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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의 리더십’ 픽사를 만들었다

에드 캣멀 | 17호 (2008년 9월 Issue 2)
몇 해 전, 영화 제작사 사장 한 사람과 점심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자기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인재를 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구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이후 나는 강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청중에게 그 사장의 의견에 동의하는지를 물어보곤 했다. 항상 그렇듯이 찬성한다는 답이 반, 반대한다는 답이 반이었다.
 
사실 나는 그 사장의 의견에 전적으로 반대하기 때문에 청중의 이런 반응이 놀라웠다. 영화사 사장의 생각은 작품을 만들 때 초기 아이디어가 갖는 중요성을 과대평가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에 기초하고 있었다. 이것은 혁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거대한 위험 요인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픽사는 기술과 예술의 두 가지 면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혁신을 일궈내고 있다. 1990년대 초 픽사는 컴퓨터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 있는 업체로 알려져 있었다. 픽사의 연구개발(R&D)은 1995년 세계 최초로 컴퓨터 애니메이션 장편 영화 ‘토이 스토리’를 내놓으면서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이후 13년 동안 픽사는 ‘벅스 라이프’ ‘토이 스토리 2’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인크레더블’ ‘카’ ‘라따뚜이’ ‘월·E(WALL·E)’ 등 총 여덟 편의 영화를 내놓았고, 모두 큰 성공을 했다. 픽사는 다른 영화 제작사와는 달리 외부에서 대본이나 영화와 관련된 아이디어를 구하지 않았다. 픽사에서 만드는 모든 영화의 스토리·배경·캐릭터는 예술가들로 구성된 픽사 내부의 커뮤니티에서 직접 만들어낸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픽사는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기술적인 한계에 도전했고, 그 결과 10여 개의 특허를 얻어낼 수 있었다.
 
나는 픽사가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만큼 멍청하지 않다. 그러나 픽사가 그동안 운이 좋아서 성공가도를 달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픽사가 성공을 거듭할 수 있었던 까닭은 창의력이 우수한 인재와 위험을 관리하는 데 몇 가지 원칙과 관행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픽사는 말 그대로 하나의 공동체다. 우리는 영속적인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며 ‘인재는 귀한 존재다’와 같은 몇 가지 기본적인 생각을 공유한다. 경영진의 역할은 위험을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가 발생할 경우 회복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것이다. 픽사 내에서는 누구든 두려워하지 않고 진실을 얘기할 수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 동안 세워놓은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며 픽사의 문화를 망쳐놓을 수도 있는 문제점을 찾는다.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픽사의 원칙과 관행이 다른 회사에 이전 가능한 것인지 시험해 볼 기회를 가졌다. 2006년 픽사와 월트디즈니의 합병이 진행된 이후 월트디즈니의 최고경영자(CEO) 밥 아이거는 나와 존 라세터 최고창의력담당자(Chief Creative Officer)를 비롯한 픽사의 고위 간부들에게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부활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부활시키려는 우리의 노력이 성공한 뒤 필자는 지속 가능한 창의력 조직을 구축하는 방법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다른 사람들께도 알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창의성은 뛰어난 개인이 홀로 처리하는 신비로운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작품을 작은 아이디어 하나로 단순화하곤 한다. ‘이 영화는 장난감에 대한 것이야’ 또는 ‘이 영화는 공룡에 대한 것이야’라고 간단히 말한다. 그러나 복잡한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영화를 제작할 때도 창의적인 결과물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각기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이 힘을 합쳐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영화의 경우 영화계 사람들이 ‘하이 콘셉트’라고 부르는 최초 아이디어는 4,5년이 걸리는 길고 지루한 제작 과정의 첫 걸음에 불과하다.
 
한 편의 영화에는 수만 개의 아이디어가 담겨 있다. 문장과 대사, 캐릭터, 세트, 배경, 디자인, 카메라, 위치, 색감, 조명, 속도 등 영화 속의 모든 요소에 아이디어가 반영돼 있다. 영화를 만들 때는 감독 및 제작자와 같은 사람들만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200250여 명으로 이루어진 제작팀의 모든 구성원이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창의성은 조직 내 모든 예술과 기술 부서에서 요구된다. 리더들은 수많은 아이디어 중에서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와 일치하는 아이디어를 골라내는데, 이 작업은 무척 어렵다. 이런 일은 마치 찾고자 하는 대상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거나,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고고학 발굴 과정과도 같다. 그 과정은 매우 두렵기도 하다.
 
