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와 정조를 통해 본 리더십

현명한 군주라 불리는 정조, ‘덕후’를 무시하는 愚를 범하다

236호 (2017년 1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조선시대에 ‘덕후’를 의미하는 우리말로 ‘벽치(癖癡)’라는 표현이 있었다. 한 가지에 편협하게 빠진 바보들을 뜻하는 단어였다. 현명한 군주라 불리는 정조는 벽치를 극도로 싫어했다. 벽치들은 식견이 좁고 상식이 부족하며 온갖 상품을 가지고 싶어 하다 보니 적국인 청나라 물건까지 좋아하는 것이라고까지 비난했다. 하지만 원래 전문가란 상식이 넓은 사람이 아니라 좁고 깊은 사람인 경우가 많다. 21세기 현대에 ‘덕후’가 그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도 바로 이 전문성 때문이다.
 

역사를 보면 과거에 천대받던 것이 현대에 들어와 존중받고, 과거에 하늘처럼 떠받들던 것이 지금은 천대받고 있는 현상을 곧잘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코카인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많이 유통되고 가장 위험한 마약이다. 하지만 코카인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만병통치약으로 각광을 받았다. 서양에서 문화 황금기라고 불리는 르네상스 시대에 광대는 그림 속에 등장만 해도 불경죄로 처벌받을 정도의 천한 직업이었다. 그러나 요즘 연예인은 그야말로 하늘이고 스타다. 군주보다 더 존경받는 존재가 됐다.

21세기에 천지개벽한 현상이 또 있다. 요즘 ‘덕후’라고 하는 마니아다. 덕후라는 말은 일본의 오타쿠라는 말을 번안해서 사용하는 것인데 마니아나 오타쿠나, 두 단어 모두 원래는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무엇 하나에 빠져서 모든 것을 팽개치는 사람을 비하하는 말이었다.

 

조선시대 오타쿠, ‘벽치(癖癡)’

사실 우리말에도 오타쿠에 해당하는 단어가 있었다. 마니아가 우리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때는 바로 정조 시기였다. 이때 쓰였던 다양한 표현법이 보이는데 예를 들면 ‘완물상지(玩物喪志)’라는 말이 있다. 완물상지는 특정한 물건을 너무 좋아해서 정상적인 생활을 못한다는 뜻이다. 정확히 오늘날의 덕후다. 골동품이나 문방구, 그림, 도자기, 화병, 꽃, 소설 읽기 같은 것에 빠져서 과거 공부, 가사, 심지어는 부인과 자식에 대한 의무까지 포기하고 가산을 탕진하는 사람을 말했다.

오타쿠를 뜻하는 또 다른 말로 ‘벽치(癖癡)’라는 표현도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한 가지에 편협하게 빠진 바보들’을 비꼴 때 이 단어를 썼는데 정작 이 소리를 듣는 벽치들은 오히려 이런 표현을 영예로 알았다고 한다. 스스로에게 별명을 지어 붙인 벽치들도 있었다. 가령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덕무는 자신을 책만 읽는 바보라는 뜻으로 ‘간서치(看書癡)’라고 지칭했다. 또 신의측이란 사람은 ‘나에게로 돌아갔다’라는 뜻에서 ‘환아(還我)’라는 별명을 지었다.

오타쿠의 종류도 무척 다양했다. 벼루, 종이, 붓, 먹 등의 문방구류는 기본이고, 속담, 방언, 담배, 돌, 칼, 곤충, 채소, 조류, 벌레 등등 천차만별이었다. 이것들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면서 불경스럽게 제목에 ‘경전’이라고 붙였다. 녹색앵무새경(녹앵무경·綠鸚鵡經), 비둘기경전(발합경·鵓鴿經), 담배경전(연경·烟經) 등이 대표적 예다.

