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은 독일 자동차 제조사 BMW의 혁신 부서인 ‘BMW 스타트업 개라지’ 출신의 그레고르 김미가 BMW 재직 당시 창안한 혁신적인 기업 협력 방식으로 스타트업의 초기 기술을 구매해 기업의 실제 문제를 해결하고 장기적인 협력 가능성을 모색하는 방식이다. BMW, 지멘스, 보시 등 글로벌 기업들이 이 모델을 통해 스타트업 기술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통합하고 있다. 이 모델은 스타트업과 대기업 모두에 실질적인 이익을 제공하며 한국의 CVC와 대기업 생태계에도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이 모든 기업에 적용되는 만능 해결책은 아니라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철저한 전략적 준비, 민첩한 실행력, 혁신 수용을 위한 유연한 태도가 필수적이다.
편집자주 | 이번 호 ‘스타트업 in 유럽’은 BMW 벤처클라이언트 모델의 본질과 성공 사례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필자가 세바스티안 셰퍼 ‘27Pilots’ 벤처 클라이언트 솔루션 리드를 화상으로 직접 인터뷰했습니다. 이은서 CEO와 셰퍼 리드와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글로벌 진출을 노리는 스타트업의 큰 목표 중 하나는 해외 대기업과 협력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스타트업들은 대기업으로부터 투자를 받거나 공동연구 협력을 같이하기 위해 또는 대기업을 직접 고객사로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협력은 비단 스타트업 입장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혁신을 가속화하고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소 무겁고 보수적인 조직 구조를 갖고 있는 대기업의 입장에서도 스타트업과의 협력은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줄 수 있다.
협력은 다양한 형태로 이뤄질 수 있는데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방식이 바로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이라고 불리는 ‘개방형 혁신’이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대기업이 외부의 아이디어, 기술,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내부의 자원과 결합하는 접근 방식으로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학계, 연구소, 정부 기관 등과의 협력을 하는 방식으로도 활용된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라이선싱, 공동 연구개발, 투자, 해커톤 등 다양한 형태로 실행되며 폭넓은 외부 자원의 활용을 통해 혁신의 속도를 높이고 리스크를 분산하는 장점이 있다.
독일에서는 최근 오픈 이노베이션과는 차별점을 둔 ‘벤처 클라이언트(Venture Client)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벤처 클라이언트는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투자해 지분을 인수하는 대신 스타트업의 첫 번째 고객으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모델이다. 쉽게 말해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고객사를 확보하는 것이고 대기업은 스타트업을 공급업체로 둬 혁신 기술을 손쉽게 도입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는 기존의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단순한 아이디어 발굴이나 투자를 하는 것 이상의 실질적인 협력 관계를 의미한다.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에서는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초기 기술을 채택해 빠른 시장 검증과 상용화를 지원하는 데 초점을 둔다. 특히 스타트업의 기술을 직접 도입하는 것은 투자보다 리스크가 낮고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초기 매출 확보와 실질적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 양측 모두에게 유리한 모델로 평가된다.이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은 한국에선 상대적으로 생소한 개념이다. 이 모델은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통해 단순히 혁신 아이디어를 발굴하거나 미래를 위한 투자를 넘어 실질적인 ‘고객’의 역할을 통해 스타트업의 기술과 비즈니스를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기존의 협력 방식과는 차별화된 접근으로 대기업의 혁신 도입 과정에 즉각적인 가치를 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은 독일 자동차 제조사 BMW의 혁신 부서인 BMW 스타트업 개라지(Startup Garage)에서 처음 고안됐다. 그레고어 김미는 2015년 BMW에서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을 고안한 핵심 인물이다. 그는 현재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딜로이트의 자회사 ‘27Pilots’를 이끌며 벤처 클라이언트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BMW에서 시작된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은 이후 보시, 에어버스, AT&T 등으로 확산됐다. 