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경영인’ 잭 웰치가 남긴 것

평가 엇갈리는 웰치式 경영은 ‘시대적 산물’

293호 (2020년 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1981년 GE 역사상 최연소 회장에 오른 잭 웰치. 그는 GE가 전통적으로 이어왔던 강력한 경영자가 주도하는 모델에 1980∼1990년대 미국 자본시장이 요구하는 ‘사업 재편과 구조조정’을 받아들임으로써 무려 20년 동안 기업 권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웰치식 경영은 당시 GE가 처한 상황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시대적 산물이라는 점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기업 생태계, 특히 자본시장이 바라는 회사와 경영자의 모습에 부합해 그 정당성을 확보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승자독식의 기업 경쟁, 다수의 대중이 기계와 컴퓨터에 일을 뺏기는 21세기의 사회상은 웰치가 살았던 시대와는 다른 모습이다. 달라진 세상은 변화된 시대의 요구에 맞는 새로운 기업 권력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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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경영인’ 잠들다

2020년 3월1일, 잭 웰치(Jack Welch) 전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언론의 경제면에선 여전히 관심 뉴스로 다뤄지지만 세상에 요란한 일이 많아서인지 반응은 그리 크지 않다. 어느새 학생들이나 젊은 직장인들에겐 낯선 이름이 된 것도 사실이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과정에서 GE의 워크아웃(Workout)과 식스시그마(Six-Sigma)를 경전 삼아 따르던 시절과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GE가 하는 일이면 무조건 선진 경영이라 여기던 것이 벌써 20년 전의 일이고, 그동안 세상이 달라져서 그의 냉혹한 사업 재편과 구조조정 방식이 이제는 원망의 대상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대단한 줄만 알았던 GE도 예전만 못해서 구글, 아마존, 애플 같은 새로운 강자들은 물론 삼성전자보다도 나을 게 없다는 싸늘한 현실도 있다. 남들에게선 피눈물을 짜내는 동안 정작 본인은 막대한 퇴직 보수를 챙겼다는 인식도 그와 GE에 덧입혀진 신화를 일부 벗겨냈을 수 있다.

그럼에도 그가 ‘세기의 경영인’으로 불리며 GE의 신화를 이끌어냈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다. 20년의 재임기간 동안 GE의 매출은 연 270억 달러(1981년)에서 연 1300억 달러(2000년)로, 기업가치는 130억 달러에서 3900억 달러로 늘었다. 미국의 산업경쟁력 하락을 걱정하던 시대에 연간 8%의 외형 성장과 연간 수익률 23%의 기록을 남긴 것이다. 이 글에서는 잭 웰치 신화에 담긴 경영의 논점들을 몇 가지로 나눠 생각해 보겠다.

1. 경영자와 자본시장

세상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의 기업이 있다. 첫째는 ‘내 회사 내 맘대로 경영하는’ 개인 기업이다. 창업 기업이나 소규모 기업에서 흔한 형태지만 세계적 곡물 메이저인 카길(Cargill)과 같이 증시상장(IPO)을 피하고 폐쇄적 소유구조를 유지하는 경우도 많다. 둘째는 투자자가 직접 경영을 주도하는 경우다. 사모펀드(PEF)가 회사를 인수해 경영자를 선임하고 교체하는 사례가 여기에 해당되는데,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 경영권을 뺏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셋째는 확고한 입지를 가진 경영자가 투자자와 다른 이해관계자들을 주도하는 모델인데, GE의 전통적 경영 방식이 여기에 해당된다. 특히 웰치의 경영은 GE가 전통적으로 이어온 ‘경영자가 주도하는 기업’의 틀에 1980∼1990년대 미국의 자본시장이 요구하는 ‘사업 재편과 구조조정’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새로운 성공 모델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DBR mini box 참고)

그가 GE의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해 입지를 다져갔던 1980년대 전반기, 미국의 주요 대기업들은 일본의 공세에 밀리고 아시아 신흥국들의 추격을 걱정하는 상황에 있었다. 현장과 유리된 관료화된 경영 체제에서 쌓여가는 비효율, 그럼에도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기업 권력을 누리는 경영자들의 실상이 드러나면서 다양한 투자자 소송과 적대적 M&A가 이어졌다. 하지만 기업 권력에 대한 시장의 견제는 여전히 한계가 있었다. 웰치는 과감한 사업 재편과 구조조정으로 시장의 신뢰를 얻고, 나아가 1980년대 후반부터는 경영 체제 전반의 혁신과 사업 확대에 나섰다. 적극적인 해외 사업 개발도 진행했다. 이어 1990년대에는 식스시그마를 내세워 말단 사업 현장까지 혁신의 대상으로 삼는 한편, 금융을 비롯한 서비스를 주력사업으로 키우고 미래 세대의 경영자를 선발하고 키우는 체제를 다듬었다.

