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미 성공비결과 약점

집중, 극치, 속도, 입소문… 인터넷 철학이 샤오미 성장의 원천

173호 (2015년 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전략, 운영, 마케팅

 

1. 샤오미의 성공 비결/창립 철학인인터넷 사유

1) 집중: 애플처럼 매년 1∼2개의 제품에만 집중

2) 극치: 고성능 하드웨어 장착

3) 빠른 속도: 마니아들과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매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4) 입소문: 소비자의 초기 기대치를 낮추고 그 이상을 전달해 깜짝 놀라게 만드는 효과

2. 샤오미의 약점

1) 치열한 시장 경쟁과 핵심 경쟁력의 부재

2) 하드웨어 제조능력이 없어 공급사슬 업체들의 방해를 받음

3) ‘헝거 마케팅의 피로효과와 AS에 대한 불만

 

편집자주

CKGSB는 객관성과 엄정성을 추구해 이 케이스 스터디를 작성했지만 내용 및 인용 자료의 정확성과 완전성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또한 CKGSB는 케이스 스터디의 사용과 관련해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본 케이스 스터디는 관련 기업의 의견과 동일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은 CKGSB와 텅빙셩 교수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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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시시포스는 인간 중에서 가장 교활하고 영리한 인물로 코린트의 건설자이자 왕이다. 신들의 노여움을 산 시시포스는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려야 하는 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바위가 너무도 무거워서 매번 정상에 다다르기도 전에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는 영원토록 그 일을 반복해야 했다. 시시포스는 비극적 영웅의 대표적 사례가 됐다.

 

수세기가 지난 지금, 베이징샤오미과기유한책임공사(이하샤오미테크’)의 회장 레이쥔(雷軍)은 자신이 이 고대 그리스의 비극적 영웅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중국의 1세대 IT 재벌인 레이쥔은 1992년 훗날 ‘IT 사관학교로 불리게 되는 킹소프트(KingSoft) 주식회사(이하킹소프트’)에 입사한다. 1998년부터 회사 경영을 맡은 그는 8년 동안 다섯 번의 상장 과정을 겪은 끝에 2007년 킹소프트를 홍콩 증시에 상장시켰다.

 

킹소프트보다 늦게 세워진 텐센트(1998년 설립, 2004년 상장)나 바이두(2000년 설립, 2005년 상장), 알리바바 B2B(1999년 설립, 2007년 상장, 2012년 상장폐지) 등에 비해 상장이 늦었기 때문에 킹소프트의 상장 당일 시가총액은 위의 세 회사보다 훨씬 적었다. 상장 당일 종가를 기준으로 킹소프트의 시가는 527500만 홍콩달러에 불과했다. 반면 텐센트는 697000만 홍콩달러, 바이두는 395800만 미국달러( 300억 홍콩달러), 알리바바 B2B 257억 미국달러( 2000억 홍콩달러)에 달했다.

 

킹소프트 상장 두 달 후 레이쥔은 CEO직에서 물러나 2010 4월 새로운 회사를 세울 때까지 엔젤투자자로 활동한다. 그가 세운 회사는 스마트폰을 핵심 사업으로 하는 샤오미테크였다. 설립 후 샤오미테크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해 매출액이 2011 55000만 위안에서 2012 1265000만 위안, 2013 316억 위안으로 뛰어올랐다.1 그리고 레이쥔이 샤오미를 경영하면서 정리한인터넷 사유[互聯網思維]’는 더 큰 명성을 얻게 됐다.

 

샤오미의 성공으로 레이쥔은 비극적 영웅으로서의 운명에 마침표를 찍은 듯하다. “나는 돌을 산꼭대기까지 밀고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밀고 올라가는 건 힘이 들 뿐만 아니라 굴러 떨어지는 돌에 치일 수도 있다. 우선 산꼭대기에 올라간 다음 돌을 차면서 내려가야 한다.”2

 

킹소프트에서 샤오미테크까지 레이쥔은 어떤 심리적 변화를 겪은 것일까? 소위 말하는인터넷 사유의 본질은 무엇이며, 인터넷 사유의 핵심인 소셜마케팅은 또 어떻게 운영되는 것인가? 샤오미의 비즈니스 모델은 대체 무엇인가? 가파른 성장 이후 샤오미는 어떠한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시장에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확대해 나갈 것인가?

 

 

설립 배경

레이쥔, 그는 누구인가

 

1987, 18세에 불과했던 레이쥔은 도서관에서 우연히 <밸리의 불(Fire in the Valley)>을 읽게 된다. 잡스와 워즈니악 등이 애플컴퓨터를 만들어 세계를 변화시킨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레이쥔의 꿈의 원천이 됐다. 이때부터 레이쥔은세계일류의 회사를 만들겠다는 꿈을 품는다. 이후 그는 2년 만에 대학 4년 과정을 모두 이수하고 우한대학(武漢大學)의 장학금을 독식했다.3  3, 4학년 때는 다른 사람을 위해 소프트웨어를 작성하고 본인의 회사를 설립하며 보냈다.4  1991년 대학을 졸업한 후 레이쥔은 베이징으로 갔다. 한 컴퓨터 전시회에서 킹소프트 창업자인 추보쥔(求伯君)을 만난 그는 후에 킹소프트의 6번째 직원이 됐다.5 킹소프트에서 15년을 근무하면서 WPS(워드프로세서, MS Office 같은 종류의 제품)와 킹소프트 츠바(번역 소프트웨어), 킹소프트 두바(백신 소프트웨어), 게임 개발의 전 과정을 지켜봤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공세와 불법 복제 기승으로 중국의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었다. 킹소프트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결국 이 성실하고 단합된 회사가 상장되기까지 8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6

 

2007, 킹소프트를 성공으로 이끈 뒤 레이쥔은 회사를 떠나 한동안 전업 엔젤투자자로 활동한다. 2014 5월까지 총 30여 개의 기업에 투자했는데 그중 라카라, VANCL(凡客誠品), UCweb, 둬완(多玩), 러타오(樂淘) 등 많은 회사들이 각 영역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내보였다. 성공적인 투자자의 길을 걸으면서 레이쥔은 성공의 트렌드를 읽는 법과 완벽한 모바일 인터넷 상품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7

 

 

대세인 스마트폰을 따르다

 

2010 4월 샤오미가 조용히 설립되고 안드로이드에 기반을 둔 MIUI 3자 명의로 개발됐다. 설립 1년 후인 2011년 여름, 레이쥔은 소규모 기자간담회를 열고 두 가지 사안을 발표했다. 바로 MIUI는 레이쥔이 만들었으며, 샤오미가 다음 달에 휴대전화를 출시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열여덟 살 때의 꿈에 다시 인생을 걸며 스마트폰 사업을 선택한 이유는 휴대전화광인 그가 인터넷 휴대전화의 폭발적인 성장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위대한 흐름 속에서 위대한 기업이 탄생한다고 말한다.8 스마트폰은 이 시대의 가장 큰 기회다.9

 

상황은 확실히 그랬다. 당시 중국 스마트폰 시장은 애플, 삼성과 같은 고사양 고가 스마트폰 시장, 그리고 쿨패드 같은 중국산 안드로이드폰과 수많은 카피캣 제품으로 구성된 저사양 저가 스마트폰 시장으로 나뉘어져 있었다.10 만약 샤오미가 고사양 저가 스마트폰과 질 좋은 서비스로 이 틈새시장을 장악할 수만 있다면 스마트폰 열풍을 타고 빠르게 성장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레이쥔의 마음속에는 미래에 대한 대략적인 청사진이 있었다. 먼저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모토로라, 킹소프트를 융합한 전문팀을 구성한다. 모바일 인터넷을 만들고 최소 1년 후에 휴대전화를 만든다. 인터넷 방식으로 R&D를 진행하고, 팬덤을 양성하며,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한다. 휴대전화는마니아를 위한 휴대전화로 포지셔닝하고, 최고의 사양을 유지하며, 가격 대비 성능을 강조한다. 판매는 오프라인에서 하지 않고 온라인으로만 진행한다. 비즈니스 모델은 휴대전화로 수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의 비즈니스 모델을 참조해 브랜드와 입소문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휴대전화를 채널로 바꾸는 방식을 취한다.11 그리고 샤오미는 이렇게 설계해 놓은 궤도 위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창업팀을 꾸리다

 

IT 업계에 수년간 몸담아온 레이쥔은 자연스레 넓은 인맥을 쌓게 됐고, 이 인맥이 재창업을 할 때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처음부터 샤오미의 공동창업자는 7명에 달했는데 하나같이 쟁쟁한 인물들이었다.