국내에서는 최근 LG전자가 2023년 ‘LG퓨처홈(Future Home)’이라는 벤처 클라이언트 플랫폼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BMW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의 성공 사례 중 하나는 BMW와 한국 스타트업인 서울로보틱스, 스위스의 스타트업인 엠보테크가 공동으로 개발한 생산 공장 내부의 자율주행기술이다. 독일 딩골핑 공장에서 생산되는 차량을 운전자 없이 물류 구역으로 이동시키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BMW그룹은 서울로보틱스와 엠보테크의 기술을 성공적으로 통합했다. BMW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의 본질과 성공 사례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세바스티안 셰퍼 27Pilots 벤처 클라이언트 솔루션 리드(Venture Client Solutions Lead)를 필자가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은 BMW에서 김미 현(現) 27Pilot 대표가 혁신팀을 이끌던 시기에 탄생했다. 당시 BMW는 기존의 CVC(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털) 모델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효과적으로 혁신기술을 도입하는 데 많은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스타트업과의 협력은 너무 느리고 비효율적이었다. 스타트업이 제공하는 기술은 기업 내부의 문제를 해결할 잠재력이 있었지만 기존의 협력 방식으로는 이러한 기술을 빠르게 채택하는 것이 어려웠다. 김미 대표는 기업이 스타트업과 협력하는 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존의 투자 중심 협력 모델이나 단순 PoC(Proof of Concept) 단계를 넘어 스타트업의 솔루션을 ‘고객으로서 구매’하는 것이 핵심 아이디어였다. 이를 통해 BMW는 스타트업이 제공하는 기술을 실제 제품 개발 및 생산 과정에 즉각 통합해 빠르게 상용화할 수 있었다. 이것이 BMW 스타트업 개라지이고 이 프로그램의 성공은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이후 다른 대기업들도 이 모델을 도입하거나 변형해 자체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제조업과 같이 기술 통합이 중요한 분야에서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은 혁신 도입의 속도와 효율성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벤처 클라이언트라는 이름은 어떻게 나오게 됐나?기존에는 벤처캐피털이라는 용어가 더 익숙했다. 벤처 클라이언트는 기업이 스타트업의 고객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고객이야말로 스타트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BMW가 초기 고객이 된다면 BMW와 협력한 스타트업은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초기 가설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벤처 클라이언트라는 이름을 붙이게 됐다. 이 모델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클라이언트’라는 단어에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클라이언트가 된다는 것은 제품을 구매하고 사용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신생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기존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보다 더 많은 위험이 따른다. 왜냐하면 스타트업의 제품은 ① 제품이 인증되지 않았을 수 있고 ② 제품 개발을 반복적으로 충분히 진행하지 않았을 수 있으며 ③ 확장성이 부족하고 ④ 가격이 불안정하다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스타트업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모험적이다. 이러한 연유로 벤처 클라이언트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스타트업으로부터 구매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더 위험하며 그만큼 더 모험적이라는 점에서 유래된 용어다. 스타트업 자체도 위험 요인이다. 아무리 훌륭한 제품이나 솔루션을 제공하더라도 스타트업은 높은 실패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회사가 없어질 위험이 크다. 따라서 스타트업의 제품을 구매하면 2~3년 후에는 회사가 사라져 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벤처’라는 것은 기존 기업과 스타트업으로부터 구매하는 것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필요한 용어다. 벤처 클라이언트라는 정의에 따르면 세상의 거의 모든 회사가 어느 시점에서는 벤처 클라이언트였다. 이것은 새로 ‘발명’된 개념이 아닌 ‘발견’한 개념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기업은 옛날부터 스타트업의 제품을 구매해 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애플이 당시 작은 스타트업이었던 어도비의 제품을 구매한 예는 매우 유명하다. 시스코의 첫 번째 벤처 클라이언트는 HP였다. 모든 스타트업은 초기에 자신들의 제품을 구매한 첫 클라이언트, 즉 벤처 클라이언트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이런 초기 고객들은 스타트업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클라이언트 기업에도 자신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어떻게 하면 좋은 벤처 클라이언트가 될 수 있을까?