웰치가 재임한 20년 동안 GE의 성과지표는 시장의 기대를 안정적으로 충족시켰고, 후계자 선정을 둘러싼 실적 경쟁과 세상의 관심은 그의 입지를 더욱 공고하게 받쳐줬다. 방만하고 무능한 기업 권력, 떨어져 가는 미국의 위상에 짜증 나던 자본시장과 일반 대중에게 GE와 웰치는 ‘세기의 성공사례’가 됐고, 적극적인 스타 마케팅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와 구조조정을 겪으며 새로운 성공 모델을 찾던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GE의 사례는 절대 진리의 경전으로 여겨졌다. 특히 자본시장과 전문 경영자의 역할을 개혁의 방향으로 삼던 김대중 정부에는 더없이 반가운 일이었는데 덕분에 변방의 작은 사업 단위인 GE코리아가 난데없이 기업 개혁의 상징이 되고 몇몇 임원은 그 전도사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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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구조조정과 워크아웃

웰치의 경영은 (1) ‘업계 1위 혹은 2위가 아니면 정리하는’ 고강도 구조조정, (2) ‘워크아웃’이라 불리는 내부 혁신에 이은 사업 확대, (3) ‘식스시그마’로 상징되는 경영 현장의 혁신과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 (4)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하는 경영자 선발 및 보상 체제로 요약된다.

1960년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직후 GE에 입사한 웰치는 입사 초기 현장의 비효율과 숨 막히는 관료주의에 실망해 종종 퇴사를 결심하곤 했다. 그러던 중 1973년 취임한 당대의 거물 CEO 레그 존스(Reg Jones)에게 발탁돼 사업부문장, 전략계획실장 등 고속 승진을 거듭하다 1981년, CEO 자리를 물려받는다. 웰치가 취임한 당시, GE가 과연 위기 상황이었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리지만 1960년대 고속성장기에 형성된 방만하고 복잡한 사업구조와 이를 운영하는 관리 체제에 대해 시장은 서서히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1

취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업계 1위 혹은 2위 아니면 정리”를 내걸고 과감한 구조조정에 나서는 한편, 관료화된 전략 계획과 통제를 대폭 간소화했다.2 이 과정에서 ‘중성자탄 잭(Neutron Jack)’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데, 건물만 남기고 사람은 다 없어진다는 뜻이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워크아웃이라 불리는 내부 혁신과 사업 재편에 나섰다. 구조조정으로 하드웨어를 정비한 데 이어서 소프트웨어를 바꾼 것인데, 현장 중심의 빠른 협의와 의사결정이 강조됐다. 또한 비효율적 요소를 찾아 제거하고 그 사례를 공유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구조조정과 사업 재편으로 확보된 현금은 신사업 개발과 인수, 해외 사업 개발에 투입됐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자본시장의 호응을 얻어서 웰치 취임 후 10년간 매출과 이익은 2배가 채 안 되는 수준으로 성장했지만 주가는 4∼6배가량 점프했다. 원래 자본시장은 사업 재편과 구조조정을 선호한다. 경영진이 기존의 이해관계를 버리고 (특히 노조의 반발을 뚫고) 투자자의 이익에 집중하겠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웰치는 GE의 방만하고 복잡한 사업구조에 대해 시장의 불만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경영자가 주도해 시장이 원하는 변화를 만들어냈다. 회사의 실상을 속속들이 알기 어려운 투자자들에게 ‘업계 1위 혹은 2위’ ‘중성자탄’ 같은 말은 ‘시너지’ ‘잠재력’ 같은 애매한 표현보다 훨씬 호소력이 있었다.


DBR mini box 자본시장 vs. 경영자

주식 투자자나 채권자는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자금을 투입한 기업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특히 주식은 성격상 ‘주인’의 권한과 책임을 갖기 때문에 주주총회에서 주요 현안을 결정하고, 이사회에 상시적 조언과 감독을 위임한다. 남의 돈을 쓰면 그 말도 들어야 하지만 돈 준 사람과 갖다 쓴 사람의 이해관계는 다르다. 이른바 ‘대리인 이론(Agency Theory)’이다.

