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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경영

詩心 가득한, 고전의 향 그윽한 경영철학

유필화 | 8호 (2008년 5월 Issue 1)
경영의 본질은 사람을 다루는 것이다. 재화를 생산하는 기업을 움직이는 경영자와 직원들은 모두 사람이며, 고객과 주주, 협력회사 관계자들도 사람이다. 그렇다면 사람과 삶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온 인문학은 경영과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물론 ‘그렇다’이다. 특히 경쟁이 극심해지고 참신한 경영 아이디어가 드물어질수록, 즉 오늘날 같은 시대일수록 기업 및 경영자는 인문학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문학적 소양에 바탕을 둔 상상력이 경영에 획기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피터 드러커, 역사 기반으로 미래 조망
인문학과 경영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사상가는 2005년 11월 세상을 떠난 20세기 최고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다. 무려 60년에 걸쳐 39권의 저서를 남긴 그는 깊은 통찰과 뛰어난 미래예측 능력으로 현대의 경영 및 경영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피터 드러커가 다른 경영 전문가들을 압도하는 영향력과 통찰력을 갖출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아주 높은 수준의 소양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에 대한 교육과 깊은 이해가 그에게 끼친 영향은 아주 크다.
 
피터 드러커는 역사에 관해 거의 백과사전 같은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그런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현재, 과거, 미래를 기기묘묘한 방법으로 연결지었다. 즉 탁월한 연관능력(the skill of association)이 있었다. 헝가리 태생의 영국 비평가이며 소설가인 아서 퀘스틀러(Arthur Kostler)는 연관짓는 능력이야말로 창의성의 진정한 원천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역사는 카를 마르크스(Karl Marx)나 오스발트 슈펭글러(Oswald Spengler)가 주장한 것처럼 반복되거나 어떤 불변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 인류역사를 되돌아보면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은 거의 변하지 않은 듯하다. 석가모니와 공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현인들이 인간과 인간의 행동에 대해 말한 내용은 예나 지금이나 대체로 다 들어맞는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과 미래를 과거의 비슷한 사례에 비춰 해석할 때 귀중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또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라는 철학자는 “역사에서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우리는 피터 드러커가 보여준 통찰의 진정한 원천을 알 수 있다. 풍부한 역사지식을 바탕으로 한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 그리고 더할 나위 없는 인문학적 깊이가 그의 독특하고 위대한 강점이었던 것이다.
 
아쉽게도 오늘날 대다수 경영학자들은 이런 강점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의 역사지식은 대체로 피상적이거나 매우 빈약하다. 그리고 기업사 연구 전문가들도 자신의 전공과 관련한 좁은 분야만 다루고 있다. 반면 드러커는 훨씬 넓은 역사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역사의식이 약하면 잠시 나왔다가 사라지고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경영 기법에 함몰되기 쉽다. 옛 술을 새 부대에 담아놓고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고 떠드는 일이 비일비재한 오늘날 경영의 세계에서 그런 위험이 더욱 크다. 역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안목을 열어주고, 미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세상을 늘 신선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미래를 내다보며, 끊임없이 발전해야 하는 현대 경영자들에게 역사지식과 그것에서 얻는 통찰은 매우 믿음직한 경쟁우위를 가져다줄 것이다.
 
두바이의 시인(詩人) 국왕
수년 전 나는 외람되게 경영학자로서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경영의 핵심을 여러 편의 시(詩)로 표현한 바 있다.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유필화, 2006, 교보문고) 그 가운데 하나가 ‘경영의 진리’라는 시(詩)인데, 그 첫째 연(聯)은 아래와 같다.
 
시장이 있어야 기업이 있다
떠나라,
충족되지 않은 고객의 욕구를 찾아서
당신이 가는 길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
당신의 목적지는 풍요로운 황무지
당신의 몸은 현장,
가슴은 겸양, 머리는 상상력
 
기업경영의 가장 기본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욕구’로 표현되는 시장의 존재라는 명제를 나타내려고 이 시를 쓴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여기서 ‘상상력’이라는 말을 썼다. 그만큼 시장개척, 혹은 상상력이 기업경영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고객을 위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창조적 활동이 기업경영의 본질이고, 창의성의 핵심은 바로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인간 상상력의 극한을 보여주는 두바이 프로젝트를 추진중인 셰이크 모하메드 국왕이 시인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줄까? 이는 문학적 상상력과 감수성이 경영의 엄청난 활력소가 될 수 있음을 뜻한다.
 
