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의 고객 패널 제도

전문가 조사도 못 밝힌 약점 콕콕 낯 뜨거워도 그대로 공유 … 혁신이 왔다

141호 (2013년 11월 Issue 2)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허태영(성균관대 글로벌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삼성화재는 빛 좋은 개살구입니다. 보험에 컨설팅 개념을 최초로 도입했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체험 결과 그 수준은 참으로 민망했습니다.”

40대 주부 한 명이 삼성화재 대표와 임직원 60여 명을 앞에 두고 던진 첫마디다. 2005 9월 주부와 대학생으로 구성된 8명의 최초삼성화재 고객패널 4개월간의 삼성화재 문의, 가입, 체험 활동을 마친 뒤날 것 그대로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했다. 발표회 날 삼성화재 본사 경영회의실을 가득 메웠던 삼성화재 경영진은 충격에 휩싸였다. 해당 프로젝트를 승인하고 적극 추진하라고 지시했던 이수창 당시 CEO 역시 다소 상기된 얼굴로 참담할 정도의 패널 발표결과를 경청하고 있었다. 그리고 10년 가까이 지났다.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4개월 혹은 6개월마다 새로운 패널들의 신랄한 비판이 이어졌고 삼성화재는 패널제도 도입 전후 주춤하던 성장세를 다시금 이어갈 수 있었다. 독약처럼 느껴지던 고객들의 쓰디 쓴 목소리는 삼성화재의을 치료하고허약한 체질까지 완전히 개선해 준 진짜 약이 됐던 셈이다.

 

1. 부동의 손해보험사 1, ‘고객패널이라는 초강수로 위기를 넘다

 

1991년 이후 손해보험 업계 부동의 1위는 삼성화재였다. ‘삼성이라는 이름이 주는프리미엄효과도 있었다. 실제한국안보화재해상보험이라는 이름으로 1952년 설립된 회사였지만 1993년 삼성화재로 사명도 변경했다. 2002년 자동차 보험의 대표 브랜드가 된삼성 애니카를 출시해 자동차보험의 브랜드화를 선도했고 이듬해인 2003년에는 국내 최초의 통합형 보험상품인삼성 Super 보험도 출시했다. 2005년에는 세계 보험업계 최초로 중국 단독법인을 설립하기도 했다. 겉으로 보기엔 누가 봐도 승승장구하는 것 보이던 바로 이때, 삼성화재에는 위기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었다. 우선 시장점유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최근까지도 지속되는 현상으로 2003년 삼성화재의 손해보험시장 점유율은 32.2%였으나 2006년에는 30.7%, 2008년에는 28.7%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반적인 시장의 경쟁상황이 치열해지고 외국계 보험사 등의 공격적 영업이 본격화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삼성화재 입장에서 시장점유율 하락보다 더 큰 위기의식을 느끼게 만든 건 바로고객 수 답보현상세전이익 답보 현상이었다. (그림 1, 2) 고령화시대의 도래와 사회안전망에 대한 욕구로 인해 보험 수요는 늘 수밖에 없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었고 이에 부응해 혁신적인 상품을 대거 내놓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점유율 1위 보험사의 고객수가 답보상태라는 건 큰 문제였다


 

1)고객만족도 조사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외부에서 보기에 심각한 위기가 아니었을지 몰라도 삼성화재는 2004년부터 당시 처한 상황을 위기의 징후로 인식했다.

고객만족도 설문조사를 비롯한 각종 조사와 연구가 시행됐다. 부서별로, 상품개발·영업 담당별로 부진의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이 시작됐다.

답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단순히 고객에게 상품의 만족도, 가입 당시의 상황과 평가 등을 물어 통계를 내는 정량적 조사로는 정확하게 무엇이 문제인지 드러나지 않았던 것. 이는 마케팅이나 고객만족도 조사를 위해 기본적인 도구로 쓰이는 정량조사가 갖는 기본적인 한계에 기인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때 직원이 아이디어를 냈다. 당시 대리였던 이주성 현 책임이다. 주부를 비롯한 일반인 10여 명을 패널로 선정해 삼성화재에 대한 모든 것을고객 입장에서 조사해 발표하도록 하자는 제안이었다. 이른바 고객패널제도라고 이름붙인 이 제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2005년 초 삼성화재 대리가 제안한 고객패널제도 운영방안>

(1)보험과 금융 분야의 대학생·대학원생, 그리고 자동차보험 가입 고객 주부 등을 포함해 남성 4, 여성 4명을 패널로 선정한다.

