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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국내 최대 애니메이션 OTT ‘라프텔’의 성장 전략

‘경쟁의 역설’ 공략해 모든 콘텐츠 한곳에
1020 취향 저격 ‘애니 덕후’ 성지 만들어

백상경 | 388호 (2024년 3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만화 같은 이야기다. 세상 모든 만화를 한곳에 모아보겠다는 ‘만화 덕후’들의 꿈이 국내 최대 애니메이션 OTT 플랫폼 ‘라프텔’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이 됐다. 라프텔은 기존 업계의 구조적 한계, 기승을 부린 불법 공유 사이트 탓에 디지털 전환이 더뎠던 애니메이션 온라인 스트리밍 시장에 힘을 집중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버티컬 콘텐츠의 힘, 환경만 제대로 갖춰지면 기꺼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올 ‘정의롭고 당당한 덕후’들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애니메이션 유통 구조의 틈새를 파고들어 경쟁 속에 공멸하던 콘텐츠 프로바이더(CP)들을 하나의 플랫폼에 묶어냈다. 애니메이션의 핵심 고객인 1020세대의 특성을 겨냥해 ‘키치’ 코드 인터랙션 요소를 담은 마케팅을 펼치면서 ‘콘크리트 팬층’을 일궜다. 이 모든 과정을 소수정예 조직으로 추진하며 수익성 역시 확보했다.



해적을 소재로 한 일본의 소년 모험만화 ‘원피스(One Piece)’1 엔 ‘라프텔’이란 섬이 나온다. 작품 이름이기도 한 세계 최고의 보물 원피스가 잠든 곳이자 등장인물들의 목표가 되는 땅이다. 어원이 재밌다. 이 섬에 잠든 미지의 보물을 확인한 작중 핵심 인물이 “참 웃기는 이야기”라고 평가하며 ‘라프텔(Laugh Tale)’이란 이름을 붙였다. 문법을 따지면 어색한 조어지만 적어도 원피스의 세계에서 라프텔은 ‘세상 모든 보물’을 품은 이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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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애니메이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Over The Top) 플랫폼 ‘라프텔(LAFTEL)’의 이름이 바로 여기서 나왔다. 세상 모든 애니메이션을 꾹꾹 눌러 담은 만화의 보물섬을 만들겠다는 포부가 담겼다.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라프텔을 창업한 2014년. 그때만 해도 이들의 꿈은 어원처럼 한번 웃어넘길 이야기에 불과했다. 일반 콘텐츠 분야에선 이미 OTT가 본격적으로 태동하던 시기지만 여전히 애니메이션은 만화 전문 TV 채널 등 레거시 미디어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다른 루트라고 해봐야 IPTV였고 그마저도 내가 가입한 IPTV에 원하는 작품이 올라오지 않으면 감상이 어려웠다. 가능성의 영역이던 온라인은 불법 공유 사이트들이 장악했다. 비정상적인 절차로 최신 인기 애니메이션을 가장 빨리 들여오던 불법 사이트 탓에 시장 전체가 음성화하고 있기도 했다. 당장 ‘애니메이션=돈 안 내고 보는 것’이란 인식이 팽배했다.

라프텔은 이런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고 합법적인 애니메이션의 보고(寶庫)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귀멸의 칼날’ ‘주술회전’ ‘스파이 패밀리’ 등 최신 인기작을 포함해 국내에서 가장 많은 총 3000여 개의 작품을 선보이는 애니메이션 전문 OTT로 자리매김했다. 애플리케이션 하나만 다운로드하면 이 수많은 콘텐츠를 손쉽게 즐길 수 있다. 여러 국내외 OTT 서비스가 존재하지만 적어도 애니메이션 분야만 놓고 본다면 국내에서 라프텔을 능가하는 플랫폼은 없다.2 라프텔의 누적 가입자 수는 약 500만 명에 달한다. 지난해 기준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 Monthly Active Users)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드라마·예능·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를 망라하는 일반 OTT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애니메이션이라는 버티컬 콘텐츠(Vertical Contents)를 앞세워 탄탄한 팬층을 확보했다. 합법적으로 콘텐츠를 즐기는 ‘정의롭고 당당한 덕후’3 들이 꾸준히 쌓이면서 매출은 해마다 상승하고 있다. 2022년 연간 매출은 250억 원을 기록했고, 지난해 매출은 약 3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라프텔이 또 하나 주목받는 지점은 수익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외 OTT 업체 상당수가 무리한 투자와 운영비용 증가, 여기에 반하는 수익성 악화 문제로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국내 OTT인 웨이브, 티빙 등은 수천억 원대 적자를 내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세계 굴지의 OTT인 넷플릭스나 아마존도 인력 감축 등에 나서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반면 라프텔은 수익을 낸다. 확고한 애니메이션 팬층을 바탕으로 매출을 확보하고, 투입 비용은 효율화하면서 국내 OTT 업체로는 유일하게 지난 2019년 BEP(손익분기점) 달성에 성공했다. 박종원 라프텔 대표는 “BEP 달성 이후 영업이익률은 지속적으로 개선돼 지난해엔 약 10% 수준까지 높아진 것으로 잠정 집계하고 있다”며 “영업이익을 늘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며 플랫폼 확장에 힘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라프텔이 애니메이션 OTT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구축하고 불법 콘텐츠를 즐기던 소비자들을 양지로 이끌어 합법적인 시장을 창출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먼저 사업화 측면에선 온라인 전환이라는 미디어 시장의 흐름을 빠르게 포착했고, 자신들이 승부를 걸 수 있는 애니메이션 영역에 집중했다. 여기에 CP 업체들의 경쟁이 낳은 국내 애니메이션 유통시장의 구조의 틈새를 파고들어 플랫폼 사업을 가도에 올렸다. 시장 지배적인 플랫폼이 된 이후에도 CP들과의 협력 관계를 지속하며 다른 OTT가 넘보기 힘든 우위를 유지했다. 마케팅과 콘텐츠 측면에선 타깃 수요층인 1020세대의 특성을 집중 공략해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소수정예 조직을 유지해 고정비용이 급증하는 것을 막고 수평적 문화로 조직의 효율성을 꾸준히 끌어올렸다. 만화 덕후들의 그저 재미있는 얘기 정도로 끝날 수 있었던 꿈을 현실로 바꿔놓은 과정을 DBR이 면밀히 분석했다.


