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영화 제작사 사장 한 사람과 점심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자기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인재를 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구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이후 나는 강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청중에게 그 사장의 의견에 동의하는지를 물어보곤 했다. 항상 그렇듯이 찬성한다는 답이 반, 반대한다는 답이 반이었다.
사실 나는 그 사장의 의견에 전적으로 반대하기 때문에 청중의 이런 반응이 놀라웠다. 영화사 사장의 생각은 작품을 만들 때 초기 아이디어가 갖는 중요성을 과대평가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에 기초하고 있었다. 이것은 혁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거대한 위험 요인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픽사는 기술과 예술의 두 가지 면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혁신을 일궈내고 있다. 1990년대 초 픽사는 컴퓨터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 있는 업체로 알려져 있었다. 픽사의 연구개발(R&D)은 1995년 세계 최초로 컴퓨터 애니메이션 장편 영화 ‘토이 스토리’를 내놓으면서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이후 13년 동안 픽사는 ‘벅스 라이프’ ‘토이 스토리 2’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인크레더블’ ‘카’ ‘라따뚜이’ ‘월·E(WALL·E)’ 등 총 여덟 편의 영화를 내놓았고, 모두 큰 성공을 했다. 픽사는 다른 영화 제작사와는 달리 외부에서 대본이나 영화와 관련된 아이디어를 구하지 않았다. 픽사에서 만드는 모든 영화의 스토리·배경·캐릭터는 예술가들로 구성된 픽사 내부의 커뮤니티에서 직접 만들어낸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픽사는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기술적인 한계에 도전했고, 그 결과 10여 개의 특허를 얻어낼 수 있었다.
나는 픽사가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만큼 멍청하지 않다. 그러나 픽사가 그동안 운이 좋아서 성공가도를 달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픽사가 성공을 거듭할 수 있었던 까닭은 창의력이 우수한 인재와 위험을 관리하는 데 몇 가지 원칙과 관행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픽사는 말 그대로 하나의 공동체다. 우리는 영속적인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며 ‘인재는 귀한 존재다’와 같은 몇 가지 기본적인 생각을 공유한다. 경영진의 역할은 위험을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가 발생할 경우 회복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것이다. 픽사 내에서는 누구든 두려워하지 않고 진실을 얘기할 수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 동안 세워놓은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며 픽사의 문화를 망쳐놓을 수도 있는 문제점을 찾는다.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픽사의 원칙과 관행이 다른 회사에 이전 가능한 것인지 시험해 볼 기회를 가졌다. 2006년 픽사와 월트디즈니의 합병이 진행된 이후 월트디즈니의 최고경영자(CEO) 밥 아이거는 나와 존 라세터 최고창의력담당자(Chief Creative Officer)를 비롯한 픽사의 고위 간부들에게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부활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부활시키려는 우리의 노력이 성공한 뒤 필자는 지속 가능한 창의력 조직을 구축하는 방법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다른 사람들께도 알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창의성은 뛰어난 개인이 홀로 처리하는 신비로운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작품을 작은 아이디어 하나로 단순화하곤 한다. ‘이 영화는 장난감에 대한 것이야’ 또는 ‘이 영화는 공룡에 대한 것이야’라고 간단히 말한다. 그러나 복잡한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영화를 제작할 때도 창의적인 결과물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각기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이 힘을 합쳐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영화의 경우 영화계 사람들이 ‘하이 콘셉트’라고 부르는 최초 아이디어는 4,5년이 걸리는 길고 지루한 제작 과정의 첫 걸음에 불과하다.
한 편의 영화에는 수만 개의 아이디어가 담겨 있다. 문장과 대사, 캐릭터, 세트, 배경, 디자인, 카메라, 위치, 색감, 조명, 속도 등 영화 속의 모든 요소에 아이디어가 반영돼 있다. 영화를 만들 때는 감독 및 제작자와 같은 사람들만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200∼250여 명으로 이루어진 제작팀의 모든 구성원이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창의성은 조직 내 모든 예술과 기술 부서에서 요구된다. 리더들은 수많은 아이디어 중에서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와 일치하는 아이디어를 골라내는데, 이 작업은 무척 어렵다. 이런 일은 마치 찾고자 하는 대상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거나,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고고학 발굴 과정과도 같다. 그 과정은 매우 두렵기도 하다.
우리가 항상 조금이나마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업계의 고객들은 극장을 찾을 때마다 새로운 뭔가를 보고 싶어 한다. 이것은 곧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픽사의 가장 최근작인 ‘월·E’는 쓰레기로 가득 찬 지구에서 사랑에 빠진 로봇 이야기다. 그 전에 내놓은 영화 ‘라따뚜이’는 프랑스에 살면서 요리사를 꿈꾸는 쥐에 관한 영화다. 예기치 못한 아이디어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이러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할 무렵에는 이들이 성공할 지 확신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이 뭔가 확실치 않은 것을 선보여야 하는 일인 만큼 누군가가 내놓은 최초의 아이디어를 채택해 위험을 감수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