(2)1회 활동기간은 4개월로 하며 1년에 두 번 운영한다.

(3)삼성화재에서 제시한 주제를 집중 연구하고 모니터링하도록 하고 불편·불만 요소와 개선사항을 도출한다.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활동에는 서비스 현장 체험, 고객 인터뷰, 온라인 정보수집도 포함된다.

(4) 1회 활동결과를 발표하고 집단 토론을 실시한다.

(5)분기 1회 전체 경영진과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연구결과를 발표한다.

 

 

이주성 책임에 따르면 당시 고객만족도 조사와 같은 상투적인 방법으로는 고객의 목소리를 수동적으로 듣기만 할 뿐 고객의 진정한 니즈를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따라서 고객패널과 같은 획기적인 정성적 조사방법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 책임은다양화되는 고객니즈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고객 니즈를 상시적으로 파악하고 전략적 대응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었다잠재니즈 파악이 어려운 정량조사의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해고객패널제도 도입을 제안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미니박스 1 참조.) 때마침 경영계의 화두는고객주권시대였기 때문에 고객의 목소리를 능동적으로 듣고고객참여경영을 실시한다는 명분도 있었다.

상당히 고난도의 패널활동을 수행해야 하는 만큼 60만 원 이상의 활동비와 상품권 등을 제공하되 선발과정은 엄격하게 진행했다. 선발공고를 낸 뒤 서류전형을 통과한 지원자들에 한 해 전화인터뷰와 직접 면접을 거쳐 최종 선발했다. 서류전형에서는 특히응모이유’ ‘패널 선발 후 활동 계획’ ‘삼성화재 광고평가등을 기술하도록 했다. 활동의 적극성과 논리력, 분석능력과 보고 능력 등을 엄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였다.

 

 

 

 

소비자 설문조사, 시장조사를 통한 정량적인 통계분석은 마케팅 전략을 수립할 때에나 고객만족도 등을 조사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필수적인 기법이다. 그러나 정작 신제품 출시를 할 때에나 매출이 별다른 이유 없이 감소할 때 정량조사 기법이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2000년대 중반LG전자 역시 삼성화재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한국 가전시장이 늘 그렇듯 2000년대 중반 세탁기 시장 역시 그 어느 때 못지않게 경쟁이 치열했다. 전통의 강자였던 LG전자는 당시 골치 아픈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특별히 제기되는 고객 불만도 없는데 자사 세탁기에 대한 고객만족도가 낮아지고 매출액이 떨어졌던 것. 아무리 설문조사를 해도 소비자들 답변은 한결같았다. ‘사용하는 데 불편이 없다는 얘기였다. LG전자는 설문조사 등 기초적 정량조사에서 파악되지 않는 문제점을 알아내기 위해 삼성화재의고객패널 제도와는 다르지만 또 다른 형태의 정성적 조사방법 중 하나인관찰기법을 활용했다. 각 가정에 직접 카메라를 설치하고 세탁기 사용과정을 관찰해 보니 주부들이 모두 까치발을 한 채 힘들게 세탁물을 꺼내고 있었다. 불편함이 습관화된 상태라 설문에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는 분명한불편이었다. LG전자는 곧바로 세탁기 높이를 조정했고 마케팅 전략에도 이를 활용했다. 고객만족도와 매출 모두 제자리를 찾았다. 이처럼 소비자의 구매 의도나 제품·서비스 만족도, 혹은 불만사항을 매우 정확하게 보여줄 것 같은 정량적 조사 방법은 때에 따라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정성 마케팅계의 최고 석학이자 잘트먼 기법(ZMET)의 창시자인 제럴드 잘트먼 하버드대 교수는 “척도화된 설문조사 같은 정량적 방법으로 알아낼 수 있는 실제 소비자의 생각은 5% 정도에 불과하다”고까지 말할 정도다. 잘트먼 교수에 따르면 5점 척도를 사용하는 구매의향이나 고객만족도 설문조사의 경우 ‘구매할 생각이 있다’ ‘대체로 만족한다’의 4번 보기(5점 만점에 4점으로 환산되는)를 선택하더라도 실제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거나 자신의 만족감을 타인에게 전파하는 경우는 2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이 기업이 신제품을 기획할 때, 마케팅 전략을 짤 때, 매출이나 시장점유율이 감소할 때 기본이 되는 정량적 접근 방법 이외에 상황에 맞는 다양한정성적 조사 방법 역시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이유다. 매출 감소, 시장점유율 하락과 고객 수 답보상태 등을 겪는 상황에서 LG전자와 삼성화재가 각각 활용한 관찰법과 고객패널제도 등의 정성적 방법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기업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얘기다.