주로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은 어떻게 운영되나?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은 스타트업이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식별하고 이를 체계적이고 확장 가능한 방식으로 처리하기 위한 구체적인 프로세스와 도구, 자원을 정의한다. 이를 통해 기술을 사용했을 때의 영향을 측정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좋은 벤처 클라이언트가 될 수 있다.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의 핵심은 스타트업 기술을 구매해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있다. 이 과정에서 스타트업은 대기업의 정식 공급업체로 등록되고 구매 주문서를 발행받는다. BMW 스타트업 개라지에서의 프로세스를 예로 들자면 먼저 회사 내부의 특정 문제를 정의한다. 예를 들어 BMW가 자율주행기술에 필요한 고도화된 센서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룬웨이브(Lunewave)와 협력한 사례를 들어보겠다. 룬웨이브는 독특한 레이더 센서를 개발했지만 초기 단계에서는 제품을 상용화하지 못한 상태였다. 당시 BMW에서는 이 기술이 자사 자율주행 차량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평가하기 위해 파일럿 프로젝트를 설계했고 그 결과 이 기술은 현재 BMW 자율주행 캠퍼스에서 통합 과정을 거치고 있다. 벤처 클라이언트 유닛(Venture Client Unit)은 조직 내의 독립적인 부서로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을 활용해 스타트업으로부터 전략적인 혜택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한다. 쉽게 말해 스타트업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조직의 부서라고 볼 수 있으며 특정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에 기반해 운영된다. BMW 이외에도 보시의 ‘오픈 보시(Open Bosch)’, 홀심의 ‘스타트업 메이커(Startup Maker)’, 지멘스의 ‘넥스트47(Next 47)’이 대기업의 대표적인 벤처 클라이언트 유닛이다.
스타트업에는 어떤 이점이 있나?스타트업은 초기 구매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또 대기업 내부에서 기술을 실질적으로 검증받는다는 점에서 시장 신뢰도가 크게 상승한다. 예를 들어 모빌아이(Mobileye)는 BMW와의 협력을 통해 자율주행기술을 상용화했고 이후 인텔에 153억 달러라는 금액에 인수됐다.
그렇다면 스타트업과 협력한 대기업에는 어떤 장점이 있나?대기업은 스타트업 기술을 조기에 테스트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기업 내에서 기술을 맞춤화할 수 있다. 무엇보다 초기 단계에서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혁신적인 솔루션을 도입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점이다. 또한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을 통해 기업은 즉각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업이 어떤 프로세스에서 문제를 겪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해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이 있다면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을 통해 그 기술을 적용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비록 작은 규모에서 시작하더라도 이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프로세스 비용 절감과 같은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혜택을 빠르게 얻을 수 있다.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이라면 몇 개월 동안 기다려야 하는 방식이지만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은 결과를 바로 가져다준다. 또한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은 조직 구조를 크게 변경하거나 막대한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 있다. 도입하기 위해 새로운 거버넌스 구조를 만들 필요가 없고, 별도의 회사를 설립할 필요가 없으며, 외부에 별도의 사무실을 마련할 필요가 없다. 즉 기존 조직에서 비교적 쉽고 간단하게 실행할 수 있는 모델이다. 또한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을 통해 기업은 단순히 기술적인 혜택을 얻는 것뿐 아니라 더 많은 스타트업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스타트업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높일 수 있다. 이는 기업 문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스타트업과의 협력을 통해 기업 조직의 혁신적인 사고방식을 키우고 기업 내부에 스타트업 친화적인 문화를 조성하는 데 기여한다.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은 기존 CVC와 어떻게 다른가?CVC는 주로 스타트업의 지분을 매입해 재정적 수익을 추구한다. 하지만 이는 종종 기술 도입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은 기술 자체에 집중하며 초기 파일럿 프로젝트를 통해 기술 적합성을 평가할 수 있다. BMW가 자율주행기술 개발에 집중하던 시기를 예로 들어보겠다. 당시 BMW는 기존 CVC 방식을 통해 몇몇 스타트업에 투자했지만 기술 도입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반면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을 통해 협력했던 택타일 모빌리티(Tactile Mobility)는 도로 상태 분석 기술을 성공적으로 통합해 BMW의 차세대 차량 기술에 기여했다.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의 성과를 어떻게 측정하나?스타트업과의 협력으로 얻는 전략적 이익이 가장 중요하다. 예를 들어 파일럿 프로젝트를 통해 얼마나 많은 비용을 절감했는지 또는 기술 도입으로 얼마나 빠르게 혁신이 이뤄졌는지 등을 분석한다. BMW 스타트업 개라지의 경우 파일럿 프로젝트 성공률이 약 90%에 달하며 이는 매우 높은 수치다. 애플과 어도비 사례에서도 알 수 있다. 스티브 잡스는 내부 프로젝트를 취소하고 당시 3~4명 규모의 작은 스타트업이었던 어도비의 소프트웨어 라이선스를 구매했다. 어도비 소프트웨어는 애플이 데스크톱 출판 분야의 글로벌 리더가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수십억 달러의 가치를 창출했다. 반면 스타트업의 지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운이 좋아야 가능하며 생각보다 수익률도 높지 않다.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은 스타트업 기술을 활용함으로써 기업의 제품, 혁신, 속도를 개선하거나 프로세스를 최적화해 즉각적이고 실질적인 재정적 가치를 제공한다.
