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i Case Study: 외환은행 홍콩 글로벌 무역금융&송금센터
편집자주
※ 이 케이스 스터디는 동아일보 7월9일자 B1 ‘외환은행의 우문(愚問) 대박’ 기사를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2008년 8월부터 4년간 외환은행 홍콩지점장으로 근무했던 신현승 영업총괄그룹 부행장은 ‘왜 모든 달러 송금은 일단 뉴욕으로 보내야 하나’라는 질문을 늘 가슴에 품고 있었다. 한국에서 해외로 달러를 보내려면 일단 뉴욕의 송금서비스 회사를 거쳐야 했다. 뉴욕은 한국과 밤낮이 반대고 은행 영업시간이 어긋나서 송금이 처리되려면 하루 이상 걸릴 수밖에 없다. 실수로 잘못 보냈을 때는 뉴욕 측 회사가 문을 열 때까지 13시간 이상을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했다.
외환은행은 아시아 외환시장의 중심인 홍콩에 1967년 한국 금융기관 중에서는 가장 처음 진출했다. 신 부행장은 외환은행 홍콩지점이 고객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가 은행은 물론이고 한국 금융의 발전에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10년 넘게 해외지점에서 근무한 그는 송금 업무 경험이 많았다. 그는 늘 해오던 방식에 익숙해지는 대신 고객과 은행을 위한 새로운 송금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던 중 컴퓨터 기술의 발전으로 뉴욕 이외의 지역에서도 달러를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개발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그는 ‘바로 이거다’라고 무릎을 쳤다. 한국과 시차가 1시간밖에 나지 않는 홍콩지점에 송금센터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이렇게 탄생했다.
외환은행 홍콩 글로벌 무역금융&송금센터는 하루 이상 걸리던 해외 송금을 단 몇 초 만에 가능하게 해 고객 만족을 높이고 이로 인해 은행 수익성을 증가시키는 데도 기여해 성공적인 해외 진출 사례로 평가받는다. 특히 경쟁이 치열하고 더 이상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없을 것으로 여겨진 홍콩에서 이뤄낸 성과여서 더욱 의미가 있다.
센터가 문을 연 후 고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센터 설립 전 월 19만 건이던 홍콩지점의 달러 송금 건수는 월 44만 건으로 급등했다. 고객의 범위가 기존 홍콩에 진출한 기업에서 한국 거주자 및 기업으로 확대된 결과다. 무역금융 규모도 3억1800만 달러에서 9억6800만 달러로 200% 이상 증가했다.
한국에서 송금 업무를 하는 사람들에게 ‘달러 송금은 일단 뉴욕으로 보낸다’가 정석이었다. 하지만 신 부행장은 그것이 늘 불만이었다. 그는 “고객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달러 송금하는데 하루 이상 걸리는 게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또 간혹 잘못 보낸 경우에는 고객도, 은행원도 하루 종일 신경이 쓰여서 다른 일을 제대로 못해요. 어떻게 하면 이런 고객의 불편을 줄여줄 수 있을까 깊이 고민하다 보니 어느 순간 쉽게 답이 보인 거죠.”
그는 ‘홍콩에 송금센터를 세우면 하루 이상 걸렸던 해외 송금이 단 몇 초 만에 가능해진다’며 설립 추진 계획을 세워 윤용로 행장에게 보고했다. 외환은행을 이용하는 고객에게 큰 만족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윤 행장은 당장 센터 설립을 지시했다.
센터를 설립하려면 전 세계에 금융 인프라를 갖고 있는 외국계 은행과의 업무 제휴가 필요했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외환 전문 은행으로 활동해온 외환은행은 비교적 쉽게 웰스파고(Wells Fargo)와 손잡을 수 있었다. 신 부행장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센터를 만들려면 외국환 업무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춘 인력, 해외 네트워크, 조직 내부의 공감이 필수적인데 외환은행은 모든 걸 갖추고 있어 빠른 시일 내에 센터가 설립됐다”고 말했다.