 

고객패널로 선정된 지원자들의 활동과 이들의 제안 수용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선 고객패널들은 설문지를 통한 기초적인 조사와 분석, 인터넷에서의 여론 추이 등을 분석하는 모니터링 활동을 수행했다. 또 서비스 체험을 비교·분석해 상세한 보고서를 제출했고 스스로 다른 고객들의 의견을심층 인터뷰형식으로 담아내기도 했다. 이렇게 모인 결과들은 삼성화재에 제공됐고 삼성화재는 자신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고객의 기대수준과 지각수준 사이의 간극을 분석했다. 분석을 토대로 고객이 요구하는 품질, 고객이 원하는 새로운 서비스를 도출했고 다시 한번 자체 모니터링을 통한 검증을 거쳐 최종 개선 방안을 수립한 뒤 액션플랜을 작성하고 실행하는 절차를 밟았다. (그림 3)

 

 

이처럼 패널 선정부터 제안 방법과 서비스 개선안 도출 방안까지 치밀하게 준비했지만 처음부터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된 건 아니었다.

2005 9월 첫 발표가 끝난 뒤 다양한 문제점이 제기됐다. 고객패널의 경우 패널 입장에서 개선방안까지 도출하는 것은 너무 힘들다는 불만도 제기됐고, 4개월의 시간은 보험상품의 문제를 전반적으로 파악하기에는 지나치게 짧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현장체험 과제는 제약이 많았고 고객의 소리를 진실하게 수용하기보다 회사에서 시키니 어쩔 수 없이 나와 발표를 듣는 경영진이 많은 것 같다는 지적도 나왔다. 패널발표를 들은 삼성화재 임직원들 역시 불만을 표시했다. 패널의 의견이 대표성이나 객관성이 있는지 의문을 품는 경우가 많았고 보여주기 위주의 결과 발표라는 얘기도 나왔다. 단편적인 문제지적과 제안이 다수여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불평과 패널제안 개선과제와 추진이 부담된다는 의견처럼 부서별로 상반된 문제제기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이수창 삼성화재 대표의 의지는 확고했다. 문제가 있으면 개선하되 고객의 목소리를 통한 혁신을 반드시 계속 추진하자는 것이었다. 2008년부터 과제에 따라 패널의 활동기간을 6개월로 늘리기도 했고 좀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제안을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됐다. 그중 하나를 예로 들어보면 패널들의 지인 인터뷰를 엄밀하게 계획해 보다 대표성 있는 고객 목소리가 패널의견에 많이 반영되도록 했다. 대학생·직장인 지원자는 일반 주부들의 세밀함과 실질적인 개선 아이디어 제출 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판단하에 선발에서 제외하기도 했고, 패널 발대식부터 보험에 대한 학습활동이 이뤄지도록 했다. 

  

2)솔직 또 솔직듣기 민망할 정도의 적나라한 비판들

 

매년 두 번씩 꾸려진 고객패널들은 매번 서비스 현장에서의 생생한 체험과 잠재고객군(보험가입 의향자)의 여론을 전하며 적나라한 비판을 거듭했다.

예를 들어, 최근 자녀를 낳은 여성들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자녀보험과 관련해 이뤄진 2012년 하반기 고객패널의 조사결과는 삼성화재에 또 한번의 큰 충격을 안겼다.

