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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 TVA 시스템

혁신기업이 맞이한 ‘엔진스톱’ 위기 남은 하나 ‘회계의 재구성’, 조직성장 재가동!

박기찬 | 169호 (2015년 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전략, 혁신, 마케팅

 

 

 

 

현대카드가 TVA(Total View Accounting)를 도입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요인은?

1) 업의 본질을 탐구하고 다양한 질문으로 이를 공유하게 한 변혁적 리더십(transforma-

tional leadership)

2) 기존 관행과 당연시하던 지출 항목을 초월한 비용의 재구성

3) 공헌고객을 파악해 이들을 집중 공략한 고객 차별화 전략

4) 도전과 시행착오를 일상으로 자리 잡게 한 조직문화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지혜(가톨릭대 영문학과 4학년), 백현(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2011 10월 정태영 현대카드 대표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지난 10년 동안 이어졌던 고속 성장은 그 엔진을 멈췄다. 장기 불황이었다.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았다. 아무리 화려한 프로모션을 구사해도 카드 사용량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규제는 더 엄격해졌다. 가맹점 수수료를 내리라는 압박이 계속되면서 2.5∼2.6%였던 요율이 2% 아래로 떨어졌다. 가만히 앉아 수익이 절반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정 대표를 고민하게 만든 것은 현대카드를 대변하는 키워드라고 생각했던변화혁신의 기운이 사그라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데 있었다. 경기침체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사세가 위축되고 그와 함께 내부의 역동적인 분위기가 소멸되고 있는 듯했다.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래서였다. 지금 하는 일을 무슨 이유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하고 있는지, 본질적인 질문을 통해 정체성을 확인하고 변화의 기운을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정 대표는 주요 본부의 장들을 모아놓고 질문을 던졌다. “카드와 오토, 금융, 커머셜 4사를 누군가 인수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인수자가 우리가 하는 일을 보고이 일을 왜 이렇게 하고 있는 겁니까라고 물으면 뭐라고 답할 건가요?” 회사를 사들인 사람의 시각으로 근본적인 차원에서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조망해보자는 취지의 ‘Day1’이 이렇게 시작됐다.

 

현대카드만의 회계 기준을 만들다

하고 있는 일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보자며 포커스를 들이댄 것은회계였다. 원래 회계란 기업에 돈이 얼마나 들어오고, 얼마나 나가서, 결론적으로 얼마가 남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과정이며 결과다.

 

기업 활동은 결국 돈을 어디에 쓰고 어디서 버는지로 정의된다. 즉 기업의 정체성은 돈을 어디에 얼마나 쓰는지, 그리고 어디에서 가장 많이 벌어들이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현대카드가 회계에 돋보기를 들이댄 것은 그 때문이다. 현대카드를 들고 나는 돈이 어느 항목으로 얼마나 움직이는지 확인해 현대카드가 하고 있는 업의 본질과 현 상태를 파악하고자 했다.

 

정태영 대표는 부서장들에게 숙제를 던졌다. 자잘한 항목들로 쪼개져 실체를 알 수 없게 하는 기존 회계 기준을 무시하고 다양한 항목들에 흩어져 있는 비용을 의미 있는 큰 제목들 아래 다시 모아서 회계장부를 재편성해보라는 지시였다.

 

처음 결과물은 신통치 않았다. 그저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항목별 비용을 단순 합산한 것에 불과했다. 현대카드의 사업 내용에 맞게 인건비, 마케팅비, 영업비, 상품·서비스비, 임대차비, 관리비로 큼직하게 나눈 것까지는 좋았으나 하나로 묶으면 좋을 만한 비용들을 이 항목 저 항목에서 찾아와 하나로 합쳤을 뿐 어떤 의도나 목적이 개입되지 않은 결과였다. 이것만으로는 어떤 시사점도 얻을 수 없었다.

 