정조 때 확대된 이런 현상, 즉 새로 탄생한 벽치들에 대해 정작 정조는 어떻게 평가했을까? 현명한 군주라는 정조는 이들을 극도로 무시했다. 아니, 사회적으로 위험한 종자로까지 간주했다. 정조는 중국 소설을 읽는다며 김조순과 이상황을 처벌했고 해당 소설을 몽땅 불태웠다. 남공철과 이옥은 시험답안에 소설 문체를 인용했다며 처벌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박지원에게는 반성문을 써서 제출하도록 했다. “소설 나부랭이들이 경전을 헤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단을 물리치고 정도(正道)를 넓히기 위해서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 이런 폐단을 근본부터 뿌리 뽑으려면 애당초 잡서를 사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제일이다!”



정조는 중국 소설뿐만 아니라 중국판 경서조차 사오지 못하게 했고, 보는 것은 물론이고 소지하는 것조차 금지했다. ‘정조같이 공부도 많이 한 군주가 왜 그랬을까’라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공부를 많이 한 것이 더 문제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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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벽치를 싫어한 이유

무언가에 빠진 사람들은 그것에만 집중한다. 보편적인 윤리, 가치관, 생활방식과 멀어지게 된다. 유득공의 숙부 유금은 이런 충격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용에게 여의주가 소중하듯 말똥구리에게 말똥이 소중하다. 사람들은 여의주만 귀하게 보고 말똥은 우습게 여긴다. 나는 내 말똥을 더 귀하게 여기겠다.” 이런 사람이 조직에 있으면 귀찮게 여겨지기 마련이다. 사람들과 불화를 일으키고 피곤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싫어하고 배척한다.

정조는 벽치들을 극도로 싫어했다. 벽치들은 식견이 좁고, 상식이 부족하며, 온갖 물품을 좋아하다 보니 적국인 청나라 물건까지 좋아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한번 되돌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식견이 좁고 상식이 부족하다지만 원래 전문가란 상식이 넓은 사람이 아니라 좁고 깊은 사람인 경우가 많다. 적국인 청나라까지도 좋아한다지만 요즘 식으로 해석하면 라이벌 회사 제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에는 어느 기업이나 라이벌 회사의 제품이 나오면 비교하고 분석한다. 회사의 사운이 걸린 중대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자기 회사에 무한한 애정과 의무감을 가지고 라이벌 회사 제품을 연구하는 사람과 라이벌 회사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빠져드는 덕후가 상대 제품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경우를 상정해 보면 누가 더 나을까? 어느 쪽이 더 유용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덕후의 한마디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은 분명하다.

의외로 고객들은 다 아는 라이벌 회사의 가치와 장점을 기업들만 모르는 경우가 많다. 고객의 불평을 받아들여 제품을 개량한다고 하는데 비용을 들여 개선을 해도 매출은 늘지 않고 비용만 들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상대 제품의 진정한 매력을 알지 못하고 자기 개량에만 몰두하기 때문이다.

 

미래를 기준으로 삼는 태도

정조 때 국화에 빠진 인물이 한 명 있었다. 그는 국화를 모으다 못해 국화를 그린 그림을 모으고, 시를 쓰고, 때때로 국화 감상회와 품평회도 열었다. 여기까지는 취미생활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국화를 접붙이고, 종자 개량을 하고, 재배법에 관한 책도 썼다. 하지만 아쉽게도 조선 사회에는 아직 꽃시장이 열리지 않았던 시대였다. 요즘처럼 국화가 인기 있는 상품이었더라면 그는 아마 위대한 선구자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탓에 큰 빛을 보지 못했다.

비운의 국화 전문가처럼 18세기의 벽치들은 자신들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자신들도 그것을 알고 스스로를 바보, 광인이라고 부르며 자조했다. 그것은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보지 못하고 당대의 삶과 관습 속에서 자신들을 판단했기 때문이다. 21세기가 달라진 이유는 이제 우리가 현실이 아니라 미래, 아니 어쩌면 내일이 될 수도 있는 미래를 기준으로 살아야 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덕후들도 존중을 받게 됐다. 물론 모든 사람이 덕후가 될 수는 없다. 덕후가 아닌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현실이 아닌 미래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활동하는 생활습관이다. 

노혜경 호서대 인문융합대학 교수 hkroh68@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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