1. 시장의 구조적 문제점에 집중해 독보적인 입지 확보

(1) 데이터 기반 만화 큐레이션의 시작

라프텔의 첫 서비스는 지금과는 조금 달랐다. 이용자의 취향을 분석해 개인에게 맞는 만화와 웹툰, 애니메이션, 라이트노벨4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큐레이션이 주력 서비스였다. 사업 아이템은 라프텔 창업주인 ‘만화 덕후’ 김범준 전 대표의 취향이 반영됐다. 이미 2012년 패션 관련 포털을 창업했다가 처참하게 망한 경험이 있던 김 전 대표는 ‘시장이 원하면서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아이템’을 찾았다. 답은 만화·애니메이션이었다. 만화를 좋아했던 그는 앞으로 만화·애니메이션 시장의 성장에 베팅했다. 불법의 영역에 있던 시장이 양지로 나오고, 합법적으로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사람이 늘면서 서브컬처(Subculture)5 가 대중문화화(化)하면 관련 서비스 시장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고 봤다. 이런 판단을 뒷받침한 건 당시 웹툰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세였다.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란 편견은 옛말이었다. 누구나 손쉽게 모바일로 접근할 수 있는 웹툰 덕분에 만화는 대중들의 삶에 일상적인 콘텐츠가 됐다. 스타 웹툰 작가가 등장하고, 수많은 웹툰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사업의 방향성은 김 전 대표의 전공이자 강점이었던 ‘데이터 분석’과 ‘개인화 서비스’로 초점이 맞춰졌다. 2012년 영화평 기록 및 추천 서비스로 시작한 왓챠(현 왓챠피디아)의 모델에 가깝다. 콘텐츠 범람 속에 독자의 취향을 분석해 딱 맞는 만화를 추천하고, 궁극적으로 콘텐츠를 유통·공급할 수 있다면 충분히 사업이 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렇게 2014년 김 전 대표와 그의 아내인 김남희 전 최고운영책임자(COO), 만화를 좋아하던 연세대 동문 등 5명이 뭉쳐 라프텔을 설립했고, 그해 9월 프로토타입 서비스가 나왔다. 이듬해인 2015년, 빅데이터 플랫폼 연구자이자 현재 라프텔을 이끄는 박종원 대표가 최고기술책임자(CTO)로 합류하면서 3명의 C 레벨 체제하에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됐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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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정식 서비스가 시작됐다. 서비스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했다. 당시 라프텔 큐레이션 서비스의 핵심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취향 분석이었다. 라프텔 회원들은 가입을 할 때 자신이 봤던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 별점을 입력한다. 이 입력값에 비슷한 콘텐츠를 찾는 ‘콘텐츠 기반 필터링’ 기술, 유사한 취향을 가진 사용자들의 행동 패턴을 분석하는 ‘협업 필터링’ 기술을 적용해 최적의 콘텐츠를 추천하는 형태다. 이런 분석에는 필연적으로 빅데이터가 필요한데 이제 막 창업한 라프텔이 이런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을 리 만무했다. 난관에 빠진 라프텔은 서비스 오픈 직전 부랴부랴 부천만화축제로 달려갔다. 만화 덕후들이 모이는 오프라인 행사에서 직접 데이터를 끌어모으기 위해서였다. 행사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음료를 나눠주며 별점 데이터를 하나둘 담았다. 그렇게 쌓은 데이터가 총 1만6000여 건. 충분히 많은 양은 아니지만 이 데이터 덕에 라프텔은 어느 정도 모양을 갖춰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16년 3월, 구글플레이에 대망의 라프텔 앱이 정식 출시됐다. 단시간에 1만 건이 넘는 앱 다운로드 실적을 올리며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별점 평가는 2016년 중순 기준 300만 건을 넘어섰다. 이런 실적을 발판으로 그해 10월 액셀러레이터 회사인 프라이머의 팁스(TIPS, Team Incubator Program for Seed-funding)팀으로 선정돼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


(2) 애니메이션 스트리밍으로 주력 서비스 재정립

“너무 덥다. 옆 건물 강의실 가서 에어컨 쐬고 올래?”

라프텔의 여름은 무더웠다. 라프텔이 처음 둥지를 튼 곳은 연세대 창업지원단 소속의 대학원 건물. 이제 막 시작한 라프텔엔 너무도 고맙고 소중한 공간이었지만 문제는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하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열기를 뿜어내는 작업용 컴퓨터와 서버는 선풍기 정도로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박 대표는 “저도 나름대로 대기업을 다니다 온 사람인데. 당연히 힘들 줄은 알았지만 사무실에 에어컨이 안 나올 땐 정말 당황스러웠다. 동료들과 다 같이 이웃 강의동 건물로 건너가서 바람을 쐬다 오고 그랬다. 처음엔 한 1년이면 흥하든 망하든 결판이 나겠지 했다. 그런데 거의 3년이 되도록 결론이 안 났다. 아이템은 좋고 가능성도 충분한 것 같은데 사업적으로 확 터지질 않았다. 그렇게 학교 내 공간에서 3년 정도를 보냈다. 재밌는 추억이 많이 쌓였지만 그만큼 힘들기도 했던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오랜 시간 라프텔을 고민하게 만든 건 바로 수익성 확보 문제였다. 큐레이션 서비스만으론 도통 돈이 되질 않았다. 추천이 아무리 정확하더라도 정작 추천받은 웹툰 등의 콘텐츠는 다른 플랫폼으로 건너가서 이용했다. 수익은 그 플랫폼에 돌아가지 라프텔에 돌아오는 건 아니었다. 지속가능한 플랫폼이 되려면 결국 확고한 비즈니스 모델(BM)이 필요했다. 치열한 고민이 이어졌다. 답은 분명했다. 큐레이션이란 정체성은 유지하되 플랫폼 안에서 콘텐츠를 곧바로 감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라프텔은 이 시점에서 주력 콘텐츠의 범위도 좁혔다. 만화라는 큰 범주 안에서도 만화책, 웹툰, 애니메이션, 라이트노벨 등 각각의 콘텐츠 특성은 달랐고, 이걸 보는 사람들의 선호도와 행동 패턴도 완전히 달랐다. 한정된 자원에서 최대 성과를 뽑아내려면 좀 더 뾰족한 영역에 집중해야 했다.