사업을 위해 자본시장의 힘을 빌리지만 반대로 ‘내 회사 내 맘대로’ 경영하기 위해 증시상장이나 사업 확대를 피하는 사례도 있다. 이처럼 투자자와 경영자는 첨예한 긴장 관계가 불가피하다. 하버드대 법대의 마크 로(Mark J. Roe) 교수는 1994년 발간한 저서 『Strong Managers, Weak Owners』에서 미국 경제의 특징을 ‘강력한 경영자 vs. 약한 투자자’로 정의했다. 경영자가 자본시장의 통제를 받지 않고 기업 권력을 누리는 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이는 미국의 산업화와 자본시장 제도의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됐다.

경제사학자 알프레드 챈들러(Alfred D. Chandler)는 19세기 말∼20세기 전반 미국 경제의 산업화에 대해 ‘혁신적 경영자들이 자본시장과 이해관계자들을 이끌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만들어낸 결과’로 설명했다. 이와 같은 ‘경영자 자본주의(managerial capitalism)’의 형성 과정에서 대규모의 자본이 동원되는 철강, 화학, 조선 등의 사업에선 분산된 다수의 투자자가 제한된 영향력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JP모건(J.P. Morgan)과 같은 유력한 금융가들의 역할도 있었고, 통제되지 않는 기업 권력에 대한 법률적 대응도 이어졌다. 하지만 투자자들 사이의 ‘공모’가 시세조종으로 거품을 만들고 대규모 공황으로 이어졌던 역사적 경험은 투자자들의 협력을 제약하는 법제도를 낳았기에 경영자에 대한 통제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 결과, 방만한 투자로 기업 권력을 키우고 노조와 이해관계자들을 선심정책으로 무마하며 그들의 제국(empire)을 키우는 사례들이 나타나게 됐다. 투자자들은 위임장을 확보하고 차입금을 동원하는 LBO(Leveraged Buyout, 차입 매수)와 같은 방식으로 경영자를 바꾸고 사업 재편과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1980년대 중반 이반 보에스키(Ivan Boesky) 사건처럼 투자금 회수 과정에서 벌어지는 시세조종 스캔들이 문제로 부각되면서 다시 브레이크가 걸리게 됐다. 투자펀드들이 주도하는 ‘피눈물 나는 구조조정’에 대한 사회적 반감도 배경으로 작용한 면이 있다. 워런 버핏 (Warren Buffet)같이 이사회에 적극 개입해서 주주 의견을 반영하는 주주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는 일종의 타협이라 할 수 있다.

웰치는 자본시장이 기업 권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는 시점에서 GE를 맡았고, 적극적 사업 재편과 구조조정을 통해 시장의 신뢰를 얻고 입지를 키워갔다.



3. 식스시그마와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

임기 후반인 1990년대, 웰치는 GE의 문화와 프로세스를 바꾸고 미래를 위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일에 집중했다. 사업과 업무의 경계를 허무는 발상의 전환과 함께 현상에 안주하지 않는 더욱 과감한 목표를 요구하던 그는 식스시그마를 통해 말단 경영 현장에까지 혁신의 수술칼을 댔다.

원래 식스시그마는 생산과 업무 과정의 혁신을 통해 ‘어쩔 수 없는 오류’의 폭을 줄여가는 통계적 품질관리의 수단으로, 일본 기업의 전사적 품질관리(TQC)나 한국의 ‘공장 새마을운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웰치는 여기에 구조조정과 보상을 연결해서 중역이든, 현장 근로자든 어느 한구석 숨을 곳이 없는 경쟁으로 내몰았다. 상위 10% 성과자에게는 보너스와 스톡옵션을 주고 하위 성과자 10%는 잘라내는 방식이다.

직장을 ‘배틀로얄’과 같은 생존게임의 장으로 만들면 부작용이 따른다. 조직 전반에 피로와 불만이 번지고 평가 권력을 쥔 관리 부문이 득세하는 한편, 부문들 사이의 협력과 배려가 사라져 버린다. 웰치도 당연히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권력자가 끝까지 조직을 틀어쥐는 방법으로 이보다 더 나은 대안이 있었을까?

