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오리온은 올해 사상 처음으로 연 매출 3조 원 달성이 유력시된다. 기존에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중국, 베트남, 러시아 등 시장 외에도 미국, 호주 등 신규 시장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오리온의 글로벌 진출 전략은 ‘멀티-레벨 양손잡이 전략’의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 초코파이 단일 제품으로 중국, 베트남 등에 진출해 표준화된 제품을 선보이는 동시에 한국은 ‘정’, 중국은 ‘인’, 베트남은 ‘띤’ 등 각 시장별 소비자 정서에 맞는 차별적 현지화를 시도했다.
2. 성과가 확인된 시장에는 빠르게 생산 거점을 건설하고 시장별 특성을 반영한 제품을 선보였다.
3. 영업 및 유통은 현지 상황을 따르지만 현금주의 원칙은 끝까지 지켰다. 이에 다른 기업들이 대금 회수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때 오히려 이익을 남겨 설비 투자를 할 수 있었다.
4. ‘좋은 제품은 좋은 재료에서 나온다’는 원칙 아래 제품 자체의 품질은 희생하지 않되 제품의 생산과 판매를 둘러싼 다른 모든 비용을 극도로 절감해 저원가-고품질을 실현했다.
5. 해외 법인을 독립채산제로 전환하고 인력 현지화에 힘썼다. 또한 본사에서 파견하는 주재원들에겐 현지에 뼈를 묻을 각오로 장기 근무를 요구하는 강력한 인사 전략을 구사했다.
미국의 음식 전문 매체 매시드(mashed)는 지난 2월 ‘2024년 코스트코에서 구매할 최고의 신제품과 최악의 신제품’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기업의 과자를 최고의 신제품 중 하나로 꼽았다. 그 주인공은 바로 오리온의 꼬북칩(미국 현지명 Turtle chips). 매시드는 기사에서 “이 과자가 히트 친 이유는 인류가 가장 좋아하는 세 가지 맛인 설탕, 초콜릿, 계피가 결합됐기 때문”이라며 “가볍고 바삭한 맛에 봉지를 내려놓기 어렵다”고 표현했다.
한국인에게 오리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제품은 ‘초코파이’다. 이는 오리온의 주요 판매 국가인 중국, 베트남, 러시아에서 물어도 비슷한 답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 공식이 조만간 깨질지도 모른다. 최근 미국과 호주, 멕시코 등지에서 불고 있는 꼬북칩 열풍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현지에서 꼬북칩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현지 1020세대 사이서 입소문을 타면서부터다. 성과도 뚜렷하다. 오리온은 지난해 미국 수출로 280억 원을 벌었다. 이 중 절반에 육박하는 120억 원을 꼬북칩으로만 벌었다. 2019년 코스트코, 2021년 샘스클럽 등에 입점을 시작한 꼬북칩은 지난 3월 미국 전역에 있는 대형 유통매장 ‘파이브 빌로’ ‘미니소’ 점포에도 진출했다. 꼬북칩의 높은 현지 인기에 힘입어 오리온은 현지 생산 공장 설립까지 고려하고 있다. 글로벌 스낵 회사 프리토레이가 꼬북칩의 인기에 자극을 받아 ‘레이어즈’라는 카피 상품을 내놨다는 것 역시 미국에서 꼬북칩의 인기를 방증하는 사례다.
히트 제품의 인기를 등에 업고 오리온은 올해 대형 식품 기업을 가르는 기준이라 할 수 있는 ‘매출 3조 원 클럽’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올 상반기 오리온이 중국에서 올린 매출은 6022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2% 늘었다. 같은 기간 베트남 매출은 7.7% 늘어난 2166억 원으로 집계됐다. 러시아 매출 역시 루블화 기준 13.0% 증가했다. 이에 힘입어 오리온 상반기 전체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5% 증가한 1조4677억 원을 기록하면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영업이익 역시 16.8% 늘어난 2468억 원으로 집계됐다. 올해 하반기에도 해외 사업이 순항하고 있어 연 매출 3조 원을 무난히 돌파할 것이란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기존 시장인 중국, 베트남, 러시아에서 초코파이를 중심으로 ‘국민 브랜드’ 반열에 오른 오리온이 미국, 호주 등 선진국 시장에서는 꼬북칩을 무기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오리온은 이 같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선전을 바탕으로 지난해 캔디인더스트리(Candy Industry)가 발표한 ‘2023 톱100 글로벌 제과기업 리스트(2023 Top 100 Global Candy List)’에서 1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캔디인더스트리는 해마다 매출액을 분석해 제과기업들의 순위를 매기고 있는데 오리온은 2022년에 이어 2년 연속 12위에 오르며 10위권 진입을 눈앞에 뒀다. 이 순위는 국내 제과업체 중엔 1위로 아시아 기업 가운데서도 일본 메이지(10위)에 이어 2위인 수준이다.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해외시장 개척을 시작해 35년 만에 해외시장에서만 2조 원대의 매출을 올리면서 총매출 3조 원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는 오리온의 글로벌 진출 전략을 DBR이 취재했다.
오리온의 글로벌 진출 전략 1무늬만 현지화가 아닌 ‘뼛속까지 현지화’하라!오리온의 해외시장 개척 역사는 크게 두 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초코파이라는 글로벌 히트 상품을 무기로 저개발 국가를 중심으로 시장을 확장하던 시기다. 오리온은 1990년대 초 수출 주력 지역을 선정하고 초코파이를 앞세워 이들 시장에 진출을 시작했다. 대상 국가는 초코파이가 국내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1970년대의 한국 상황과 유사한 국가들로 정했다. 다시 말해 개발도상국이거나 강대국이지만 경제적으로 아직 발전되지 못한 국가를 타깃으로 삼았다. 최근 오리온 전체 매출의 70%를 담당하며 전략적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 베트남, 러시아가 대표적이다. 이들 국가는 오랜 기간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한 뒤 급격히 개혁 개방을 추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자국 내 제과 제품의 종류가 풍부하지 않고 로컬 제과 업체들의 경쟁력도 떨어졌다. 타깃 시장을 대상으로 오리온은 경쟁사보다 한발 빠르게 시장에 진출해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해당 시장의 특성을 연구했고 초코파이를 전략 무기로 시장에 진입했다. 이후 시장이 성숙하고 소득 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소득 수준별로 신제품을 추가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오리온은 ‘현지화 전략 7대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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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만들어 무늬만 현지화가 아닌 철저히 현지 회사가 되는 전략을 취했다.