결론은 애니메이션이었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경쟁 가능성이다. 네이버나 카카오 등 이미 웹툰 시장은 강자들이 각축전을 펼쳤다. 이들은 포털과의 연계, 대기업 자본력 등 라프텔로선 따라가기 어려운 우위를 갖춘 데다 굵직한 킬러 콘텐츠들도 여럿 보유했다. 신생 플랫폼이 승부수를 띄우기가 쉽지 않았다. 반면 애니메이션 시장은 달랐다. 만화책, 웹툰과 달리 애니메이션은 만화 카테고리 안에서도 좀 더 마니악한 분야로 여겨졌다. 온라인 스트리밍도 활성화하지 않아 지배적인 플레이어도 없었다. 합법 시장, 그리고 온라인에 한정한다면 사실상 무주공산에 가까웠다.7 또 하나 현실적인 이유는 바로 자금 사정이었다. 자본력이 부족한 라프텔엔 콘텐츠 수급에 필요한 자금이 넉넉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만화보다 애니메이션의 수급 비용이 더 저렴했다. 없는 살림에 구색 갖춰 콘텐츠를 채워 넣으려면 애니메이션밖에 답이 없었다. 마지막 이유는 빅데이터에서 나온 믿음이었다. 박 대표는 “라프텔이 축적한 고객들의 평가 데이터가 가리키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도는 다른 콘텐츠 못지않았다. 단지 적절한 공급이 이뤄지지 않았을 뿐이었다”고 말했다.


(3) 국내 유통시장의 구조적 문제점 정조준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은 시대에 뒤처져 있었다. 당시 득세했던 불법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사이트가 합법적인 채널보다 선호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단순히 ‘공짜’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애니메이션 덕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이나 캐릭터가 있다면 관련 굿즈 등에 수십, 수백만 원도 아낌없이 쏟아붓는 소비층이다. 하지만 국내에선 돈을 낼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매우 불편한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콘텐츠가 각종 채널과 플랫폼별로 분산돼 있었기 때문이다. 다소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최고 인기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한곳에서 편리하게 보려면 불법 사이트 외엔 답이 없었다.

당시 국내 이용자들에게 일본 애니메이션이 공급되는 과정은 이랬다. 일본의 유명 제작사에서 작품을 만들면 국내 콘텐츠 프로바이더(CP, Contents Provider) 업체가 비공개 경쟁 입찰을 통해 국내 판권을 사 온다. 이 판권을 가진 CP는 ‘홀드백(holdback)’8 기간 동안 자사의 방송 채널이나 플랫폼을 통해 1차적으로 신작을 송출하고, 이후 IPTV나 웹하드 등을 통해 유료 콘텐츠를 팔았다. 이 과정에서 신작을 볼 사람들이 어느 정도 봤다고 판단되면 구작이 된 작품의 송출권을 또 다른 채널이나 플랫폼 등에 판다. 당시 자체 케이블TV 등의 채널을 보유한 유력 CP들에는 여전히 방송이 주요한 유통경로였다. 여기서 발전한 형태가 IPTV의 단건 결제(TVOD, Transactional Video On Demand) 상품이나 자체 플랫폼·웹하드 등을 통한 기한형 다운로드·스트리밍 서비스였다. 내가 원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시청하기 힘든 TV 채널은 이미 내리막을 걷고 있었다. IPTV는 고품질 영상을 TV로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창구였지만 내가 이용하는 업체에서 제휴한 콘텐츠만 볼 수 있어 한계가 명확했다. 유력한 CP들이 운영하는 자체 플랫폼 역시 불편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서로가 경쟁사인 만큼 자신의 킬러 콘텐츠는 자신의 채널과 플랫폼에서 최대한 독점해야 했다. 인기 콘텐츠를 경쟁사 플랫폼에 넘겨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는 이러한 경쟁 구조와 아무 관계가 없었다. 그저 현지에서 유명한 작품을 무차별적으로 공수해 불법 송출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영상물등급위원회 등 당국의 심사 절차도 무시한 채 불법적인 콘텐츠를 버젓이 유통했다. 합법 콘텐츠는 이곳저곳을 떠돌아야 볼 수 있고, 불법 콘텐츠는 한 군데서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역설이 펼쳐졌다.

라프텔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국내에 유통되는 모든 애니메이션을 가장 빠르고 편리하게 볼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면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를 충분히 제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마침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부상한 넷플릭스 등 구독형 비디오 콘텐츠(SVOD, Subscription Video On Demand) OTT 업체들이 국내 시장도 두드리기 시작했다. 박 대표는 “애니메이션을 웹이나 앱, TV 어디서든 자유롭게 시청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 환경을 구축한다면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는 내부적인 확신이 있었다. 불법 사이트들은 작품 포트폴리오와 공급 속도 측면에서 우위에 있었지만 안정성이나 보안 면에선 취약하다는 분명한 단점이 있었다. 수준 높은 전문가들이 개발한 사이트가 아니기 때문에 사용성도 뒤떨어졌다. 이 부분을 보완한 합법 서비스를 내놓으면 불법 시장을 양성화하고 애니메이션 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울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우리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4) 파편화한 시장, CP 간 경쟁의 중간 지대에서 해법 찾아

고난이 시작됐다. 새로운 서비스로 판을 다시 짜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큐레이션과 스트리밍은 아예 영역이 다른 서비스였다. 큐레이션은 데이터의 축적과 분석 기술이 중요하다. 하지만 스트리밍은 편리한 사용자 인터페이스에서 시작해 대용량 서버 관리, 끊김 없는 동영상 송출 등 다양한 영역에서 고도화한 기술을 요구했다. 비즈니스적인 고민도 더 많이 필요했다. 마케팅의 중요성도 더 커졌다. ‘단순히 써 보니 괜찮더라’ 수준의 입소문을 넘어 실제로 사람들이 돈을 주고 살 만한 콘텐츠를 확보하고 만족스럽게 요리해서 내놔야 했다. 이 준비를 하는 데만 수개월이 걸렸다.

이건 전초전에 불과했다. 좀 더 본질적이고 거대한 암초가 라프텔을 덮쳤다. CP들의 공고한 벽이었다. 독자 채널이나 플랫폼을 갖춘 CP들은 콘텐츠를 선뜻 내놓지 않았다. 라프텔을 경쟁사로 봤기 때문이다. CP들은 생각했다. 라프텔에서 애니메이션을 송출할 순 있다. 그런데 이 경우 IPTV 등 기타 채널에서 근근이 나오던 단건 결제 수익마저 사라져버릴 가능성이 크다고 걱정했다. 플랫폼이 아무리 활성화해도 결국 CP사가 가져갈 돈을 라프텔이 가져갈 뿐 별다른 이익이 되지 않을 것이란 부정적인 시각도 팽배했다. 애니메이션 유통 경험이 없었던 라프텔을 신뢰하지 못한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섣불리 작품을 공급했다가 서비스가 망하면 소중한 영상 데이터만 유출되고, 불필요한 일 처리를 해야 한다는 걱정이 컸다. 라프텔 스스로도 납득할 수밖에 없는 우려였다.