사람들은 ‘잭 웰치’라고 하면 구조조정을 떠올리지만 그의 임기 중(특히 1980년대 말 이후) GE는 M&A와 신사업 개발을 통해 영역을 넓혔다. 1990년대 GE는 서비스 분야의 중요성을 천명하고 특히 금융 서비스 분야를 크게 확대했다. 도요타가 자동차 부품과 정비, 금융 서비스로 돈을 벌듯이 GE로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도였지만 처음 의도와 달리 사업은 소비자 금융 전반으로 확장됐고 성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웰치가 퇴임한 후 GE의 금융사업에서는 무리한 실적 압박에서 비롯된 반칙들이 드러나고 재무적 건전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금융당국의 정밀 감독에 놓이다 대규모 사업축소(slim-down)를 맞게 된다. 그의 임기 말에 추진됐던 디지털 경제에 대한 대응과 해외 진출 역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런 기록들은 웰치 경영의 어두운 면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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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후계 경영자 선발과 보상 체제

GE는 사업안이 선별되면서 그 일을 맡은 경영자가 더 큰 역할과 보상을 얻게 되는 대기업형 자원배분의 전형적 사례다. 기업 구석구석을 훤히 아는 창업 경영자가 자신이 키운 (속을 훤히 아는) 사람들을 곳곳에 배치해서 뜻대로 움직이는 ‘창업 경영’ 모델과 달리 크고 복잡한 대기업에서 사업 단위별로 자원을 배분하고 성과를 확인하는 데 적합한 방식이다.

이는 회사가 힘을 모을 사업을 선택함과 동시에 해당 사업을 맡은 경영자를 가려내어 키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장 눈에 띄기 위해 화려한 프로젝트를 벌여서 거품만 잔뜩 만들고 그 부담은 회사가 떠안게 되는 부작용도 있다. 실제로 GE는 구조조정 시기 적용했던 ‘업계 1위 혹은 2위 사업에 집중’ 기준을 ‘투자수익률 10% 이상 사업을 찾으라’는 공격적 방향으로 바꾼 결과 많은 실패 사례를 남겼다고 한다.

우리에겐 대주주 일가와의 인연과 충성의 기록으로 자리를 얻고 지키는 한국식 경영에 대한 반감 때문에 GE의 성과주의가 참신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지만 사실 프로젝트의 배분이나 평가, 사업 단위의 합병과 분할에는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사업의 논리를 넘어 측근을 키워서 기업 권력을 움켜쥐는 정치의 그림자도 엿보인다. 대규모 구조조정에 이은 사업 확대와 이에 연결된 묵직한 성과보수, 다른 한편에서 펼쳐지는 가혹한 생존 게임은 경영 혁신의 맨얼굴이다. 하지만 여기엔 체제를 흔들어 권력을 키우고 밑바닥까지 장악해가는 통치술의 흔적도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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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후보군을 가린 후 더 큰 기회를 부여하고 검증해서 후계자를 키워냈다는 그의 경영권 승계도 끝없는 실적 경쟁과 충성 게임을 통해 자신의 지배력을 유지한 고도의 통치술로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웰치의 치밀한 계산일까, 아니면 그 자신도 살아남고자 영혼까지 쥐어짠 결과일까? 퇴임 후 권력의 갑옷을 벗은 그의 다소 산만한 행보를 보면 혹시 후자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국내에도 유명한 GE의 크로톤빌(Crotonville) 연수원은 이런 생존 게임의 과정에서 의지를 다지는 ‘느낌표’와 돌아보며 생각하는 ‘쉼표’의 역할을 했다. 웰치가 강조하는 가치와 인재상을 전파하고 그의 전략을 공유하는 장으로서, 경영 현장의 과제를 풀면서 숫자에 나오지 않는 잠재력과 인간적 요소들을 살피는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물론, 미래의 경영자를 키우는 도장인지, 그의 기업 권력을 촘촘하게 떠받치는 도구인지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웰치는 위기국면에서 강한 구조조정을 맡은 경영자가 이후의 안정기에도 나름의 변화된 방식으로 기업 권력을 계속 이어간 다소 특이한 사례다. 일반적으로 구조조정과 위기 극복을 맡은 경영자는 안정기에 접어들면 다른 스타일의 경영자에게 자리를 넘기는 경우가 많다. 달라진 상황에 맞는 사람이 필요한 점도 있고, 경영자를 선임하는 투자자나 이들이 움직이는 이사회가 기업의 분위기를 바꾸고 사람들의 피로와 불안을 수습하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웰치가 장기 집권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업계 1위 혹은 2위’의 뚜렷한 슬로건으로 구조조정을 이끌고, 이어서 사업 단위별 평가와 자원 배분, 인재 개발을 내건 경쟁 압력을 통해 체제의 자기 재생 역량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웰치는 자본시장과 기업 생태계 전반의 지지를 계속 얻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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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세상, 새로운 경영자