1. 제품, 마케팅, 심지어 회사 이름까지 바꿨다오리온은 해외시장에 진출하면서 제품, 마케팅 방식은 물론 필요하면 회사 이름까지도 바꿨다. 오리온의 해외 진출 첫 번째 목적지는 ‘중국’. 오리온이 중국에 사무소를 개설한 것은 1993년으로 베트남(1997년)이나 러시아(2002년)보다 앞선다. 중국이 첫 타깃이 된 이유는 이미 1980년대부터 중국 시장을 눈여겨봤기 때문이다. 실제 80년대 후반부터 중국의 보따리상들이 한국에서 초코파이를 대거 사들고 중국으로 건너가는 모습이 목격됐다. 이에 미리 중국 시장이 개방될 것을 예상한 오리온 경영진은 1991년 직접 중국 시장 답사를 한 것을 시작으로 1993년 중국 베이징에 사무소를 내며 중국 시장에 발을 내디뎠다. 오리온은 1992년 8월 한·중 수교 이후 가장 먼저 중국에 뛰어든 한국 기업이 됐다. 신현창 오리온 경영지원팀 수석부장은 “이미 80년대 후반부터 중국에서 초코파이의 인기가 상당했고 중국 현지 경소상(딜러)들을 중심으로 초코파이를 납품해 달라는 요구가 있었다”며 “중국의 경우 성공을 어느 정도 확신하고 들어간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시장에 진출한 오리온은 일단 회사 이름부터 바꿨다. 중국 현지에서 오리온의 이름은 ‘하오리요우(好麗友)’로 중국어로 ‘좋은 친구’라는 뜻이다. 초코파이 역시 중국에서는 ‘하오리요우 파이’로 불린다. 초코파이가 진출하기도 전에 이미 중국 회사가 재빨리 상표등록을 해놓는 바람에 고육지책으로 만든 이름이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파이로 우정을 나눈다는 초코파이 본래의 콘셉트를 유지하면서 발음까지 오리온과 비슷해 현지인들이 편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오리온은 해외 진출 초기 점진적 국제화 전략을 활용해 시장에 신중하게 접근했다. 앞서 설명했듯 오리온은 1993년에 중국 베이징에 사무소를 개설했지만 이후 1997년까지는 현지에서 초코파이에 대한 홍보와 함께 중국 내 유통망 개척 및 생산 기지 건설 타당성 조사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신시장 개척에 나서는 대부분의 기업이 진출 초기 자국에서 성공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바탕으로 빠르게 시장 공략에 나서는 반면 오리온은 이 시간을 중국 시장을 연구하는 데 보낸 것이다.이 같은 점진적 국제화 방식은 이후 베트남과 러시아에도 이어졌다. 오리온은 1997년 베트남 호찌민에 첫 사무소를 설립했다. 중국에서의 작은 성공 경험을 적용할 수 있는 신규 시장으로 중국과 유사성이 큰 베트남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베트남에 생산 공장이 들어선 것은 2005년으로 8년 이상 베트남에서 영업망 구축, 현지 생산 기지 건설 가능성 확인, 생산에 필요한 원부재료 확보 가능성 검증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러시아에서도 마찬가지로 1993년 블라디보스토크에 사무소를 개설했지만 2003년 현지 법인을 등록하고 2006년 모스크바에서 북서쪽으로 약 200㎞ 떨어진 트베리에 공장을 세우기 전까지는 초코파이라는 단일 품목을 중심으로 확장보다는 내실 다지기에 집중했다.
현지 시장에 대해 연구하는 동안 오리온은 다양한 방식으로 제품 홍보에 열을 올렸다. 중국에선 1995년 2월, 중국 톈안먼광장(천안문광장)에 초대형 초코파이 입간판을 설치하고 베이징 중심가 내 대형 슈퍼를 통해 시식회를 실시하는 등 적극적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시장에서는 각종 박람회 및 전시회에 참가해 초코파이 홍보에 힘을 기울였다. 러시아에서는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한 시베리아 및 동구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1996년 12월, 모스크바 TV에 초코파이 광고를 집행하기도 했다.
독특한 마케팅도 시도했다. 1997년 중국에서 시도한 이른바 ‘쓰레기 마케팅’이 대표적이다. 당시 중국인의 1인당 소득은 300달러 남짓해 먹을 만한 과자는커녕 ‘파이’라는 개념도 생소했다. 당연히 초코파이 판매 자체가 쉽지 않았다. 오리온은 그래서 베이징의 중심인 톈안먼광장에 커다란 매대를 만들어놓고 ‘대규모 시식 이벤트’를 열었다. 중국 오리온 직원들은 이벤트 시작 몇 시간 전부터 초코파이 포장지 수천 개를 시식 이벤트 자리 근처에 깔아 놓았다. 초코파이 포장지들이 수북이 쌓여 있는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이 “도대체 뭐길래 저렇게 많은 사람이 먹어봤나” 하면서 밀려들었다.그런가 하면 오리온은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진행한 ‘정’ 마케팅을 중국 및 베트남 시장에도 적용했다. 하지만 이조차 현지화해 중국에서는 ‘인(仁) 마케팅’을, 베트남에서는 ‘띤(Tinh) 마케팅’을 적용해 성공을 거둔다. 한국인에게 정(情)이 각별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중국인들이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시하는 가치가 인(仁)이라는 점을 착안해 2008년 말부터 초코파이 포장지에 인(仁)을 새겼다. 또한 베트남에서도 같은 맥락에서 띤 마케팅을 전개한다. 베트남어로 띤(Tinh)은 “자발적인 사랑으로 서로를 믿고 이해하며 마음이 통하는 인간관계”를 말한다. 베트남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인관계와 소통, 즉 ‘띤’을 강조하는 사회인 만큼 진출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이를 수용해 현지화에 성공한 것이다. 신 수석부장은 “한국인의 감성 코드이자 초코파이의 핵심 상표 가치인 ‘정(情)’을 각 나라 사람들의 고유한 정서에 접목하는 현지화 전략이 굳게 잠겨 있던 세계시장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됐다”고 말했다.
동시에 제품의 현지화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진출 초기 초코파이로 중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이후 1997년부터 2014년 사이 중국에만 6개의 생산 공장을 짓고 시기별로 중국 시장 트렌드를 반영한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면서 중국 내 시장점유율을 높여갔다. 실제 최근 중국법인 매출 1위 제품은 효자 상품, 초코파이가 아닌 야투더우(오!감자)다. 2006년 중국 시장에 첫선을 보인 오!감자는 2016년 국내 제과업계 최초로 단일 국가 매출 2000억 원을 돌파하며 더블 메가 브랜드에 등극, 2023년에는 중국에서만 연 매출 2170억 원을 기록했다. 국내에는 없는 토마토, 스테이크, 허니버터, 치킨 맛을 다양하게 내놓는 등 로컬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 결과다. 또한 베트남에서는 2019년 현지 소비자의 입맛에 맞춘 쌀과자 안(An), 양산빵 쎄봉(Cest Bon) 등을 출시하며 새로운 영역으로 시장을 확대했다. 이들은 한국에는 없는 제품으로 쌀 등을 주식으로 하는 현지 시장을 타깃으로 2년간 심혈을 기울여 선보였다. 또한 러시아에서는 현지인 입맛에 맞게 무려 14종의 초코파이를 선보여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차와 함께 파이를 먹는 문화가 있는 러시아에서 체리, 망고 등으로 만든 잼을 넣은 ‘잼 초코파이’는 2019년 이후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2. 영업, 유통 현지 상황 따르지만 ‘원칙’은 끝까지 밀어붙인다오리온의 해외 진출 전략 중 특이한 점은 바로 ‘현금주의’를 고집했다는 점이다. 오리온은 90년대 중반 해외 마케팅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한편 판매의 기본이 되는 영업망 구축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중국 및 베트남 시장 진입 초기에는 해외시장 침투를 목적으로 수출상 및 수입상을 통한 간접유통판매 전략을 실시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영업망 구축을 위해 중국에서는 ‘경소상’, 베트남에서는 ‘현지 딜러’ 공략에 공을 들인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의 식료품 업체가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은 ‘경소상’이라 불리는 기업형 도매상이다. 경소상은 공급업체로부터 직접 상품을 구입한 뒤 마진을 붙여서 판매하면서 이윤을 창출한다. 중국에서는 이들을 뚫지 못하면 대형 마트나 백화점은 물론 동네 구멍가게에도 제품을 들여놓기 쉽지 않다. 초기 오리온은 유통 구조가 복잡한 중국 시장에서 효율적으로 제품을 납품하기 위해 경소상의 마음을 잡기 위해 공을 들였다.
