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 글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2013년 1∼2월 호에 실린 IMD 전략 실행·정보 관리 교수 도널드 A. 마천드(Donald A. Marchand)와 크랜필드대 정보 시스템 교수 조 페퍼드(Joe Peppard)의 글 ‘Why IT Fumbles Analytics’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 2013 Harvard Business School Publishing Corp
많은 기업들이 조직 내외부에서 수집 가능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통해 통찰력을 얻기 위해 IT 도구에 많은 투자를 하고 앞다퉈 데이터 과학자를 고용한다. 하지만 대부분이 가치 있는 결과를 얻기 위해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 빅데이터, 분석 프로젝트가 IT 프로젝트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둘을 동일하게 취급하기 때문이다.
전사적 자원관리(enterprise resource planning· ERP) 시스템이나 고객관계관리(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CRM) 시스템을 설치하는 경우를 비롯한 전통적인 IT 프로젝트 접근방법은 제 시간에, 계획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예산 범위 내에서 기술을 개발하고 배치하는 것을 중시한다. 전통적인 IT 프로젝트 접근방법하에서는 정보 요구 사항과 기술 사양이 프로세스를 재설계하는 설계 단계에 미리 결정된다. 지금껏 전통적인 IT 프로젝트 접근방법이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즈니스 프로세스 개선을 목표로 삼고 IT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조직 변화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경우라면 이런 접근방법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필자들은 그동안 이런 프로젝트가 효율성 개선, 비용 절감, 생산성 증진에 기여했을 때조차 경영자들이 불만을 느끼는 경우를 숱하게 목격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일단 시스템이 작동되기 시작하면 그 누구도 시스템 내에서 생성되는 정보를 활용해 좀 더 훌륭한 결정을 내리거나 비즈니스의 핵심 측면에 관한 좀 더 심층적인 통찰력(예상치 못했던 통찰력이 될 수도 있다)을 얻기 위한 방법을 찾는 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보험회사가 보험금 청구 처리 프로세스 자동화를 위해 설치한 시스템이 효율성 개선에 커다란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 시스템이 그 누구도 기대하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용도의 정보를 내놓을 수도 있다. 보험회사는 새로운 데이터를 활용해 보험 가입자가 허위로 보험금을 청구했을 가능성을 추정하기 위한 모형을 개발할 수 있다. 또한 보험회사는 운전자의 주행 속도, 코너를 도는 방식, 브레이크 사용 방식, 가속 페달 사용 방식 등에 관한 데이터(자동차에 내장된 센서를 통해 실시간으로 수집되는 정보)를 활용해 책임감 있는 운전자와 상대적으로 책임감이 떨어지는 운전자를 구별하고, 사고 가능성을 평가하고, 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라 보험료를 수정할 수 있다. 하지만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이와 같은 지식을 습득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필자들은 여러 산업에서 활동하는 50개 이상의 국제 조직을 조사하는 등 다각도로 연구에 접근했다. 이 과정에서 빅데이터와 분석 프로젝트를 활용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방법, 즉 기업이 지속적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데이터를 활용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필자들이 찾아낸 새로운 접근방법은 기술 배치(deployment of technology)가 아니라 정보 활용(exploration of information)에 주목한다. 또한 이 접근방법은 정보를 데이터베이스 내에 존재하는 자원(전통적인 IT 시스템을 설계하고 실행할 때 효과적인 관점)으로 여기기보다 사람들이 직접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 존재로 바라본다.
따라서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정보를 생성하고 활용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곧 팀 내에 데이터 공학, 컴퓨터 과학, 수학뿐 아니라 인지 과학과 행동 과학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구성원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분석을 위해 IT 도구를 배치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쉽다. 하지만 IT 도구가 어떤 식으로 활용될지 그 방식을 이해하기는 훨씬 힘들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단계에는 해당 도구를 활용해 향후에 어떤 것을 지원하게 될지, 도구가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데 도움이 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따라서 빅데이터, 분석 프로젝트를 전통적인 대형 IT 프로젝트와 같은 방식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후자의 경우에는 어떤 결과를 내놓아야 할지 미리 정의돼 있고, 어떤 과제를 수행해야 할지 요구사항이 명확하게 제시돼 있으며,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빅데이터, 분석 프로젝트는 훨씬 규모가 작고 진행 기간이 짧은 편이다. 누군가가 감지한 문제나 기회에 대응하기 위해 가동되는 이런 류의 프로젝트는 데이터를 통해 답을 찾게 될 가능성이 있는 질문을 명시하고, 가설을 수립한 다음, 반복적인 실험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정보를 이해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발견의 여정을 진행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다섯 가지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실질적인 사용자를 프로젝트의 중심에 배치하라.
