정의하고 (비)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들의 실제 행동을 관찰할 것을 제안한다.iv
블루오션을 창출하기 위해 기업은 다음 네 가지 질문을 바탕으로 새로운 전략 캔버스(To-Be Strategy Canvas)v
를 그려야 한다. 첫째, 업계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요소 중 제거(Eliminate)할 것은 무엇인가? 둘째, 업계 표준보다 대폭 축소(Reduce)할 요소는 무엇인가? 셋째, 업계 표준보다 대폭 증대(Raise)할 요소는 무엇인가? 넷째, 업계에서 한 번도 제공하지 않은 요소 중 창출(Create)할 것은 무엇인가? 이와 같은 질문에 답함으로써 기업은 ERRC 구성표(Eliminate-Reduce-Raise-Create Grid)를 도출할 수 있다. 토스플레이스의 ‘토스 프론트’ ERRC 구성표는 [표 1]과 같이 요약 도출할 수 있다.
토스플레이스의 사례는 레드오션에서 하루하루 사투를 벌이고 있는 기업들이 블루오션을 창출하는 데 있어서 귀중한 혜안을 제공한다. 블루오션 전략이 강조하듯이 기업은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급급하는 것이 아닌 이해관계자의 경험을 면밀히 파악해 기존 시장의 문법 및 문제를 재정의하는 발상의 전환과 창조적 사고를 이뤄내야 한다. 이는 블루오션을 찾아 항해하는 긴 노정의 출발점이다.
경험과 분석을 바탕으로 한 브리콜라주(Bricolage)vi
접근
창조적 사고의 사전적 정의는 ‘과거의 경험을 이용해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내용의 결론을 이끌어 내는 사고’이다. 그런데 ‘새로운’에 너무 매몰되다 보면 우리는 창조를 무(無)에서 유(有)를 창출하는 것으로 종종 오인한다. 하지만 없는 것에서 새로운 것을 결코 만들어낼 수는 없다. 창조는 유(有)에서 유(有)를 창출하는 것으로 기존의 경험을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하는 브리콜라주 방식을 통해 일어난다.vii
구글 딥마인드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하사비스(Hassabis)는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에서 인지신경과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2007년 기억과 상상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를 발표했다.viii
해마(hippocampus)는 기억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연구는 해마 손상으로 인해 기억상실증이 있는 환자들이 새로운 경험을 상상하는 능력이 손상되는지를 조사했다. 해당 연구에서는 해마 손상으로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는 환자 5명과 건강한 대조군 10명을 대상으로 참가자들에게 가상의 장면을 상상하도록 요청했다. 이 장면은 특정한 환경과 상황을 포함하며 참가자들은 이를 시각적으로 묘사하고 설명해야 했다. 실험 결과, 기억상실증 환자들은 새로운 장면을 상상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들은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못하고 단편적이고 비조직적인 설명을 제공했다. 반면에 대조군은 생생하고 자세한 장면을 상상하고 설명할 수 있었다. 이 연구는 새로운 경험을 창출하는 과정이 기존의 경험과 기억을 재조합하는 과정임을 시사한다.ix
토스플레이스의 가치 혁신은 이런 브리콜라주에 바탕을 두고 있다. 토스플레이스는 각종 페이와 신용카드 결제 방식을 뛰어넘는 획기적이면서 범용적인 안면 인식 기술에 주목했다. 주지하듯 안면 인식 기술은 여러 다양한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안면 인식 기술 그 자체는 더 이상의 획기적인 혁신은 아니지만 토스플레이스는 오프라인 결제 단말기 시장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고자 기존의 기술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도입했다. 또한 토스플레이스는 단말기 시장에서의 핵심적 요소로 단말기의 기능적 측면 못지않게 심미적 측면도 중요하게 인식했다. 이에 토스플레이스는 카드 결제 단말기는 가로형이라는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세로형을 채택함으로써 미니멀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고안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 도입 이후 세로형 디자인이 널리 보급돼 토스플레이스의 세로형 단말기가 기술적으로 전혀 새로운 것이라 할 수는 없지만 기존의 단말기 형태에 세로형의 새로운 관점을 연결함으로써 심미적 가치를 제고했다. 토스플레이스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토스플레이스가 기존의 경험을 새로운 관점에서 결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해관계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행동 관찰, 실험, 실시간으로 축적된 데이터 등에서 기인한다. 일상의 익숙한 것이라도 늘 새로운 관점에서 재조합해 보자. 블루오션은 우리 곁에 있다.