 

전 킹소프트 츠바 사장 리완창은 사용자 환경(UI)과 휴먼머신인터페이스(HMI) 전문가이며, 전 마이크로소프트 ATC(Advanced Technology Center) 개발디렉터 황장지(黃江吉)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전문가다. 전 구글 차이나 시니어 프로덕트 매니저 훙펑(洪峰)은 모바일인터넷 애플리케이션 개발과 제품 디자인 전문가며, 전 모토로라 베이징 디자인센터 시니어 디렉터 저우광핑(周光平)은 하드웨어 디자인 전문가다. 베이징과학기술대 산업디자인과 학과장을 지낸 류더(劉德)는 산업디자인 전문가다. 전 구글 차이나 엔지니어링연구소 부원장 린빈(林斌)은 레이쥔과 더불어 샤오미 관리운영의 두 축을 이루고 있다.12

 

이 밖에도 레이쥔은 또 다른 막강한 자원을 갖고 있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Mi 1 출시 후의 물류 창고는 레이쥔이 투자한 VANCL이 지원을 하고 있다.

 

2011 12월까지 샤오미팀은 408명으로 늘어났다. R&D팀의 절반이 유명 기업 출신으로, 그중에는 구글, MS, 모토로라, 킹소프트 등 국내외 유수 IT 기업이 포함돼 있다.13

 

MIUI를 먼저 만들다

 

샤오미가 내놓은 첫 제품은 휴대전화가 아니라 안드로이드 기반 모바일 OS MIUI였다. 2008년 첫 번째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 출시된 뒤,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이용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받아들여지면서 애플의 iOS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바일 OS가 됐다. iOS와 달리 안드로이드는 개방형이기 때문에 구글로부터 권리를 위임받으면 서드파티 휴대전화업체가 시스템을 최적화시키고 개발해 사용할 수 있다.

 

샤오미는 중국인들의 성향에 맞춰 기존 시스템을 최적화하고 맞춤형으로 개발해 기존 안드로이드 체험을 180도 바꿔 사용자가 손으로 더 쉽고 편하게 조작할 수 있도록 했다.

 

MIUI의 개발은 의도적으로 서드파티 민간팀과 협력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발표 후 샤오미는 샤오미포럼에 올라오는 고급 유저들의 피드백에 실시간으로 답을 하며 가장 발전 가능성이 있는 기능만을 모아 정식 버전을 만들고, 또 매주 새로운 버전의 MIUI를 선보였다. 이를 통해 수많은 포럼 팬을 확보하게 됐고, 여기서 충성도 높은 팬들을 일컫는미펀(米粉)’이 처음으로 탄생했다. 2011 7월 말 기준으로 MIUI는 약 50만 명의 포럼팬을 갖고 있으며 그중 액티브 유저는 30만 명에 달한다. 24개 국가의 팬들이 자발적으로 MIUI를 현지 언어로 번역했으며 플래싱(flashing, 기기에 MIUI 같은 커스텀 롬을 설치- 역주) 건수는 100만 건에 달했다.14

 

처음부터 완전한 휴대전화 생산 공급사슬을 구축하는 것보다 안드로이드를 커스터마이징하는 것이 난이도나 투자금 측면에서 훨씬 유리했다. 뿐만 아니라 샤오미는 MIUI를 통해 상당한 사용자층을 확보하고 샤오미 휴대전화 출시를 위한 튼튼한 기반을 닦아 시장 리스크를 크게 줄였다. MIUI를 먼저 만든 것이 일거다득(一擧多得)의 효과를 가져왔다.

 

 

부품 공급 파트너를 찾아라15

 

샤오미의 창업자 대부분은 소프트웨어나 인터넷 관련 일을 해왔기 때문에 사실상 하드웨어 제조 경험이 전무했다. 그들에게 휴대전화 제조는 ‘0’에서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최고 사양의 휴대전화 제조를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경험이 일천한 샤오미로서는 퀄컴(Qualcomm)이나 샤프(SHARP) 같은 최고의 공급업체들을 설득해 협력관계를 맺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들 공급업체의 신뢰를 얻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윤은커녕 브랜드도, 공장도, 매출기록도 없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대형 부품 공급업체들은 기존 고객에 대한 충성도가 높고 그들의 수요에 따라 공장을 짓는다. 예를 들어 전 세계 100대 부품 공급업체 중 90개 기업에서 부품을 조달하는 애플은 항상 부품 업체들의 공장에 투자를 하고, 그들을 대신해 주요 설비를 구매하고 있다.

 

최고 품질의 부품을 생산하는 몇몇 회사들은 종종 공급 물량을 맞추는 것도 힘들어하기 때문에 샤오미 같은 신생 기업에 신경을 쓸 리 만무했다. 아니나 다를까, 샤오미는 전 세계 100대 공급업체 중 85개 업체에게 거절당했다.

 

샤오미의 일상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린빈 등 고위 임원들은 다른 업무를 제쳐두고 부품 공급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달렸다. 5개월 동안 린빈은 80%의 시간을 잠재적 공급업체들을 만나는 데 쓰고 1000번 가까이 회의를 열었다. 샤오미는 또한 독자적인 방법으로 잠재적 공급업체들에게 성의를 표시했다.

 

 

 

 

일본 후쿠시마에서

지진과 쓰나미로

방사능이 유출됐다.

그로부터 2주 후

레이쥔과 린빈, 류더는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011 3, 일본 후쿠시마에서 지진과 쓰나미로 방사능이 유출됐다. 그로부터 2주 후 레이쥔과 린빈, 류더는 세계 최고의 디스플레이 기술을 가진 샤프와 디스플레이 공급 관련 업무를 확정짓기를 희망하며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대다수 외국인 관광객들은 일본을 떠나고 있었기 때문에 샤오미의 임원들이 탄 비행기는 거의 비어 있었다. 샤프의 고위급 경영자들은 이 세 명이 보여준 관심에 만족과 감동을 표시하며 그들과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스마트폰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칩의 품질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전 세계 스마트폰 칩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지켜온 퀄컴은 샤오미의 또 다른 목표였다. 퀄컴과의 협력을 얻기 위해 린빈은 두 달을 기다려 퀄컴의 영업대표와 만났고, 다시 두 달을 더 기다려 정식 계약을 맺었다. 퀄컴의 제품부서와 접촉하고 제품규격을 받기까지 또다시 3∼4개월을 보내고 나서야 Mi 1의 칩에 대한 라이선스를 확정 지을 수 있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으니, 이후 반년 동안 레이쥔, 린빈 등은 타이완과 일본을 분주하게 오가야 했다. Mi 2를 만들 때는 퀄컴이 스냅드래곤 APQ8064을 발표하기 6개월 전에 엔지니어 6명을 퀄컴 본사가 있는 산티아고의 R&D센터로 보내 퀄컴의 엔지니어들과 같이 칩을 테스트하도록 했다. 샤오미는 퀄컴과의 협력 과정에서 점차 신뢰를 얻었고 샤오미의 판매량이 늘어감에 따라 이런 협력 관계는 더욱 긴밀해졌다. Mi2는 퀄컴 APQ8064을 탑재한 첫 모델이 됐다. APQ8064 1차 물량은 100만 개로 그중 절반은 Mi2에 쓰였고 나머지 절반은 LG가 만든 구글 Nexus4에 쓰였다.16

 

고위경영자들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샤오미는 최고 수준의 부품 공급업체들로부터 외면당했던 상황을 타파하고 삼성과 애플의 부품 공급업체와 협력관계를 맺는 데 성공했다.( 1)

 

 

‘인터넷 사유로 휴대전화를 만들다

 

‘인터넷 방식으로 휴대전화 만들기는 레이쥔이 자신의 경험을 돌이켜보고 만든 혁신이다.