우리가 항상 조금이나마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업계의 고객들은 극장을 찾을 때마다 새로운 뭔가를 보고 싶어 한다. 이것은 곧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픽사의 가장 최근작인 ‘월·E’는 쓰레기로 가득 찬 지구에서 사랑에 빠진 로봇 이야기다. 그 전에 내놓은 영화 ‘라따뚜이’는 프랑스에 살면서 요리사를 꿈꾸는 쥐에 관한 영화다. 예기치 못한 아이디어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이러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할 무렵에는 이들이 성공할 지 확신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이 뭔가 확실치 않은 것을 선보여야 하는 일인 만큼 누군가가 내놓은 최초의 아이디어를 채택해 위험을 감수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식으로 행동하려면 우리 중역들은 위험을 회피하거나 최소화하고자 하는 본능을 이겨내야 한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위험한 줄 알면서도 그 길을 간다는 것은 그리 쉬운 결정이 아니다. 영화계를 포함한 여러 사업 부문에서 이런 본능은 새로운 뭔가를 창조해 내기보다 성공 사례를 모방하라고 부추긴다. 이것이 바로 시장에 비슷한 영화가 넘쳐나고 많은 영화의 내용이 그리 좋지 않은 이유다.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내고 싶다면 설사 편하게 느껴지지 않더라도 불확실성을 감내해야 하며, 커다란 위험을 감수했다가 실패하더라도 회복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실패 후에 회복하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일까. 정답은 인재다. 처음에 언급한 영화사 사장이 점심을 먹으면서 내세운 주장과는 달리 인재를 찾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인재를 구하는 것 못지않게 어려운 일은 바로 인재들이 서로 힘을 모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협력을 위해서는 상호 신뢰와 존경이 필요한데, 관리자들이 억지로 신뢰와 존경의 감정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신뢰와 존경의 감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관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신뢰와 존경의 관계를 형성하고, 창의력을 끄집어내는 데 도움이 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뿐이다. 관리자들이 제 역할을 해내면 그 결과로 인재들이 한층 더 성실한 태도로 다른 구성원 및 공동 작업에 다가가며, 모두가 뛰어난 뭔가의 일부가 됐다고 느낀다. 또 이들의 열정과 성과를 모두 합하면 활기찬 공동체가 형성돼 학교를 갓 졸업했거나 다른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훌륭한 인재들을 끌어당길 수 있게 된다. 나는 지금 묘사하는 이 방식이 영화계에 만연해 있는 자유 계약 방식과는 정반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픽사 문화의 뿌리
훌륭한 인재가 뛰어난 아이디어보다 중요하다는 내 확신이 그다지 놀랍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컴퓨터 그래픽 분야의 선두업체에서 뛰어난 인재들과 함께 일하는 행운을 누린 경험이 있다.
 
나의 유타대 대학원 시절 동료 중에는 실리콘 그래픽스와 넷스케이프의 공동 설립자인 짐 클라크, 어도비의 공동 설립자인 존 워녹, 목표 중심 프로그래밍을 개발한 앨런 케이 등이 있다. 우리는 미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 덕에 충분한 연구지원비를 확보해 신선하고 놀라운 아이디어를 교환했으며, 교수는 연구에 어떤 제약도 가하지 않았다.
 
또 뉴욕공대에서 신설한 컴퓨터 애니메이션 실험실을 맡던 당시 필자가 처음 고용한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컴퓨터 페인팅 부문의 혁신을 이루어낸 앨비 레이 스미스이다. 스미스와 함께 일하면서 나보다 똑똑한 사람을 채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던 중 ‘스타워즈’의 조지 루커스 감독이 내게 “영화와 게임 등에 컴퓨터 그래픽을 포함한 디지털 기술을 도입할 계획”이라며 루커스필름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한계를 넘어 새로운 도전을 하는 영화사에서 연구하는 일은 무척 재미있었다. 루커스는 우리가 개발한 기술을 혼자서 독점하려 하지 않았고, 우리가 출판 활동을 하면서 학계와의 인연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그 덕에 나는 당시 디즈니에서 영화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던 존 라세터를 포함해 업계에서 최고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가능성에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픽사는 1986년 독립 기업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했다. 당시 루커스필름의 컴퓨터 부문을 인수한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작하고자 하는 우리의 꿈을 이어가도 좋다고 허락해 주었다. 잡스는 우수한 작품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열망을 든든하게 받쳐주었고, 뛰어난 경영팀을 꾸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픽사가 지금껏 몸담아 온 모든 조직의 가장 우수한 면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픽사에서는 여러 구성원이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수십 년 동안 함께 일하고 있으며,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공동 작업을 즐기고 있다.
 
