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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Study 朝鮮: 위훈삭제

조광조식 ‘위훈삭제’ 실패의 교훈

김준태 | 238호 (2017년 1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조직의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기존 의사결정을 번복하고 개혁을 추진하는 일이 쉽지 않다. 결단에 대한 막중한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필요한 변화라면 리더가 옳은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심리적 부담을 줄여주는 것도 부하의 중요한 역할이다. 중종과 선조 때 추진된 ‘위훈삭제’는 리더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그가 결단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설득하는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권력 관계를 무시한 소수의 급진적인 개혁은 좌초했지만 꾸준한 설득과 타협은 다수의 지지를 받아 개혁을 성공시켰다.



‘위훈삭제(僞勳削除)’ 거짓 공훈(功勳)을 삭제한다는 이 말은 자격도 없이 공신(功臣)에 봉해진 사람들의 작위를 박탈한다는 뜻이다. 공신은 부와 권력을 가졌을 뿐 아니라 정치·사회 전반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위훈삭제는 이들과 정면으로 충돌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그럼에도 위훈삭제가 추진된 것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겠다는 개혁의지 때문이었다.

조선에서 ‘위훈삭제’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중종 때 ‘정국공신(靖國功臣)’ 위훈삭제와 선조 때 ‘위사공신(衛社功臣)’ 위훈삭제가 있다. ‘정국공신’은 연산군을 폐위하고 중종을 옹립하는 데 공을 세운 신하들로, 그 수가 지나치게 많아 국가재정에 큰 부담이 되고 있었다.1 공신에게는 막대한 토지와 노비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국공신’은 세력가들의 나눠 먹기로 선정됐고, 아무런 공로가 없는 사람들이 대거 포함됐다. 이 문제를 지적한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 1482∼1519)의 상소를 보자.

“정국공신 중에는 폐주(廢主, 연산군)가 총애했던 신하들이 많으니 그 죄를 논한다면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물론 폐주의 총신이라도 반정 때에 공이 있었다면 기록돼야 하겠으나 이들은 그다지 공도 없습니다. 대저 공신을 지나치게 대우해주면 공을 탐내고 이(利)를 탐내어 임금을 죽이고 나라를 빼앗는 일이 모두 여기서 말미암습니다. 따라서 임금이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먼저 이(利)의 근원을 막아야 합니다. … 현재의 공신 명단은 유자광이 자기 자식과 사돈을 귀하게 하려고 만든 것이니 소인배가 꾸민 것에 불과합니다.”2

정국공신이 봉해질 당시, 유자광이 공신 선정의 실무를 담당했는데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무오사화(戊午士禍)를 촉발시키는 등 탐욕스럽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유자광은 본인의 일가를 공신에 포함했고, 공신에 넣어달라는 청탁도 무분별하게 받아들였다. 조광조는 이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또 연산군 밑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들이 재빠르게 말을 갈아타고 후안무치한 행태를 보이는 것에 대한 비판도 담겨 있다.