우선 고객패널들이 직접 뛰면서 가장 기초적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삼성화재 자녀보험에 대한 이미지는부정적이라는 대답이 62%를 차지했다. (그림 4)

 

 

고객패널들이 면접을 통해 조사한 보험가입 잠재 고객들의 실제 목소리는 현장에서 경영진이 듣기에 낯이 뜨거워질 정도였다. 몇 가지만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삼성은 보험료가 비쌀 것 같고 주위에서 아무도 추천해주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비교할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이지은, 37, 교사)

“삼성은 보험료가 비싸고 갱신폭탄 맞는다고 해서 비교도 하지 않았어요.”(김두희, 38, 주부)

 

그뿐 아니었다. 고객패널들은 삼성화재에서 애초에 설정해준 과제대로 충실하게 인터넷 게시판과 검색 서비스 등을 모니터링해 인터넷 주부 커뮤니티의 여론을 그대로 전했다. 심지어 유명한 임산부 모임 사이트에는 아예 경쟁사인 현대해상의 자료는 수십여 건 검색되지만 삼성화재와 관련된 내용은 단 한 건도 없다는 보고까지 올라왔다. 다음은레몬테라스’ ‘맘스홀릭 베이비등 유명 주부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로 고객패널들이 날 것 그대로 삼성화재 경영진에게 전달한 내용이다. 삼성화재에 대한 비판적인 게시글은 물론이고 경쟁사와의 적나라한 비교글까지 가감 없이 보고됐다.

 

“모든 비용 다 되고 현대해상이 정말 빠르게 처리되고 좋던데요.”

“아기 것을 왜 삼성에서 하셨어요. 삼성 보장받기 까다롭기로 유명한데.”

“네임밸류를 앞세운 영업 전략사라서 보장 대비 보험료가 착하지 않은 경향이 크죠. 삼성이.”

“현대해상은 청구하기도 편하고 돈도 잘 나와요. 제일 빠른 것 같아요.”

 

고객패널들이 보험대리점(GA)과 직접 고용된 설계사(RC)를 통해 직접 보험상품에 가입하는 체험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결과 그대로를 생생하게 전한 내용들에서도 보험대리점에서 아예 삼성화재 보험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경우와 삼성화재 소속 설계사들의 실수까지 그대로 나타났다. (표1)

 

10여 년 가까이 고객패널제도를 운영해 오면서 앞서 제시된 수준의 강한 비판과 문제제기는 매번 지속돼 왔다. “많이 이용하는 인터넷 보험몰에서 삼성화재는 보지도 못했다 40대 주부의 비판, “삼성화재 홈페이지가 특별하게 좋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없어서 업무처리 이외에는 다시 방문하지 않을 것 같다는 등의 솔직한 발표들이 항상 쏟아져 나왔다.

 

이 같은 수준의 비판이 쏟아지는 자리이다 보니 당연히 매 기수의 고객패널 발표회 때마다 불편함을 토로하는 부서장들도 있었다. 고객패널 도입 초기에는 이 제도를 총괄하는 부장과 임원은 발표회가 끝날 때마다문제점을 지적받은부서의 선배 임원들에게 불려가 한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렇게 민감한 내용이라면 사전에 보고를 해서 수위를 좀 조정을 했어야 한다는 불만도 나왔고패널 몇 명이 조사한 것이 과연 대표성이 있느냐라는 볼멘소리도 있었다. 사장 앞에서 각 부서의 문제점이 드러나는 상황이다 보니 내부 불만이 클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같은 내부 불만을 잠재운 사람 역시 처음 제도를 도입한 이수창 당시 삼성화재 대표였다. 그는 2006 1, 계속되던 출장 일정 중 하루를 할애해 한숨도 자지 못한 상황에서 고객패널 2기 발표회에 참석했다. 당시 고위임원이 행사를 진행하면서오늘은 굳이 사장님까지 오시지 않아도 됐을텐데…”라고 이 사장을 배려하는 인사말을 했다. 그러자 이 사장은 즉시판단은 내가 합니다.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어 몸이 힘들더라도 참석하는 겁니다. 다시는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했다. CEO의 의지를 파악한 다른 경영진은 이후 불만이 있어도 표출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됐다. 오히려 주요 임원들은 내부의 그 어떤 자리보다 고객패널 발표회에 참석하는 걸 최우선으로 삼기 시작했고 패널이 발표하는 문제점에 대한 개선과제 추진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 같은 이수창 사장의 의지는 뒤이어 자리에 오른 삼성화재 CEO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됐다. 2009년 한 고객패널 발표회에서 질의응답 시간에 한 임원이 발표시간에 제기된 문제점에 대해내부적으로 문제가 없는데 패널과 고객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당시 CEO였던 지대섭(2008 6~2012 2) 사장은고객이 잘못 알고 있다면 그것 역시 우리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회사 중심, 공급자 중심의 업무처리 습관을 놓지 못하고 있는 임원진에게 따끔하게 일침을 놓은 것이다. (미니박스 2 참조.)