모두의 속이 타들어갔다. 서비스 준비는 다 해놨는데 정작 송출할 콘텐츠를 확보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날이 반복됐다. 박 대표는 “기사나 말로 요약하면 한두 줄이면 끝날 여정이지만 몇 달에 걸쳐서 마음을 졸이고 ‘맨땅에 헤딩’하던 날의 반복이었다. 정말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읍소하는 게 다반사였다. 심지어 ‘구성원들 다 명문 대학 출신이다. 열정과 기술도 있어서 정말 잘할 수 있다. 금융권에서 초기 투자도 받았다’는 식으로 학력까지 동원해 호소를 했다. 그만큼 CP사를 설득하고 허락을 받는 게 쉽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최초의 레퍼런스가 돼준 곳은 A사였다.9 수 주간에 걸친 메일과 방문 공세를 본 A사 대표가 수년 전 자신의 젊은 시절 어려웠던 모습을 떠올려준 덕에 이미 그 회사는 소화한 바 있는 구작 하나를 송출할 수 있도록 허락해줬다. 이 작품이 라프텔에 그야말로 마중물이 됐다. 작품 하나가 생기니 다른 CP사들도 전향적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이걸 발판 삼아 2017년 8월 라프텔은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서비스를 첫 출시한다. 서비스 출시 1년 만에 라프텔은 이용자 수 30만 명을 돌파하며 가능성을 현실로 바꿔갔다. CP들의 관련 매출이 상승 곡선을 그리면서 서로가 윈윈하는 사업 모델이라는 점이 숫자로 입증되기 시작했다.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라프텔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기 신작들의 ‘동시 방영’이었다. 구작을 보는 플랫폼이 아니라 따끈따끈한 신작을 빨리 볼 수 있는 플랫폼이 돼야 했다. CP들의 채널과 라프텔에서 동시에 신작이 방영되는 구조가 아니면 불법 사이트와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라프텔은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집요하게 환기하며 CP들을 설득했다. 사실 통합 플랫폼이 없다는 점은 애니메이션 업계에 몸담은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떠올렸을 문제였다. 하지만 누구도 라프텔처럼 ‘모든 애니메이션을 한곳으로 모으겠다’는 비전을 세우지 못했다. 경쟁사 콘텐츠를 가져올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투입 비용을 고려하면 기존 사업 대비 딱 부러지게 수익성이 높다고 장담하기도 어려웠다. 라프텔은 이 골치 아픈 상황을 타개할 주체가 제3자10 위치에 있으면서 플랫폼 관련 기술력을 보유한 자신들이라고 적극 어필했다. 박 대표는 “어차피 홀드백으로 콘텐츠를 일정 기간 독점해봤자 인기작은 불법 사이트가 먼저 풀어버리기 때문에 의미가 없었다. 유통의 속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려야 했다. 우리에게 빨리 콘텐츠를 넘겨줘야 불법 사이트를 이길 수 있고, 그래야 애니메이션 시장의 파이가 커져서 모두가 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고 말했다.

2018년, 마침내 업계 점유율 70%를 차지하던 1위 CP 업체 애니플러스가 결단을 내렸다. 일부 작품에 한해 동시 방영을 허용했다. 수없이 많은 미팅과 메일 전송 끝에 얻은 성과였다. 이때 라프텔이 얼마나 절박하게 매달렸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일화가 있다. 박 대표는 “아무리 요청해도 원하던 답이 나오지 않아서 경영진을 포함한 너덧 명이 둘러앉아 머리를 맞대고 수기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단순한 읍소가 아니라 시장과 비즈니스에 대한 분석·전망,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조건 등을 꾹꾹 눌러썼다. 확실하게 전달하려고 등기우편을 보냈는데 발송 직후에 애니플러스에서 연락이 오더라. 한번 믿어 보겠다. 일부 작품을 몇 개월간 동시 방영할 수 있게 허용해 테스트를 해 보자는 거였다. 그래서 황급히 우체국으로 달려갔다. 편지를 회수하기 위해서였다. 거기에 무슨 내용이 담겼는지는 우리만 안다. 일단 동시 방영을 해준 시점에선 서로가 굳이 볼 필요가 없는 내용이 담겼다”고 후일담을 남겼다.

플랫폼이 가도에 오르면서 CP들은 전에 없던 OTT 매출을 고정적으로 얻어가기 시작했다. 약간의 행운도 따랐다. 불법 콘텐츠에 대한 단속이 지속적으로 강화되면서 유명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들이 잇달아 폐쇄됐다. 이건 고스란히 라프텔의 ‘퀀텀 점프’ 발판이 됐다. 직전 분기 대비 매출이 100%, 50%가량 폭발적으로 성장한 2019년 1분기, 2021년 1분기11 가 대표적이다. 초대형 불법 사이트들이 문을 닫자 이른바 ‘난민’들이 대거 라프텔에 둥지를 틀었다. 불법 콘텐츠를 보던 이들이 라프텔에서 정식으로 결제하고 합법적으로 작품을 즐겼다. 라프텔의 생각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꾸준한 성장 속에 라프텔은 2021년 5월 마침내 가입자 300만 명, MAU 100만 명을 돌파하는 성과를 거둔다.

라프텔의 사업 성과 확장 가능성을 주목한 투자도 이어졌다. 2018년 카카오벤처스 등으로부터 20억 원12 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시리즈 A 라운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특히 국내 1위 e북 플랫폼 리디(RIDI)가 2019년 8월 라프텔을 전격 인수하면서 라프텔 창업 멤버들은 스타트업 창업자의 목표인 ‘엑시트(exit)’를 달성한다.