픽사가 유일하게 위기를 겪은 때는 바로 ‘토이 스토리 2’를 제작할 때다. 그때 일을 계기로 나는 창의력이 뛰어난 조직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방법에 대한 생각을 분명히 하기 시작했다. 픽사는 1996년 두 번째 작품인 ‘벅스 라이프’를 제작하던 중 ‘토이 스토리’의 후속편 작업을 진행하게 됐다. 당시 우리에게는 ‘토이 스토리’ 속편 제작을 시작하기에 충분한 기술 전문가가 있었다. 그러나 실력이 검증된 크리에이티브 전문가들(‘토이 스토리’ 감독 존 라세터, 작가 앤드루 스탠턴, 편집자 리 웅크리치, 지금은 고인이 된 각본 책임자 조 랜프 등) 은 모두 ‘벅스 라이프’ 제작에 참여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는 영화 제작 경험이 전무한 사람들을 모아서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팀을 구성해야만 했다. 사실 우리는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라세터와 스탠턴, 웅크리치, 랜프도 토이 스토리를 제작하기 이전에는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든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픽사에서 제작한 영화를 배급하고 영화 제작에 자금을 지원하던 디즈니는 토이 스토리 2편을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고 가정용 비디오로만 개봉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디즈니는 성공적이었던 영화 캐릭터의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이런 비즈니스 모델을 활용하고 있었다. 극장 개봉 없이 가정용 비디오를 출시하면 그 비용이 저렴하긴 하지만 애니메이션 수준이 떨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영화 제작사에서 수준 차이가 많이 나는 작품을 출시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판단했고, 디즈니도 ‘토이 스토리 2’를 극장에서 개봉하는데 찬성했다. 하지만 크리에이티브 담당팀을 다시 꾸리진 않았으며, 결국 이것이 문제가 됐다.
 
영화 제작 초기에 우리는 영화 스토리를 만화 형식으로 꾸며 놓은 자료인 스토리보드를 제작한 다음 임시로 음악을 깔고 대사를 붙여 보았다. 영화계에서는 이것을 스토리 릴(story reel)이라고 부른다. 1차로 제작된 스토리 릴은 매우 조악했다. 그러나 우리는 뭐가 문제인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사실 모든 제작 과정의 초기에는 많은 문제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후 이런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하면 새로운 버전이 탄생할 때마다 문제가 조금씩 해결된다. ‘토이 스토리 2’의 경우 초기 아이디어 자체는 좋았다. 그러나 애니메이션 제작을 시작할 무렵에도 스토리 릴의 상태가 엉망이었으며 전혀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감독과 제작자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하려 들지 않았다.
 
결국 ‘벅스 라이프’ 제작이 마무리되어 라세터와 스탠턴, 웅크리치, 랜프가 ‘토이 스토리 2’를 담당하게 됐다. 당시의 준비 상황을 생각하면 18개월이라는 기간도 터무니없이 부족했지만 우리에게는 영화를 마무리해야 하는 날까지 고작 8개월의 시간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남은 8개월에 회사의 사활이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관계자들은 놀라운 속도로 일을 진행해 나갔다. 마침내 새로 꾸려진 팀은 ‘토이 스토리 2’를 훌륭하게 마무리해 냈다.
 
라세터를 비롯한 크리에이티브팀 구성원들은 어떻게 영화를 살릴 수 있었던 걸까. 정말로 문제가 된 것은 영화의 핵심 콘셉트가 아니었다. 사실 새로 구성된 크리에이티브팀은 기존의 핵심 콘셉트를 밀고 나갔다.
 
토이 스토리 2’의 줄거리는 주인공인 카우보이 인형 우디가 장난감 수집광에게 납치돼 일본에 있는 장난감 박물관에 보내질 위기에 처하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의 결정적인 순간에 우디는 일본으로 갈지, 탈출을 시도해 주인인 앤디에게 돌아갈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 영화가 픽사와 디즈니의 작품인 만큼 우디가 앤디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어울리는 결론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관객들이 앞으로 펼쳐질 상황을 손쉽게 예측할 수 있다면 영화의 재미가 반감된다. 따라서 관객들이 우디가 예상치 못한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 관건이었다. 첫 번째 크리에이티브팀은 그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라세터와 스탠턴, 웅크리치, 랜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난감들이 느끼고 있을 갈등을 보여 주는 몇 가지 요소를 첨가했다. 그 중 하나는 ‘제시 이야기’였다. 제시는 우디와 함께 일본으로 보내질 카우걸 인형이다. 제시는 일본으로 가기를 원했고, 우디에게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제시가 우디에게 이유를 설명할 때 배경 음악으로 ‘그녀가 나를 사랑했을 때(When she loved me)’라는 감성적인 노래가 흘러나온다. 제시는 한 어린 소녀가 가장 아끼는 인형이었다. 그러나 그 소녀는 나이가 들자 제시를 버렸다. 아이가 성장하고, 삶이 변하고, 이따금씩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관객들은 이런 진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디가 진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바로 이런 점이 관객들을 사로잡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픽사에서 가장 우수한 팀이 이 같은 몇 가지 요소를 첨가한 덕에 스토리가 훨씬 재미있어졌다.
 