 

3)쓰디 쓴 약의 효과, 가입자 수와 세전이익의 증가

 

쓰디쓴 약의 효과는 달디 달았다. 매년 2회씩 패널발표회에서 나온 제안들은 진지하게 검토됐고 획기적 개선안과 고객 요구에 맞춘 새로운 서비스가 탄생했다. 패널활동 결과와 제언에 따른 경영개선활동 건수만 총 304건에 이를 정도다. 이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성과 몇 개만 짚어보면 2009년에 패널제안에 기반해 여성을 위한애니카 레이디자동차 보험이 출시됐고 2010년에는 보장내역을 강화한가정종합보험이 나왔다. 올해 4월에는 역시나 지난해 하반기 패널제언을 토대로 보장내역을 대폭 늘린자녀보험을 새로 선보였다. 서비스 품질 제고와 부가서비스 개발에도 패널제도는 큰 도움이 됐다. 자동차보험 고장출동 서비스에서 신속성과 고객접수 편의성이 좋아졌고, 겨울에는 핫팩, 여름에는 냉수를 제공하는하나 더 서비스도 시행됐다. 자동차보험 멤버십 카드도 만들어졌고 자동차보험과 장기보험의 약관을 고객위주로 개편하는 성과물도 만들어졌다. ( 2)

 

 눈에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성과도 나타났다. 바로 임직원의 마인드가 확 바뀐 것이다. 고객패널제도 도입 1년 만인 2006년에는 지점장과 설계사 등 현장직원 교육과정에 고객패널 경험자가 연사로 강연을 하기도 했고, 2007년부터 약 4년간 사내방송에도 고객패널이 출연해 삼성화재의 현 수준과 개선점에 대해 발표하기도 했다. 2012년부터 올해까지는 삼성화재의 광고업체 선정 프레젠테이션에 고객패널 2명이 심사위원 자격으로 참석하도록 했다. 올해에는 심지어 회사 경영전략회의에도 고객패널이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조직 내에 자연스레고객중심의 사고와 전략이 스며들었다는 의미다.

 

 

이는 또한 실제 가입자 수와 이익의 증대라는 결정적 성과로도 나타났다. 2008년까지 직접판매(다이렉트보험) 사업자들의 맹추격과 그에 따른 상위 보험사들 간의 치열한직판채널 강화경쟁으로 삼성화재의 시장점유율 자체는 20%대 후반에서 30%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고객 수는 2003년에서 2005년까지 사실상 답보상태를 보이다가 고객패널제도 도입 이후 2007년에 600만 명을 넘기고 2011년에 700만 명을 넘겼다. (그림 5) 2003년 이후 연평균 3.4%가 증가한 셈이다. 보험사가 가입자로부터 거둬들인 전체 보험료를 의미하는원수보험료와 이에 따른세전 이익등 더 중요한 지표를 살펴보면 성과는 더욱 극적이다. 패널제도 도입 이후 2년 뒤인 2007 9조 원대였던 원수보험료는 지난해까지 꾸준히 증대돼 16조 원을 넘겼다. (그림 7)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제자리걸음을 하던 세전이익 역시 2007년부터 급격히 증가해 2012년에는 1조 원을 넘겼다. (그림 7) ‘양보다 질을 중시하는 고객피드백을 통해질적 성장을 이룬 셈이다. 이주성 책임은보험상품이 다양해지고 해외에서도 한국 시장에 많이 들어와 경쟁하면서 예전과 같은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는 건 어려워졌다면서도손해보험 시장 자체가 커지고 있기 때문에 늘어나는 가입자를 놓치지 않고 보유고객수와 침투율(고객이 버는 돈에서 보험료로 지출하는 돈의 비율)이 매년 증가하는 등질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밖에도 국내 3대 고객만족평가 지표인 NCSI, KCSI, KS-SQI 평가에서도 12년 연속 1위 자리를 지킬 수 있었고 2012년에는 보험업계에서 유일하게 국가생산성대상 대통령표창을 받는 성과도 얻었다. 또 손해보험업계 최초로 2011년에 한국서비스대상 명예의 전당에 헌정 됐고 고객만족경영대상 명예의 전당에도 역시 헌정됐다. 올해에는 금융감독원 민원평가에서 손보사 중 유일하게 1등급을 획득하기도 했다.