빼어난 문학작품은 상상력의 보고다. 호머(Homer)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풍부한 영감(inspiration)의 원천이다. 또 우리는 셰익스피어와 만해 한용운의 작품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삼국지’와 ‘열국지’만큼 훌륭한 경영전략과 리더십이 담긴 교과서는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결론은 명확하다. 인간 상상력의 집대성인 뛰어난 문학작품의 감상을 통해 경영자는 삶과 경영을 더 넓고 깊게, 그리고 총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런 과정에 꿈과 모험심, 상상력은 자연히 커진다. 문학을 통해 경영자는 자신의 내면과 만나게 되며, 자신과의 만남은 더욱 창의적인 경영활동으로 이어진다.
 
경영자는 무쇠 같은 의지와 철학 있어야
기업경쟁력의 근원은 최고경영자의 철학이 담겨있는 기업문화다. 그래서 많은 경영학자가 “훌륭한 회사와 평범한 회사를 구분하는 것은 기계나 공장, 조직구조 등이 아니라 기업문화”라고 말한다. 또 독일의 아주 성공적인 기업가 라인홀트 뷔르트(Reinhold Wurth)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최신 장비와 시설을 갖춘 환경에서
동기유발이 되지 못한 직원들이 일할
때보다, 비록 기계는 낡고 공장은
허름할지라도 직원들이 신나게 일할 때가 효과와 효율 면에서 훨씬 낫다.”
 
훌륭한 기업문화는 특히 회사가 어려울 때 큰 힘을 발휘한다. 기업경영에서 이토록 중요한 의미를 갖는 기업문화는 최고경영자의 경영철학을 반영하게 마련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최고경영자의 경영철학은 기업의 장기적인 성패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변수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 착안해 나는 언젠가 ‘사장일기’라는 시(詩)에서 최고경영자의 심정과 그에게 요구되는 철학을 노래한 바 있다. 그 시의 셋째와 넷째 연(聯)은 다음과 같다.
 
사장은 오직 회사만을 위해
살아야 하는 사람
회사를 키워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사람
무쇠 같은 의지와 불꽃 같은 정열이
없으면 일찌감치 딴 길을 가라
내 가슴은 새가슴, 긴장은 나의 일상
외로움은 나의 벗이다.
도전정신은 나의 주식(主食)이요
희망은 나의 버팀목이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이 자리가 자랑스럽다
내가 잘하면 수많은 중생들의 행복을
무한히 증진시킬 수 있으므로.
다시 태어나도 나는 이 길을 가련다
 
미국의 엔론(Enron)과 월드콤(World-com), 그리고 일본의 식품회사 유키지루시(雪印)의 사례에서 보듯, 잘못된 경영철학은 기업의 몰락을 가져올 수 있다. 반면 미국의 존슨앤존슨은 1982년 자사제품 타이레놀에 독극물이 투여되는 사건이 터졌을 때 시카고 지역의 제품을 모두 회수하라는 미국 식약청의 명령을 뛰어넘는 조치를 취했다. 즉 미국 전역에 깔려있는 타이레놀을 전부 거둬들인 것이다. 또 교보생명의 경우 외환위기 직후 고금리 시대에 대량으로 팔았던 금리보장상품이 나중에 회사에 큰 부담을 줬다. 그러나 감언이설로 고객들에게 다른 상품의 전환 가입을 유도하지 않았다.
 
이런 사례에서도 경영철학의 중요성이 극명하게 드러나지만, 필자는 그렇다고 해서 경영자들이 칸트(Kant)의 ‘순수이성비판’이나 헤겔(Hegel)의 ‘정신현상학’을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철학적 성찰이지 철학에 관한 전문지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학적 성찰을 생활화하고 사고(思考)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 인류사상사의 근간을 형성해온 명저들을 가까이 두는 것은 좋다고 본다.
 
지금까지 인문학과 경영의 관계를 여러 측면에서 살펴봤다. 창의성과 상상력, 그리고 인간에 대해 깊이 이해해야 하는 현대 경영자들에게 인문학과 인문학적 소양은 커다란 원동력이 될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경영학사)와 미국 노스웨스턴대(경영학 석사), 하버드대(경영학 박사)에서 공부했다. 독일 빌레펠트대를 거쳐 1987년부터 성균관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성균관대학교가 삼성그룹과 미국 MIT의 도움을 얻어 설립한 SKK 경영대학원의 부학장도 맡고 있다. <CEO, 고전에서 답을 찾다> 등 20여 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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