토이 스토리 2’는 비평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사업적으로도 대성공이었다. 뿐만 아니라 ‘토이 스토리 2’의 제작 기간은 픽사의 영화제작 역사에서 아주 결정적인 시기이기도 했다. 이 작품을 만드는 동안 픽사는 아이디어보다 인재가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로 구성된 팀에 훌륭한 아이디어를 던져주면 팀원들이 그 아이디어를 망칠 수도 있다. 그러나 평범한 아이디어를 뛰어난 팀에 전해 주면 별 볼일 없는 아이디어를 고쳐 나가거나, 폐기해 버리거나, 새로운 요소를 추가한다.
 
토이 스토리 2’를 제작하는 동안 우리가 얻은 또 다른 교훈은 바로 픽사가 제작하는 모든 영화에 동일한 품질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토이 스토리 2’를 제작할 당시 픽사에서 일한 모든 사람은 작품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감내했다. 우리는 다른 제작을 모두 중단한 채 직원들에게 비인간적일 만큼 오랜 시간 동안 일해 줄 것을 요구했고, 많은 직원이 반복성 긴장 장애를 겪었다. 그렇지만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하면서도 평범하기를 거부한 덕에 우리는 ‘가끔은 훌륭한 작품을 만들고, 때로는 그저 평범한 작품을 만드는 영화 제작사’는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토이 스토리 2’ 덕에 우리의 손이 닿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최고여야 한다는 생각이 픽사의 문화 속에 깊이 자리하게 됐다. 비단 영화뿐 아니라 DVD 제작, 장난감, 우리 영화의 캐릭터와 관련한 각종 소비재에도 이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물론 대다수의 기업 중역들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말로만 훌륭한 인재를 확보할 필요가 있으며, 기준을 높여야 한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훌륭한 인재를 지원하고 하나의 공동체로서 전체가 지니는 가치가 단순히 개개인이 갖고 있는 가치를 더했을 때보다 커질 수 있도록 인재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다. 나는 지금까지 우리가 어떤 작품을 제작하면서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현장의 창의적 인재들에게 권한을 이양
우리는 각 영화를 이끌어가는 창의력 있는 비전은 회사의 경영진이나 개발 부서가 아니라 현장에 있는 창의적 인재들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수한 창의력을 지닌 인재를 발굴한 다음 전폭적인 지지와 자유롭게 일을 진행할 권한을 주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솔직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철학을 지니고 있다.
 
토이 스토리 2’ 제작 과정이 모두 끝난 뒤 우리는 픽사 개발 부서의 담당 업무를 변경했다. 우리는 개발 부서에 영화를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할 것을 요구하는 대신(대부분의 영화사에서 개발 부서는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작은 인큐베이션 팀을 조직하도록 했다. 인큐베이션 팀은 보통 감독 한 명과 작가 한 명, 여러 명의 아티스트와 스토리보드 인력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감독 개개인이 라세터를 비롯한 고위 관계자들에게 자신의 아이디어가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 내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을 줄 정도로 아이디어를 다듬는 것을 도와준다. 개발 부서의 목표는 효율적으로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 같은 초기 단계에서는 각 팀에서 내놓는 결과물이 조악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숱한 문제와 의문점은 있게 마련이다) 그 결과물을 바탕으로 팀의 능력을 평가할 순 없다. 그러나 각 팀의 구성원들이 서로 잘 어울리는지, 서로 힘을 더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가는지를 평가할 수는 있다. 각 팀이 제 기능을 해내고 있는지 살펴볼 책임은 고위 경영진과 개발 부서 모두에게 있다.
 
현장의 창의적 비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우리는 픽사를 ‘실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filmmaker)이 이끌어가는 회사’라고 표현하곤 한다. 픽사에는 실제로 감독과 제작자라는 두 종류의 리더가 있다. 이들은 협력을 통해 영화를 제작하며, 훌륭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뿐 아니라 주어진 시간·예산·인력의 제약 안에서 작업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훌륭한 예술가는 제약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잘 이해한다)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영화를 이끌어가는 두 리더의 결정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이미 결정이 난 사항에 대해 뒤늦은 비난을 하거나 작은 일 하나하나를 간섭하는 경우도 없다.
 