(5) CP와의 끈끈한 협력 관계로 경제적 해자 구축

애니메이션 OTT 분야의 선두 주자로서 입지를 다졌지만 라프텔은 여전히 CP와의 상생을 추구한다. 사업 초기 협상력이 바닥을 치던 시점의 불리한 배분 비율을 상호 대화를 통해 개선해 나가는 정도다. 이유가 있다. CP와의 연결고리가 약해질 경우 언제든 다른 OTT가 틈을 비집고 들어올 수 있고, 작품 라인업이 부실해지면 불법 사이트가 다시 기승을 부릴 수 있다. 박 대표는 “서로가 납득하는 정당한 정산 구조 없이는 애써 만든 온라인 합법 애니메이션 시장이 깨져버릴 수 있다. 무리한 협상은 지양한다. 대신 CP 측에서 라프텔이 OTT 시장을 개척한 공로를 인정하며 RS(Revenue Sharing) 조정 시 많은 양해를 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CP들과의 끈끈한 협력 관계는 라프텔이 경제적 해자(Economic Moat)13 를 유지하는 원동력이다. 당장 넷플릭스와 같은 막강한 자본력을 갖춘 OTT조차도 국내에서 라프텔보다 빠르게 최신 콘텐츠를 서비스하지 못하고 있다. 넷플릭스에 애니메이션이 최우선 콘텐츠가 아니라는 점은 감안해야 하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CP사들이 라프텔에 가장 빨리 콘텐츠를 제공하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라프텔은 CP들을 통해 일본에서 가져오는 신작 애니메이션의 90% 이상을 일정 기간 국내에서 독점 방영하고 있다.

최근 라프텔을 인수한 애니플러스14 가 국내 1위 CP라는 점에서 우위는 더욱 공고해졌다. 애니플러스는 라프텔에 이어 지난해 6월엔 애니메이션 유통 경쟁사인 애니맥스코리아를 460억 원에 인수했다. 애니맥스는 ‘귀멸의 칼날’ ‘체인소 맨’ 등 지난해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 판권을 보유한 업계 2위 회사였다. 애니맥스 인수로 기존 70% 수준이던 애니플러스의 일본 애니메이션 신작 확보 점유율은 85% 이상으로 뛰었다. 대원미디어 등 일부 CP를 제외하면 경쟁할 만한 곳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실상 일본 애니메이션 판권 분야의 독점적 국내 사업자인 라프텔 입장에선 보면 이 거대한 애니메이션 콘텐츠 파이프라인이 우군이 된 셈이다.


2. 맞춤형 마케팅·서비스로 잘파세대 사로잡아

주력 상품이 애니메이션이었기에 필연적으로 라프텔의 타깃 고객은 1020 ‘잘파(Z+α)세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마케팅의 초점 역시 잘파세대를 얼마나 사로잡을 수 있느냐에 맞춰졌다. 이들을 위한 맞춤형 광고와 마케팅, 서비스는 라프텔이 탄탄한 ‘콘크리트 고객층’을 확보하는 원동력이 됐다.


(1) ‘의도한 발퀄’ 키치 코드 광고로 1020에 어필


“얘(라프텔)는 ‘모지리(모자란 아이)’야. 우리 상품 좀 모자란데, 그래도 사주지 않겠니?”

실제로 라프텔이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서비스를 론칭할 때 내보냈던 광고 내용이다. 배경은 이렇다. 라프텔은 당초 SVOD를 중심으로 한 완전한 구독 모델을 목표로 삼았다. IPTV식의 TVOD는 불편하고 사용자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많은 비용을 들여 판권을 사 오는 CP들은 모든 콘텐츠를 무차별한 가격에 유통할 수 없었다. 특히 영화에 해당하는 극장판 콘텐츠 등은 TVOD로 최대한 수익을 확보해야 했다. 역으로 소비자 입장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영구적으로 소장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일정 기한이 지나면 시청 목록에서 작품을 빼야 하는 구독형 모델에선 해소해 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 SVOD와 TVOD가 공존하는 형태로 콘텐츠가 공급될 수밖에 없었다.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서비스 초기, 라프텔은 이 상황이 완전하지 않은 ‘반쪽짜리’ 구독 모델이라고 봤다. 그래서 2017년 12월 월정액 시스템 ‘모지리 감상권’을 내놨다. 광고는 오른손잡이 디자이너가 왼손으로 그리고, 문구는 위와 같이 적어서 온라인에 내보냈다.

소위 말해 ‘요즘 감성’이다. 이게 그야말로 ‘터졌다’. 강한빛 CMO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불쌍하다. 모자란 애들 좀 도와주자’는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입소문이 퍼졌다. 평소보다 4배 이상 많은 트래픽을 기록하는 등 갑자기 사용자들이 유입이 됐다. 우리가 보기에도 모자라서 미안한데 앞으로 잘할 테니 한번 믿어달라는 솔직함이 1020세대의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것 같다”고 말했다.

라프텔 마케팅의 중심엔 이런 ‘키치’ 코드가 줄곧 자리 잡고 있다. 일부러 서툰 손으로 그린 그림, 전문적인 툴이 아니라 윈도 그림판 같은 초보적인 툴로 디자인한 광고, 불쌍한 느낌으로 소비자들의 측은지심을 최대한 자극하는 멘트 등을 조합한다. 이른바 ‘의도한 발퀄(손이 아니라 발로 만든 것처럼 낮은 퀄러티)’ 콘텐츠다. 특유의 친근함, 권위적이지 않은 느낌이 잘파세대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는 원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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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맥락에서 이런 마케팅도 했다. “죄송합니다. ×× 사이트(불법 공유 사이트)가 없어져서 난민이 몰려와 서버가 터졌습니다. 한번만 봐주세요. 빨리 고치겠습니다” 식의 사죄 영상을 광고처럼 내놨다. 특정 광고가 입소문을 타거나 불법 사이트 폐쇄로 갑작스럽게 사용자 유입이 급증하면 충분한 서버를 확보하지 못한 라프텔 서버는 곧잘 접속 장애를 일으켰다. 이걸 막으려면 기술적으로 많은 준비를 해놓거나 서버 용량을 늘려야 한다. 어느 쪽이든 많은 비용이 드는 작업이다. 강 CMO는 “거의 한 달에 두 배씩 이용자가 늘어난 적도 있는데 도저히 감당이 안 됐다. 서버가 굉장히 많이 터졌다. 이게 행복한 상황인데 유료 이용자들에겐 또 너무나 죄송한 부분이었다. 당시 사죄하는 게 일상에 가까웠는데 아예 사죄 영상을 콘텐츠로 만들어서 고객들을 달래보자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많이들 양해해주고 응원해주더라”고 말했다.

라프텔은 아예 불법 애니메이션 공유 사이트에 광고를 내보내는 과감한 모습도 보였다. 불법 사이트의 수입원 중 하나가 온라인 배너 광고였는데 이 자리에 당당하게 합법 콘텐츠를 봐달라는 광고를 낸 것이다. 짤막한 광고에서 그림판으로 대충 그린 캐릭터들이 이런 대화를 나누는 식이다. “광고 보면 애니 볼 수 있게 만들어놨는데… 왜 안 쓸까…” “불법 사이트는 그냥 공짜로 보여주는 거라 어쩔 수 없지 않겠어?” “그래두… 우리가 더 잘 만들면 언젠가 라프텔을 써 주겠지?” 이 말에 양심이 찔려 배너를 누르면 라프텔 홈페이지가 열렸다. 박 대표는 “이런 취지였다. ‘법을 어기는 게 좋아서 쓰는 건 아니지? 우리가 잘 만들어 볼 테니 한번 구경해보고 써봐라. 써보고 아니면 다시 불법 사이트로 돌아가도 좋다’는 거였다. 결국 우리의 잠재적인 소비자가 가장 많은 곳에서 어필을 한 셈”이라고 덧붙였다.