 

2004년 레이쥔은 2000년에 설립한 조요닷컴(卓越網)을 아마존에 팔았다. “조요닷컴을 팔고 나서 나는 인터넷이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줄곧 생각했다. 내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가장 큰 압박은 무엇인가? 킹소프트는 20∼30%밖에 성장하지 못한 반면 조요닷컴은 100% 성장했다. 무언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80%의 시간을 들인 것이 겨우 20∼30%만 성장했다면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까? 인터넷이란 대체 무엇인가?”17

 

“반년을 넘게 생각하고 나서야 인터넷에 대해 조금 알 것 같았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말로는 아주 간단하다. 인터넷은 일종의 개념이자 방법론이다. 이 방법론을 이용하면 인터넷의 정수를 파악할 수 있다.” 레이쥔은 이를 다음의 키워드로 정리했다. 즉 집중, 극치, 입소문, 빠른 속도다.18

 

1. 집중

 

“집중이란 Less is More, 단순함의 미학이다.” 레이쥔은 애플과 스티브 잡스가 사람들에게 준 첫 번째 영감이 바로 집중이라고 생각한다. “애플은 지금(2012 5)까지 5개의 iPhone만을 선보였다. 5년 동안 5개다. 하지만 애플은 지구에서 가장 비싼 회사로 시가총액 6000억 달러가 넘는다. iPhone iPad만으로 수익의 75%를 거둬들이고 있다. iPhone은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73%에 달하는 수익을 가져가고 있는데 삼성, 모토로라, HTC 등 기타 스마트폰 기업의 수익을 합쳐봐도 iPhone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1분기 iPad의 전 세계 태블릿 PC 시장점유율은 68%에 달한다.”19

 

레이쥔은 말한다. “제품을 출시한다는 것은 왠지 모를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 휴대전화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휴대전화라고 믿어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100개를 내놓는 것이고 자신이 있으면 하나만 선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휴대전화를 만들 때단순함의 미학을 따랐다. 단순할수록 만들기가 어렵다. 우리는 하나의 휴대전화만을 만들며, 이름도 하나다. 바로샤오미폰이다.”20

 

샤오미는 매년 한두 개의 모델만을 선보이고 있다. 2011 8 Mi1을 출시했고, 2012 5월에는 젊은층을 겨냥한 한정판 청춘에디션을 선보였다. 2012 8 Mi2를 출시했고, 2013 7월 말에는 저사양 스마트폰인 Redmi, 2013 9월에는 Mi3를 발표했다.

 

2. 극치

 

“‘극치’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며, 남이 도달하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극치란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하는 것이며, 그것도 아주 잘하는 것이다.” 샤오미의극치는 주로 하드웨어 사양에서 드러난다. 레이쥔은 말한다. “Mi1 개발에 착수했을 때 프로세서는 1.5G 듀얼코어였고, 퀄컴·샤프·삼성·LG의 부품을 썼으며, 오케이왑(OKWAP)과 폭스콘에 OEM을 줬다. 샤오미폰이 판매된 지 반 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시장에서 같은 사양의 휴대전화를 찾기 어렵다.”21

 

3. 빠른 속도

 

“천하의 무공 중 빠른 것은 절대 이길 수 없다고 굳게 믿는 레이쥔은어떤 경우 빠른 것이 곧 힘이다. 빠르면 많은 문제를 덮을 수 있다. 기업이 빠르게 발전할 때 대개 리스크가 제일 낮다. 속도가 느려지는 순간 모든 문제가 드러난다고 말한다.22

 

구체적으로 보면 샤오미의 속도는빠른 반응, 빠른 교체, 빠른 수정으로 나타난다. 샤오미는 사용자들의 의견을 재빨리 수집해 매주 MIUI 베타버전을 휴대전화 마니아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마니아들이 테스트를 해보고 의견을 주면 샤오미가 다시 그에 대한 피드백을 내놓는다. 샤오미의 쑹타오(宋濤) 회장 비서는 말한다. “인터넷 모델은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기능에 있어서도 처음부터 뛰어난 것을 요구하지 않아 100%를 할 수 있다. 위챗(微信·WeChat)을 예로 들면, 아마도 위챗은 빠른 속도를 위해 처음에는 5%, 10%의 아주 기본적인 기능만 제공했다가 차차 업데이트를 진행하면서 1.0, 2.0, 3.0을 내놓았을 것이다. 핵심은 빨라야 한다는 것이다.”23

 

 

4. 입소문

 

사진 샤오미 마이크로 무비우리들의 150g 청춘

 

 

 

출처: 유쿠(Youku)

 

입소문이란 사용자의 기대치를 뛰어넘으려는 것이다. 제품에레이쥔이라는 이름값이 붙어 기대치가 높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레이쥔은 창업 초기 모든 이들에게 보안을 유지하고 최대한 조용히 움직이도록 했다. 레이쥔은 말한다. “첫 제품이 나왔을 때 우리는 여러 포럼에 글을 남겼다. 그 후에는미펀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 20여개 언어로 번역됐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사람들이 아무런 기대치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제품이 좋다고 생각한 것이다. 만약 기대치가 높았다면 이 제품이 좋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24

 

레이쥔은 사용자들의 심리적 기대를 뛰어넘었던 사례를 또 들었다. “얼마 전 우리는 사은행사를 열었다. 30만 명의 샤오미폰 사용자를 위해 특별히 감사카드를 만들고 모두에게 100위안짜리 쿠폰을 아무런 조건 없이 증정했다. 사용자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그들 입장에서는 휴대전화를 산 지 8개월이나 지났는데 샤오미가 100위안짜리 쿠폰을 준 것이다. 이 행사는 사용자들의 심리적 기대를 뛰어넘은 것이었다.”25

 

뿐만 아니라 쑹타오는집중, 극치, 빠른 속도를 모두 잘하면, 즉 진정으로 제품을 잘 만들고 사용자에게 만족스러운 체험을 선사하면 사용자들의 입소문을 탈 수 있다. 많은 경우 사용자의 입장에서 미리 생각하면, 혹은 사용자가 제품을 손에 넣은 뒤 많은 기능들을 쓰면서 재미를 느끼거나 또는 다양한 기쁨을 얻을 수 있으면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다. 이는 사실상 비즈니스의 본질로 회귀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26

 

소셜마케팅(Social Marketing)

 

이 같은 키워드를 따라 제품을 만든 샤오미는 소셜마케팅을 이용해 제품을 홍보하고자 했다. 사실상 소셜마케팅은 샤오미의인터넷 사유로 휴대전화 만들기의 일부인 것이다.