마찬가지로 베트남에서는 각 성마다 존재하는 ‘딜러’를 포섭하는 것이 중요했다. 베트남은 총 61개 성으로 구성돼 있고 각 성에는 그 성의 유통을 책임지는 딜러들이 있다. 일종의 도매업체인데 이들 딜러가 백화점, 슈퍼마켓 등에 물건을 납품하기 때문에 딜러의 역할이 중요하다. 베트남 진출 초기 이곳에 주재원으로 나간 오리온 직원들은 딜러들에게 초코파이를 소개하고 이를 팔아줄 것을 부탁하기 위해 베트남 전역을 돌아다녔다. 정종연 베트남 법인 마케팅 상무는 “베트남 진출 초기 2년 정도는 최소 한 성에 하나의 딜러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전국을 돌아다녔다”며 “초창기 주재원이 영업을 위해 베트남 전역을 돌아다니느라 새로 산 자동차를 1년 만에 40만 ㎞를 타고 폐차했다는 얘기가 여전히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리온은 중국에서뿐만 아니라 베트남에서도 진출 초기 영업망 확장에 어려움을 겪었다. 오리온의 ‘현금주의’ 정책이 문제였다. 당시 중국과 베트남은 일단 물건을 외상으로 가져가 물건이 팔리면 대금을 지급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오리온은 처음부터 현금 결제 방식을 고집했다. 시장에 신규 진출한 업체가 업계 관행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중국과 베트남 모두 초코파이에 대한 인지도 덕분에 일부 딜러가 초코파이에 관심을 보이기는 했지만 ‘현금주의’를 고집하는 오리온의 정책을 듣고 손사래를 치며 돌아섰다. 하지만 오리온은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다. 까다로운 중국과 베트남 시장에서 판매대금 회수가 어렵거나 반품이 증가하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금주의가 반드시 관철돼야 한다는 것이 본사의 생각이었다. 외상 거래를 통한 단기적인 매출 확대에 연연하지 않고 거래처와의 끈질긴 협상을 통해 현금주의가 정착될 수 있도록 설득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중국에서 초코파이를 찾는 소비자가 늘었고 현지 딜러들이 조금씩 현금주의를 받아들였다. 그 결과 현지 도매상들이 빠른 현금 회전을 위해 오리온 제품부터 우선적으로 판매하면서 매출과 현금흐름이 동시에 상승하는 선순환이 이뤄졌다. 신 수석부장은 “원칙을 지킨 것이 이후 다른 한국 기업이 대금 회수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때 오히려 이익을 남겨 설비 투자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 영업망을 확충하는 과정에서는 한국식 ‘정’ 영업 전략이 큰 역할을 했다. 중국이나 베트남의 소매점은 수많은 제품이 무질서하게 놓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오리온 영업사원들은 거래처를 방문할 때마다 먼지떨이와 수건을 들고 진열대를 청소하고 정리하는 등 정에 기반을 둔 차별화된 영업활동을 통해 매장 점주와 소비자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3. 생산 거점 마련 통한 생산 현지화오리온의 해외 진출 전략의 세 번째 특징은 생산 현지화에 있다. 오리온은 중국, 베트남, 러시아 등 신흥시장에 진출하면서 어느 정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인한 후에는 공격적으로 생산 거점을 설립했다. 실제 중국에서는 1997년 하북성 랑팡경제기술개발구에 연간 2000만 달러 규모의 초코파이, 카스타드 및 껌 공장을 설립했고 중국 화남권의 중심인 상하이에는 3년간 4000만 달러를 투자해 2002년 6월 초코파이 및 기타 과자 제품 생산을 위한 대규모 공장을 완공했다. 또한 2009년, 중국 남부 광저우에 대규모 초코파이 공장을 건설해 가동 중이고 2014년에는 선양 공장 가동을 시작해 동북 3성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베트남에서는 2006년 호찌민 미폭에 생산 공장을 지은 것을 시작으로 2009년 하노이 옌퐁에 생산기지를 추가했다. 러시아에서도 2008년과 2022년 노보시 비르스크주와 트베리주에 생산 공장을 건설했다.
오리온이 이처럼 수출이 아닌 현지 생산을 고집하는 이유는 현지에 생산 라인이 있어야 현지인들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내로라하는 식품업체들이 어느 시장에서나 동일한 제품을 해외시장에 판매하는 것과는 다른 행보다.
해외 진출 초기 겪은 몇 번의 위기로부터 교훈을 얻었다. 오리온은 중국 진출 후 현지 생산 공장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가장 큰 이유는 중국이라는 시장의 특징 때문이다. 중국은 상상 이상으로 큰 시장이다. 그리고 각 지역마다 사는 민족이 다르다 보니 식문화 및 생활 습관도 달랐다. 그래서 초코파이 단일 상품으로 모든 지역을 커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오리온은 1995년, 중국에서 큰 위기를 맞았다. 중국 남부 지역에 판매된 초코파이가 유난히 더운 날씨로 인해 수입 및 유통 과정에서 녹아버리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중국에서 초코파이 판매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시기였던 터라 큰 위기가 아닐 수 없었다. 오리온은 고심 끝에 이미 판매된 초코파이를 모두 매장에서 수거한 후 소각했다. 당시 소각한 물량이 10만 개에 달했다. 중국 시장에서의 안착을 위해서는 당장의 금전적인 피해보다 도매상과 소비자에 대한 신뢰를 쌓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오리온은 초코파이 포장지의 내열성을 강화하는 데 투자를 하는 한편 중국 현지에 생산 거점과 포장재 생산 공장을 건설하는 의사결정을 한다. 또한 이후 오리온은 중국 전체를 타깃으로 사업을 전개하기보다는 지역을 나눠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편다. 실제 오리온은 1997년부터 베이징 인근 랑팡에 생산 거점을 세운 후 3년 동안 초코파이만 만들어 팔았고 시장도 베이징 등 대도시로 한정했다. 이후 상하이, 광저우 등 중국의 대도시 인근에 생산 공장을 추가하고 이 지역에 영업을 강화하는 전략을 폈다.
4. 좋은 재료에 대한 집착, 원부자재 현지화초코파이를 만드는 라인 하나를 증설하려면 값비싼 설비와 기술, 다양한 원재료가 필요하다. 특히 원재료의 경우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아 가격이 널뛰기도 하고 수급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최근 글로벌 공급망 이슈나 기후 온난화로 인해 밀가루, 설탕, 카카오, 감자 등의 가격이 널뛰기를 하면서 식품업계가 원재료 수급 및 원가 절감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래서 오리온은 해외 생산 기지를 건설하기 전 현지에서 원·부자재를 소싱할 수 있는 거래선 개발을 병행했다. 이를 통해 갑작스러운 공급량 저하로 인한 가격 상승, 이상 기후로 인한 품질 저하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특히 오리온이 수급에 가장 공을 들이는 재료는 ‘감자’다. 실제 중국, 베트남 등에서 연간 1000억 원 이상 팔리는 제품 중에는 감자를 재료로 한 제품이 많다. 중국 법인 매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야투더우(오!감자)나 3위와 4위를 기록하고 있는 하오요우취(스윙칩), 슈위엔(예감)은 모두 감자를 재료로 만든 스낵이다. 베트남 법인 판매 순위 4위와 5위를 기록하고 있는 오스타(포카칩)와 스윙(스윙칩)도 감자 스낵이다.
오리온이 감자에 진심인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제과 트렌드가 밀가루나 옥수수에서 감자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신 수석부장은 “글로벌 제과 시장을 살펴보면 소득 수준이 올라갈수록 밀가루나 옥수수 가루를 사용한 제품에서 생감자 등 생물을 활용한 제품으로 트렌드가 넘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며 “결국 세계적인 제과 업체들과 경쟁하려면 좋은 감자를 수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오리온은 원재료의 신선도를 높이고 운송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중국 및 베트남 진출 초기부터 현지 농가와 공급 계약을 맺고 양질의 감자를 수급받아 왔다. 실제 오리온 중국 법인은 중국 칭다오, 네이멍구 등지에 위치한 대규모 농가와 공급 계약을 맺고 감자칩용 생감자를 공급받고 있다. 베트남에서도 현지 농가와 협력해 연간 1만여 t에 달하는 씨감자를 확보해 활용 중이다.
또한 “좋은 제품은 좋은 원재료에서 나온다”는 철학 아래 지난 1988년 일찌감치 민간 최초로 감자연구소를 설립하고 연구소를 중심으로 한국· 중국· 베트남 3개국이 협업하며 감자 품종 개발 및 원료 공급 시스템을 구축, 운영하고 있다. 국내를 비롯해 중국 등 현지 토양과 기후에 최적화된 감자 종자 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현재까지 총 4종의 신품종 개발을 완료했다. 2016년부터는 오리온이 개발한 ‘두백’ ‘진서’ 품종 씨감자를 베트남 현지에 수출하고 있다. 민간기업이 개발한 감자 종자를 해외로 수출한 첫 사례로 꼽힌다. 신 수석부장은 “중국이나 베트남이나 초창기에는 계약 재배라는 개념에 익숙하지 않아서 농가를 설득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직영 농장에서 직접 감자를 재배하기도 했다”며 “현재는 중국 및 베트남에서 안정적으로 생감자를 수급할 수 있을 정도로 원료 공급 시스템이 성숙해진 단계”라고 설명했다.