2012년 초 설립 준비에 들어가 그해 5월24일 ‘홍콩 무역금융&송금센터’를 열었다. 홍콩 중심부 파이스트파이낸스센터(Far East Finance Centre) 32층에 위치한 기존 홍콩지점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다. 홍콩 센터에는 현지 직원 13명과 한국 파견 직원 2명이 근무 중이다. 상당 부분 자동화가 이뤄졌지만 송금 메시지는 정해진 포맷에 맞춰 정확하게 기입해야 하므로 숙련된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홍콩센터는 한국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 홍콩이 휴무일이더라도 한국이 영업일이면 정상 근무를 하도록 했다. 근무 시간도 한국 영업점 개장에 맞춰 1시간 일찍 시작한다.
고정관념과의 싸움
외환은행 홍콩센터의 송금을 이용한 고객들은 두 번 놀란다고 한다. 하나는 빠른 속도, 또 다른 하나는 타행 대비 저렴한 수수료다. 빠른 속도와 관련해서는 한 에피소드가 있다. 한 대기업이 외환은행 홍콩센터를 이용해 자금결제를 요청했다. 그 후 계약이 갑자기 중단되는 바람에 바로 결제 중지를 요청했는데 이미 처리가 끝나버려서 해당 기업 관계자가 “이렇게 송금이 빠를 줄을 몰랐다”며 놀랐다는 것이다.
보통 해외로 달러를 송금하려면 여러 군데 은행을 거쳐야 했고 이 과정에서 수수료가 두세 번 매겨졌다. 외환은행은 웰스파고와 파트너십을 맺어 고객들이 수수료를 단 한 번만 내도록 했다. 또 비용 절감을 위해 송금 건수를 묶어 대량으로 처리했다. 물량을 늘리기 위해 싱가포르, 베트남, 인도네시아, 중국, 호주, 일본 등 외환은행의 아시아 지역 지점의 물량을 모두 홍콩지점으로 보내기로 계획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홍콩센터가 설립돼서 달러 송금이 실시간으로 처리 가능해졌고 수수료도 싸졌지만 ‘내가 늘 하던 방식’에 익숙해진 지점과 고객을 설득할 시간이 필요했다. 일부 고객은 “옛날에 하던 대로 뉴욕으로 보내지 왜 홍콩으로 보내냐. 제대로 송금이 되긴 되냐”며 불안해하거나 불만을 터뜨렸다. 이런 저항은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늘 하던 대로 하면 되는데 왜 방식을 바꾸느냐며 기존 방식대로 뉴욕으로 보내는 직원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고객과 직원의 부정적 반응에도 불구하고 경영진은 강제적으로 홍콩센터를 이용하게 하지 않았다. 대신 ‘홍콩센터를 이용해보고 편리함을 직접 느껴봐라’고 유도했다. 이를 위해 재미있는 이벤트도 기획했다. 1만 번째, 3만 번째, 5만 번째, 7만 번째 송금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홍콩센터 견학을 시켜주는 이벤트를 진행한 것이다. 선정된 고객만 홍콩에 보내주는 게 아니라 해당 고객을 담당하는 직원도 함께 3박4일 동안 홍콩에 보냈다. 이런 방식으로 지금까지 약 40여 명이 홍콩센터를 직접 다녀왔다. 센터를 직접 눈으로 본 고객과 직원들은 홍콩센터가 잘 운영되고 있는 것을 본 뒤 신뢰를 갖게 됐고 다녀와서 주변 동료와 고객들에게 이를 전파했다.
또 홍콩센터에서 본격적인 송금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에 송금 업무를 많이 취급하는 지점을 일일이 찾아가 홍콩센터의 역할과 이용 방법을 담당 직원에게 자세히 프레젠테이션했다. 김민석 외환은행 홍콩지점 차장은 “은행에서 센터를 설립했으니 앞으로 이곳을 활용해 송금하라는 일방적 지시를 내리지 않고 센터 담당자들이 일일이 지점을 찾아가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고 궁금한 점을 설명해줬다”며 “센터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자 직원들의 협조를 구하기가 더욱 쉬워졌다”고 말했다.
베스트 프랙티스의 전파
외환은행 내부에서도 홍콩센터는 해외 진출의 모범 답안으로 꼽힌다. 홍콩센터 설립으로 홍콩지점의 수익성이 좋아진 것도 있지만 이보다 교민 대상 영업을 넘어서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했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외환은행 홍콩지점은 센터 설립을 기반으로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의 기업을 대상으로도 활발히 영업하고 있다. 또 송금 플랫폼을 갖추지 못한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의 은행을 상대로 송금 물량을 확대하고 있다. 무역금융에서도 점차 성과를 내고 있다. 송금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외환은행에 신뢰를 갖게 된 고객들이 무역금융 거래도 외환은행을 통해 하게 된 것이다. 김상섭 외환은행 홍콩지점장은 “한국 기업의 현지 금융 지원 역할 외에 외국 기업의 대출이나 투자은행 거래에 적극 참여해 해외 지점 중 처음으로 대출 자산이 10억 달러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현재 홍콩에 진출한 한국계 은행이 창출하는 전체 수익 중에서 외환은행이 40%를 차지하고 있다.