 

소셜마케팅이란 소셜미디어(포럼, 웨이보, 위챗, 블로그 등)을 이용해 널리 퍼뜨리는 것으로, 기존 주류 미디어 형식(신문, 텔레비전, 라디오, 잡지 등)과 구분된다. 기존 주류 형식과 달리 새롭게 부상한 소셜마케팅은 낮은 비용과 강한 상호성 등의 특징을 갖고 있다. 샤오미의인터넷 사유체계에서 소셜마케팅은 가장 핵심적인 부분으로 인터넷 사유의 성공을 가능케 하는 열쇠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소셜마케팅은 다른 부분과도 떼려야 뗄 수 없다. 이런 부분들이 어우러지면서 샤오미의 잇단 판매 기적을 만들고 있다.

 

소셜미디어(Social Media)를 실험하다

포럼

 

설립 초기부터 샤오미는 소셜마케팅 경험을 쌓아오고 있다. MIUI를 개발할 때 레이쥔은 리완창에게돈을 들이지 않고 100만 명이 MIUI를 쓰게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된 리완창은 킹소프트 시절의 경험을 되살려 가장 효과적이면서 비용은 들지 않는 방법, 즉 포럼을 통한 입소문 전략을 다시 집어 들었다. MIUI 초기, 리완창팀은 전 세계 포럼을 돌아다니며 파워 유저를 찾아 다녔다. 몇 사람이 수백 개의 아이디를 만들어 유명한 안드로이드 포럼에 매일 글과 광고를 올렸고, 차단을 당하면 아이디를 바꿔가며 계속해서 글을 올렸다. 가까스로 1000명을 모은 뒤 거기서 다시 100명을 슈퍼 유저로 선정해 MIUI의 설계와 R&D, 피드백 등에 참여시켰다. 100명이 MIUI 운영체제의 시작이자 샤오미 팬덤 문화의 원류다. 순전히 입소문에만 의지해 2주 차에는 200, 3주 차에는 400, 5주 차에는 800명의 사람들을 모으며 점차 규모를 키워갔다. 2013 7월 기준으로 MIUI 사용자 수는 1700만 명에 이른다.

 

2013 49일에 열린 샤오미 미펀 페스티벌에서 샤오미는 이 100명의 골수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특별히 제작한 마이크로 무비(micro movie)를 선보였다. ‘100명의 꿈의 스폰서라는 이름의 이 영화에서 샤오미는 팬들의 이름을 스크린에 하나하나 띄워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27

 

2011 5월 말, Mi1 발표를 준비하면서 리완창은 ‘3000만 마케팅 플랜을 내놓았다. 한 달 동안 중국 전역의 주요 도로 표지판에 프로모션을 하는 것으로 일찍이 VANCL를 단숨에 알렸던 바로 그 방법이었다. 휴대전화를 100만 대 파는 데 마케팅 비용 3000만 위안은 아주 적은 돈이다. 하나에 2000위안 하는 휴대전화가 100만 대면 그 가치는 20억 위안이 된다. 보통 회사들은 2∼3%를 마케팅 비용으로 잡는다. 이렇게 계산하면 샤오미의 마케팅 비용은 5000만 위안이 넘어야 한다. 하지만 이 같은 마케팅 방안은 곧 레이쥔의 반대에 부딪혔다. 레이쥔은 리완창에게 “MIUI를 홍보할 때 한 푼도 쓰지 않은 것처럼 휴대전화도 그렇게 할 순 없는 것인가하고 물었다.28

 

 

예산 ‘0’원이라는 전제 아래 리완창은 우선 MIUI 포럼을 기반으로 샤오미폰 포럼을 만들었다. 샤오미 포럼에는 가장 중요한 기술 관련 게시판인 다운로드[資源下載], 초보자 가이드[新手入門], 샤오미 아카데미[小米學院]가 있으며 후에 라이프 스타일 게시판인 쿠완방[酷玩?, 샤오미폰과 결합해 쓸 수 있는 다양한 제품을 소개-역주], 쑤이서우파이[隨手拍, 샤오미폰으로 찍은 사진을 공유-역주], 팝콘[爆米花, 팬 이벤트-역주] 등이 추가됐다.29

 

포럼은 샤오미 소셜마케팅의 근거지다. 2013 7월 기준까지 총 사용자 수는 707만 명, 일일 게시글 수는 12만 건, 총 게시글 수는 11000만 건으로 소규모 포털 사이트와 맞먹는다. 그리고 샤오미 포럼에는 강력한 오프라인 활동 플랫폼인동성회(同城會, 지역별 팬 모임-역주)’ 31개 성()과 도시에 조직돼 있다. 각 지역의 동성회는 팬들의 자발적인 모임으로, 샤오미의 지원을 받아 오프라인 이벤트를 진행한다.30

 

웨이보(微博, 중국판 트위터)

 

예산이 없는 상황에서 리완창이 주력한 두 번째 수단은 웨이보였다. 처음에는 고객센터 정도의 역할만을 기대했다. 샤오미는 고객센터의 업무 처리 속도를 15분으로 정하고, 이를 위해 특별히 고객센터 플랫폼을 개발해 업무를 처리하도록 했다. 하지만 웨이보의 홍보 효과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발견했고 샤오미는 아주 운 좋게 웨이보라는 순풍에 몸을 싣게 됐다.

 

2009년부터 시나 웨이보의 활성도는 안정적으로 꾸준히 상승해 2011년과 2012년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샤오미는 이 기회를 재빠르게 잡아 웨이보를 주전장으로 삼았다.31

 

웨이보는 화제성을 이용한 마케팅에 가장 적합하다. 대표적인 사례로샤오미폰 청춘에디션이 있다. 2012년 청춘에디션 발표를 한 달 반에서 두 달 정도를 앞두고 샤오미팀은 웨이보에 ‘150g의 청춘이라는 토픽을 올리기 시작했다. 대학 생활의 일상적인 풍경을 담은 사진(남학생의 경우 게임기나 카메라, 여학생의 경우 체중계)도 함께 올렸는데 정작 150g이 무엇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 화제가 약 보름 동안 이어지면서 젊은이들을 추억과 향수에 젖게 했다.32

 

청춘에디션의 첫 공개 역시 웨이보에서 진행됐다. 동시에 샤오미는 다소 허술한 청춘 마이크로 무비우리들의 150g 청춘를 찍어 유쿠를 통해 선보였다. 영화 후반부 레이쥔과 여섯 명의 공동 창업자들은 대학교 기숙사로 돌아가 자신들의 대학 시절을 연기한다. 공개 첫날, 드디어 150g의 수수께끼가 밝혀졌으니 바로 샤오미폰 청춘에디션의 무게였다. 당일 샤오미 웨이보의 리트윗 수는 2012년 최다 리트윗 기록을 세웠다. 200만여 건의 리트윗과 100만 건의 글이 올라왔다.33

 

위챗(WeChat), 큐존(Qzone)……

 

샤오미는 다양한 소셜미디어를 통해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일례로 2013 49일 미펀 페스티벌 발표회 당일, 샤오미는 위챗에서발표회 생중계로 보기라는 깜짝 퀴즈 이벤트를 진행했다.

