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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기의 국가경영: 5년 걸친 을병대기근

위기의 순간 ‘최악의 적’ 된 내부 분열

김준태,정리=장재웅 | 435호 (2026년 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1695년부터 5년에 걸쳐 이어진 ‘을병대기근’은 이상기후와 연이은 천재지변, 전염병이 겹치며 조선 사회를 극한의 위기로 몰아넣은 사건이었다. 조선 조정은 24년 전 경신대기근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휼청을 중심으로 한 상설 구휼 체계와 비축미를 활용해 공사 중단, 왕실 지출 절감, 세금 감면, 설죽소 운영 등 가능한 모든 대응 수단을 신속히 동원했다. 그러나 갑술환국 이후 심화된 노론과 소론의 당파 갈등은 정책 집행 과정 곳곳에서 발목을 잡았다. 탄핵과 피혐, 정치적 소모가 이어지며 국가가 가진 대응 역량은 온전히 발휘되지 못했다. 을병대기근은 준비된 시스템의 중요성과 함께 위기의 순간, 국가 경영을 가장 위태롭게 만드는 요인이 내부 분열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1695년(숙종 21년) 을해년, 조선에 또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예년과 다른 추운 날이 계속됐고 곳곳에 서리와 우박이 내렸다. 봄에는 한 달에 기우제를 몇 차례나 지낼 정도로 가물었지만 여름에 북쪽 지방부터 시작된 폭우가 가을이 되면서 전국을 뒤덮었다. 실록은 이때의 일을 “가을에 크게 흉년이 들었다. 곡식을 해칠 수 있는 재해(災害)가 하나도 빠짐없이 일어났으며 바다가 가까운 땅에는 해일의 재앙이 밭과 들을 덮치니 어린싹조차 끊어내어 버렸다”1 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하늘에서 수시로 유성(流星)과 ‘백기(白氣)’2 가 나타나는 등 비정상적인 천문 현상이 계속돼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지진이 일어나고 벌레 떼도 출현했다. 나라에서 굶주리는 백성을 위해 경상비용을 줄이고 비축미를 반출하며 적극적으로 구제에 나섰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한 해도 지나지 않아 백성 구제를 담당하는 혜민국(惠民局)과 진휼청(賑恤廳)의 재원이 고갈됐다는 보고가 올라왔다.3


5년에 걸친 대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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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인 1696년(숙종 22년) 병자년에는 상황이 더욱 악화했다. 천재지변과 이상기후가 1년 내내 계속됐고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수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었다. 3월의 기록을 보면 나라에서 운영하는 응급구호소인 진제장(賑濟場)을 찾은 백성의 수가 “그즈음 서울은 1만 명이 넘고, 팔도는 각각 수만 명이며, 영남 지방은 56만 명에 이르렀다. 죽은 사람은 전후로 수만 명이었다”4 라고 한다. 이처럼 백성의 삶이 극단으로 내몰리니 사람을 살해해 먹고, 시신을 파내 먹는 참혹한 일들까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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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태akademie@skku.edu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초빙교수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한국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 유교문화연구소, 유학대학 연구교수를 거치며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현실 정치에서 조선 시대를 이끌었던 군주와 재상들에 집중해 다수의 논문을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왕의 공부』 『탁월한 조정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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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리=장재웅

    정리=장재웅jwoong04@donga.com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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