공정한 절차를 통해 이해관계자의 참여 유도
전략 과정은 전략의 수립과 실행을 아우르는데 특히 블루오션 전략은 전략의 실행을 강조한다. 전략의 실천을 추동하기 위해서는 실제 전략을 추진하는 이해관계자의 참여가 담보돼야 한다. 이에 김위찬 교수와 르네 마보안 교수는 공정한 절차(Fair Process)를 따라야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x
공정한 절차는 참여(Engagement), 설명(Explanation), 기대의 명확성(Clarity of Expectation)으로 구성된다. 첫째, 참여는 의사결정에 영향을 받는 구성원을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켜 의견을 듣는 것이다. 참여는 개인의 아이디어와 지혜를 존중하는 신호를 보내며 결과적으로 더 나은 결정을 이끌어낸다. 둘째, 설명은 최종 의사결정이 내려진 이유와 그 결정의 근거를 명확히 하는 것으로 설명은 관리자의 결정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만들며, 비록 개인의 의견이 채택되지 않았더라도 그 결정 과정에 신뢰를 가지게 한다. 셋째, 기대의 명확성은 결정이 내려진 후에 새로운 규칙과 기대 사항을 명확히 전달하는 것으로 명확한 기대 사항은 정치적 논쟁과 편애를 최소화하고 이해관계자가 새로운 목표와 기준을 이해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게 한다. 이 세 가지 요소가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할 때 이해관계자의 신뢰와 자발적인 협조를 기대할 수 있다.
토스플레이스가 공정한 절차를 통해 어떻게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이끌어 냈는지 살펴보자. 첫째, 토스플레이스는 개발된 단말기를 테스트하고자 토스 사내 카페에서 약 2000명의 임직원에게 본인의 카드를 가져와 달라는 요청을 했고, 결제 테스트를 실행한 후 결제가 안 되는 카드를 가져온 임직원에게 선물을 제공하면서 참여를 유도했다. 또한 팀원들이 제품 테스트를 위해 직접 카페를 차리고 운영하는 전 과정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MVP(Minimum Viable Product)를 통해 고객 및 가맹점의 피드백(예: 고객 목소리, 의견 보내기 등)을 빠르게 반영하고 제품을 개선해 나갔다. 초기 제품 출시 이후 고객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능을 업데이트하는 과정에서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방식을 철저히 따랐다. 둘째, 토스플레이스는 단말기 디자인을 가로형에서 세로형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과거에는 PC가 대세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로형 디스플레이에 익숙했지만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시대에서는 사람들은 가로형보다 세로형 디스플레이에 훨씬 더 익숙함을 느낀다는 점을 구성원에게 명확히 설명했다. 셋째, IT 인력의 비중이 높은 토스의 상황을 고려할 때 토스플레이스에서 결제 단말기를 개발하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애자일 방법론이 익숙한데 하드웨어 제작에는 1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업무 특성 및 진행 속도의 차이로 인해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하드웨어 제작자 간에 발생할 수 있는 오해와 갈등을 해소하고자 토스플레이스는 업무의 모든 과정을 상세히 공유했다. 이처럼 토스플레이스는 각 팀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목표와 기대 사항을 분명히 전달했다. 블루오션호의 순항은 선장, 항해사, 선원, 도선사의 참여와 긴밀한 협력에 달려 있다.