몇 달간 본부별 또는 실별로 토론과 토의가 반복됐다. 실무를 맡아 하는 팀장급 이하 인력을 제외하고 어느 정도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직급이라고 판단되는 실장급 이상 전원이 이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우리 사업의 핵심 활동은 무엇인가’ ‘우리가 하는 활동을 어떤 기준으로 나눠볼 수 있을까’ ‘우리가 상대하는 고객을 어떻게 나누면 효과적일까등에 대한 질문이 오갔다. 서로 묻고 답하며 도출된 답변들을 새로운 기준으로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이름의 비용들이 수십 차례 모였다 흩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전략적 의도를 담은 새로운 기준이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TVA(Total View Accounting)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미 정해져 있는 기존 회계 기준에 따라 잘게 나눠진 비용의 파편들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사용된 금액 모두를 총합해서 보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TVA가 전통적 방식의 회계 기준과 가장 다른 점은중복계산(double counting)’의 허용 여부다. 전통적 방식의 회계에서는 동일한 거래를 이중으로 계상하는 더블 카운팅을 엄격하게 금지한다. 하지만 TVA에서는 하나의 항목 아래 해당하는 모든 활동을 포괄해서 실질적으로 사용된 비용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핵심 목적으로 하므로 더블 또는 트리플 카운팅을 허용한다. 예컨대 본사 영업 담당 인력에게 지급되는 월급은 본래 인건비 항목에만 들어가야 하지만 이들은 지사의 영업 인력들을 후선에서 지원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지사 영업에 소요되는 비용을 일컫는 판매비 항목에 들어가기도 한다. 즉 인건비를 계산할 때는 인건비 항목에, 판매비를 계산할 때는 판매비 항목에 포함되므로 두 번 계산될 수 있다. 이 기준은 본부별 또는 사업별로 파악하고자 하는 내용과 목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난관은 고정관념의 탈피였다. 기존 회계에 익숙한 본부장들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비용을 재편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정해져 있는 기준에 따라 비용을 다시 계산하는 일도 아니고, 답이 정해져 있거나 선례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본부장들은 여러 비용을 이렇게도 모아보고 저렇게도 모아보면서 목적과 의도에 부합하도록 기준을 새로 만들어내야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카드업의 본질과 현재 하고 있는 활동, 수익이 발생하는 지점과 고객의 특징 등을 명확하며 자세하게 파악하고 나아가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비용을 파악하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기존 비용들을 흩었다가 다시 모으는 일이 진전될 수 없었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오갔다. 본부장들은 1주일에 한 번씩 모여 스터디하며 이 프로젝트를 파고들었다. 성공사례와 실패사례는 전 본부가 공유했다. 어느 본부로부터 쓸 만한 기준이 등장하면 다른 본부에서도 적용을 시도했다. 새로운 잣대로 비용을 모아봤으나 별다른 의미를 찾지 못하면 그 원인을 찾기 위해 함께 머리를 모았다. 기준마다 소요시간이 다르기는 하지만 쓰임새를 인정받고 새로 정립되기까지 짧게는 한두 달, 길게는 반 년 정도가 소요됐다. 이 과정에서 현대카드가 터득한 노하우는 지나치게 지엽적인 항목에 집착하지 않고 주요 항목 위주로 큼직큼직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숫자를 정확하고 꼼꼼하게 파악하려 하다가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원래의 회계기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었다. 이를 위해 현대카드는 10억 원 미만의 금액을 절사하고 대략적인 핵심 숫자 몇 가지를 압축적으로 선별해 사업별 또는 영업활동별로 여러 차례 모으고 흩어뜨리는 일을 반복했다.

 

이 과정을 통해 다양한 기준이 새로 마련됐다. 카드사가 하는 활동을 크게 상품/채널/마케팅으로 나누고 현재 어느 부문에 가장 많이 돈을 쓰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에서부터 카드 상품별로 어떤 카드의 모집 및 운영에 얼마나 쓰고 있는지, 신용판매나 금융사업(카드론, 현금서비스 등)에 투입되는 비용이 얼마인지 등이 그것이다. 이는 기존 회계기준과는 완전히 다른 기준으로, 현대카드는 이를 통해 현재 영위하는 기업 활동에 들어가는 실제 비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새로운 기준으로 다시 들여다본 현대카드의 현 상황은 놀라웠다. 기업 활동을 상품/채널/마케팅으로 구분해 살펴본 결과가 특히 그랬다. TVA를 적용하기 전, 현대카드는 상품에 강하고 특히 마케팅에 뛰어나다고 자평하고 있었다. 알파벳 카드와 컬러 카드를 도입해 중구난방이던 카드업계의 상품 라인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고, 일주일 동안 유명 레스토랑을 절반 가격에 즐길 수 있도록 기획한 고메위크(gourmet week)나 디자인과 여행을 주제로 만든 라이브러리, 각종 콘서트와 광고 등 현대카드만의 개성을 담은 마케팅을 꾸준히 해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카드는 내심 스스로를상품 플레이어혹은마케팅 플레이어로 판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TVA를 통해 파악한 현대카드는 실상 다른 곳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었다. 특히 채널에 투입하는 돈이 예상보다 컸다. 회계 기준상 나타난 채널비용은 그다지 크지 않았으나 TVA로 다시 확인한 채널비는 마케팅비보다도 많았다. TVA 기준으로 파악한 전체 비용은 15000억 원 규모였는데 그중 채널이 차지하는 비율이 40%에 육박했다. 반면 마케팅에 투입되는 비용은 고작 7%에 불과했다. 사실상마케팅 플레이어가 아니라채널 플레이어였는데 착각하고 있었던 셈이다.

 

고객의 카드사용금액과 이들에게 부여하는 포인트 및 혜택에 들어가는 비용을 연계해 본 결과도 의미 있는 전략적 시사점을 줬다. 이제까지 현대카드를 비롯한 카드업계에 고객은 다다익선(多多益善)으로 여겨졌다. 즉 고객이 한 달에 10만 원을 쓰든, 100만 원을 쓰든 일단 많이 모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들이기 위해 경쟁했다. 이 때문에 각종 보조금이나 사은품 등이 남발되고 이는 카드사에 엄청난 비용 부담으로 이어지곤 했다. 현대카드가 TVA를 통해 고객의 월 카드사용금액을 10만 원부터 10만 원 단위로 나눠 이들에게 투입되는 비용을 산출한 결과, 현대카드는 월 카드사용금액에 관계없이 고객 누구에게나 비슷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었다. 카드를 수령하자마자 잘라버리는 고객과 꾸준히 사용하며 수익을 가져다주는 고객을 구분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동일하게 혜택을 제공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현대카드는 상품 및 서비스 비용을 고객의 수익기여도와 무관하게 지출하고 있었다.