웰치 퇴임 후 그의 경영에 대한 평가는 적어도 전성기에 비해서는 낮아졌다. 후임 제프리 이멜트(Jeffrey Immelt)의 시대에 GE의 사업 실적은 낮아졌고, 웰치가 이끈 단기 업적주의의 폐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후임자 취임 후 며칠 뒤에 벌어진 9•11테러가 세계 경제를 흔들었고 몇 년 뒤 이어진 세계 금융위기가 GE의 신사업, 특히 부동산과 금융 부문에 직접 타격을 준 것도 사실이지만 결국 웰치의 성공도 ‘운7기3’의 행운이 아니었나 하는 의문이 늘기 시작했다.

웰치는 GE 퇴임 후 이혼소송 과정에서 알려진 것과 달리 막대한 퇴직보수를 챙기고 이를 숨겼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대중의 분노를 샀다.3 퇴임 이후의 사회활동, 그의 경영 철학을 기반으로 한 MBA 과정 등도 한때 주목을 받았지만 저조해진 GE의 실적과 함께 빛을 잃어가고 있다.

웰치의 경영은 당시 GE의 상황에서 의미가 있지만 시대의 산물인 면도 있다. 세상이 바라는 회사와 경영자의 모습에 부합했기에 정당성을 확보한 것이다. 경영자와 자본시장의 관계, 특히 시장의 속성과 이를 리드하는 경영자의 전략은 여전히 생각해볼 점이다. 무분별한 환상에 대한 반성도 포함해서.

우리 기업들이 GE와 웰치에 관심을 가졌던 데는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의 테마 이외에도 다른 사연이 있다. 창업 경영자에서 2세, 3세로 넘어가 ‘체제 유지’를 목표로 하는 상황에서 나름의 시사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고도성장의 과정에서 대주주 일가의 지분율은 낮을 수밖에 없는데 얼마 안 되는 지분을 들고 버핏 같은 전문 투자자로 남는 것보다 웰치처럼 나름의 기업 권력을 지켜가는 편이 낫다. 그래서 앞다퉈 GE와 사업 협력을 맺고 크로톤빌 연수원을 찾으며 ‘GE스러움’을 연출했지만 웰치와 GE가 미국 기업 생태계의 특성, 특히 자본시장의 요구에 대응하며 기업 권력을 확보하고 유지한 점은 간과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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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계획이 기업 관료들의 문서놀음 속에 사내 정치로 변질되던 시대에 사업 현장에서 답을 찾고 인재를 가려냈던 그의 노력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가혹한 구조조정에 더해 생존 경쟁과 차별적 보상은 그 공정성에 작은 의심만 생겨도 분노의 대상이 된다. 그가 물러나면서 받아냈다는 막대한 퇴직 보상과 과거의 영화를 잃어가는 GE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의 경영이 과연 무엇이었나 생각하게 된다. 이는 그와 GE에 대한 후대의 평가에도 반영될 것이다.

승자독식의 기업 경쟁, 다수의 대중이 기계와 컴퓨터에 일을 뺏기는 사회상은 웰치의 시대와 다른 모습이다. 세상은 이런 시대의 요구에 맞는 기업 권력을 찾고 있다. 괴팍하고 까칠하지만 아무튼 아이폰으로 세상을 바꾼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벤처창업자의 정체성을 애써 지키며 기본 소득과 가상화폐까지 내거는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를 보면 어느새 웰치는 ‘꼰대’로 보인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언제까지 ‘그래도 뭔가 해낼 것이라는’ 기대에 부응할지, 구글의 새로운 대표선수들이 정말 세계를 움켜쥘지 모르지만 적어도 웰치보다는 더 ‘미래의 가능성’을 놓고 세상의 신뢰를 얻어내고 있다. 과연 20년 후의 영웅은 누구일까?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cparkdba@cau.ac.kr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故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보좌역을 담당했으며 대통령 정책기획위원을 지냈다.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TV조선 ‘황금펀치’ 기획 및 진행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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