한국의 대기업들에 제안하는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한국에서도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을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크다. 특히 대기업이 단순히 투자자로서 스타트업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스타트업의 고객이 돼 혁신을 도입하는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국내에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을 소개한 바 있으며 유럽 대기업과 국내 스타트업의 협력을 돕고 있는 홍종욱 엑스큐베이트(Excubate) 파트너는 벤처 클라이언팅 모델이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은 “회사에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전략적 목표가 있는지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매우 당연한 얘기 같지만 정확히 무엇을, 왜 필요로 하는지 모르는 회사가 정말 많다는 게 홍 파트너의 설명이다. 따라서 준비가 잘돼 있지 않은 기업에 이 모델은 그리 바람직한 방식이 아닐 수 있다. 홍 파트너는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의 장점은 대기업이 직접 기술을 구매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신속하게 도입할 수 있고 자본 투자가 필요치 않아 기존 스타트업 투자보다 리스크가 적다는 점”이라며 “이를 통해 신기술을 빠르게 채택하기 위해선 민첩한 의사결정 구조와 개방형 혁신 문화가 필수적인 만큼 이에 맞지 않는 기업이라면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결국 기술을 외부의 스타트업으로부터 소싱받는 방식인데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진다면 내부 기술 역량을 쌓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홍 파트너의 조언을 정리하면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을 도입하려는 기업들은 장기적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을 미리 짚어볼 필요가 있다. 기술 혁신 역량을 내부적으로 개발하지 않으면 기업의 장기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타트업과 협업하면서 동시에 내부 기술 역량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스타트업과 일한다는 것 자체가 리스크가 크다. 스타트업은 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빠르게 변한다. 따라서 기업이 스타트업으로부터 도입한 기술이 향후 불필요해지거나 호환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확장 가능성이 높고 기존 시스템과 호환되는 스타트업을 식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대기업으로서 스타트업과 함께 일을 하는 것도 큰 도전 과제가 될 수 있다. 조직문화와 운영 방식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내부에서 저항이 발생할 수도 있고, 이로 인해 협업이 비효율적일 수 있다. 벤처 클라이언트는 CVC의 대안이 아니다. 오히려 CVC가 투자를 집행하기 전 목표한 혁신을 기업에 도입하고 실제로 테스트하기 위한 전략적 추가 요소의 하나라고 보는 것이 더 맞다. 홍 파트너는 “둘을 상호 보완 관계로 생각하고 운영한다면 상당히 좋은 투자 방식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주는 시사점과거 기업은 주력 제품과 솔루션을 기반으로 평균 40년가량 생존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이 생존 주기가 15년 수준으로 단축되면서 기업이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혁신해야 하는 환경이 조성됐다. 15년마다 완전히 새로운 전략과 서비스를 도입하지 않는다면 기업은 도태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은 단순한 스타트업 협력 방식이 아니라 대기업의 혁신 전략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방법론으로 주목받고 있다. 혁신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데서 시작한다. 기업은 내부에서 변화를 추진할 것인지, 외부의 신선한 역량을 활용할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두 가지 접근법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과제다.
많은 기술 기업이 이 모델을 통해 혁신 속도를 높이고 있지만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이 모든 기업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만능 해결책은 아니다.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철저한 전략적 준비, 민첩한 실행력, 혁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유연한 태도가 필수적이다.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은 혁신을 가속화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지만 성공을 위해서는 기업의 철저한 준비와 노력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