 

TVA 적용 결과를 받아든 현대카드는 장기 불경기와 규제 강화 등 점점 어려워지는 기업 환경을 극복하고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이제까지와는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핵심은선택과 집중으로 요약된다. 무조건 많은 고객을 모아 누구에게나 동일한 혜택을 제공하기보다는 모집 단계에서부터 수익에 기여도가 높은 고객을 집중 공략해 그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몰아주는 쪽으로 사업 구조를 전면 개편하기로 했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우선 채널비를 줄이고 마케팅 및 CLM(Customer Lifecycle Management) 부문에 더 많은 재원을 할당하기로 결정했다. 고객을 모집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최소화하고 이를 통해 절약된 금액을 마케팅 및 CLM 부문에 배분하기로 한 것이다. 더불어 고객 모집 및 전체적인 마케팅 구조를 우량고객 위주로 재편해 수익성을 끌어올리기로 했다.

 

 

 

전통적 방식의 회계와 TVA 방식의 차이

TVA(Total View Accounting)는 현대카드가 사업 현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2011년 말 고안하기 시작했다. 전통적 회계기준에 항목별로 나눠져 있는 비용을 사업내용과 의도에 맞게 재구성한 것이 핵심이다. 예컨대 전통적 회계방식에서 인건비에는 정규직이나 계약직, 파견직 직원들에게 지급되는 급여만 포함되지만 TVA 방식에 따르면 정규직/계약직/파견직 급여 외에 업무위탁 아웃소싱 또는 업무대행 아웃소싱에 들어간 비용도 인건비에 포함된다. 전통적 회계방식에 따르면 업무위탁 아웃소싱은 고객유지비 항목에, 업무대행 아웃소싱은 일반경비 항목에 들어가는 비용이다. 현대카드는 아웃소싱을 했더라도 외부인력에 지급한 비용이므로 인건비에 합산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포함했다.

 

또한 전통적 회계방식에서 판매비에는 판매수수료와 판촉비만 들어가지만 TVA 방식에서는 판매수수료, 판촉비 외에 광고비(전통적 회계방식에서는 마케팅비), 영업조직 인건비(전통적 회계방식에서는 인건비), 지점 임차료 및 관리비(전통적 회계방식에서는 일반경비) 등도 포함된다. 광고를 하거나 지점 건물을 빌리고 관리하는 것도 판매를 위한 활동에 속하고, 영업조직 직원들도 판매를 위해 노력하는 인력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TVA 방식에서는 회계 항목 중 어디에 들어 있든 상관없이 각 비용의 실체를 파악해 실제로 해당 활동을 위해 사용된 금액을 빠짐없이 확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브랜드 부문에서의 TVA 적용 사례

‘띵동’ 메일이 도착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벌써 몇 개월째 전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TVA가 주제다. 다른 본부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메일이다. 본부마다 새로 만든 기준과 진행 상황이 매주 또는 2주에 한 번씩 회의가 열리기 전에 전 본부에 공유된다. TVA 작업을 총괄하는 경영혁신팀에서 각 부문별 작업 상황과 관전 포인트를 정리해 보내오는데 다른 본부들이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기도 하지만 우리 본부는 어떻게 추진하면 좋을지에 대한 시사점을 얻을 수도 있다.

TVA를 통해 정립된 현대카드 사업 부문은 크게 네 가지다. 상품 및 서비스, 채널(모집), 마케팅(CLM), 브랜드다. 브랜드는 우리가 만드는 상품과 제공하는 서비스, 그와 연관된 활동 및 모든 것을 아우르며 밑바탕을 이루는 현대카드만의 개성 등을 알려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는 모든 항목을 포괄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광고다.

 

전통적인 회계기준에서 브랜드 비용에는 광고선전비만 포함됐다. 하지만 현대카드가 보고자 했던 것은 그보다 넓은 범위의 실체였다. 광고선전비는 물론 이 업무를 맡아 하는 직원들의 인건비, 아웃소싱했을 때 들어가는 용역료, 슈퍼콘서트 장소를 대여하기 위해 쓴 임대차비 등을 모두 포함해야만 진정한 브랜드 비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우선 여러 회계항목들에 분산돼 있는 관련 비용을 끄집어내서 한데 모았다. 어떤 기준을 만들어야 이 비용들을 의미 있는 항목으로 정렬할 수 있을까. 머리를 맞대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브랜드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 인력들끼리 모여 추출한 비용들을 이런저런 기준으로 늘어놓으며 다양한 이름을 붙여봤다. 그렇게 일차적으로 작업을 한 후에는 기획과 전략, 경영지원, 재경 등 얼핏 봐서는 브랜드와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이는 부서들과 함께 회의를 했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창의적인 기준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여러 부서가 지속적으로 협업한 덕분이 컸다. 영업부서에서는 상품 판매를 위한 것이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냈고, 기획부서에서는 현대카드만의 독특한 활동이냐, 다른 카드사도 하고 있는 것이냐를 기준으로 삼자는 의견을 냈다. 재무부서에서는 돈을 벌어들이는 데 관련이 있는 것이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부서마다 고유한 경험과 시각을 토대로 툭툭 던지는 제안들을 실제 적용해보고 전략적으로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과정이 반복됐다.