홍콩센터가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는 모델로 평가되자 외환은행은 지난해 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홍콩센터와 같은 개념의 ‘유로화 송금 및 결제 센터’를 만들었다. 이 센터에서는 독일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 외에도 달러와 유로화 송금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국가의 은행을 대상으로도 영업을 하고 있다.
권오훈 외환은행 해외사업그룹장은 “아무런 노하우가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려면 상당히 힘이 들지만 홍콩센터의 성공을 바탕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자신감이 생겼다”며 “세계 200위권에 불과했던 스페인의 산탄데르은행이 같은 문화권인 남미에 진출해 세계 10위권 은행으로 급성장한 것처럼 외환은행도 홍콩센터를 기반으로 한국과 문화적 배경이 비슷한 중국, 동남아시아 지역으로의 진출을 확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성공 요인
①역발상과 고객 서비스에 대한 열정
외환은행 홍콩센터는 ‘원래 그래’ ‘당연한 거야’라는 고정관념을 탈피한 덕분에 탄생했다. ‘왜 모든 달러 송금은 꼭 뉴욕으로 보내야 하나’라는 색다른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한 결과 다른 은행들은 얻을 수 없었던 답을 구할 수 있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상식을 의심했다.
한양대 유영만 교수는 “아이디어의 원천은 가까운 곳에 있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하지만 관찰을 통해 현실 속에 숨겨진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 원래 그런 세계에 시비를 걸면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면 문제의 핵심과 본질을 찾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저서 <경영의 실제(The Practice of Management)>에서 “고객 없이는 사업도 없다(No Business without a customer)”며 기업의 목적은 이익의 극대화가 아닌 고객 만족에 있다고 역설했다. 외환은행의 홍콩센터는 왜 기업이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고객 입장에서 “송금을 빨리 하고 싶은데 꼭 미국으로 보내서 13시간 동안 기다려야 하나? 다른 방법은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져서 접근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신 부행장은 “결국 그러한 질문을 던진 밑바탕에는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열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파트너인 웰스파고와 협상을 통해 수수료를 깎은 것도 같은 이유다. 수수료를 일부 깎음으로써 외환은행의 수입도 줄어들지만 수수료 절감에 따른 새 고객 유입으로 이를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고 그 예측은 맞았다.
②내부 브랜딩에 신경
세계적 PR 컨설팅 기업인 에델만의 최고경영자(CEO)인 리처드 에델만은 “고객을 설득하기 전에 자기 직원들부터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원의 공감을 얻지 못한 채 고객을 상대하면 진정한 서비스가 이뤄지기 힘들다.
외환은행은 홍콩센터를 설립한 뒤 송금 물량을 홍콩센터로 집중시키는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은행장 지시로 ‘무조건 홍콩으로 보내’라고 강제하는 대신 왜 홍콩 센터를 이용하는 것이 좋은지 시간을 갖고 직원들을 설득했다. 송금 고객과 그 고객을 담당하는 직원을 함께 홍콩으로 보내 홍콩센터를 견학시키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송금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을 직접 찾아가 홍콩센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시간을 갖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 직원들로부터 ‘홍콩센터를 잘 활용해야겠다’는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③외환 전문 조직이라는 자부심과 노하우
홍콩센터는 지난해 초 설립 계획이 세워진 뒤 3∼4개월 안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빠른 진행이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 외환은행 내부에서는 조직 전반에 ‘외국환 전문’이라는 자부심이 있고 오랫동안 축적한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신 부행장은 “아무 노하우가 없는 상태에서 송금이 어떻게 되고, 무역금융이 어떻게 이뤄지고 등 서론부터 토론하고 설득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며 “기초 단계에서 얘기하지 않고 바로 본론부터 얘기하니 일이 빠르게 진행됐다”고 말했다.
신수정 동아일보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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