 

우리는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감독과 제작자의 권위를 깎아내리지 않고 가능한 많은 도움을 준다. 그 중 한 가지 방법은 감독이 ‘창의적 두뇌위원회(creative brain trust)’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두뇌위원회는 픽사만의 독특한 영화 제작 과정으로 뒤에서 다시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 두뇌위원회의 조언만으로 충분치 않은 경우에는 새로운 작가나 공동 감독 등 추가 인력을 투입해 새로운 기술을 제공하거나 창의성을 보강해 준다.
 
이런 환경에서 감독이 훌륭한 리더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물론 영화 제작을 담당하는 감독들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방법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는 곧 감독들이 하나로 통합되는 비전, 즉 수천 개의 아이디어를 하나의 영화로 묶어주는 비전을 갖고 있어야 하며 그 비전을 스태프들이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시사항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감독들은 스태프들이 일을 진행하는 방식을 하나하나 알려주지 않더라도 제대로 일을 해낼 수 있도록 모든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설사 아주 작은 일이라 하더라도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모든 관계자에게 영화의 창의성과 관련된 책임을 나눠줘야 한다.
 
훌륭한 감독은 뛰어난 분석 능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스태프들의 분석 능력 및 인생 경험을 잘 활용한다. 뛰어난 감독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누군가 새로운 제안을 하면 그 제안을 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제안을 한 사람이 누구이건, 어디에서 비롯된 의견이건 간에 훌륭한 감독은 스태프들의 노력 하나하나를 높이 평가하며 그 중 최고의 의견을 수용한다.
 
협력 문화
픽사의 성공을 가능케 한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픽사를 다른 영화 제작사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는 바로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직원이 서로를 돕는 문화다. 픽사 직원들은 누구나 다른 직원들이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기꺼이 도와줄 자세가 돼 있다. 이들은 모두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픽사의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두뇌위원회와 매일 진행하는 리뷰 회의다.
 
두뇌위원회는 라세터와 픽사의 감독 여덟 명(스탠턴, 브래드 버드, 피트 닥터, 밥 피터슨, 브렌다 채프먼, 리 웅크리치, 게리 리드스트롬, 브래드 루이스)으로 구성돼 있다. 감독과 제작자는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두뇌위원회를 소집해(두뇌위원회 구성원뿐 아니라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다른 누구라도 회의에 참여시킬 수 있다) 현재 진척 사항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 준다. 그런 다음 회의 참석자들은 약 2시간 동안 영화를 좀 더 괜찮은 작품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에 대해 토론을 한다. 두뇌위원회를 진행할 때에는 자존심 같은 건 버려야 한다. 누구도 상대가 기분 나빠할 것을 염려해서 예의를 차리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참가자가 서로를 신뢰하고 존경하기 때문에 이런 회의 방식은 매우 효과적이다. 영화 제작자들은 영화를 출시한 뒤에 관객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것보다 아직 고칠 수 있는 시간이 있을 때 동료들로부터 문제를 지적받는 것이 훨씬 낫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두뇌위원회의 문제 해결 능력은 놀라운 수준이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두뇌위원회가 한 차례 열린 뒤에는 제작을 담당하고 있는 감독이나 휘하 팀원들이 위원회의 조언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결정한다. 위원회의 조언이라고 해서 무조건 수용할 필요는 없으며, 두뇌위원회가 결정권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두뇌위원회의 의견이 아무런 강제성이 없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언을 제공하더라도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두뇌위원회 구성원들은 자유롭게 전문적인 의견을 얘기할 수 있고, 감독은 편한 마음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위원들의 의견 하나하나를 충분히 고려하게 된다.
 
픽사는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됐다. 예전에 영화 제작 부문의 두뇌위원회 모델을 픽사 내부의 기술 부문에 접목한 적이 있었는데, 예상과 달리 처음에는 두뇌위원회가 제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우리는 분석을 통해 기술 부문의 위원회에 일부 결정권을 부여한 것이 문제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순수하게 동료 입장에서 서로 의견을 전달하는 과정일 뿐”이라고 선언하자 분위기가 바뀌었고, 효율성이 극적으로 개선됐다.
 