5. 독립채산제로 전환하고 인력 현지화에 힘써보통 한국에서 파견된 주재원이 주요 보직을 도맡는 대부분의 국내 기업 현지 법인과 달리 오리온의 해외 법인에선 현지 채용된 인력 비율이 90% 이상이다. 중국 법인의 경우 전체 직원 수 4284명 가운데 한국 주재원은 15명으로 99.6%가 현지 직원이다. 10년 이상 주재한 주재원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올해 부임한 이성수 대표 또한 생산 본부장을 거쳐 24년간 중국에서 근무했다. 현재 중국 6개 공장 중 4곳에서 현지인이 공장장을 맡고 있으며 사업 핵심인 영업, 마케팅, 생산 부문에도 현지인 리더 체계를 구축했다. 올해 초 동북, 화북, 화남 등 5개 지역 영업 본부 수장을 글로벌 기업 출신의 현지인으로 채용하며 현지 영업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베트남 법인 역시 영업, 생산 등 주요 부서의 관리자급 직원들을 철저히 현지화했다. 2개 공장 중 1곳의 공장장이 현지인이며 두 공장 인력 99%가 현지인으로 배치돼 있다. 영업 부문 주요 현장 리더들도 현지인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베트남 호찌민 법인에서 17년째 근무 중인 정종연 상무는 “현재 베트남 호찌민 공장장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오리온에 입사해 20년 동안 호찌민 공장의 성장을 함께해 온 사람”이라며 “호찌민 공장이 초기 매출 200억 원 수준에서 5000억 원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회사와 함께 성장한 현지 인력들이 리더를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현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재원의 파견 기간이나 역할도 보통의 국내 기업과 다르다. 오리온은 1993년 이후 국내 제과 시장의 성장 정체로 해외로 눈을 돌리면서 중국, 베트남 등에 주목해 현지에 주재원을 파견했다. 당시 오리온제과 사장을 맡고 있던 담철곤 현 오리온그룹 회장은 해외시장에 주재원을 내보내면서 이들에게 “현지에 뼈를 묻을 각오를 하라”고 지시했다. 통상 주재원들이 3~5년 정도로 임기를 정하고 나가는 반면 오리온 주재원들에게는 근무 기한이라는 것이 없었다. 최근까지도 중국, 베트남 등 오리온 해외 법인 근무 주재원 중 상당수의 현지 근무 기간이 평균 10년 이상이다. 그러다 보니 오리온 주재원들에게 해외 법인은 단순히 경력 관리를 위해 거쳐 가는 곳이 아닌 ‘뼈를 묻을 평생 일터’가 된 셈이다. 이들 초기 주재원이 수십 년간 시장에 대해 연구하고 영업망을 확장한 덕분에 오리온은 중국, 베트남, 러시아라는 생소한 시장에 안착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오리온의 해외 법인들이 전부 독립채산제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오리온이 해외 법인에 대해 독립 경영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리온그룹은 한국에서 중견기업에 속한다. 해외 법인에 큰돈을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대기업과 달리 해외 법인에 무한정 돈을 투자하기 어렵다. 특히 2002년은 오리온그룹이 동양그룹에서 계열분리를 한 해다. 국내 사업의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직 사업이 완전히 정착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국 등 해외 법인에 무한정 돈을 퍼줄 여력이 없었다. 해외 사업이 실패하면 한국 본사도 휘청거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던 시기였다. 오리온이 해외 법인에 독자 경영을 주문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다.
마침 2002년은 오리온 중국 법인도 위기를 겪던 시기였다. 2001년부터 중국에서 초코파이의 성장이 정체됐다. 일각에서는 ‘시장이 포화됐다’ ‘소비자들이 더 이상 초코파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등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이 같은 시절에 본사로부터 독자 경영을 주문받은 중국 법인은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독자 경영은 오히려 중국 오리온 직원들의 헝그리 정신에 불을 붙이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그 덕분에 2002년부터 중국 오리온은 매년 50%가 넘는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고 오리온 중국 법인은 2020년 연 매출 1조 원을 넘긴 데 이어 올해 중국 진출 29년 만에 처음으로 본사에 1334억 원의 배당금을 지급할 정도로 성장했다.
오리온의 글로벌 진출 전략 2K-컬처 등에 업고 선진국 시장 진출1990년대 초부터 이어온 오리온의 해외시장 개척 전략은 ‘초코파이를 무기로 한 점진적 국제화’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 오리온의 글로벌 진출 양상이 바뀐다. 과거 저개발 국가에 선도적으로 진입해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 오리온의 전략이었다면 최근 미국, 호주 등지에서 나타나고 있는 오리온의 인기는 ‘K-팝’ ‘K-푸드’ 등 ‘K-컬처’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이런 팬덤을 만들고 있는 핵심 제품이 바로 ‘꼬북칩’이다.
2017년 첫선을 보인 꼬북칩은 오리온이 60년 연구 개발 및 생산 노하우를 결집해 만든 국내 최초의 네 겹 스낵이다. 꼬북칩은 스낵 여러 개를 한번에 먹는 듯한 풍부한 식감이 특징으로 네 겹 식감과 겹겹마다 양념이 배어들어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출시 직후부터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SNS상에서 입소문이 퍼지며 물량 부족 사태까지 빚어지면서 생산량을 기존 대비 2배 늘리기도 했다.
꼬북칩이 미국 시장에서 인기를 끈 데는 SNS가 한몫했다. 국내에서 꼬북칩이 인기를 끌면서 우리나라 연예인들이 꼬북칩을 먹는 모습을 자신의 SNS에 올렸고 이것이 해외에서 꼬북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미국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한인 마트를 통해 최초로 미국 시장에 진출하게 됐다. 이후 입소문을 타면서 2019년 코스트코, 2021년 샘스클럽 등 창고형 할인 매장에 입점했고 수출액도 2017년 6000만 원 수준에서 2023년 기준 120억 원 수준으로 늘어났다. 올해 3월부터는 미국의 대표적인 할인 소매업체인 ‘파이브 빌로’ 1598개 전 매장에 입점해 판매를 시작했으며 글로벌 생활용품 할인점인 ‘미니소’ 52개 전 점포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또한 꼬북칩 열풍이 주변국으로도 퍼지면서 연내 멕시코 코스트코로도 판매처를 확대할 계획이다. 신 수석부장은 “꼬북칩이 입점해 있는 매장 담당자들은 꼬북칩의 인기 이유를 ‘바사삭’ 부서지는 네 겹 식감과 한국 특유의 ‘맵·단·짠·고’ 맛에서 찾고 있다”면서 “전혀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맛에 미국, 호주 등에서 인기가 높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꼬북칩의 인기는 오리온에 새로운 기회도 가져다줬다. 꼬북칩 인기를 실감한 코스트코에서 유럽 매장에 꼬북칩을 입점시키자고 먼저 제안을 한 것. 오리온은 지난 9월 말 영국, 스웨덴, 아이슬란드에 있는 코스트코 점포 31곳에 초도 물량을 공급했고 내년 1월부터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할 계획이다.