이에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士林)은 정국공신을 개정하여 거짓 훈공을 받은 사람들의 작위를 삭제하자고 주장했다.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되는 것도 문제지만 (1) 분명한 원칙 없이 공신의 자리를 남발함으로써 이익을 탐하는 분위기를 조성했으니 국가가 어지러워질 단초를 열었고 (2) 거짓된 것을 방치해 정치가 악(惡)에 더럽혀졌으니 이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임금인 중종이 “한 번 정하고 난 뒤에 이를 개정하는 것은 매우 옳지 못하다. … 이(利)의 근원을 막아야 한다는 뜻은 좋으나 이는 차차 막아가야 하는 것이다. 어찌 공신을 개정하는 것으로 이를 막을 수 있겠는가?”3 라며 탐탁지 않아 했지만 조광조는 계속 중종을 압박했다. 이때 대간에서 올린 상소에 따르면, “4등 공신4 중에는 공신의 자제여서 혹은 혼인 관계가 있음으로 해서 공신이 된 자가 30여 인, 유자광에게 뇌물을 바쳐서 공신의 자리를 얻은 자가 5∼6인, 환관으로서 공신이 된 자가 7∼8인, 재상의 위세를 빌려 공신이 된 자가 10여 인”으로, 조정에서는 2등 공신 중 8인, 3등 공신 중 12인, 4등 공신 전부를 삭제해야 한다는 쪽으로 논의가 모아졌다.5 중종이 계속 거부하며 일을 지연시키려 하자 조광조는 “이런 식으로 하면 결단할 수 없습니다”라며 강경한 반응을 보였다. 결국 중종은 1519년(중종14년) 11월11일 정국공신을 개정하라는 교지를 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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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조광조의 뜻이 관철됐고, ‘위훈삭제’ 작업은 성공한 것일까? 답은 ‘아니다’이다. 중종은 개정을 지시한 지 불과 열흘 후인 11월21일, “대신들의 말을 듣건대 다들 그대로 두고 개정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또한 공신을 녹훈한 지가 이미 오래됐으니 개정할 수 없다”라며 자신의 말을 뒤집었다.6 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중종은 이날, “저 사람들에게 죄를 주고 나서 공신 문제를 다시 논의했으니 우연이 아닌 듯하나 내 어찌 이 일 때문에 저 사람들을 죄주었겠는가? 고치려면 모두 고쳐야 하니 함부로 고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는데, 저 사람들이란 바로 조광조 등 사림 세력을 말한다. 중종은 11월15일, 훈구파를 통해 조광조, 김정, 김식 등을 전격적으로 숙청하며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일으켰는데 공신 개정을 취소한 것은 이 사건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종 스스로 의식하며 변명하고 있듯이 기묘사화는 위훈삭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다음으로 ‘위사공신’은 을사사화(乙巳士禍)의 과정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내린 칭호다. 1546년(명종1년) 소위 ‘소윤(小尹)’이라 불렸던 윤원형, 정순붕, 이기 등은 ‘대윤(大尹)’ 윤임 일파를 역적으로 몰아 제거했다. 그리고 자신들을 비판해 온 선비들까지 연루해 숙청해버렸다. 그래놓고 사직을 보위했다며 ‘위사공신’이라는 작위를 차지한 것이다. 요컨대 ‘위사공신’은 소윤 정권의 사사로운 논공행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을사사화에 참여하지 않았던 심연원, 이언적과 같이 명망 있는 중신들을 공신 명단에 포함한 것은 이러한 비난을 면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윤원형이 몰락하고, 위사공신을 승인한 명종이 승하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선조의 즉위와 함께 조정을 장악한 사림이 과거사 청산 작업에 돌입하면서 을사사화 피해자의 신원과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요구한 것이다. 이에 선조가 즉위하자마자 대대적으로 신원이 단행됐는데, 삼정승이 공식적으로 요청해 임금이 가납하는 형식을 취하는 등7 범(凡)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뤄졌다. 윤원형, 이기 등을 단죄하는 문제도 별다른 장애물 없이 진행됐다.

위사공신 위훈삭제도 1569년(선조 2년)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에 의해 공론화됐는데, 이이는 “위사공신은 거짓 훈공으로, 그때 죄를 얻은 자는 모두 선한 선비들이었습니다. 인종께서 승하하셨을 때 중종의 적자로는 다만 명종 한 분뿐이었으니 천명과 인심이 어찌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겠습니까. 그런데도 간사하고 흉악한 자들이 감히 공을 탐내어 사림을 공격함으로써 거짓 공을 녹훈하였으니 하늘이 분노하고 사람들이 모두 분개한 지 오래됐습니다. 이제 성상(임금)께서 새로운 정치를 펼치기 시작하셨으니 마땅히 위훈을 삭제하고 명분을 바로잡음으로써 국시(國是)를 정하는 일을 늦추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했다.8 권력과 부귀를 탐한 간사한 자들이 마치 명종에게 반역을 한 것처럼 사건을 조작해 선비들을 죽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태생 자체가 거짓인 위사공신을 취소하여 바른 명분을 확립하자는 것이 이이의 주장이다.

하지만 ‘위훈삭제’는 쉽지 않았다. 앞서 정국공신 위훈삭제가 공신 중에서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겨냥한 것이었다면 위사공신 위훈삭제는 공신 자체를 문제 삼는 것으로, 그것이 가져올 파장은 훨씬 더 컸다. 공신들의 반발도 반발이지만 무엇보다 선왕인 명종이 내린 결정을 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사공신이 위훈이라면 그와 같은 위훈을 선정한 책임을 물어야 하고, 최종 결재권자인 명종이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선조는 방계(傍系, 왕의 직계자손이 아님)인데다가 명종의 명시적인 후계자 지명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정통성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함부로 선왕의 일을 바꿀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선조는 매우 조심스럽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고, 1577년(선조10년)에 가서야 위훈삭제를 최종 결정했다.9 8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관철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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