두뇌위원회는 토이 스토리를 제작할 당시 처음 구성됐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위기가 발생하자 라세터와 스탠턴, 웅크리치, 랜프 사이에 매우 특별한 관계가 형성됐다. 이 네 명은 모두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전문가이자 상호 보완이 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들은 매우 열띤 토론을 벌이곤 했다. 이들은 서로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그것이 영화 스토리에 관한 지적일 뿐 결코 개인적 감정이 섞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픽사 내부에서 승진하거나 외부에서 영입된 감독들이 두뇌위원회에 합류하게 되어 지금의 규모로 커졌다. 픽사의 두뇌위원회를 한마디로 설명하면 ‘서로 도움이 필요할 때 힘을 모으는 최고 영화제작자들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일일 리뷰 회의에서 픽사 문화의 핵심은 동료 입장에서 함께 모여 협력하는 관행이다. 이 문화는 감독과 제작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픽사의 ‘일일 리뷰 회의’ 과정에는 이런 협력 문화가 잘 반영돼 있다. 일일 리뷰 회의는 긍정적으로 꾸준히 피드백을 주고받는 방식이며, 라세터가 디즈니와 루커스필름 산하의 특수 효과 제작 업체인 인더스트리얼 라이트&매직(ILM)에서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디즈니에서는 일부 고위 간부들만이 영화의 진척 정도를 살펴보는 일일 회의에 참석한다. ILM의 전설적인 시각효과 감독인 데니스 뮤렌은 특수효과를 담당하는 모든 직원을 회의에 참석시켰다.(디즈니에서 퇴사한 이후 루커스필름 컴퓨터 부서에서 필자와 함께 일한 라세터는 ‘피라미드의 공포’에 들어가는 컴퓨터 애니메이션 효과를 진행하는 동안 ILM의 일일 회의에 참석했다)
 
1990년대 초 토이 스토리 제작에 참여할 애니메이션 담당팀을 꾸리면서 라세터는 디즈니 및 ILM에서 익힌 회의 방식을 도입해 픽사의 일일 리뷰 회의를 탄생시켰다. 회의에 참석한 애니메이션 팀원들은 완성되지 않은 애니메이션을 관람하게 되는데, 최종 결정권은 감독에게 있지만 회의 참석자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얘기할 수 있다.
 
이 방식에는 여러 장점이 있다. 우선 제작 담당 스태프들이 진행 중인 작품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에 대한 부담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일일 회의를 진행하는 감독이나 크리에이티브팀 지휘부가 제작에 참여하는 모든 직원에게 동시에 중요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 세 번째, 참가자들이 회의를 통해 뭔가를 배우고 서로를 격려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창의력이 돋보이는 부분은 다른 참가자들을 자극하게 되고, 좀 더 뛰어난 작품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영화 제작이 끝난 뒤에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는 경우가 없다. 일단 제작이 끝나면 그걸로 끝이다. 관객들에게 작품을 선보이기 이전에 가능한 한 훌륭하게 만들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보면 감독이 처음 의도한 바와 다른 작품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매일 회의를 통해 진행 상황을 점검하다 보면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기술+예술=마술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동료로 대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동료로 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후자는 전자보다 훨씬 어렵다. 우선 조직 내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계급 구조가 다른 분야의 직원들을 동료로 대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또 모든 조직에는 스스로 최고라 여기는 부서가 있게 마련이다. 각 부문에서 서로 다른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흔하며, 역할이 다른 부서는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픽사와 같이 창의력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일을 하는 회사에서는 이런 장벽이 뛰어난 결과를 만들어 내는데 방해가 된다. 따라서 이런 장벽을 허물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월트디즈니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조직 내에서 지속적인 변화 또는 개선을 추구하고, 뛰어난 기술과 예술적인 능력이 합쳐질 때 마법과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믿었다. 많은 사람이 디즈니의 초창기에 대해 얘기할 때 ‘예술적인 업적’을 강조한다. 그들은 디즈니의 기술적 혁신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디즈니는 애니메이션에 처음으로 소리와 색상을 입힌 사람이자 애니메이션에 실제와 유사한 움직임을 도입한 사람이며, 애니메이션 제작에 사진 기술을 최초로 응용한 인물이기도 하다. 월트디즈니는 항상 과학과 기술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픽사도 예술과 기술 간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으며, 각 제작 과정에서 좀 더 나은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인다. 라세터는 예술과 기술의 역학관계를 잘 표현해 주는 문장을 만들어냈다. “기술은 예술에 영감을 불어넣고, 예술은 기술에 도전한다.” 우리에게 이 말은 그저 특별할 것 없는 한마디 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나가고 끊임없이 보강해야 할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픽사는 감독과 제작자의 지휘를 따르는 엘리트 중심의 조직이자 모든 사람에게 같은 크기의 능력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믿는 조직이지만, 다음과 같은 원칙을 중요하게 여긴다.
 