오리온은 일단 미국, 호주, 유럽 등에서도 판매 추이를 보며 직진출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신 수석부장은 “미국, 유럽 등에서도 단일 제품으로 연 매출 400억 원 이상을 상회할 경우 현지 생산 공장 설립할 생각을 하고 있다”며 “이들 시장 외에도 중동, 아프리카 등지에서 오리온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어 신중하게 모니터링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꼬북칩을 넥스트 메가 브랜드로 이끌 ‘오리온의 4대 핵심 역량’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오리온의 해외시장 진출 전략을 살펴보면 오리온의 핵심 경쟁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오리온은 차별화된 제품력을 바탕으로 시장에 진출해 다양한 카피 제품의 공격을 ‘품질’로 방어했다. 제품을 팔아 번 돈을 R&D에 투자해 더 맛있고 건강한 제품을 더 싼 가격에 공급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적은 비용으로도 최대의 효율을 올릴 수 있는 오리온 특유의 ‘정(情) 마케팅’을 각 지역에 맞게 특화시켜 제품을 알렸다. 그리고 이 같은 오리온의 4대 핵심 역량은 최근 꼬북칩의 글로벌 인기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Core 1 : 60년 제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제품력오리온의 핵심 경쟁력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제품력’이다. 꼬북칩은 이 제품력의 정점을 찍은 제품이다. 하지만 이 제품은 탄생까지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오리온 꼬북칩의 개발은 2009년 시중에 출시된 바삭한 식감의 두 겹 과자를 보고 네 겹으로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개발 과정 중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여러 겹의 반죽이 달라붙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떡을 찔 때 전분이 진득한 상태가 돼 서로 달라붙는 것처럼 두께가 두꺼워져 바삭한 식감을 구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개발 초기 3겹까지는 반죽이 달라붙는 문제를 해결했지만 4겹은 차원이 다른 난제였다. 당시 기술로는 4겹 과자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개발 3년 만에 제품 개발을 중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리온은 이후에도 원료부터 생산기술, 설비까지 거듭 고민을 이어갔고 2017년 3월, 꼬북칩을 내놓게 됐다. 제품 테스트만 2000회, 제품 개발부터 출시까지 8년의 시간과 100억 원의 투자가 필요했다. 강수철 오리온 기술개발연구소장은 “한번도 만들어 보지 않은 제형이라 신설비가 필요했는데 얼마를 투자해야 할지 가늠하기도 어려웠다”며 “불량률도 많고 원하는 식감이 나오지 않았기에 생산에만 추가로 1년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오리온은 해당 연구를 바탕으로 2019년 2월과 2021년 1월에 각각 꼬북칩의 핵심 제조 설비인 ‘스낵용 펠릿시트 가공장치’와 ‘스낵용 펠릿시트 커팅장치 및 이를 이용한 스낵용 펠릿 제조방법’에 대한 특허 등록을 완료했다. 꼬북칩 특유의 네 겹 모양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공정인 반죽을 얇게 펴서 고르게 이동시키는 설비와 이를 활용한 제조 방법의 기술적 차별성과 우수성을 특허청으로부터 공인받은 것이다. 원료 배합이나 제품 디자인이 아닌 제조 설비 등에 대해 특허를 받는 것은 식품업계에서 매우 이례적인 사례다. 오리온은 이 기술을 바탕으로 4겹 스낵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열며 승승장구 중이다. 강 연구소장은 “치토스, 레이즈 감자칩을 만드는 미국의 대형 스낵 회사 프리토레이가 만든 ‘미투’ 제품은 네 겹을 만들지 못하고 세 겹에 불과해 시장에서 금방 퇴장했다”고 말했다.
Core 2 : 글로벌 R&D 역량오리온이 글로벌 식품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또 한 가지 경쟁력은 바로 글로벌 R&D 역량이다. 오리온은 2017년 한국 법인에 글로벌연구소를 출범하면서 중국, 베트남, 러시아 등 각 법인의 제품 개발 연구를 통합, 관리하는 체제를 구축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은 제품 원료 테스트와 원료 간 배합 등 제품 기획의 역할을 담당하고 각 법인의 연구원들은 현지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개발한다. 또한 식품 개발 원천 기술과 제품 리뷰 및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핵심 역량도 강화한다.
이 같은 글로벌 R&D 네트워크는 다양한 히트 상품 탄생에 기여하고 있다. 8년의 개발 기간과 100억 원 이상의 개발비가 들어간 끝에 탄생한 꼬북칩은 중국, 베트남 등에서 현지 생산하고 스낵의 본고장인 미국에 수출하는 등 전 세계 23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한국의 글로벌연구소가 핵심 노하우를 공유하고 각 법인의 연구원들이 국가별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춘 21종에 달하는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면서 K-스낵을 대표하는 간판스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쌀의 나라’로 불리는 베트남에서는 쌀로 만든 제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착안해 2019년 한국 오리온에는 없는 쌀 스낵 안(An)을 개발했다. 출시 직후부터 큰 인기로 현지 쌀 스낵 시장점유율 2위에 올랐고 2023년에는 현지 판매 제품 중 초코파이 다음으로 높은 연 매출을 기록하며 베트남 법인 성장의 1등 공신이 됐다.그런가 하면 한국에서 장을 담가 먹듯 러시아에서는 ‘다차’(텃밭이 딸린 시골 별장)에서 농사지은 다양한 베리류를 잼으로 만들어 가정마다 저장해두고 먹는다는 점에 착안해 라즈베리, 체리, 망고 등 잼이 들어간 초코파이를 개발했다. 오리온 전 법인 중 가장 많은 14종의 초코파이를 판매하는 러시아 법인은 ‘잼 초코파이’를 시장에 내놓은 이후 매해 두 자릿수 매출 성장을 이어갔고 2022년에는 러시아 법인 설립 이후 최초로 연 매출 2000억 원을 돌파했다.
Core 3 : 비용 절감 능력오리온은 식품 업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보이는 회사다. 2019년 연결기준 영업이익률 16.2%를 기록한 이래 꾸준히 매년 16%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국내 경쟁 제과 업체들의 영업이익률 평균(5%)보다 한참 높은 수준이며 세계적인 종합식품기업 제너럴밀즈나 감자칩 레이즈(Lay’s)를 판매하는 프리토레이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높은 수치다.
식품 기업들은 영업이익률이 낮다는 통념을 깬 오리온의 비결은 무엇일까? 원·부자재의 글로벌 통합 구매 노하우 덕분이다. 오리온은 지난 2017년 한국, 중국, 베트남, 러시아 등 각 법인별로 따로 구매하던 원부자재를 한국법인 글로벌구매팀이 한꺼번에 통합 구매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전지분유, 유지, 코코아 등 주원료와 종이 박스, 포장 비닐 등 부자재를 대부분 공통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각 법인이 필요한 물량을 모두 모으면 거래물량이 커지니 구매 협상력은 당연히 높아졌다. 통합 구매 방식은 원가를 낮추기도 하지만 원자재 수급이 불안정할 때 빛을 발하기도 한다. 카카오는 지난해부터 작황 문제로 수급이 불안정해 가격이 3배가량 급등했다. 오리온은 카카오 국제 시세 문제가 대두된 지난 4월, 한국법인의 글로벌구매팀과 글로벌연구소 임원을 아프리카 가나에 급파, 현지에서 양질의 카카오 공급 업체를 추가로 발굴해 전 법인이 사용할 수 있는 물량을 확보했다.
오리온은 안정적인 원료 공급과 원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꾸준히 원산지 다변화와 직거래를 확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의 글로벌구매팀을 중심으로 해외 법인과 매주 화상회의를 열어 원자재 공급과 관련된 이슈와 원산지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공유한다.
원재료 외 다른 부분에서도 비용 절감에 힘쓰고 있다. 2016년부터 오리온은 소비자들이 매장에서 제품을 얼마나 사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판매시점정보(POS) 시스템을 판매처와 협업해 도입했다. 오리온 한국법인은 영업, 생산, 물류 등 전 부서가 POS 시스템을 활용한다. 가령 POS 시스템에서 특정 상품의 판매 둔화가 확인되면 영업팀은 판매처와 제품 매대 진열 위치를 조정하고 마케팅 아이디어도 협의한다. 물류팀과 생산팀은 판매 추이에 따라 적정 재고가 유지되도록 공급량을 늘리거나 줄인다.
POS 시스템을 도입하던 해 2.8%였던 반품률은 꾸준히 감소해 2022년부터는 0.2%대로 떨어졌다. 시장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물류, 생산, 영업팀 모두 참고하면서 그에 맞춰 대응하기 때문이다.
또한 오리온은 생산설비 가동률을 높이기 위한 연구를 거듭해 생산시설별로 중복되는 공정을 통합하고 하나의 생산 라인에서 2~3종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 일부 라인은 가동률이 30%포인트가량 높아지기도 했다.
