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Column
최근 회의 자료를 보면 분량도 많고 내용도 흠잡을 데 없다. 시장 분석부터 실행 방안까지 논리가 매끄럽다. 그런데 근거와 배경에 대해 깊이 질문하면 보고자의 설명이 흐려진다. 문서에 적힌 논리와 대화에서 드러나는 논리가 충돌하는 것이다. AI를 활용하는 직장이라면 어디서든 마주할 법한 장면이다. 보고서의 완성도와 작성자의 능력은 같은 속도로 높아지지 않는다.
AI가 만든 결과물을 자신의 능력으로 받아들이는 ‘역량 착시’는 여기서 시작된다. 좋은 답을 손에 넣었다고 해서 좋은 판단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다. 상황이 달라졌을 때 기존 결론을 버려야 하는지, 어떤 정보를 더 확인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비로소 그 답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쓴 『사고외주』에서 경계한 것도 스스로 고민하며 판단을 형성하는 과정까지 AI에 통째로 넘겨주는 일이다.
기업에선 이 문제를 대하기가 더 까다롭다. 당장의 성과는 좋아 보이기 때문이다. 보고서 작성 시간이 줄고 제안서의 품질이 높아지면 생산성이 개선됐다고 평가하기 쉽다. 그러나 남겨진 시간에 무엇을 했고, 그 과정에서 직원이 무엇을 배웠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특히 경험이 적은 직원에게 자료를 비교하고 가설을 수정하는 시간은 업무인 동시에 훈련이다. 이를 모두 생략하면 오늘의 업무는 빨라져도 내일의 판단을 맡길 사람을 키우기는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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