 

이렇게 해서 확립된 기준 중에 대표적인 것이 생계형/이미지형, 대칭적/비대칭적, 광고/비광고 등이다. ‘생계형은 상품 판매와 직접 연결되는 비용이다. 상품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광고나 애플리케이션 또는 웹페이지를 개발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미지형은 상품 판매와 직접적으로 관련은 없지만 현대카드만의 고유한 개성이나 정체성을 홍보하기 위한 비용이다. 기업 광고나 슈퍼콘서트 등 각종 행사 비용이 들어간다. 대칭/비대칭의 구분은 우리만 하는 것이냐, 다른 카드사도 하고 있는 것이냐를 가르는 기준이다. 여행과 디자인 라이브러리처럼 현대카드만 하고 있는 것은비대칭적항목에, 광고나 행사처럼 다른 카드사도 하고 있는 것은대칭적항목에 포함된다. ‘광고비광고는 말 그대로 광고와 광고가 아닌 그 밖의 활동으로 구분하는 기준이다.

 

TVA 분석 후 브랜드 파트에서는 대칭적 항목의 비용을 감축하고 비대칭적 항목의 활동들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 기준을 적용했을 때 대칭적 대 비대칭적 비율이 종전 85% 15%에서 2016 80% 20%로 조정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현대카드만 할 수 있는 여러 활동을 다각도로 펼치면서 브랜드 파워를 끌어올리겠다는 의도에서다.

 

* 브랜드 담당 본부장의 경험을 재구성

 

 

상품 및 서비스 부문

가장 먼저 추진한 것은 상품 및 서비스 부문의 혁신이다. TVA를 통해 본 기존 상품 및 서비스 부문의 비용 구조는 < 1>개편 전과 같았다. 즉 카드사용금액을 기준으로 고객을 네 그룹으로 나눠 이들에게 투입되는 비용을 파악한 결과, 모든 그룹에 거의 비슷한 비용이 들어가고 있었다.

 

현대카드는 이 구조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기로 했다. 핵심은 카드사용금액이 많고 사용기간이 길수록 포인트 적립률을 높이고 각종 혜택을 몰아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월 카드사용금액이 50만 원 미만인 고객에게는 아무런 혜택을 제공하지 않는 파격적인 정책을 도입했다. 현대카드 회원이 되더라도 월 사용금액이 50만 원을 넘지 않으면 포인트를 쌓거나 캐시백을 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대신 월 카드사용금액이 50만 원을 넘기면 고객이 이전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월 카드사용금액이 100만 원, 200만 원을 넘길 때마다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대폭 늘어나도록 기존의 구조를 완전히 뜯어고쳤다. 여기서 책정된 ‘50만 원이라는 하한선 역시 TVA를 통해 도출된 것으로 투입되는 비용 대비 수익이 나오려면 회원 한 사람이 최소 이 정도 금액을 써야 한다는 계산에서 나왔다. (그림 3)

 

 

 

새로운 구조의 시행을 두고 기존 고객의 이탈에 대한 우려가 없을 수 없었다. 특히 월 카드사용금액은 50만 원에 미치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현대카드를 사용하며 장기 회원으로 가입돼 있는 고객들이 실망하거나 대거 빠져나갈 리스크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또한 가입자 수 기준으로 시장점유율(MS)이나 카드사 규모를 평가하는 업계 관행상 순위에서 밀리거나 선두 경쟁에서 아예 뒤처져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치열한 내부 토론 끝에 현대카드는 월 카드사용금액 50만 원 기준을 도입해 고객의 선택과 집중에 주력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수익이 뒷받침되지 않는 MS나 규모에 연연해 무조건 많은 고객을 끌어들이기보다는 공헌고객을 집중적으로 육성해 확실한 수익을 얻는 데 초점을 두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고객 모두에게 하향평준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공헌고객 그룹에 혜택을 집중해 고객 충성도를 높이고 이들을 통한 추가 매출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에 토대를 뒀다. 즉 새로운 구조를 도입하면 오히려 이전보다 수익이 늘어날 것이라고 판단했다.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기본적인 매출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에 기존처럼 모든 고객에게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기도 했다.