Core 4 : 저비용 고효율 감성 마케팅 역량오리온은 초코파이를 전략 무기로 시장을 확대하면서 ‘정(情)’을 매개체로 한 다양한 마케팅을 진행했다.
오리온은 중국과 베트남 시장 진출 초기, 컬러 마케팅을 펼쳤다. 당초 한국에서 팔던 초코파이 패키지는 파란색이었던 반면 중국과 베트남에 진출할 때는 패키지를 빨간색으로 교체했다. 중국과 베트남 국민들이 빨간색을 좋아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런가 하면 오리온은 러시아에서는 러시아의 문화적 특성을 연구해 이에 기반한 마케팅을 펼쳤다. 2000년에 집권한 푸틴 대통령이 구소련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강한 러시아’ 정책을 추진할 때 오리온은 푸틴 대통령의 이미지와 정책을 브랜드 이미지와 결합하기 위해 매년 열리는 러시아 청소년 하키 리그의 메인 스폰서가 됐다.
베트남에서는 2016년부터 8년 연속 진행하고 있는 ‘베트남 고향감자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정 마케팅’으로 꼽힌다. 이 프로젝트는 오리온 감자 스낵인 오스타(포카칩)와 스윙(스윙칩)의 주 원재료인 감자의 품질 향상과 감자 농가의 소득 증대를 통한 상생을 위해 시작됐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베트남 농가에 감자 종자 등을 공급하며 이를 효과적으로 재배할 수 있는 선진 농업기술을 전파하고 있다. 이 같은 감성 마케팅으로 중국, 베트남, 러시아 등지에서 물건만 팔러 온 외국 기업이 아닌 함께 성장하는 ‘국민 기업’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오리온은 미국 시장에서는 따로 감성 마케팅을 전개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꼬북칩 인기가 늘면서 현지 소비자들의 취향을 반영한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출시하는 방향으로 소비자들의 감성에 노크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 호주 등지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꼬북칩 초코츄러스맛의 경우 현지 소비자들로부터 꾸준히 ‘초콜릿 함량을 높여달라’는 의견을 반영한 제품이다. 오리온은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2020년 9월 출시 당시 19.2%였던 초콜릿 함량을 24.9%까지 상향 조정했다. 원재료 함량을 늘렸음에도 가격은 출시 당시와 동일하게 유지해 품질 대비 만족도도 높였다. 또한 미국 시장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히스패닉 소비자를 대상으로 매운맛의 ‘플레이밍 라임맛’을 출시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향후 과제오리온은 해외 법인 실적 호조를 통해 제과업계 최초로 매출 3조 원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러나 오리온 역시 새로운 해외시장 발굴과 신사업의 수익화라는 과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특히 야심 차게 진출한 인도 시장은 시간이 더 필요해보인다. 오리온 인도 법인은 지난 2021년 44억 원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2022년과 2023년 각각 116억 원과 154억 원 당기순손실을 입었다. 제조업 특성상 사업 초기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했고 채널 확대를 위해 과감히 마케팅비를 집행한 영향이 컸다.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스낵, 파이 생산라인을 증설하는 등 투자를 지속하는 가운데 북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영업력을 집중하는 전략이 성과를 거둘지가 관건이다.
신사업 수익화 역시 숙제다. 오리온은 제과 산업에 국한된 매출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올해 1월 계열사 팬오리온코퍼레이션을 통해 바이오기업 리가켐바이오를 인수했다. 지난 2020년 10월에는 중국 국영 제약기업인 산둥루캉의약과 바이오사업 진출을 위한 합자 계약을 체결하며 바이오사업에 발을 들였고 2021년 3월 오리온홀딩스와 산둥루캉의약은 각각 65%, 35%의 지분율로 합자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2022년 11월에는 난치성 치과질환 치료제 개발 기업인 하이센스바이오와 합작투자 계약을 체결한 뒤 합작회사 오리온바이오로직스를 설립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
오리온은 바이오 사업 투자로 제과회사에서 글로벌 식품 헬스케어 회사로의 전환을 꿈꾸고 있다. 특히 2020년 바이오 사업 진출 선언 이후 바이오, 음료, 간편식사대용식을 3대 신사업으로 내세워 추진 중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수와 그래놀라 사업을 벌이며 꾸준히 시장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바이오산업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른 상황이지만 오리온이 제과회사를 넘어 종합식품회사로 변신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DBR mini box I: Interview: 강수철 오리온 기술개발연구소장
“기술은 재료를 이기지 못해” 원재료 신선도 철저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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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온이 다양한 제품군에서 10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메가히트 제품을 내놓을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오리온 본사에 위치한 ‘오리온 기술개발연구소’에 있다. 오리온의 R&D를 이끌고 있는 강수철 기술개발연구소장을 만나 오리온 제품력의 비밀을 들어봤다.
하루 일과 중 하나가 매일 20개의 초코파이를 테스트하는 것이라 들었는데 매일 반복 하다 보면 둔감해 질 수 있다. 극복 방법은?
맛에 둔해지지 않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는데 대표적으로 자체적으로 만든 매뉴얼에 따라 관능검사(오감으로 평가하는 제품검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맛을 보고 나서 일정 시간을 두고 다음 맛을 보거나 따뜻한 물로 가글을 하는 것 등이다. 내 사무실에는 55도로 물의 온도를 유지하는 전기 포트가 항상 준비돼 있다. 초콜릿의 녹는 점은 사람의 입속 온도와 비슷한데 그보다 한 단계 높은 온도의 물을 마셔야 입속에 남은 것들이 다 녹아내리기 때문에 따뜻한 물을 사용한다. 또 아무 맛이 없는 식빵으로 혀를 닦아내기도 한다.
오리온 제품 중 특별히 기억이 남는 제품은?
첫째는 초코파이 바나나다. 50년 역사를 가진 전통 초코파이 오리지널의 틀을 깬 제품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양하고 신기한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전통에만 안주할 수 없었다. 초코파이 바나나 이후로 만든 다른 맛들도 소비자 반응이 좋았다. 특히 딸기도 시즌 한정판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반응이 좋다. 딸기맛이 국내에서 사랑을 많이 받은 만큼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 해외 각국에 선보였는데 현재 베트남, 러시아, 인도 등에서 초코파이 딸기가 판매되고 있다. 두 번째는 꼬북칩이다. 꼬북칩은 준비 기간만 8년, 개발에 착수해서 3년 걸려서 만든 제품이다. 과자의 맛과 모양 등은 연구소에서 개발했고 ENG팀과 긴밀하게 협업했다. 여러 겹으로 된 독특한 모양을 개발하고 그에 맞춰서 기계를 만들고 깎고, 테스트를 수년간 진행한 끝에 꼬북칩이 탄생했다.
제과업은 생각보다 매우 기술 집약적인 분야인 것 같다.
제과업은 장치 산업이고 그래서 R&D가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맛집을 가서 그 맛집의 비결을 하나로 정의하기 어렵듯 제과업도 마찬가지다. 연구소는 소비자들이 가장 좋아할 적합한 맛을 찾는 것이 목표다. 물론 핵심 기술도 있고 특허도 있다. 이를테면 찰떡 초코파이를 만들 때 들어가는 떡이 오랫동안 굳지 않게 하는 기술이나 러시아에서 파는 딸기 파이나 오렌지 파이에 마시멜로 안에 잼이 들어가게 하는 기술 등 오리온이 보유한 특허가 상당하다. 오히려 고민은 우리가 다양한 과자류를 만들면서 보유한 기술을 특허를 낼지 말지를 정하는 것이다. 특허를 내면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게 우리에게 좋을지 안 좋을지를 판단하는 게 더 고민거리다.