(2) 급식·학식 세대 ‘인터랙션 선호 특성’ 저격한 마케팅

라프텔의 마케팅은 10~20대, 이른바 ‘급식·학식 커뮤니티’ 특성에 대한 이해 아래에서 이뤄졌다. 친구 초대, 작품 추천 프로모션이 대표적이다. 사실 전 연령층을 아우르는 여타 OTT는 보통 30일 무료 체험, 이후 자동 결제 같은 형태의 마케팅을 선호한다. 아예 한 달 정도 무료 이용 기간을 주고 서비스를 체험하게 한 이후 슬쩍 자동 결제가 이뤄지면서 구독이 이어지게 만드는 식이다. 귀찮은 걸 싫어하는 30~40대에게 효과적인 방식이다.

라프텔은 달랐다. 초창기 가입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무료 이용 기간을 준 것은 같다. 그런데 기한이 5일 정도로 짧았다. 대신 친구를 초대하면 기간을 3일 연장해줬다. 모바일 게임 등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방식인데 사용자의 적극적인 인터랙션을 유발해 더 많은 사용자를 끌어들이는 전략이다. 블로그나 커뮤니티 등에 자신의 코드를 공유하거나 학교 친구들끼리 서로 친구 추천을 해주며 기간을 연장하는 활동이 활발히 이뤄졌다.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을 퍼뜨리고 싶어 하는 1020세대의 특성을 노린 게 주효했다.

강 CMO는 “3040세대에겐 통하지 않는 방식이다. 이 나이대에선 고작 3일 이용권 하나 받으려고 귀찮게, 또는 내 이미지를 깎으면서 관심 없는 친구를 초대하려 공을 들이지 않는다. 1020세대는 다르다. 이용권이 절실히 필요해서가 아니다. 이들에겐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와 플랫폼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놀이다. 3일을 차곡차곡 모아서 무료 기간을 10년 가까이 채운 구독자도 있었는데 그냥 이 무료 기간을 계속 쌓는 게 재미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특히 10대들의 특징이 있는데 이들은 자기가 재밌게 본 애니메이션을 친구가 진심으로 같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같이 보고 같은 주제로 이야기하며 놀 수 있길 원한다. 그러니 시키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영업’을 한다”고 분석했다.

라프텔이 유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른 OTT의 경우 앱 마켓에 올라오는 사용자 리뷰나 고객 문의에 기계적인 반응을 하는 경우가 많다. ‘고객님의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로 시작하는 ‘복사+붙여넣기’형 답변이 가득하다. 하지만 라프텔은 이걸 하나하나 실제로 읽고 공들여 답변을 한다. 특정 작품이 언제 들어오는지 묻는 질문이 상당수인데 자신들이 실제로 알고 있는 선에서 세심하게 답을 해준다. 누군가 ‘이 앱 좋아요’라는 단순한 평을 남기면 “왜 좋니?”라고 재차 질문을 한다. 불편한 점을 지적하며 고쳐달라는 리뷰엔 “이러이러한 과정을 거쳐 고치는 걸 논의하고 있다”고 답한다. 이런 모습에 ‘라프텔은 이런 것도 답변해준다’는 식의 입소문이 나면서 브랜드 호감도를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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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척만 하는 게 아니라 고객 요청에 맞춰 실제로 서비스를 개선한 부분도 많다. 예를 들면 초성 검색을 도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귀멸의 칼날’ 애니메이션을 찾을 때 ‘ㄱㅁㅇㅋㄴ’만 쳐도 나올 수 있게 했다. 태그 조합 검색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메카닉, 액션 등 여러 태그를 조합해 검색하면 비슷한 콘텐츠들이 여럿 나온다. 반대로 특정 태그를 제외하는 기능도 존재한다. 자신이 보기 싫은 장르의 작품이 화면에 자꾸 나오는데 보이지 않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적용한 요소다.

사용자가 늘어난 지금은 과거만큼 세심한 소통은 어려운 상태다. 하지만 라프텔은 창업 초기부터 도입했던 고객의 목소리(Voice Of Customer) 공동 리뷰를 지금도 유지하며 소통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10여 개의 VOC를 선별해 매주 금요일 오후에 전 직원이 함께 회람한다. 각 질문에 답변을 하기 위해 팀이나 담당자별로 서로의 상황과 의견을 공유하면서 처리 방법을 고민한다. 결과적으로 처리가 안 되는 내용이더라도 일련의 과정에서 처리 못하는 이유가 분명해지고, 이걸 다시 고객에게 공유한다.


3. 신중한 인적자원 관리와 수평적 조직 문화

(1) 1명 충원에 1년씩, 고르고 또 고른다

라프텔이 초창기부터 유지한 또 하나의 기조는 사람을 매우 신중히 뽑는다는 점이다. 라프텔의 채용 정보들을 찾아보면 원하는 인재상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빠른 학습 능력’과 ‘뛰어난 업무 역량’이다. 업무 역량과 관련해선 아예 ‘엄청나게 많은, 중요한 일을 처리한다. 동료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높은 퍼포먼스를 유지해야 하며 과정과 절차보다 뛰어난 결과에 집중한다’고 못 박아 놨다. 뛰어난 실력이 기본 조건인 셈이다. 암묵적인 원칙도 하나 있다. 현재 구성원보다 특출난 역량이 보여야 채용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소통 능력이나 인성까지 매우 깐깐한 조건을 따진다. 불과 40명가량의 소수 정예가 OTT 하나를 운영하고 있는 만큼 사람 하나하나가 매우 소중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라프텔이 국내 OTT 업체 최초로 BEP를 달성한 배경엔 이 같은 신중한 채용 방식이 존재했다. 많은 스타트업이 서비스 확장 시점이나 투자 유치 직후에 직원을 대거 뽑는다. 창업 초기 소수 멤버로 허덕이던 상황을 해소하고 새로운 업무에 적합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런 시도가 좋지 않은 결과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급하게 인력을 수혈하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핏이 맞지 않는 사람을 잘못 뽑아 업무에 차질을 빚거나 채용을 다시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곧잘 발생한다. 채용은 기업의 고정비용을 크게 늘리는 요인이다. 무리하게 덩치를 키울 경우 두고두고 수익성 악화로 고생하는 것은 물론이고 궁극적으로 조직 개편과 인력 효율화라는 숙제를 받아들게 된다.