누구에게나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이는 곧 조직의 의사결정 계층과 의사소통 구조가 다르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부서의 구성원이건 문제 해결을 위해 도움이 필요한 경우 ‘적합한’ 경로를 통하지 않고서도 다른 부서의 구성원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이는 곧 관리자들이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부서 내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한 소식을 항상 가장 먼저 듣게 되지 않을 수도 있으며, 회의에 참석했다가 깜짝 놀라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이 무척 복잡한 점을 감안하면 의사소통 구조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영화 제작 과정에서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문제들이 나타나곤 한다.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직원들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그들이 상부의 허락을 받을 필요 없이 힘을 더해 직접 난관을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누구라도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진행 중인 작품을 사내에서 공개한다. 우리는 매일 작품 감상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겹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작품에 대한 ‘신선한 시각’을 유지하고, 부서나 직급과 관계없이 사내에 있는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진행 중인 작품을 감상한 모든 사람에게는 어떤 점이 좋았으며 어떤 점이 싫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자세히 적어 e메일로 제작팀에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학계에서 일어나는 혁신 내용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픽사의 테크니컬 아티스트들에게 연구 내용을 출판하고 관련 업계에서 진행하는 콘퍼런스에 참여할 것을 적극 권장한다. 연구 내용을 출판하면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지만 대신 그를 통해 학계와의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다. 학계와의 연계는 지금까지 픽사 연구진이 외부에 유출한 그 어떤 아이디어보다 값어치가 있다. 우리는 학계와의 연계를 통해 뛰어난 인재를 유치할 수 있으며, 사내에서 인재가 그 어떤 아이디어보다 중요하다는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할 수 있다.
 
우리는 각 부서 간의 벽을 허물기 위해 다른 방식으로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중 한 가지가 픽사대(Pixar University)에서 제공하는 사내 교육 과정이다. 픽사대는 직원들이 경력을 쌓아갈 수 있도록 각 업무의 특성에 맞는 교육 과정 및 다른 부서의 업무와 관련된 교차 교육 과정을 제공한다. 여기서 제공하는 선택 교육 과정(필자도 여러 선택 교육 과정을 이수했다)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함께 어울리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을 존중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시나리오 작성, 회화, 조각 등 선택 교육 과정 중 일부는 픽사의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지만 필라테스나 요가 등 업무와 무관한 과정도 있다. 조각 수업 같은 경우 실력을 갈고 닦으려는 세계적인 조각가들뿐 아니라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수업을 듣기도 한다. 픽사대는 모두가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며 다 함께 배우는 것이 즐겁다는 생각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잡스의 작품인 픽사 사옥도 서로 다른 부서에서 근무하는 직원들 간의 교류 증진에 도움을 준다. 대부분의 건물은 특정한 기능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지만 픽사 사옥은 직원들이 오고가면서 자연스럽게 부딪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사옥 중간에는 카페테리아·회의실·화장실·우편함 등이 있는 거대한 홀이 자리 잡고 있다. 건물 구조상 픽사 직원들은 일과 중 여러 차례 홀을 찾을 수밖에 없다. 직원들 간의 자연스런 만남의 증가는 말로 설명하기 힘들 만큼 값진 결과로 이어졌다.
 
성공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면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성장하고 몰락하는 모습은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많은 업체들이 훌륭한 제품을 만들어 내는 인재들로 구성된 경이로운 팀을 꾸렸다. 그들은 최고의 엔지니어와 노련한 경영진을 확보하고 있었으며,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기술의 변화 트렌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많은 업체가 정점에 다다랐을 때 놀라울 만큼 잘못된 결정을 내렸고,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어떻게 그토록 똑똑한 사람들이 회사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뭔가를 완전히 놓치게 됐던 걸까. IT 업체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성공을 거머쥐면 우리도 저들만큼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될까’라며 수차례 자문하던 기억이 난다.
 
성공과 몰락을 차례차례 경험한 IT 업체 종사자 중 필자가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그다지 스스로를 돌아보며 반성하는 걸 좋아하는 부류가 아니었다. 픽사가 독립기업이 됐을 때 필자는 우리는 다를 거라고 맹세했다. 한 조직이 스스로를 제대로 분석하기는 무척 힘이 든다.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불편할 뿐 아니라 힘든 일이기도 하다.
 
회사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현 상황에 안주하려는 마음가짐을 조직적으로 경계하고 문제를 찾아내는 것은 경영진이 직면하는 가장 어려운 문제다. 명확한 가치관, 지속적인 의사소통, 체계적인 사후검토 시스템, 현 상태에 도전할 만한 외부 인력 투입 등으로는 충분치 않다. 직원들이 말로만 회사 가치를 중시하거나, 의사소통을 무시하고 과정을 폄하하거나, 새로 입사한 직원들의 의견이나 제안을 자연스럽게 깎아내리지 않도록 하려면 강력한 리더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강력한 리더십을 구축하기 위해 픽사는 다음과 같은 노력을 하고 있다.
 