 

10분마다 깜짝 퀴즈가 나가며 라운드마다 상품으로 신형 샤오미폰 1대와 F코드(샤오미폰 우선 구매권) 50개를 주는 방식으로 총 13라운드를 진행했다. 이벤트가 시작되고 두 시간 동안 280만 건의 메시지가 오갔으며 당일에만 위챗 친구 수가 18만 명 증가했다.34

 

2013 8, 샤오미는 또 한번 새로운 시도에 나섰다. 저사양 스마트폰인 Redmi 발표를 예약판매 형식으로 큐존에서 단독 진행한 것이다. 이 이벤트는 또한 큐존이 처음으로 진행한 소셜마케팅이었다. 이 예약 이벤트에는 745만 명의 사용자가 몰려 90초 만에 10만 대가 모두 팔렸다.35

 

 

 

 

 

샤오미는 소셜미디어를실험장이 아닌주전장으로 이용하면서 미디어별로 다른 마케팅 전략을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MIUI를 홍보할 때 포럼을 시발점으로 삼은 이유는 포럼이 제품의 특징과 잘 맞았기 때문이다. MIUI를 사용하려면 롬 플래싱과 루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웨이보로는 진행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다.36  업계에서는 샤오미가 큐존을 통해 Redmi를 최초로 공개한 것은 큐존 사용자 대부분이 3, 4선 도시의 젊은 층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들 중에서도 소득이 높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고사양 저가폰에 관심이 많았다. 799위안밖에 안 되는 Redmi의 가격과 비교적 높은 사양은 이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37

 

샤오미팀은 여러 소셜미디어의 기능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포럼은 브랜드를 노출시키기에 좋은 장소며, 웨이보는 브랜드를 끌어올리는 데 적합하다. 큐존은 이벤트에 적당하며 위챗은 고객서비스 플랫폼으로 사용되고 있다.38 샤오미의 소셜마케팅은 기존의 일방향적이고 선형적인 전자상거래 커뮤니케이션 모델을 그물처럼 다방향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입소문과 소셜네트워크를 활용한 브랜드 확산과 마케팅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39

 

팬덤 문화를 만들다

 

이런 소셜미디어를 통해 샤오미는 다양하고 두터운 팬덤을 갖게 됐다. 2013 7월 기준으로 샤오미 포럼 회원은 700만 명이 넘었다. 샤오미폰과 샤오미 회사 등 제품의 웨이보 팔로어 수는 550만 명, 샤오미 파트너에 직원까지 더한 웨이보 팔로어 수는 770만 명, 위챗 친구 수는 100만 명에 달한다. 다양하게 운용할 수 있는 수천만 명의 팬들이 샤오미의 마케팅 신화를 지탱하고 있다. 일례로 2011 816일 샤오미폰 발표 후 바이두 인덱스는 당일 28만 건까지 치솟았다.

 

2011 95일 샤오미폰의 첫 번째 예약에서 34시간 동안 30만 대가 넘게 예약됐고, 2011 1218일 첫 번째개방구매에서는 3시간 만에 10만 대가 판매됐다. 2012 216일 차이나텔레콤용 샤오미폰은 이틀 동안 92만 명이 깜짝 구매에 참여했다. 2012 46일 미펀 페스티벌에서는 65초 만에 10만 대가 팔렸다.

 

프랜드십과 사용자의 참여

 

이처럼 강력한 팬덤을 지탱하는 힘에 대해 리완창은 프랜드십과 사용자의 참여를 꼽았다.리완창은 샤오미가 사용자와 친구가 돼 사용자를 제품의 설계부터 R&D,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판매 등 프로세스 전반에 참여시키고 그들을 협력 파트너로 만들어 사실상 사용자와 함께 제품을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말한다.40

 

리완창은 MIUI 개발을 맡았을 때 처음으로 사용자 참여가 주는 묘한 힘을 느꼈다. 그는예전에 킹소프트에 있을 때는 전부 비공개 개발이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1, 2년을 꼼짝 않고 매달렸다. 우리는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발표 뒤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게다가 2년 동안 시장에 많은 변화가 있었기에 바꾸려 해도 이미 늦어서 그렇게 시장 기회를 놓쳤다. MIUI를 개발하면서 우리는 각 포럼에서 총 100명의 유저를 선발했다. 제품을 업로드하면 다음 날 바로 피드백을 얻을 수 있었다. 그들 중에는 과일가게 사장도 있었고 홍콩의 란제리 디자이너도 있었다. 우리는 유저들에게 잘하면 그들이 상상도 못한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그들의 포용력 역시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41

 

MIUI뿐만 아니라 샤오미는 매번 새로운 샤오미폰을 발표하고 정식으로 판매하기 전에 엔지니어링 테스트 기기를 내놓는다. 샤오미 로고 우측 상단에 별 표시로 구분을 해놓은 휴대전화를 전문가 수준의 미펀들에게 나눠주고 두 달 동안 테스트를 하게 한다. 샤오미 포럼에 전용 게시판을 만들어 테스트 기기에 대한 미펀들의 의견을 받는다. 예를 들어 배터리 커버가 쉽게 헐거워진다거나, 볼륨키 키감이 너무 무르다든가, USB선이 너무 짧다든가 하는 문제가 있으면 그걸 전부 종합해서 엔지니어가 다음 주문 물량을 만들 때 반영한다. 이 테스트용 기기는 미펀 개인이 소장해도 되고 정식으로 발매되는 새 폰으로 바꿔가도 된다.42

 

여기서 사용자는 일종의 참여의식을 소비하게 된다. “나는 여기에 참여해 내 의견을 말할 수 있고 당신은 나를 존중한다. 내 의견이 실제로 반영됐고, 나는 내가 이 제품에 참여했다고 느낀다. 나는 기꺼이 이 제품을 추천할 것이고, 나는 샤오미와 함께 성장할 것이다. 이 느낌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43

 

 

 

 

헝거 마케팅(Hunger Marketing)

 

헝거 마케팅은 애플도 사용한 적이 있는, 새로울 것 없는 마케팅 전략이다. 하지만 샤오미팀의 능숙한 운용으로 샤오미팬들의 열정을 높이고 유지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샤오미 신제품 정식 판매 초반에는 매번 생산능력 문제로 물량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현상이 발생한다. 베이징에서는 한동안 샤오미폰을 살 수 있다는 것이연줄 있음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미펀들의 항의로 샤오미는 엉겁결에개방구매(開放購買)’를 시작했다. 매주 화요일마다 진행되며, 전 주 금요일에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면 구매 자격을 얻게 된다. 이 같은개방구매는 거대한 브랜드 전파력을 만들어냈다. 샤오미 마케팅팀은 매주 진행되는개방구매로 샤오미의 바이두 인덱스가 5배에서 심지어는 10배로 증가한 것을 발견했다.44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샤오미의개방구매전략은 연장됐다. 한정판매, 예약판매, 깜짝판매 등 다양한 방식이 계속되면서 샤오미폰품귀 현상을 만들어냈다.

 

샤오미의 소셜마케팅과 팬덤 모델의 성공으로 많은 중국산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이 인터넷 플랫폼과 팬덤 모델을 결합해 브랜드 전파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다시금 찾고 있다.