파괴적 혁신을 넘어 공생적 혁신으로
그간 혁신은 파괴와 같은 뜻으로 이해돼 왔으며 시장에서 경쟁자를 제거하고 기존의 것들을 와해하는 것으로 치부됐다. 하지만 파괴적 혁신은 우리 사회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기존 기업과 산업을 무너뜨리거나 대체하고 사람들을 직장에서 내쫓는 등의 크나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 이에 김위찬, 르네 마보안 교수는 과연 혁신은 파괴적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비파괴적 창조(Nondisruptive Creation)를 통해서 기업이 얼마든지 블루오션을 창출할 수 있다고 역설한 바 있다. 대표적으로 토스플레이스 사례가 비파괴적 창조를 통해 블루오션을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토스플레이스는 단말기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결제 단말기가 모든 VAN사에 통용돼 누구든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바라봤다. 이에 토스플레이스는 VAN사 및 VAN대리점과 경쟁이 아닌 상생의 길을 택했다. 제품의 개발, 출시, 사용 등 전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인 VAN사 및 VAN대리점과 신뢰를 형성하려고 노력했고 이를 통해 공생적 블루오션을 창조해 나가고 있다.
|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매니지먼트(전략) 전공으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모빌리티학회 부편집위원장, 한국중소기업학회 편집이사 등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기업행동이론, 경쟁전략, 변화와 혁신, 중소벤처기업 등이다.
DBR mini box III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❷
혁신과 개인정보 보호, 두 날개로 날아야 |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 hkyungkim@seoultech.ac.kr
|
토스는 “금융의 불편을 해소한다”는 미션하에 토스플레이스를 통해 결제 인프라를 직접 구축함으로써 가맹점 운영의 편의를 도모하는 전략을 구현했다. 이는 기존의 간편결제사들이 자사 페이의 점유율을 높이는 데 주력하는 행보와 대조적이다.
예컨대 네이버페이는 오프라인 결제 시장에 직접 진출하지 않고 전략적 파트너사들과 협업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BC카드 페이북 가맹점의 인프라를 활용하는 것을 시작으로 최근엔 삼성페이와도 협업해 결제 방식을 연동하고 있다. 네이버의 인지도를 활용해 파트너사의 결제 인프라가 네이버페이를 지원하게 만든 것이다. 카카오페이는 QR코드를 기반으로 프랜차이즈 등 대형 가맹점과 직접 계약했다. 최근엔 중소형 가맹점 확보 등 범용성 확대를 위해 삼성페이 등과의 협력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다른 한편, 토스플레이스는 토스페이를 포함해 특정 페이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토스 단말기 하나로 모든 결제 방식을 지원했고, 이 단말기에 키오스크 등 가맹점이 필요로 하는 부가서비스까지 추가했다. 이런 전략은 가맹점들의 운영 효율을 높임으로써 토스플레이스의 결제 인프라가 빠르게 확산되는 데 기여했으며 오프라인 결제 시장 생태계를 이롭게 하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1. 수요자(가맹점주) 중심 사업 전개
시장은 결국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어떤 산업이든 시장 수요에 대한 이해와 협업을 배제하고 공급자 중심의 사고만으로는 롱런할 수 없다. 오프라인 결제 시장처럼 오랜 기간 고착화된 시장의 경우 더욱 그렇다. 토스플레이스는 짧은 업력에 비해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했다고 평가받는다.
가장 큰 성공 요인은 출범 전부터 시장 환경을 파악해 철저히 수요자 중심으로 사업을 준비한 것이다. 특히 가맹점주가 처한 환경을 이해하고 그들의 고충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통해 예상보다 빠르게 시장에서 이름을 알렸다. 국내 결제 시장은 신용카드 등장 후 오랜 기간 변하지 않았다. 최근 간편결제가 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지만 신용카드 결제 기술인 마그네틱보안전송(MST)을 적용한 삼성페이가 간편결제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바 여전히 신용카드 결제 방식이 대세다. 국제결제표준(EMV) 규격 단말기의 국내 보급이 더뎠던 것도 삼성페이가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 토스플레이스는 기존 신용카드와 삼성페이, 애플페이,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토스페이 등 모든 방식의 결제가 가능한 결제 단말기를 개발해 출시했다. 여기에 가맹점주의 목소리를 듣고 고충 사항을 분석해 수시로 기능을 업데이트했고, 무엇보다도 키오스크 등 부가서비스를 개발해 결제 단말기에 그러한 기능을 추가한 것은 가히 획기적이다.