IT 도구와 빅데이터 프로젝트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은 관리자에게 좀 더 신속하게, 좀 더 우수한 정보를 제공하면 관리자가 문제를 해결하고 가치 있는 통찰력을 얻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정보가 제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관리자가 정보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 탓에 정보를 폐기할 수도 있고, 관리자에게 효과적으로 정보를 활용할 만한 인지 능력이 없을 수도 있으며, 관리자 역시 다양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이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관리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데이터를 갖고 일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긴다. 정보 기반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는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하고 실질적인 사용자(정보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를 중심에 둬야 한다. 결론을 내리고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사용자가 데이터를 사용하는 방식, 혹은 사용하지 않는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사용자에게 육감보다는 공식적인 분석에 의존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 또한 정보 기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고객, 공급자, 시장, 제품에 대한 가정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화학제품 제조업체 켐코(ChemCo, 가명)는 이런 식으로 마음가짐을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켐코는 인수를 통해 빠른 속도로 성장했으며 켐코의 신임 CEO는 고객에 대한 일관성 있는 그림을 그려보기로 마음먹었다. 켐코 CEO는 직급을 막론한 모든 관리자와 직원들이 데이터를 활용해 켐코의 비즈니스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고 좀 더 효과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기를 바랐다.
CEO와 경영팀은 데이터를 중시하고 사용 가능한 정보를 만들어내는 것을 ‘일상적인 비즈니스 활동’의 일부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즉각 대규모 CRM 시스템을 구축하면 잘못된 메시지(새로운 시스템이 관리자가 고객 정보를 활용하고 공유하는 방식을 바꿔놓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켐코 CEO와 경영팀은 새로운 프로젝트가 단순한 IT 프로젝트로 비춰질 것을 우려했다. 어느 고위급 관리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직급을 막론한 모든 관리자들이 좀 더 증거 중심적인 방식으로 일하기를 바란다는 점을 명확하게 전달해야만 했다. 관리자들은 명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일을 해야 한다.”
켐코는 먼저 회사 곳곳에서 활동 중인 기존의 데이터 분석 전문가를 한데 모아 여러 개의 정보 지원팀을 꾸렸다. 각 정보 지원팀에 1∼2개의 사업 부문을 할당하고 각 사업 부문의 결정과 정보 요구를 심층적으로 파악한 후 직원들이 데이터에 접근하고 데이터를 활용하는 방식을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을 요청했다. 처음에는 직원들이 고객과 공급업체를 방문할 때마다 정보 지원팀이 따라다녔다. 어떤 정보가 고객 응대 업무와 관련이 있으며, 해당 정보가 어떻게 사용되고, 어떤 곳에서 해당 정보를 사용할 수 없고, 어떤 곳에서 해당 정보가 판매 협상과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거나 방해가 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각 정보 지원팀은 고객 응대 담당 직원들과 함께 워크숍을 진행하며 직원들을 따라다니며 현장에서 배운 내용을 설명하고, 좀 더 개선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방안을 제안하고, 피드백을 수집했다.
정보 지원팀은 워크숍 결과를 토대로 다양한 정보 보고서의 원형을 개발한 후 사업 부문과 협력해 시험에 돌입했다. 정보 지원팀은 정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면 두뇌의 정보 처리가 한결 수월해진다는 사실에 입각해 그래픽과 도표, 화면 레이아웃을 원형에 포함시켰다. 이 실험은 직원들이 정보를 제대로 소화하는지, 직원들이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 결과적으로 직원들이 일을 따내는 데 성공하는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됐다. 켐코는 이 단계에 이르러 직원들의 정보 사용 방식에 대한 심층적인 통찰력을 확보한 후에야 조직 전체에 CRM 시스템을 적용했다.
켐코가 자사의 상황에 걸맞은 맞춤형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다른 기업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켐코는 대부분의 기업들보다 어떤 정보가 수집되고 유지될지, 수집된 정보가 어떻게 사용될지 훨씬 명확하게 이해했다. 또한 켐코의 영업사원들은 시작 단계에서부터 프로젝트에 참여했기 때문에 증거 중심적인 방식으로 일할 필요가 있다는 데 적극 동의했다.
영업 직원과 서비스 직원들이 새로운 정보를 좀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자 관리자들은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수정할 방법을 고민했다. 켐코 CEO는 여러 사업 부문의 영업 관행과 정보 활용 관행을 적극적으로 표준화하는 방안을 장려하는 한편 고객에 대해 공통된 견해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했다. 켐코 CEO는 항상 ‘우리가 이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우리가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인가’ 하고 자문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켐코의 각 부서들은 고객에 대해서 어떤 점을 잘 알지 못하는지, 고객과의 상호 작용을 악화시키고 비즈니스 손실을 초래할 수 있는 영업 관행이 무엇인지 찾아냈다. 고객과의 상호 작용이 개선되자 켐코의 매출도 늘어났다. 또한 매출이 증가하자 영업사원들은 성과 개선에 도움이 될 만한 양질의 고객 정보와 영업 정보를 제공해 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선순환의 고리가 생겨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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