 

 

이와 함께 진행한 것이 오퍼레이션(operation) 비용의 구조조정이다. 오퍼레이션 비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콜센터 운영비다. 이제까지는 고객이 카드를 많이 사용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현대카드 고객이라면 누구나 동일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TVA 분석 후 이 부문 비용을 재편하기로 하면서는 카드사용금액이 많은 고객을 전담하는 콜센터를 별도로 뒀다. 즉 카드사용금액이 많은 고객이 전화를 걸면 별도의 콜센터로 연결되도록 해서 대기시간을 없애고 구체적인 대응이 가능하도록 했다. 김정인 현대카드 기획지원본부 전무는카드사용금액이 적은 고객은 질문이 간단하고 원하는 답변만 신속하게 듣는 것을 선호하는 반면 카드사용금액이 많고 기여도가 높은 고객일수록 질문이 복잡하며 다양하고 관련 설명을 자세히 듣는 것을 좋아한다전화를 걸면서 입력하는 개인정보로 고객의 신원을 파악한 후 그에 맞는 콜센터로 연결되도록 기획했고 이를 통해 비용 절감을 시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고객의 특성에 따라 맞춤형으로 콜센터 구조를 바꾸면서 전체적인 응대시간이 줄었고, 결과적으로 오퍼레이션 항목에 들어가는 비용이 이전보다 크게 감소했다.

 

 

 

                  

채널 부문

상품 및 마케팅 부문을 전면 개편하는 것과 동시에 생각보다 많은 비용을 투입하고 있었던 채널비를 감축하는 일이 추진됐다. 이 항목에 들어가는 비용 중 거점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고객 모집을 위해 운영하는 설계사들에 대한 비용이 타깃이 됐다.

 

우선 지역별 거점을 대거 축소했다. 카드사의 거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개인 고객 모집을 목적으로 설계사들이 모여 회의도 하고 교육도 받는 영업소 지점이다. 다른 하나는 가맹점 모집을 목적으로 설계사들이 활용하는 지점이다. 거점 수를 줄이고 보다 효율적인 거점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방법도 두 가지였다. 하나는 지점에서 하던 일을 지역본부로 모아 기능을 통폐합하는 것이다. 예컨대 고객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미비한 서류가 발생했을 때 기존에는 이것을 지점에서 직접 체크해 다시 받았지만 이런 일을 본부에서 직접 담당하도록 절차를 바꾸는 식이다. 이렇게 본부로 일을 모으다보면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거점이 구조조정된다. 다만 지역본부는 기존보다 더 많이 설치해 지점 감축에 따른 업무 부담 증가를 막고 이전보다 좀 더 촘촘하게 해당 지역을 커버할 수 있도록 배치했다. 다른 하나는 다른 계열사와 건물을 함께 쓰는 방법이다. 이를테면 현대카드와 현대커머셜이 다른 건물을 하나씩 차지하고 있다가 규모를 줄여 같은 건물로 합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카드나 오토, 커머셜 등이 지역구를 나누는 방식이 하나로 통일돼야 했다. 현대카드는 계열사마다 다르게 나눠 활용하던 지역구를 하나의 기준으로 통일하고 지역적으로 인접한 건물을 합쳐 물리적 통폐합을 추진했다.

 

다음은 설계사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이다. 이제까지는 CP(Credit Planner)가 고객을 한 사람 데려오면 무조건 일정금액을 지급해왔다. 하지만 개편 이후에는 인센티브제를 도입해 기존에 지급하던 금액의 일부만 주고 카드를 새로 발급받은 고객의 6개월간 실적을 확인한 후 이에 연동해 나머지 금액을 지급하기로 했다. 새로운 고객이 6개월 동안 회원에서 탈퇴하지 않고 우수한 실적을 유지하면 CP가 이전보다 많은 금액을 받을 수 있다. 모집 단계에서부터 수익에 기여도가 높은 고객을 집중적으로 유치하기 위한 제도다. 인센티브제가 도입된 이후 설계사들은 자연스럽게 그동안 의존하던 인맥이나 안면 영업 비중을 줄이고 장기간 많이 쓸 수 있는 고객을 모집하는 데 주력했다. 또 이렇게 영업을 하지 못하는 설계사들이 자연 도태되면서 전체 설계사 수가 줄고 인건비가 축소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이 같은 비용 재편을 통해 전체 비용에서 채널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38%에서 29%로 줄어들었다. 상품 및 서비스 비용도 공헌고객 위주로 구조조정하면서 46%에서 37%로 그 비중이 낮아졌다. 반면 공헌고객을 위한 마케팅을 대폭 강화하면서 마케팅비 비중은 7%에서 25%로 증가했다.