라프텔은 이 함정을 처음부터 조심스레 피했다. 박 대표는 “OTT는 운영이나 개발 파트 인원이 굉장히 많이 필요한 사업이다. 하지만 아무리 상황이 급해도 실력과 인성, 라프텔에 맞는 코드 모두를 갖고 있지 않으면 그냥 자리를 비워둔다. 채용 과정에 별도로 기한도 두지 않는다. 그래서 한 자리 채울 때 1년씩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원칙을 지키는 이유는 더 뛰어난 사람이 참여하고 싶은 조직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수준 높은 인재 1~2명은 실제로 평범한 사람 4~5명 이상의 기여를 할 수 있다. 이런 인재를 골라내는 것이야말로 스타트업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깐깐한 조건에도 라프텔에 수준 높은 인재가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애니메이션 등 서브컬처 분야 관련 업계에서 라프텔만큼 규모와 인지도가 높은 회사가 드물다는 점이다. 소위 ‘이쪽 일’을 하고 싶다면 라프텔을 우선순위에 놓을 수밖에 없다. 라프텔 구성원들은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인데 나이대와 스타트업 업계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상당히 높은 급여가 책정돼 있기도 하다. 또 하나의 이유는 선순환이다. 라프텔이 연세대 학내 스타트업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고스란히 모교가 인재풀이 될 수 있었다. 박 대표는 “처음부터 실력 있는 사람들 위주로 조직이 구성됐고 여기서 천천히 인재를 늘려가다 보니 자연스레 전체적인 수준이 우상향하는 효과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2) 사내에선 평어가 원칙

라프텔은 창립 이후 지금까지 줄곧 수평적 조직 문화를 유지했다. 수직적이고 경직적인 문화가 업무와 혁신의 속도를 떨어뜨리는 걸 막기 위해서다. 이걸 대표하는 요소가 사내 평어 문화다. 호칭이나 직급을 부르지 않고, 경어도 쓰지 않는다. 모든 직원은 서로를 이름 대신 닉네임으로 부르고, 반말로 소통한다.

수평적 문화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요소는 박 대표의 자리다. 별도의 대표실 없이 직원들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 똑같은 크기의 책상에 앉아 일한다. 아주 약간의 특혜가 있다면 책상의 위치다. 휠체어를 타고도 편하게 드나들 수 있게끔 출입구 바로 앞쪽에 자리를 배치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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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수익원 다각화는 과제… 굿즈·자체 애니메이션·해외시장서 돌파구 찾아

애니메이션의 대중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라프텔의 미래를 밝게 하는 요소다. 지난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대중적인 반향을 일으켰던 ‘최애의 아이’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일본 가수 요아소비가 부른 오프닝 곡은 한국 유튜브 음원 순위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이 음악에서 파생한 ‘챌린지’가 SNS를 가득 채웠다. 이제 유명 연예인들까지 이런 애니메이션의 팬이라는 점을 숨기지 않는다. 박 대표는 “‘진격의 거인’과 ‘귀멸의 칼날’ ‘최애의 아이’를 떠올려 보라. 일반 대중에게까지 인기를 얻은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은 같은데 그 대중성의 크기가 다르다. 최애의 아이는 앞의 두 작품보다 서브컬처 성격이 더 강한데 오히려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 됐다. 애니메이션의 대중성이 커질수록 자연스레 시장의 저변도 더 크고 단단해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렇게 성장을 거듭한 라프텔에도 불안 요소는 있다. 일반적으로 플랫폼 업체들의 수익성은 대개 시장 지배적 사업자 위치를 차지하는 순간 극적으로 뛴다. 압도적인 플랫폼 이용자 수를 기반으로 플랫폼의 재화 공급자들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라프텔의 경우는 상황이 다소 애매하다.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은 한정돼 있고 판권을 따오는 국내 CP 숫자도 20곳 안팎에 불과하다. 시장을 90%가량 점유한 CP 애니플러스는 라프텔의 모회사가 됐다. 애니메이션 시장의 지배적인 OTT 플랫폼으로 올라섰지만 우월한 협상력으로 수익률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이런 점에서 라프텔에 CP와의 상생은 선택이 아니라 불가피한 측면이기도 하다.

사업 다각화 없이는 수익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라프텔이 굿즈 사업을 비롯한 유관 분야 BM을 확장하고 인기 웹툰에 기반한 애니메이션을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이유다. 이러한 도전은 리스크를 동반한다. 상당 규모의 투자가 필요한 만큼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표를 계속 받게 되면 견고했던 라프텔의 수익 구조에도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콘텐츠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선 너무도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기에 더욱 그렇다. 실제로 라프텔은 지금까지 총 17개가량의 라프텔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기대 이상의 호평을 받은 작품도 있지만 전반적인 성적은 아직 아쉬운 수준이다.

박 대표는 “어느 시점까지는 소위 대박을 터뜨리기 어렵다는 걸 알고 시작했다. 자본이나 제작 경험 모두 풍족하지 않다. 하지만 이런 제작 과정에서 시장의 니즈를 찾고 라프텔만의 방법으로 킬러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고민하에 다각도로 도전하는 과정이다. 당장 수익화가 되지 않더라도 경험을 축적하고 그 경험을 발판으로 더 나은 작품을 론칭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좀 더 퀄러티 높은 자체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라프텔이 또 다른 해법으로 주목하는 것은 해외시장이다. 우리나라 문화 콘텐츠와 일본 서브컬처 콘텐츠, 양쪽 모두에 우호적인 동남아시아 지역이 주요 타깃이다. 라프텔은 지난 1월 22일 글로벌 플랫폼을 론칭했는데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6개국에 진출할 계획이다. 이 지역은 라프텔 창업 초기 우리나라와 상황이 비슷하다. 유력한 수입·배급사가 없어 불법 다운로드 사이트가 시장을 잠식했다. 이곳에서 한국의 인기 웹툰 IP를 활용해 영향력 있는 OTT 플랫폼으로 거듭나는 게 목표다.