꼬북칩 외에 오리온의 기술이 집약됐다고 평가할 만한 제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최근 나온 ‘닥터유 프로 단백질 40g’에도 오리온만의 기술력이 녹아 있다. 단백질 음료들은 대부분 단백질 함량이 20g 정도다. 이유가 그것보다 많이 넣으면 단백질의 비린 맛 때문에 맛이 없다. 그런데 오리온이 단백질 전처리 기술을 개발해 40g을 넣으면서도 맛이 있는 단백질 음료를 만들었다. 이게 초코우유 맛이 나는데 보통 초콜릿 맛이 나는 음료는 대부분 코코아 파우더로 맛을 낸다. 하지만 단백질을 40g 넣다 보니 코코아 파우더로는 단백질 특유의 맛이 안 잡혔다. 그래서 고민하다 결국 이 음료만을 위해 초콜릿을 별도로 개발해 넣었다. 또 한 가지로는 최근에 베트남에서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참붕어빵’이 있다. 참붕어빵을 먹어 보면 안에 쫄깃한 떡 같은 식감의 재료가 들어 있다. 문제는 이 인절미 떡이 쉽게 ‘노화’된다. 다시 말해 밥을 해놓으면 딱딱해지듯이 이 참붕어빵의 떡도 빠르게 딱딱해진다. 쫄깃한 식감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쌀가루, 전분 등을 활용해 새로운 레서피를 개발했고 그 결과 6개월 동안 식감이 유지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기술을 개발하는 데 2년이 걸렸다.
과자는 건강에 안 좋다는 인식 때문에 웰빙 시대에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미국에서는 감자칩이나 스낵류를 정크푸드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가 정크푸드를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상을 어떻게 칭하냐에 따라 그걸 만드는 사람의 자세도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실제 미국이나 유럽의 감자칩들은 모양도 투박하고 대충 만든 느낌이다. 정크푸드 취급을 받으니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초코파이 하나로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다고 믿고 제품을 만든다. 우리는 정크푸드가 아닌 정(情) 푸드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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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mini box II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과감하고 치밀한 ‘양손잡이 경영’으로 위기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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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dshi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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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온의 독창적 글로벌 전략은 제과 산업뿐 아니라 대부분의 산업에서 통용되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일반적 경영 원칙을 과감하게 넘어섬으로써 강력하고 지속적인 경쟁 우위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렇다고 오리온이 강점을 선택해 이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오리온의 글로벌 전략은 흔히 기업들이 양자택일해야 한다고 여겼던 상호 모순적인 대안들, 예컨대 현지화와 글로벌 통합, 품질과 가격 같은 요소들을 동시에 극대화하는 데 성공한 ‘양손잡이 경영(ambidextrous management)’의 대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는 전통적 경영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글로벌 전략의 두 가지 선택 옵션: 현지화와 글로벌 통합
오리온의 글로벌 전략은 과감하고 혁신적이면서도 동시에 치밀하고 체계적이다. 다시 말해 오리온은 상반된 전략적 선택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독특한 접근법을 구사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이 글로벌 시장 진출 시 현지화와 글로벌 통합이라는 상반된 옵션 중 하나를 선택하고 이에 집중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현지화 전략은 각 진출국의 특수한 요구와 상황에 맞춰 철저히 차별화된 접근을 취하는 방식이다. 이 전략을 채택한 기업은 진출한 나라마다 고유한 사업 구성, 제품 포트폴리오, 경쟁 전략을 도입하며 그 결과 진출국의 수만큼 다양한 전략 모델을 동시에 운영하게 된다. 반면 글로벌 통합 전략은 국가 간 차이를 넘어 전 세계에서 동일한 사업 구조와 제품 구성, 경쟁 전략을 일관되게 적용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본사를 중심으로 강력한 집권적 구조를 구축해 각국 지사가 본사의 지침 아래 일사불란하게 운영된다.
두 전략은 상충되는 논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대다수의 기업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조직 구조, 역량 배분, 자원 활용, 문화까지 해당 선택에 최적화해 통일성을 유지한다. 예컨대 현지화 전략을 택한 기업은 각국 지사에 높은 자율권을 부여하는 반면 글로벌 통합 전략을 추구하는 기업은 본사 중심의 강력한 통제 체제를 유지한다.
이 두 가지 글로벌 전략은 어느 쪽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볼 수는 없으며 서로 장단점이 다르다. 현지화 전략의 경우 각 국가별 시장의 수요 충족을 극대화하므로 당연히 그 국가 내에서의 경쟁 우위 추구에 유리하다. 그러나 다양한 나라에 서로 다른 전략과 조직을 실행해야 하므로 전사 수준에서 경영의 복잡성이 과도해지며 지역 간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어렵고 비효율성이 높다. 오리온과 유사한 식품과 제과 산업의 경우 현지화 전략의 대표적 예가 ‘네슬레(Nestle)’다. 네슬레는 각 국가별로 그 나라의 수요에 최적화된 제품을 개발하므로 전사적으로 보면 거의 14만 가지에 이르는 방대한 제품군을 유지하는데 그 결과로 발생하는 심각한 복잡성에 시달려왔다. 그런가 하면 정반대 사례로 전 세계 모든 나라에 완전히 동일한 제품을 판매하는 코카콜라가 있다. 코카콜라는 막강한 글로벌 규모의 경제로 음료 시장을 지배해왔지만 항상 각 현지마다 서로 다른 다양한 수요에 최적화해 대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어왔다.
오리온의 양손잡이 글로벌 전략: 현지화와 글로벌 통합의 동시 극대화
오리온의 글로벌 전략은 제과 산업은 물론 다른 산업들을 통틀어도 매우 보기 드물게 현지화와 글로벌 통합을 동시에 극대화하는 ‘양손잡이’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양손잡이가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의 장점을 동시에 극대화하듯 ‘양손잡이(ambidextrous) 전략’은 두 가지 옵션 중 하나에만 선택과 집중하던 20세기형 경영에서 탈피해 상호 모순적으로 보이는 대안들을 동시에 극대화하려는 새로운 시도다. 예를 들면 자동차 산업의 경쟁 전략에서 포드 등 대량 생산 기업은 저가 니치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극대화했고 벤츠 등 고급 브랜드는 고가 시장에서 품질 경쟁력에 집중했다. 그러나 도요타는 기존 틀을 깨고 유연생산방식을 통해 가격과 품질 경쟁력을 동시에 극대화하며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양손잡이 글로벌 전략은 21세기로의 전환기를 기점으로 경계 파괴, 융복합화, 세계화, 상시 혁신이 동시에 가속화되면서 등장한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이다. 과거에는 특정 시장의 니치(niche)에 최적화된 단일 경영 방식을 선택하고 집중하는 전략이 유효했지만 이러한 환경은 빠르게 변화했다. 오늘날 기업들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발생하는 상호 모순적 요구를 동시에 극대화해야만 지속가능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시대에 직면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양손잡이 경영은 변화의 흐름에 대응하기 위한 필연적 결과로 자리 잡았다.
많은 글로벌 선도 기업이 양손잡이 글로벌 전략으로 전환을 시도했으나 실제로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글로벌 전략의 두 축인 현지화와 글로벌 통합을 동시에 극대화하는 데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으며 오리온의 글로벌 전략은 이러한 양손잡이 경영의 드문 성공 사례로 꼽힌다. 특히 대다수 선도 기업조차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양손잡이 경영을 오리온이 성공적으로 실행할 수 있었던 핵심 원천은 ‘멀티-레벨(multi-level) 상호보완 전략’에 있다. 이는 미시적·거시적 수준, 상·하위 조직 간 경계를 초월해 다양한 양자택일적 선택지를 동시에 극대화하려는, 극도로 유연한 접근법이다. 이러한 전략의 실행 기반에는 오리온만의 강력한 조직 역량과 리더십이 자리 잡고 있다.
오리온의 독특한 멀티-레벨 양손잡이 글로벌 전략
오리온은 현지화와 글로벌 통합을 동시에 극대화하는 ‘양손잡이’ 글로벌 경영을 추구하기 위해 매우 독창적인 ‘멀티-레벨 전략’을 활용해왔다. 대부분의 ‘양손잡이 전략’은 동일한 레벨에서 서로 반대되는 상호 모순적 대안들을 동시에 극대화할 수 있는 제3의 방법을 찾는 것을 통해 실행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도요타가 생산방식 레벨에 초점을 맞춰 대량 생산방식과 주문생산방식의 장점을 동시에 극대화한 ‘유연생산방식’을 개발한 것과 같은 접근법이다. 그러나 양자택일해야 하는 상호 모순적 대안을 동시에 극대화하는 이런 새로운 대안을 개발하는 것은 엄청난 창조적 혁신을 필요로 하는 극도로 어려운 작업이다.