 

시사점 및 성공요인

현대카드 사례는 업의 정신을 근본적으로 고찰해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연결한 정태영 대표의 리더십, 비용의 가치를 고려한 회계의 재구성과 이를 통한 고객 차별화 전략, 기존 관행을 탈피한 선택과 집중의 혁신, 팀워크와 도전의 조직문화에서 성공요인을 찾아볼 수 있다. 이를 상술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변혁적 리더십이다.현대카드가 보여준 성과는 업의 본질부터 파악하고 핵심가치로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한 정태영 대표의 리더십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는사명, 비전, 공유가치, 리더를 신뢰하도록 유도하는 카리스마, 권한부여와 역량개발, 그리고 구성원들의 참여와 실적에 호소하는변혁적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과 관련이 있다. ‘기본에 충실하자(Back to Basic)’는 그의 논지는 드러커(경영의 실제, 1954)가 예시한 세 사람의 석공이야기(나는 돌을 다듬고 있소, 나는 최고의 석공이오, 나는 성당을 짓고 있소) GE의 잭 웰치 회장에게 던진 화두(우리의 사업은 무엇인가, 우리의 사업은 무엇이 돼야 하는가)와 일치한다. 즉 경영자는 업(사업, 직업, 기업, 창업, 학업, 협업)의 사명부터 파악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사업을 바라보는 전략적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전략적 통찰력을 제시한 경영인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번 해보기나 했어?”(정주영), “과연 30년 후 SK의 사업은 어느 정도 남아 있을까”(최종현), “10년 후 삼성전자가 살아남아 있을 것인가”(이건희), “지고 이긴다1  (조중훈)와 같은 화두가 그것이다. “중요한 곳에 돈이 흐르고 쓸모없는 곳에 낭비되지 않도록 회계를 통해 업을 다시 바라보자는 정태영 대표의회계의 재구성역시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 실용적 지혜(practical wisdom)로 볼 수 있다. 특히우리의 진정한 고객은 누구인가를 회계상 비용-효과 분석을 통해 공헌고객과 비공헌고객으로 구분해서 챕터2 상품의 핵심으로 삼은 정태영 대표의 실용적 통찰력은기업의 사명은 경영자의 마케팅 활동과 혁신활동으로 진정한 고객을 창출하는 데 있다고 한 드러커의 혜안을 실천해 보인 면도 있다.

 

정태영 대표는 이에 더해질문하는 리더십(Questioning Leadership)’도 강하게 보여준다. “무엇을 위한 투자(비용)인가, 왜 채널관리에 많은 비용이 드는가, 비공헌고객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인건비는 중복 계산하면 안 되는가, 경쟁사에서 개발상품을 카피해도 그냥 둘 것인가, 10년 후에도 이 사업만 할 것인가….” 새로운 회계기준인 TVA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수십 개의 질문이 등장했고 여기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사업적 통찰력이 나왔다. 리더가 보여준 질문하기 리더십이 어느 기업에서도 생각하지 못한비용 공유를 통해 회계를 재구성할 수 있게 한 셈이다.흥미로운 점은 TVA를 위한 비용 공유가 책임 공유와 지식 공유, 구성원들의 가치 공유를 창출해내며 현대카드 고유의 비즈니스 모델이 됐다는 점이다.

 

 

둘째, 고정관념을 탈피한 비용의 재구성이다.회계의 재구성에서 시작한 현대카드의 챕터2 상품은 비용 단순화를 통한 기존 관행 탈피와 수익성을 위한 신규 체제 구축으로 요약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기존의 신용카드 사업 전반에 걸친 업무 프로세스는 회원 증대에만 초점을 두다보니 설계사 증원, 프로모션 기획 및 실행 등으로 카드사에 부담을 가중시켜왔다. 현대카드의 선택과 집중 전략은 챕터2 상품에서 보여주듯회사에 공헌하는 직원과 고객에게 회사도 공헌한다는 인센티브 시스템에 초점을 두고 있다. 월별 사용액 50만 원을 기준으로 고객을 구분한 것도 기존에 활용되지 않던 흥미로운 잣대다.

 

“고객은 왜 현대카드를 택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택하도록 할 것인가.” 정태영 대표가 주도한회계의 재구성은 흔히 빠지기 쉬운 비용의 함정, 즉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 기존 질서에 매몰될 수 있는 비용지출 항목들을 정비하고 손익분기점(break-even point) 50만 원이라는 기준을 세웠으며 이를 통해 공헌고객을 통한 수익창출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정착시켰다. 무조건 기초적인 판을 뒤흔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항목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통찰력 있는 혁신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또 이는 신용카드 회사의 업을 고객의 눈으로 다시 본, 고객 차별화 전략의 사례로 볼 만하다. 카드사들의 신용도나 상품 종류가 유사한 환경에서 고객별 차별화 전략은 회사의 수익 기반을 탄탄하게 하고 고객의 차별수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 공헌고객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고객 차별화 전략은 업의 본질을 파악하고 기업 정체성 및 개성을 구축하는 데 도움을 준다. 즉 기업은 스스로를 면밀히 파악하고, 고유의 정체성을 확립하며, 이를 함께할 수 있는 충성도 높은 고객을 모으면서 점점 더 대체 불가능한 주체로 자리 잡아 간다.