DBR mini box I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OTT 범람 속 ‘스페셜티 전략’으로 확고한 영역 구축



김용희 오픈루트 전문위원 yh.kim@openroute.kr



라프텔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성공한 스페셜티(Specialty, 전문) 스트리밍 서비스라고 평가할 수 있다. 스페셜티 전략은 스트리밍 및 OTT 시장에 새롭게 등장한 전략이다. 넷플릭스, 디즈니, 티빙(Tving)과 같이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특화된 타깃을 대상으로 콘텐츠를 공급한다. 범용 OTT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객 숫자는 적지만 높은 충성도와 지불 의사를 유지할 수 있다.

이런 라프텔의 전략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되고 있다. 블룸버그의 의뢰로 1000여 명의 미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만일 한 달에 50달러가 주어졌을 때 어떤 스트리밍 서비스를 선택하겠냐고 물었는데 미국 소비자들의 선택은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범용성이 높은 넷플릭스마저도 세대별로 선호도가 다르게 나타났으며 뉴스, 만화, 예능, 스포츠 등 여러 장르의 특화 스트리밍 서비스가 다양하게 선택을 받았다. 라프텔의 스페셜티 전략이 왜 필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문 ICT 조사업체인 안테나(Antenna)의 분석에 따르면 스페셜티 OTT 시장은 일반 OTT에 비해 더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일반 OTT 시장은 연평균 21.1% 성장하는데 스페셜티 OTT는 연평균 37% 성장 중이다. (그림 1) 스페셜티 OTT는 훨씬 다양한 카테고리로 세분화하고 매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스페셜티 OTT가 빠르게 성장하는 건 복수 OTT 서비스 이용이 일반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국내 이용자의 경우 2024년 1월 기준으로 2.3개의 OTT를 쓴다. (그림 2) 미국은 거의 그 2배 수준으로 복수의 서비스를 이용한다. OTT는 전통적인 유료 플랫폼과 달리 상호 보완적인 성격으로 서비스가 구성돼 있다. 예컨대 IPTV와 SO(케이블TV)는 서로 대체재였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것을 선택하지 못했다. 하지만 OTT는 이용자들이 여러 서비스를 복수로 가입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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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트리밍 시장에서 소위 링-펜싱(Ring-fencing) 효과로 이용자들의 불만이 확대되고 있는 점도 라프텔의 성공 사례와 함께 검토해 볼 만하다. 유의미한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한 스트리밍 플랫폼 사업자들의 경쟁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경쟁 심화는 특정 콘텐츠의 권리가 플랫폼별, 국가별로 나누어지는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콘텐츠 제작 스튜디오가 IP의 활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플랫폼에 자사의 IP를 나눠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드라마 ‘옐로우스톤(Yellowstone)’의 경우 시즌에 따라 넷플릭스와 파라마운트로 분산 공급된다. 모든 시리즈를 보기 위해선 두 플랫폼에 모두 가입해야 한다. 이는 이용자들에게 플랫폼 지속 사용에 대한 부담감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주요 스트리밍 사업자들의 막대한 투자도 부작용을 낳는다. 이들은 모든 수요층을 다 포섭하기 위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는데 이는 제작비의 급속한 상승을 불러일으켜 이용 가격을 덩달아 밀어 올리는 소위 ‘스트림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재미있는 현상은 일반 OTT 플랫폼의 다양한 콘텐츠 공급이 오히려 이용자들의 만족도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볼 것이 너무 많아 오히려 볼 것이 없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이 바로 스페셜티 OTT 전략이다. 라프텔의 경우 ‘정의롭고 당당한 덕후’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고객을 명확히 선정하고 적극적인 마케팅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애니메이션에 대한 전문성과 시장에 대한 이해 등을 기반으로 주요한 애니메이션을 확보함으로써 덕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는 특정 장르에 대한 고관여층에 대한 공략을 통해 높은 충성도를 확보하고, 이들이 플랫폼을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동인을 제공한다. 또한 자사 콘텐츠를 전통적인 프로모션 방법으로만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인기 동영상 소개 인플루언서를 적극 활용해 애니메이션의 스토리 일부를 공개하고 링크를 통해 라프텔 이용을 유도하는 전략은 이미 벤치마킹 대상이 될 정도로 좋은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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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라프텔은 콘텐츠를 수급하는 애니플러스와 결합해 애니메이션 콘텐츠에 대한 집중화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CP와의 결합을 통해 수직계열화를 하고 콘텐츠 수급 비용을 절감할 가능성을 열었다. 여기에 CP의 콘텐츠 유통 채널의 확대까지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수평 다각화 전략이라고 판단된다. 이는 글로벌 애니메이션 OTT인 크런치롤의 전략과도 유사하다.

요약하면 라프텔의 전략은 “특정 장르에 집중하고, 고관여 이용자들에게 소구하며, 이를 통해 전문 스트리밍 역할에 집중”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전형적인 스페셜티 OTT 전략이다.

이는 쿠팡플레이의 전략과도 비슷하다. 쿠팡플레이 역시 아주 강력한 코미디 IP인 ‘SNL Korea’와 스포츠 중계를 공급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의 투자(약 1500억 원 수준으로 알려짐)를 통해 높은 화제성을 불러일으켰다. 이 화제성은 고스란히 회원 수 유지 및 수익성 제고로 이어졌다. OTT의 강화는 쿠팡의 로켓와우 멤버십의 ‘가심비’를 충족하는 효과도 있어 쿠팡 전체의 재무적 성과 개선에도 높은 기여를 했다.

라프텔의 지금까지 행보에 대해 제언할 수 있는 사항은 다음과 같다. 먼저 라프텔은 계속해서 양질의 콘텐츠를 수급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고관여 이용자(소위 덕후)는 콘텐츠의 품질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라프텔의 성공 요인이 만족도 높은 품질의 애니메이션 콘텐츠였다면 가장 큰 위협 요인 역시 지속적인 양질의 콘텐츠 수급이다. 더불어 해외 진출과 함께 소위 ‘강한 고리 전략’을 취할 것을 권한다. 넷플릭스가 글로벌로 진출할 때 특정 국가의 가장 약한 통신사와의 협력을 통해 저렴한 진출 전략을 만들었다면 라프텔은 해외 진출을 위해 해당 국가의 가장 강한 플랫폼과 연계해 빠른 이용자 수 확장을 추진해야 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이용자 확보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는 경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이자 오픈루트 연구위원으로 정보통신기술(ICT)과 미디어 분야 전문가다. 미디어와 경영 관련 학회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미디어 정책 관련 각종 연구반과 태스크포스(TF)에서 활동하며, 미디어 산업에 대한 폭넓은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미디어 산업이 미치는 사회·경제 효과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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