 

비즈니스 모델

운영 모델

 

샤오미의 운영모델은 ZTE나 화웨이, 쿨패드, 레노버 같은 기존 휴대전화 제조업체들과 완전히 다르다. 자산 경량화 전략(Asset-light Strategy)을 채택한 샤오미는 R&D와 설계, AS 등은 직접 책임지지만 생산과 물류배송은 전부 외주를 주고 있다. 샤오미는 외주 방식을 통해 고정비용의 투입과 상각을 줄였고 가장 많은 자금이 집중되는 부분을 털어버렸다.45

 

제품 R&D와 설계에 있어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사용자의 참여도가 매우 높아서 샤오미 R&D 연구원들과 사용자가 함께 전체 과정을 완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역시 기존 업체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재고와 공급사슬 관리에 있어 샤오미는주문 생산(make to order)’이라는 델(Dell)의 공급사슬 관리 모델을 참고하고 있다. 최대한 무재고(zero inventory)를 실현하고, 주문에 따라 생산한다.46 매주 화요일 낮 12시가 되면 샤오미 홈페이지(mi.com)에 휴대전화 제품이 올라온다. 구체적인 모델명과 수량은 사전에 포럼을 통해 발표되며, 이 수량은 샤오미 물류센터가 피드백한 재고 데이터에 따라 결정된다. 구매를 희망하는 소비자는 매주 화요일 정오 전까지 정보를 기입하고 예약을 해야 당일 구매가 가능하다.47

 

이 예약 수량은 샤오미의 중요한 생산계획을 결정하는 지표 중 하나다. 이 지표와 그 주의 매출액, 바이두 인덱스, 포럼 게시글 수 등을 따져 3개월 후의 생산량과 개방구매 수량을 계산하고, 그에 따라 생산계획표를 짠다. 그리고 계획표에 따라 부품을 구매한다. 디스플레이는 샤프에서, 칩은 퀄컴에서, 렌즈는 소니에서 구매하는 방식으로 총 600여 개의 부품을 구매한 뒤 최종적으로 오케이왑과 폭스콘에서 OEM 방식으로 생산한다.48

 

판매방식 역시 기존 휴대전화 제조업체들과 다르다. 샤오미는 전자상거래 채널을 위주로 판매를 한다. 자체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샤오미 홈페이지 외에도 JD닷컴, 타오바오(티몰) 등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통해서도 샤오미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Mi1을 출시했을 때는 VANCL이 전액 출자해 세운 배송회사인 루펑다(如風達)가 물류와 배송을 맡았고, 후에는 S.F.익스프레스, STO 익스프레스, YTO 익스프레스, EMS 등도 샤오미의 서드파티 배송업체가 됐다. 샤오미는 자체 매장을 갖고 있지 않으며, 주로 통신업체인 차이나텔레콤과 차이나유니콤, 차이나모바일의 오프라인 채널을 빌리고 있다. 2012년 총 판매량의 70%가 전자상거래 채널에서 이뤄졌으며 통신업체 채널은 30%를 차지했다.49

 

비즈니스 모델과 수익원

 

샤오미의 비즈니스 모델을 생각하면서 샤오미팀은 요즘 같은 스마트기기 시대에 하드웨어의 성능이나 사양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대한 사용자의 체험(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결합된 원활한 연동 및 그 배후의 인터넷 모델과 인터넷 서비스 등 미래의 다양한 부가가치 서비스를 포함하는 체험)으로 경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50

 

2014년 현재 진정한 의미의소프트웨어+하드웨어+인터넷 서비스융합을 실현한 회사는 애플뿐이다. 샤오미는 애플을 적극 벤치마킹해 샤오미의 비즈니스 모델을소프트웨어+하드웨어+인터넷 서비스의 트라이애슬론(Triathlon) 전략으로 단순화했다. 즉 응용 소프트웨어에서부터 시스템, 하드웨어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안드로이드 생태 시스템 안에서 샤오미폰과 MIUI, Mi Box, 스토어, Mi Cloud, 개발자로 구성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하지만 레이쥔은 샤오미의 경우 하드웨어 수익으로 운영된다기보다는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서비스 수익으로 확장해 가고 있으며 하드웨어로 수익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샤오미와 애플이 다르다고 말한다.51 , ‘Free+Premium’ 모델을 채택해 처음에는 수익이 없거나 미미한 하드웨어 영역에서 사용자를 많이 확보한 다음 유료 소프트웨어와 부가가치 서비스, 액세서리 등을 제공해 수익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로만 수익을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생태계 구축 역시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매우 건강한 생태계 시스템을 갖고 있는 애플의 경우 2013년 회계연도에서 소프트웨어 서비스와 기타 음악 관련 제품 및 서비스 수익이 당해 회계연도 총 영업수익에서 차지한 비중은 9.4%에 불과했으며 액세서리는 3.3%였다. 나머지 87.3%는 각종 하드웨어 기기의 공헌이었다.52  더군다나 애플의 iOS에 비해 안드로이드 플랫폼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개발자의 수는 적다. 샤오미가 소프트웨어와 인터넷 서비스에서 수익을 얻으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2014년까지 샤오미의 주된 수익원은 하드웨어다. Mi1을 예로 들면, 출고가는 30만 대 판매를 기준으로 비용을 계산한 것이다. 비용을 상각하고 나면 사실상 이윤이 없다. 하지만 판매량이 30만 대가 넘으면 구매비용도 그에 따라 감소하고, 비용 상각도 이미 끝났기 때문에 이때는 손익 균형에 이를 수 있게 된다.53

 

게다가 무어의 법칙(Moore’s Law)에 따르면 부품 비용은 계속해서 하락한다. 휴대전화 가격을 정할 때는 원가지만 1분기가 지나면 가격이 내려가고, 다시 1분기가 지나면 또 가격이 내려가기 때문에 기업은 합리적인 이윤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더구나 신제품 출시 초기 샤오미는 통상적으로 대량 생산보다는 헝거 마케팅 전략을 쓰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용자가 제품을 살 수 있게 될 때면 출고가를 책정했을 때보다 부품 비용이 많이 낮아진다. 레이쥔은 2012 2분기 때 Mi1가 이미 정상적인 이윤을 벌어들이고 있으며 수익률은 10%대라고 밝혔다.54

 

초기 비용이 높은 이런 수익 모델의 관건은 제품의 수명 주기를 늘리는 것이다. 수명 주기가 길어져야 무어의 법칙이 작동하고, 기업이 한계비용의 감소를 통해 가격 조정을 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갖게 돼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샤오미가 휴대전화의 성능을 적절히 향상시키고 정상적인 이윤을 벌어들이면서 가격대 성능비를 동일 가격대의 최고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Mi2를 예로 들면, 2012 816일에 발표된 Mi2의 최초 판매가는 1999위안이었다. 2013 49, 샤오미는 1999위안의 판매가를 유지하면서 Mi2 Mi2S로 업그레이드 시키고 CPU 성능과 카메라 화소를 강화했다. 2013 7, 샤오미는 Mi2S의 가격을 1699위안으로 낮췄다. 2013 95일에는 Mi2S 32G를 선보이며 가격을 1799위안으로 올렸다.55

 

 

샤오미의 근심

1. 치열한 시장경쟁

 

2012 10, 구글이 Nexus4를 출시했다. Mi2와 비슷한 사양을 가진 이 스마트폰의 판매가는 1900위안. 반면 Mi2의 판매가는 1999위안이었다. 뿐만 아니라 삼성, 모토로라, HTC 등 안드로이드 진영의 주력 브랜드 역시 가격 인하 경쟁에 빠르게 뛰어들었다. 같은 기간에 발표된 화웨이의 쿼드코어 스마트폰 가격 역시 1888위안에 불과했다.56

 

샤오미의 급격한 성장은 많은 경쟁자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들 역시 알게 모르게 샤오미 모델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레노버, 화웨이, ZTE, vivo 등은 인터넷 플랫폼과팬덤 모델을 결합해 브랜드 전파력을 향상시킬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레노버는러펀(樂粉) 클럽을 선보였고 화웨이는화펀(花粉)’, ZTE 싱싱(星星)’, vivo ‘v (v )’을 각각 선보였다.57

 

2014년 스마트폰 시장의 경쟁은 이전보다 더욱 치열해졌다. 화웨이, 쿨패드, 레노버, 샤오미, TCL은 차례로 6000만 대를 2014년 출고 목표로 정했다. 그 까닭은 단일 분기 1500만 대라는 출고 수량만 보장하면 전 세계 3∼5위에 해당하는 시장점유율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58 똑같이 전력을 쏟고 있는 경쟁자들 앞에서 샤오미에게는 절대적 승산이 없다.