 

셋째, 고유의 팀워크와 도전하는 문화다.사실 이미 고정된 어떤 기준을 전사적으로 뛰어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현대카드 내부에 자리 잡고 있던, 한번 도전해보자는 팀워크는기본에 충실한 경영(back to basic)’ ‘손익분기점을 통한 비용의 가치 파악(BEP-based cost value)’ ‘고객 세분화(customer segmentation)’로 이어지며 최대한 발휘됐고, 이는 사내 자신감을 증폭시켜 성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흔히 비용보다 가격이 높아야 하고, 가격보다 가치가 커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일반적인 기업의 생존방정식을 뛰어넘어비용의 가치에 대한 내부적 공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시장점유율이나 순위와 무관하게 최고의 카드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슈퍼콘서트, 인사이트 트립 등 현대카드의 브랜드 가치 및 창의적 역량을 제고하는 각종 투자활동, 자유롭게 토론하고 도전하는 문화 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 회사의 경영은 모방할 수 있어도 우리의 조직문화는 모방할 수 없습니다라고 한 사우스웨스트항공 허브 켈러허 회장의 말처럼 현대카드의 핵심역량은 조직문화에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는 스펙과 무관한 강점 위주의스페셜 트랙’, 퇴직자 재취업연어 프로젝트’, 사내공모제로 배치하는커리어 마켓등 인력 운영의 다양화와 융합을 실천해 온 파격적 인사시스템 등으로 다져진 현대카드의 조직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향후 과제

손익분기점을 모르면 헛장사를 할 수 있다. 고객이 누군지 정확히 몰라도 마찬가지다. 현대카드에서 정립한 회계의 재구성은공헌고객이야말로 진정한 고객이며 집중적으로 공략해야 할 고객임을 확인하고 이에 맞춰 전반적인 시스템을 혁신하며 성공적인 비즈니스모델을 정립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 공헌도를 단계적으로 올리면서 고객 충성도도 확보했다. 특히 비용과 업무의 흐름을 틀에 박힌 재무제표보다는 의사결정을 위한 관리회계상 실질적 가치 중심으로 바라본 정태영 대표의 통찰이 빛난 사례로 볼 수 있다.

 

다만 여기에는 또 다른 과제가 존재한다. 포인트와 캐시백은 부수적인 프로모션 수단이다. 서비스의 신뢰도, 신속성, 편의성 등 다른 가치를 우선하는 고객들도 있을 수 있다. 고객에게 차별적 혜택을 주고 있는데 혁신적 모델의 새로운 진입자가 나타나거나 신규 상품이 등장하면 기존 구도가 흔들릴 수 있다. 핸더슨(Handerson, 2006)성공한 기업일수록 기존 고객의 특성에 너무 치중하기 때문에 다른 새로운 기회를 못 보는 장님이 되곤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기존 공헌고객 위주로 사업을 지속할 경우사업의 목적은 고객창출에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실용적 지혜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결국 10년 후 현대카드는 비공헌고객과 잠재고객이 얼마나 공헌고객으로 유입되고 있는가에 따라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감 있는 창의 및 도전활동이 지속될 수 있도록 역동적이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조직문화를 끊임없이 육성하고 관리해야 할 것이다.

 

 

 

정태영 대표 Interview

‘회계를 다시 들여다보자’ ‘비용을 제대로 파악해보자는 아이디어는 정태영 현대카드 대표가 냈다. 어떤 방식으로 진행해야 할지, 어떤 결론이 도출될지는 알 수 없었으나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 대표는 모든 전략은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자신을 들여다볼 때 가장 좋은 통찰력이 나온다고 말했다.

 

회계를 새롭게 봐야겠다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왔나.

근본 원인은 위기감이었다. 장기 불황과 가맹점 수수료 인하 등으로 영업상황이 수년째 좋지 않았다. 수익이 줄고 경쟁이 치열해졌다.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안 되겠다 싶었다. 내부적으로도 침체였다. 현대카드의 DNA가 변화와 혁신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런 점에서의 성과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큼직하게 화두를 던져 먼저 치고 나가는 일이 줄고 굉장히 작고 marginal한 점에 연연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사업에는 어디까지만 올라가면 거기서부터는 여유롭게 가도 된다는 게 절대 없다. 체감할 정도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뿐 오르거나 내리는 국면이 반복되는 것이지, 안정적으로 유지만 하자는 개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영역이다. 당시 현대카드는 분명 위기였다. 변화가 절실했다.

 

내리막길에 들어섰을 때 많은 기업이 외부에서 핑곗거리를 찾는다. 규제가 강해졌다,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났다, 경기가 좋지 않다 등등. 하지만 대부분의 아주 큰 얘기들은 스스로를 정면으로 바라볼 때 나온다. 모든 원인도, 해법도 궁극적으로는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자신을 성찰할 때 가장 좋은 전략적 통찰이 나온다. 하지만 많은 기업은 대개 자신이 뭘 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열심히만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을 좀 더 정확하게 바라보는 일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회계다. 원래의 목적대로라면 회계는 기업 활동을 비추는 거울이어야 한다. 현재 어떤 활동에 돈을 써서 돈을 벌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회계 기준으로는 자신을 파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항목이 잘게 나뉘고 세분화해서 인건비 하나, 판매비 하나를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 실제로는 판매비라고 봐야 하지만 다른 항목으로 들어가 버린 비용들을 다시 끄집어내서 한데 모으지 않으면 진정한 판매비를 확인할 수 없다. 판매 담당 임원에게지금 판매 활동에 얼마나 쓰고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회계 항목상 판매비라고 이름 붙은 금액만 이야기한다. 그러면 의문이 생긴다. “잠깐만요, 당신 월급도 넣었습니까? 당신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월급은요? 당신이 쓰고 있는 사무실비는요?” 그 임원이나 직원들의 월급은 인건비에, 사무실비는 임대차비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해당 임원은 그렇게 제공되는 것들을 기본적으로 주어진 조건으로 전제한다. 하지만 그들의 월급과 사무실 임대비도 궁극적으로는 판매활동을 위해 사용되는 금액이므로 광의의 판매비로 보고 합산해야 맞다. 인건비나 마케팅비도 마찬가지다.