오리온의 양손잡이 글로벌 전략은 각 레벨에서 최적화를 선택하고 그 선택의 한계를 다른 레벨에서 보완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각국의 다양한 수요는 현지화를 극대화해 충족시키고 그로 인한 복잡성과 비효율은 본사 차원의 통합 조정과 유연성으로 해결한다. 이는 레벨 간 상호 보완을 통해 글로벌 시장의 도전 과제를 효과적으로 극복하는 구조적 접근법이다.
양손잡이형 국가별 제품 현지화: 초코파이 마케팅 사례는 바로 이런 오리온의 양손잡이형 멀티-레벨 글로벌 전략의 힘을 잘 보여준다. 초코파이라는 제품 자체의 핵심 본질은 표준화해 관리하면서 국가별로 녹는 온도 등 일부 미세 조정을 실시했다. 즉 제품 자체는 글로벌 통합의 효율성을 극대화하지만 동시에 오리온은 각국의 서로 다른 시장 환경과 수요에 대한 현지화 과제를 포장 마케팅 기법을 활용해서 해결했다. 즉 각국에서 초코파이 마케팅을 위해 포장지 위에 인쇄된 구호를 한국은 ‘정’, 중국은 ‘인’, 베트남은 ‘띤’ 등 각 시장의 소비자 정서에 차별적으로 현지화해 최적화한 것이다.
양손잡이형 국가별 제품 포트폴리오 전략: 오리온의 제품 포트폴리오 전략은 양손잡이형 멀티-레벨 글로벌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각국의 시장 수요에 맞춰 철저히 현지화된 제품군을 구성하며 중국, 베트남, 러시아, 미국 등 주요 시장에 대한 공략을 다각화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북부와 남부, 미국의 중산층 백인과 히스패닉 인구 등 시장 내 세부적 차이를 반영한 제품 차별화가 이뤄진다. 이를 위해 오리온은 철저히 현지화된 조직을 운영하며 현지 채용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또한 본사에서 파견하는 주재원들에게는 ‘현지에 뼈를 묻을 각오를 하라’는 주문을 해 장기 근무를 요구하는 강력한 인사 전략을 구사한다. 하지만 현지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자원 분산, 복잡성, 비효율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사의 글로벌 통합 역량을 극대화해 지원한다. 결과적으로 각 국가별 제품 포트폴리오는 철저히 현지화되며 본사는 이를 일사불란하게 관리하고 조정하는 집권화된 시스템을 통해 글로벌 운영을 완벽히 통제한다.
양손잡이형 국가별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 오리온의 멀티-레벨 양손잡이 글로벌 경영이 돋보이는 또 다른 예는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다. 오리온은 최근 국내 시장에는 없거나 아예 레서피가 다른 다양한 새로운 제품들을 중국이나 미국, 베트남, 러시아, 멕시코 등 특정 현지 시장만을 위해 출시하기 위해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 자체의 현지화를 극대화하고 있다. 그러나 오리온의 현지화된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는 각 지역에서 수요가 있는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해서 판매하는 일반적 현지화와는 다르다. 현지마다의 서로 다른 수요의 파악과 생산은 철저한 현지화를 통해 극대화하지만 이를 충족시킬 최고 수준의 신제품 개발의 효율성과 속도, 품질, 혁신성은 본사에 위치한 기술개발연구소의 강력한 개발 역량을 기반으로 수행한다. 즉 본사의 강력한 혁신적 연구개발 역량과 각 지역마다의 정확한 수요 파악과 효율적 생산 역량을 양손잡이형으로 동시에 극대화함으로써 현지 개발 역량이 약한 지역에서도 그 지역 소비자들의 독특한 수요 충족의 효과성과 효율성, 속도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양손잡이형 국가별 유통 파트너 관리 전략: 오리온의 멀티-레벨 양손잡이 글로벌 경영은 각 현지별 유통 파트너 관리 전략에서도 강력한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오리온은 각 현지마다의 특수한 상황에 상관없이 전사적으로 모든 유통 파트너에 대해 선금 형태로 미리 현금을 내야 제품을 공급하는 강력한 ‘현금주의’ 정책 등을 펼치면서 재무적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원칙을 철저하게 고수한다. 그러나 현금주의를 사수한다는 원칙하에서 각국 딜러들과의 구체적 거래 방식은 그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방식으로 지속적 파트너십을 유지한다. 이는 중국의 중소 규모 유통점인 ‘경소상’과의 관계 관리, 베트남 현지의 소매 유통점, 영업 트럭 기반 딜러들과의 거래에서도 잘 드러난다. 즉 구체적 유통 파트너 관리 기법은 현지 상황에 따라, 유통 파트너의 유형에 따라 극도로 유연하게 운영하되 현금주의와 같은 대원칙은 전사 차원에서 철저하게 지키는 ‘양손잡이 글로벌 파트너십’ 경영을 실행하는 것이다.
품질과 가격을 멀티-레벨로 동시 극대화하는 양손잡이형 경쟁 전략: 오리온의 멀티-레벨 양손잡이 경쟁력이 가장 돋보이는 것은 무엇보다 제품이다. 오리온은 제품 자체의 품질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이런 고품질에도 불구하고 오리온 제품의 가격은 결코 비싸지 않으며 오히려 일반 대중 소비자들에게도 부담 없을 정도다. 오리온은 어떻게 제품의 품질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면서도 저원가-고품질이라는 상호 모순적인 양손잡이 경쟁력을 달성할 수 있을까? 그 정답은 제품 자체의 품질을 희생하지 않는 대신 제품의 생산과 판매를 둘러싼 다른 모든 비용을 극도로 절감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마케팅도 단순히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대부분의 제과기업과 달리 저비용-고효율의 감성 마케팅을 강조하고 비용이 발생하는 화려한 포장보다는 세련되지만 단순화된 포장으로 효율화를 더한다. 광고홍보도 비용을 투자하기보다는 ‘정(情)·인(仁)·띤(tinh)’ 등과 같은 감성을 활용한다. 또 오리온은 간접비인 일반관리비 등을 극단적으로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는 불필요한 단계나 프로세스를 모두 없애 왔다. 따라서 오리온은 전 세계적 식품업계에서 최고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하고 있다. 오리온은 2019년 이래 지속적으로 매년 16% 이상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유지하고 있는데 국내 경쟁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이 5%대에 그치는 것과 비교해보면 엄청난 차이일 뿐 아니라 제너럴밀즈나 프리토레이 등 글로벌 선도 기업들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다. 이렇게 달성한 비용효율성을 제품품질 혁신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기 때문에 품질과 가격을 동시 극대화하는 양손잡이 경쟁력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지속적 상시 혁신이 오리온 양손잡이 글로벌 전략의 관건
오리온의 양손잡이 글로벌 전략은 최근까지도 극도로 효과적으로 실행되면서 강력한 글로벌 경쟁력의 핵심 기반이 돼 왔다. 이제 관건은 미래에도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해 지속적으로 다양한 양손잡이 경쟁력을 끊임없이 개발해 나가는 상시 혁신 역량의 구축일 것이다. 이미 달성한 경쟁력을 지키는 데 초점을 맞추는 방어적 문화로의 회귀를 철저하게 경계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양손잡이형 경쟁 우위를 만들어내는 상시 혁신이 필수적인 것이다.
지속적 혁신이 없다면 양손잡이형으로 상호 모순적 대안들을 동시에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도 저도 아닌 중간에서 적당히 타협하다 경쟁자들에 조만간 추격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즉 전사의 모든 혁신 역량을 상시 총동원하는 것이 오리온이 가까운 미래에 글로벌 제과 산업의 선두로 도약하는 데 필요한 핵심 요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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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조직이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직이론과 인문 예술 분야 학술지 등 저명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실었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조직위원장과 한국인사조직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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