 

 

2. 핵심 경쟁력의 부재

 

샤오미에게 절대적 승산이 없는 까닭은 아직까지 샤오미가 핵심 경쟁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샤오미가 만든 팬덤 문화는 커다란 가치를 창출했지만 이의 지속 여부는 검증이 필요하다. 이런 지속성에는 두 가지 측면이 포함돼 있다. 하나는 팬덤층의 확대며 다른 하나는 팬들의 충성도 변화다. 휴대전화 같은 과학기술 제품은 팬들의 충성도나 전환비용이 높지 않다. 애플이나 삼성처럼 잘나가는 회사라도 제품 몇 개만 신통치 않으면 사용자를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샤오미는 더욱 말할 것도 없다.59

 

MIUI가 진정으로 트라이애슬론 전략의 한 축이 될 수 있을지 또한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MIUI는 안드로이드를 최적화한 것이기 때문에 안드로이드 시스템이 점차 개선되면 될수록 MIUI의 입지는 자연스레 좁아질 것이다. 이는 결국 MIUI 때문에 샤오미폰을 사는 일부 사용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샤오미폰은 고사양 중저가 노선을 걸어왔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가격에 민감할 수 있다. 이들이 MIUI 내 유료 항목인 테마나 도서, 앱에 계속해서 돈을 쓸 것인지는 더 자세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2014년까지도 샤오미폰은 여전히 샤오미의 주요 수익원이다. 단일 제품에서 수익이 난다는 것은 리스크가 뚜렷하다는 뜻이다. 샤오미폰의 CPU나 디스플레이 등 핵심 부품의 70%를 업스트림 제조업체가 생산을 하며 OEM 방식으로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애플이나 삼성, 심지어 화웨이, ZTE, 레노버와 비교해도 핵심 기술 축적이 부족하다.60

 

3. 공급사슬의 방해

 

샤오미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아마도 공급사슬에 대한 통제력 부족일 것이다. 샤오미는 지금까지가격 대비 성능을 내세우며 판매량을 늘려왔다. 이런 틀에서는 비용 통제가 불가피하다. 그리고 비용을 통제하려면 공급사슬 중에서가격 대비 성능이 가장 우수한 공급업체의 부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성능과 가격의 균형을 맞추다 보면 종종 시장에서의 정체라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것이 또한 생산능력이 시장수요를 만족시킬 수 없는 주된 이유기도 하다.61

 

뿐만 아니라 수익률은 저가 정책의 제약을 받는다. 때문에 샤오미는 비용을 생각하지 않고 생산능력 향상을 위한 공급사슬에 투자를 할 수가 없다. 이런 까닭에 샤오미가 애플의 자산 경량화 정책을 벤치마킹한다 하더라도 애플처럼 전 세계에서 제품 표준에 부합하는 공급업체를 선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대량의 자금을 투자해 새로운 공급업체를 지원할 수도, 기술·경영·교육 등 각 분야를 지도할 수도 없다.

 

샤오미에는 애플처럼 공급사슬에 대한 강력한 통제력도, 삼성처럼 완전한 자급자족을 가능케 하는 업·다운스트림 공급사슬도 없다.62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통신 영역을 일궈온 화웨이나 ZTE, 혹은 지능형 전자 기기(IED) 영역을 일궈온 레노버와 비교해도 공급사슬 기반이 매우 빈약하다.

 

혹은 업스트림 공급사슬을 융합하겠다는 계획이 샤오미에는 없을 수도 있다. 레이쥔은지금까지 발전해오면서 강조했던 전문화된 분업이란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은 공장을 열심히 잘 운영하고, 제품을 만드는 사람은 열심히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핵심 부품의 외부 구매와 외주 생산의 단점은 뚜렷하다. 샤오미폰의 총생산량이 큰소리를 칠 수 있는 양에 한참 못 미치게 되면 막강한 업스트림 공급업체 및 경쟁사들과 힘겨루기를 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자연히 득실이 생기게 된다.

 

일례로 하이엔드 칩 공급업체인 퀄컴과의 협력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비록 퀄컴 벤처스(Qualcomm Ventures) 2011년 순웨이, 치밍, 모닝사이드, 테마섹 등 사모펀드와 함께 9000만 달러를 샤오미에 투자해 샤오미의 주주가 됐지만 샤오미와 퀄컴 사이의 관계가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2014년 초, 4개월 가까이 기다린 끝에 퀄컴 칩을 탑재한 Mi3가 발표됐다. 하지만 구매를 하고 보니 그간 샤오미가 퀄컴 스냅드래곤 800 MSM8974 AB라고 홍보해왔던 칩셋이 MSM8274 AB로 바뀌어 있는 것이 확인됐다. 둘의 가장 큰 차이는 후자의 경우 차이나텔레콤의 CDMA 3G망과 현재 중국 통신업체들이 주력하고 있는 4G망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샤오미는 출시 전에 홍보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제품 출시 연기와 모델의 변화에 대해 퀄컴이 가격을 높게 불렀거나 다른 제조업체에 칩을 먼저 제공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63

 

사실상 핵심 특허나 핵심 부품, 핵심 소프트웨어 설계 능력이 없는 중국의 많은 제조업체들은 공급사슬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으며, 심지어는 경쟁사에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다. 일례로 화웨이의 P1, ZTE Grand S, 레노버 등 기타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은 디스플레이를 공급받는 과정에서 삼성의 수법에 피해를 입었다. 그 결과 수개월을 개발해온 플래그십 제품들이 적시에 출시되지 못했다. 반면 삼성은 적은 액수의 위약금만 물었다.64

 

손해를 입은 화웨이, ZTE, TCL 등은 공급사슬의 핵심을 이미 자체적으로 마련했다. 화웨이(룽야오 6) ZTE(Q801T)는 자체 개발한 모바일 칩을 선보였고 TCL 산하의 CSOT 2015년 자체 개발한 휴대전화 디스플레이 패널을 선보일 예정이다.65 만약 샤오미가 공급사슬의 구축과 개선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한다면 공급사슬 문제는 샤오미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4. 인내심을 시험하는 헝거 마케팅

 

샤오미는 새로운 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통상적으로 헝거 마케팅을 사용한다. 생산능력 부족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런 전략은 제품의 가치를 상승시키고 미펀의 흥미를 자극한다. 하지만 이 전략은 양날의 검이다. 샤오미는 막대한 이득을 얻은 동시에선물(Futures)’이라는 호칭을 갖게 됐다.

 

샤오미 홈페이지를 통해 특정 시간에 진행되는 깜짝 세일에서 구매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여러 번 반복되면 사용자는 아마 인내심을 잃고 다른 회사의 물건을 살 것이다. 헝거 마케팅이 계속되면 샤오미의 평판과 미펀들의 선호도에 영향을 줄 것이다.

 

 

5. 잦은 품질 논란과 불만족스러운 AS

 

샤오미 제품은 생산사슬이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품질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예컨대 디스플레이의 정교하지 못한 터치 인식, 배터리 충전 시 과도한 발열, 디스플레이 들뜸, 배터리 커버 유격, SIM카드 슬롯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 등의 문제가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다.66

 

2014 6월 기준으로 샤오미는 중국 전역에 36개의 샤오미 팩토리(Xiaomi Factory) 460여 개의 서비스센터만을 갖고 있다. 여기서 제품 체험과 AS를 제공하는데, 만약 사용자가 살고 있는 도시에 샤오미 공인 서비스센터가 없을 경우 택배로 물건을 공장에 보내면 교환 혹은 수리를 해준다. AS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용자들이 고객센터와의 전화연결 지연, 웨이보 고객센터와 온라인 고객센터의 불만족스러운 접수 처리, 낮은 AS 효율, 반복 수리 등 불쾌한 경험을 겪었다.