 

요약하자면 우리의 실체를 알고 싶었고, 그것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회계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현재의 회계 기준으로는 정확한 실체를 알 수 없으므로 회계를 재구성해보자는 데 생각이 미쳤다.

 

회계를 재구성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비용들을 끌어와서 하나의 항목 아래 뭉쳐 넣는 것은 차라리 쉬웠다. 물론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완전히 다른 기준을 만든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주요 본부장을 모아 케이스 스터디를 자주 했던 것은 이것이 정해진 룰을 제대로 따라가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어려웠던 것은 산출된 결과를 보고 전략상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이냐였다. 예컨대 카드 고객들을 사용금액에 따라 구분해봤더니 약 절반의 인원만 단 1원이라도 현대카드에 공헌을 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나머지 고객은 모집 및 유지비용이 더 커서 수익에는 오히려 마이너스였다. 결과를 보고, 이제부터는 공헌고객 위주로 영업을 해야겠구나라고 생각했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그렇다면 비공헌고객은 앞으로 아예 받지도 말아야 하나? 이미 들어와 있는 비공헌고객은 떨어져 나가게 만들어야 하나? 그렇게 하면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가 무너지면서 결국 사업 전체가 어려워지는 것은 아닐까? 비공헌고객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발생하는 이익보다 크기는 하지만 규모를 만들고 지탱해준다는 측면에서 계산되지 않는 무형의 이익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면서 어느 쪽이든 전략적 판단을 내려야 했다. 카드산업이 처한 상황과 달라진 매출 구조, 장기적 수익성 등을 고려해 결국선택과 집중에 초점을 두기로 했고, 이러한 결정에 맞춰 상품과 마케팅, 채널에 투입되는 비용을 재편성했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기까지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며 분석했다.

 

TVA를 개발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장 초점을 뒀던 점은 무엇인가.

TVA에서 핵심은 이제까지 상품, 마케팅, 채널에 투입되는 실제 비용을 모르고 있었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어디에 돈을 가장 많이 쓰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이것은 곧 우리가 하는 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TVA를 추진할 때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었다. 고객을 기준으로 비용을 재편성할 것인지, 상품을 기준으로 재편성할 것인지, 영업활동별로 재편성할 것인지를 자유자재로 상상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발견이 나온다. 기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월급은 꼭 인건비 항목에만 들어가야 한다고 우긴다면 새로운 발견이 나올 수 없다. 여기서 상상력은 자기 업의 본질과 현재 하고 있는 일을 깊이 있게 성찰해야만 발현될 수 있다. 결국 본질을 아는 것에서부터 모든 발견이 시작된다.

 

또한 그렇게 해서 실체를 알아냈을 때 그것을 토대로 어떤 전략적 결정을 내릴 것이냐 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상품에 굉장히 강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상품에 200억 원을 쓰고 마케팅에 4000억 원을 쓰고 있었네? 그렇다면 마케팅에 쓰던 4000억 원 중 절반을 떼서 상품 쪽으로 옮기면 어떨까? 마케팅에서 가져온 2000억 원으로 상품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등은 모두 전략이다. 그러니까 TVA 결과를 보고 단순히우리는 인건비나 IT 비용을 과도하게 쓰고 있구나하고 끝나면 기존 회계를 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산출된 결과를 토대로 전략적으로 의미 있는 의사결정을 내릴 때 TVA가 제대로 활용됐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어떤 항목 금액이 얼마냐 그 자체보다는 우리가 지금 어떤 사업을 하고 있다고 명확하게 얘기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하다. 예컨대 마케팅비로 5000억 원을 써도 좋고 1조 원을 써도 좋은데, 그렇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느냐, 그와 같은 자원 배분이 어떤 전략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고 있느냐 없느냐는 굉장한 차이다.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최한나기자 han@donga.com

박기찬인하대 경영대학 교수 kichan@inha.ac.kr

박기찬 교수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파리정치대학(Science Po) HEC Paris 경영대학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INSEAD 연구원, 한진물류연구원 부원장을 거쳤다. 중앙인사위원회 자문위원, 한국윤리경영학회 회장, 한국공항공사 이사회 의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지속경영학회 회장 및 인하대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에 <경영의 교양을 읽는다> <사회감사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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