 

2. 성공요인 및 시사점

 

1) 기업 관점에서 고객 관점으로 업무습관을 바꿨다.

 

 

 

기업의 조직원들은 대개 업무를 하다 보면 생산자 관점, 즉 기업 관점에서 생각하기 십상이다. 수요자 관점, 고객 관점에서 생각하기란 흔히 말하는 만큼 쉽지 않다. 업무를 하면서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습관이기 때문이다.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습관을 바꾸려면 엄청난 고통이 따르기에 시도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삼성화재는 업무습관을 기업관점에서 고객관점으로 확실하게 전환했다. 고객패널제도가 그 중심에 있으며 고객패널제도의 정착과정을 보면 흡사 습관을 바꾸는 엄청난 시도와 비견된다. 많은 반발과 내부적 충격에 굴하지 않고 10여 년 가까이 고객패널제도를 운영하면서 고객관점을 업무에 녹인 것은 굉장한 성공스토리로 평가된다는 얘기다.

이 같은 삼성화재의 성공은 많은 B2C 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서도 말했듯 상품을 파는 대상이 고객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당연한고객관점지향이 막상 행동으로 옮겨지는 건 쉽지 않다. 인간이기에 업무를 하다 보면 쉽고 편하게 가고자 한다. 자기 관점에서, 즉 생산자 관점에서 생각하고 결론짓는 것이 쉽고 편하다. 어느 기업이나고객 중심’ ‘고객의 입장에서라는 표어를 사무실에 붙여놓고 사실은 자기가 편한 대로 일하고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어떤 CEO가 이를 깨닫고 고객중심으로 습관을 바꾸려 하면 엄청난 내부적 저항에 부딪힌다는 것이다. 삼성화재 역시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어느 기업이든고객관점으로 업무습관을 바꾸기로 결심했다면 내부적 저항을 충분히 예상해야 하고 이를 누르면서도 지속적으로 혁신을 추진할 의지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2) 단 한 명의 패널 얘기도 놓치지 않고 경청했다

 

패널의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한 명의 패널이 고객 수천, 수만 명을 대변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조사 등을 하게 되면 대상이 몇 명인지 관심을 갖는데 대표성을 중시해 보다 많은 응답자를 가져가려는 정량적 서베이와 달리 패널조사는 몇 명이 참여했는가가 중요하지 않다. 조사의 목적 자체가 서베이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생생한 체험 기반의 고객 반응, 감정적 표현 등을 포함한 다양한 행동 관련 반응을 얻고자 하기에 심층적으로 파고들어가게 된다.

패널의 숫자를 얘기하면서 대표성 문제를 제기한다면 그것은 조사 목적 자체를 오인하는 것이다. 단 한 명의 패널일지라도 그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우리 기업, 브랜드가 현재 고객들로부터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개연성을 품고 있다. 한 명의 쓴소리 뒤에는 천 명, 만 명의 고객이 숨어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된다는 뜻이다.

삼성화재는 단 한 명의 고객패널 얘기일지라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상품, 서비스에 녹아들게끔 시스템화했다는 측면을 특히 높이 평가할 수 있다.