 

2014, 38개의 권위 있는 기관들이 삼성, 레노버, 애플, 샤오미 등 13개 주요 스마트폰 브랜드의 공인 서비스센터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해수리 사기 근절 - 휴대전화 AS 조사 보고서를 내놓았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13개 브랜드 중 샤오미와 HTC가 최하위를 기록했다.67

 

샤오미의 미래

 

샤오미는 2014년을 그들의 성공적인 개혁이 계속된 또 하나의 성공적인 해로 봤다. 샤오미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27%의 연성장률을 달성하며 2014 6100만 대의 스마트폰을 판매했다. 총수익은 작년보다 135% 성장한 7430만 위안을 기록하며 세계 3위 휴대전화 제조업체가 됐으며, 이는 샤오미가 2014년 목표로 세웠던 6000만 위안을 넘어서는 수치였다.

 

2015년 샤오미는 (1) 글로벌시장에 진출하는 것 (2) 국내 시장에 스마트폰 가치 체인과 스마트 가정생활 환경을 개발하는 것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국내 시장에서 경쟁자인 화웨이와 레노보 등의 급격한 성장으로 인해 위기를 맞으며 현재 글로벌 시장 진출에 가장 힘쓰고 있다. 하지만 중국 스마트폰 시장이 점차 성숙해지면서 샤오미의 중국 내 성장은 생각보다 빨리 한계에 부딪힐 것으로 예측된다. 또 제한된 특허와 기술력으로 인해 국제 시장 경쟁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원대한 포부를 갖고 있는 레이쥔과 샤오미에게 중국 시장은 이들의 최종 목표가 아니다. 휴대전화 영역 역시 비즈니스 영역의 전부가 아니다. 이들의 전략목표 안에는 해외시장과 스마트 생태계가 포함돼 있다.

 

 

1. 해외시장 진출

 

2013년부터 샤오미는 정식으로 해외 공략에 나서며 같은 해에 홍콩과 타이완 시장에 진출했다. 2014년에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 인도네시아 등에 진출했으며 멕시코, 러시아, 태국, 터키, 베트남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전체적으로 해외 신흥시장이 샤오미의 주된 타깃이다.

 

해외시장에서도 샤오미는 고사양 저가 정책을 고수하고 있으며 헝거 마케팅과 팬덤 마케팅 전략 등도 쓰고 있다. 하지만 중국 내에서의 경험을 그대로 해외시장에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첫째, 팬들의 니즈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레이쥔은 국내적으로 명성과 호소력이 높다. 그리고 중국 사용자들은 샤오미에 익숙하기 때문에 팬덤 운영이 수월하다. 하지만 해외에서 레이쥔의 영향력이 미미하고 젊은 층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 역시 국내보다 훨씬 어렵다. 거대한 팬덤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여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68

 

둘째, 판매방식을 그대로 가져가기가 힘들다. 중국에서 샤오미의 주요 판매채널은 전자상거래고, 또 이 채널을 통해 헝거 마케팅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현지 전자상거래 및 물류의 발전 정도, 휴대전화 온라인 구매에 대한 사용자들의 인식 정도에 따라 이 방식을 쓸 수 있을지 여부가 결정된다. 만약 어떤 해외시장에서 샤오미가 현지의 오프라인 채널 자원을 이용해야 한다면 샤오미는 현지 오프라인 판매에 적용할 수 있는 게임규칙을 새로 찾아야 할 것이다.

 

셋째, ‘빠른 속도를 구현하기 어렵다. 중국에서는 레이쥔이 갖고 있는 인터넷과 투자 분야의 인맥으로 많은 사안들을 비교적 빠르게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법률이 다르고 각종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데다 현지 경쟁사의 반격이 존재한다. 이후에 틀림없이 인도네시아, 브라질, 멕시코에서와 비슷하게길고 힘든 기기 인증 절차를 밟게 될 것이다.69

 

넷째, 특허 문제가 있다. 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샤오미가 아직까지 미국과 서유럽 시장에 진출하지 않고 있는 주요 이유 중 하나로 샤오미의 취약한 특허기반을 들고 있다. 만약 혁신과 제품의 오리지널리티를 매우 중시하는 이 지역에 섣불리 진출한다면 샤오미는 애플 같은 글로벌 휴대전화 제조업체들과 특허 전쟁을 치러야 할 것이다.

 

2. 스마트 생태계를 만들다

 

해외시장 진출 외에 샤오미의 또 다른 전략목표는 스마트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샤오미는 현재 중국 국내 시장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스마트폰과 스마트 가정생활을 잇는 완벽한 가치 체인 플랫폼 개발에 힘쓰고 있다. 샤오미는 스마트폰과 라우터를 다양한 가전제품과 연결해 가정생활을 더 스마트하게 만들 수 있다는 논리 아래 플랫폼을 개발 중이며, 이를 위해 최근에는 주요 가전제품 업체인 미데아(Midea)와 손을 잡았다.

 

2013 4, 샤오미가 발표한 Mi Box HD 인터넷 TV 셋톱박스로, 사용자는 이 제품을 통해 텔레비전에서 인터넷 영화와 드라마를 무료로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샤오미폰, iPhone, iPad,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이나 동영상을 와이파이로 텔레비전 화면에 띄울 수 있다.

 

2013 9 Mi TV 1이 출시됐다. 2014 5월에는 성능이 개선된스마트와 TV 의 결합으로 유명한 Mi TV 2가 발표됐다. 텔레비전을 켜면 사용자는 HD 영화나 예능 프로그램을 언제든지 감상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웨이보나 주식 등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할 수 있고, TV 디스플레이에 맞게 개발된 약 100개에 달하는 안드로이드 게임이 내장돼 있다. 모든 영상과 애플리케이션, 게임은 매주 업데이트된다.

 

 

2014 5, Mi Pad가 출시됐는데 이 제품은 애플의 iPad와 유사한 안드로이드 태블릿 PC.

 

2014 4, 샤오미 라우터가 출시됐다. 스마트홈에 대한 샤오미테크의 꿈을 담고 있는 이 제품은 스마트홈의 제어센터로서 집 안의 에어컨, 텔레비전, 심지어 전등까지 모두 스마트하게 연동시킨다. 샤오미테크의 새로운 발전 방향 역시 이 제품에서 결정됐다. 즉 라우터에서 시작해 홈디지털센터, 스마트홈센터 및 개방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다.

 

샤오미테크는 이처럼 빠른 속도로 비슷한 제품을 계속해서 내놓으면서 인터넷 사유를 이용해 스마트제품 영역의 판도를 새로 짜려 하고 있다. 천하의 무공 중 빠른 것은 절대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샤오미가 빠른 속도로 새로운 영역을 앞 다투어 차지하고 있지만 샤오미가 이런 영역에서 새로운 열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는 좀 더 고찰이 필요하다. 특히 지금까지는 스마트홈에 대한 사용자들의 수요가 높지 않아서 이 업계의 전체적인 발전이 가로막혀 있다. 게다가 샤오미 제품의 공급사슬이 오래도록 개선되지 않는다면 샤오미와 레이쥔은 앞으로 무엇에 기대어 최후에 강호(江湖)를 비웃을 것인가?

 

만약 고객들이 실제로 이 스마트 제품들이 내는 시너지 효과를 체험할 수 있다면 샤오미 네트워킹의 파급효과는 더 확장될 것이다. 그러나 샤오미가 페이스북과 알리바바같이 자기 강화 플랫폼을 개발에 성공한 기업의 반열에 들기까지는 힘든 여정이 예상된다.

 

텅빙셩(騰斌聖)중국 장강상학원(CKGSB) 교수 양구촨(楊谷川) 연구원

 

동아비즈니스리뷰 350호 Smart Worcation 2022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