2. 안면 인식 기반으로 진보하는 결제 방식
결제 시장의 변화 속도는 빠르지 않지만 결제 방식은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토스플레이스는 토스의 간편결제 서비스인 토스페이를 확산하는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안면 인식 기반 결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국내 IT 산업을 이끌고 있는 네이버(네이버페이)도 안면 인식 결제를 상용화한다고 선언했다.
안면 인식 결제는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었다. 7년 전 한 카드사는 일부 편의점에 정맥 인식 결제 시스템을 도입했다가 포기했고, 다른 카드사는 5년 전 일부 편의점에 안면 인식 결제를 도입했지만 확산에 실패했다. 원인을 따져보자면 생체 정보를 인식하는 새로운 단말기 설치 비용이 만만치 않았고 신용카드에 익숙한 소비자의 습관을 바꾸는 것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실패는 더 이상 반복되지 않을 전망이다. 금융 혁신을 주도한 대표 기업인 토스가 오프라인 결제 시장마저도 변혁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3. 개인정보 보호 한계 뛰어넘길 기대
디지털 기술 발전은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편리함이 커진 만큼 개인정보 도용, 유출 등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신용카드 사기와 도용은 개인의 금전적인 손실을 일으켰고, 개인정보 유출은 개인의 신용과 명예를 훼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아날로그 시대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새로운 결제 방식의 등장은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따라서 혁신 서비스와 개인정보 보호는 함께 나아가야 할 불가결한 공조 관계이지 상호 배척 관계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혁신적인 기술은 개인정보 보호 리스크의 한계를 넘어서 국민의 안전한 디지털 생활을 보장하는 기술이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안면 인식 결제 방식은 개인정보 보호 측면에서 지금보다 안전한 방식이 될 수 있다. 안면 인식 정보는 개인마다 독특하며 위조, 복제가 어렵기 때문에 그 어떤 인증 장치보다 보안성이 높다. 이미 생체 인증 기술이 적용된 스마트폰의 보안 수준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신용카드나 현금처럼 분실, 도난 우려가 없고 비밀번호처럼 어디 적어뒀다가 유출될 우려도 없다. 등록된 얼굴 정보는 특정 정보로 변환돼 암호화되고 완전히 분리 저장된다. 만에 하나 특징 정보가 유출된다고 하더라도 알고리즘을 변경하면 유출된 특징 정보는 사용할 수 없다.
사진, 동영상, 가면을 통한 침입을 막는 ‘안티 스푸핑(Anti-Spoofing)’ 기술도 크게 발전했다. SNS에 올라온 사진과 동영상을 도용하는 수준의 공격은 현재 개발된 기술로도 차단할 수 있다. 지금은 007 시리즈에 나온 실리콘 가면 수준의 공격도 막아낼 정도로 관련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소비자들의 막연한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소, 식별번호, 암호 등 다른 개인정보는 언제든 변경할 수 있으나 생체정보는 살아 있는 동안 그 사람과 결합돼 있기 때문에 변경할 수 없다. 따라서 일단 유출이 되고 나면 다른 생체정보로 대체하지 않는 이상 그 생체정보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실제로 2023년 초 국가인권위원회는 “안면 인식 기술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이 있다”며 규제 입법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안면 인식 결제 방식의 경우 각 개인들의 얼굴을 데이터로 변환한 후 암호화해서 서버에 저장하게 된다. 즉 등록된 얼굴 정보는 특징 정보로 변환돼 암호화되고 완전히 분리 저장된다. 만에 하나 특징 정보가 유출된다고 하더라도 알고리즘을 변경하면 유출된 특징 정보는 사용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소비자의 막연한 불안감을 불식시키는 것 또한 기업의 역할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국내 혁신 테크의 대표 주자이면서 개인정보 보호에 비교적 모범적인 토스와 네이버가 안면 인식 결제에 나서는 점은 고무적이다. 혁신을 향한 기업들의 노력은 글로벌 경쟁 및 국가 발전 차원에서도 응당 독려돼야 할 것이다.
|
필자는 이화여대 및 동 대학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고려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 분야는 디지털법, 데이터 및 IP(지식재산권)법이다. 개인정보보호법학회 학술상(2018), 서울과학기술대 우수교육상(2018년, 2021년), 국무총리상(2022)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개인정보보호법학회 회장과 데이터분쟁조정위원,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정책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