현재 기업들에는 고객들이 현장에서 경험하는 과정에 나타나는 다양한 감정 반응과 행동에 초점을 두고 이를 경영에 반영하는현장(field)-경험(experience)-행동(behavior)’ 지향형 조사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자기기입식 설문조사는 인식조사에 불과해 행동을 예측하고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상당수의 답변은사회적 바람직성(social desirability)’이라는 기반하에 이뤄지기 때문에 순수한 자기 생각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만들어낸 포장형 응답(decorative response)일 가능성이 크다. 반면 삼성화재가 구축한 고객패널제도는 FEB(Field, Experience, Behavior)형 조사다. 고객관점의 정확한 목소리와 반응이 업무 요소요소에 쉽게 흡수될 수 있는 것이다. 자기기입식 정량 조사의 한계를 느끼고 있는 기업들에는 삼성화재의 고객패널제도가 좋은 벤치마킹 모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3) 문제점을 공개, 공유하면서 발전적으로 받아들였다

 

기업 입장에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약점, 단점, 문제점을 수용하고 공개, 공유하는 것은 상식을 거스르기에 대단한 각오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공개를 하고 타인과 공유하면 기대 이상의 효과가 발생한다.

사회심리학에공개의 효과(effect of disclosure)’라는 것이 있다. 자신의 잘못이나 문제점을 솔직히 얘기하면 상대방은 진솔함을 느끼면서 그 사람과 심리적으로 가까워진다고 한다. 화자 또한 공개, 공유의 과정에서 스스로 마음의 정화가 일어나는 효과가 있다.

삼성화재는 고객패널로부터 나온 자사에 대한 많은 질책과 비난을 덮지 않고 오히려 내부적으로 공개하고 공유했다. 만약 여느 기업처럼 단점 가리기에 급급했다면 지금의 삼성화재는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를 내·외부적으로 공유함에 따라 내부적 정화와 외부적 신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역발상적 효과가 나타난 셈이다.  

다른 기업들도 이 같은공개의 미학을 경영에 과감히 탑재할 필요가 있다. 고객으로부터 나온 얘기이기에 솔직한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공개, 공유하면서 안으로는 고객지향성 강화할 수 있고, 밖으로는 고객과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4) 새로운 습관이 정착되기까지 인내하며 기다렸다

 

수십 년간 경영을 하면서 굳어진 조직 내부의 습관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늘 달콤한 목소리에만 귀 기울이고 불편한 목소리를 피하는 것이 어느 기업할 것 없이 습관이 돼버렸다. 하루아침에 반대로 하라고 하면 어느 조직도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부 반발에 부딪쳐 대부분 단기적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많은 기업 경영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실이다.

하지만 삼성화재는 달랐다. 조직의 수장이 내부 반발에 흔들리지 않았다. 고객패널제도를 일관성 있게 추진하면서 시스템으로 정착되도록 인내하며 기다렸다. 새로운 습관이 들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탄탄한 내부시스템이 된 것이다. 이러다 보니 수장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고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것이다.

다른 기업들도 삼성화재의 혁신을 배우고자 한다면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것이 있다. 고객의 쓴소리를 겸허히 경영에 반영하는 습관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습관을 빨리 들이라고 강요해서도 안 된다. 조직원들이 고객지향이라는 새로운 습관을 가지기까지 기다림이 필요하다. 옛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습관을 들일 때까지 조직수장이 흔들리지 않고 일관된 모습을 보여야 된다는 말이다.

 

회사 주요 연혁

1952 한국안보화재해상보험 설립

1993 삼성화재로 사명 변경

2002 자동차보험 대표 브랜드삼성 애니카발표

2003 국내 최초 통합형 보험 상품삼성 Super' 보험 출시

2005 세계 보험 업계 최초 중국 단독법인 설립

2007 <포브스>지 선정아시아태평양 50대 우량기업선정

2009 자동차보험 직판시장 진출마이 애니카

2010 S&P 신용등급평가 8년 연속 A+(Stable) 획득

2013년 국내 3 CS평가, 3대 브랜드 평가 12년 연속 석권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여준상 동국대 경영대 교수 marina@dgu.edu

여준상 교수는 고려대 경영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명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실었다. 저서로 <한국형 마케팅 불변의 법칙 33> <역발상 마케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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