사후 점검벅스 라이프’ 제작이 끝난 뒤 처음으로 시행한 사후 점검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사후 점검을 진행한 결과 ‘벅스 라이프’ 때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사후 점검 결과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사후 점검을 통해 좀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내가 깨달은 사실 한 가지는 사람들이 사후 점검 과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긴 하지만, 그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리더들은 당연하게도 사후 점검 과정을 통해 팀 구성원들을 칭찬하려 들었고, 다른 참가자들도 문제점을 지적하기보다 좋은 점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뿐만 아니라 여러 해 동안 한 영화에 매달려 있던 팀원 모두는 새로운 작품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어 했다.
 
다행히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한 몇 가지 간단한 방법이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사후 점검 방식을 다양화하는 것이다. 사후 점검은 원래 교훈을 얻기 위해 만든 과정이다. 반복해서 같은 방식으로 사후 점검을 진행하다 보면 비슷한 교훈을 얻게 되는데, 계속해서 같은 교훈을 얻는 것은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다른 방법은 각 그룹에 ‘다시 반복하고 싶은 것 다섯 가지’와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은 것 다섯 가지’를 적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 간의 균형을 맞추면 안전한 사후 점검 환경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어떤 경우든 사후 점검 과정에서는 많은 양의 데이터를 활용해야 한다. 우리 회사의 경우 창의적인 조직이라는 회사 특성 때문에 조직원들이 우리가 하는 일 중 상당 부분을 측정하거나 분석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옳지 않다. 픽사의 업무 과정 대부분에는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활동 및 결과물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모든 과정의 진행 속도와 재작업 발생률, 특정 업무가 완성된 뒤에 다른 부서에 전달되는지 미완성 상태에서 전달되는지 등을 지속적으로 점검한다. 데이터는 객관적 시각으로 사실을 전달하기 때문에 구성원들 간의 활발한 토론을 가능케 하며, 개인적 생각에서 비롯된 잘못된 가정에 도전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새로운 인재 성공적인 조직은 새로운 시각을 지닌 인재를 영입할 때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한다. 그 중 첫 번째 문제(NHI·Not-Invented-Here 증후군: 외부인 또는 외부 조직에서 구상한 아이디어를 적대시하거나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잘 알려져 있지만 다른 하나(조직에 대한 지나친 외경심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로, 젊은 신규 채용자들에게서 흔히 나타남)는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
 
열린 문화 덕에 다행히도 픽사에서는 첫 번째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일을 진행하는 방식을 지속적으로 변화시키다 보니 기존 인력들이 외부에서 들어온 새로운 인재를 상대적으로 덜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됐다. 픽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근사한 아이디어 제안이나 능력 있는 사람 소개 등으로) 몇몇 우수한 외부 인사들도 픽사 직원들로부터 많은 환영을 받았다. 외부에서 영입되어 픽사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로는 ‘인크레더블’과 ‘라따뚜이’를 감독한 브래드 버드, 수년간 ILM을 이끌다가 픽사로 옮긴 다음 ‘월·E’의 제작자 및 영화 제작 담당 부사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짐 모리스, 특수효과 전문 제작사 리듬&휴의 CEO를 지낸 경력이 있으며 현재 픽사의 제작 과정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리처드 홀랜더 등이 있다.
 
픽사가 직면한 심각한 문제는 새로 영입한 젊은 인재들이 자신감을 갖고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자는 신규 채용자를 위한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해 그 동안 픽사가 저지른 실수와 실수를 통해 얻은 교훈에 대해 강연했다. 이런 강연을 준비한 의도는 픽사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란 사실을 알리고, 누구라도 픽사의 진행 방식에 의문이 생기면 기꺼이 질문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픽사가 그 동안 성공을 거두어왔다고 해서 픽사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나는 20년 동안 세계 최초로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드는 꿈을 좇아왔다. 솔직히 말해 ‘토이 스토리’를 통해 그 목표를 실현한 다음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잃었었다. 그러던 중 그 무엇보다 재미있는 일을 발견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영화 제작을 가능케 하는 특별한 환경 조성이었다. 라세터와 함께 깊이와 신념이 있으며, 계속해서 마법을 만들어내기 위한 힘을 지켜 주고, 진실을 찾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영화 제작사를 만드는 것이 새로운 목표가 됐다. 픽사와 디즈니의 합병 이후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되살려 놓는 것 또한 우리의 목표에 추가됐다. 우리가 픽사에서 만들어낸 원칙과 접근방식이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변화시키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매우 유쾌한 일이다. 라세터와 나, 우리와 함께 픽사를 설립하고 키운 친구들이 모두 사라지고 한참이 지난 뒤에도 픽사와 디즈니가 세계 문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계속해서 제작하는지가 우리의 목표를 달성했는지를 평가하는 궁극적인 잣대가 될 것이다.
 
번역 김현정 jamkurogi@hotmail.com
 
에드 캣멀은 픽사의 공동 설립자이며, 픽사와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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