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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를 위한 인문 고전 강독

맹자, 仁義를 통해 ‘우리’가 되라 하다

권경자 | 92호 (2011년 11월 Issue 1)
 
 
 
 
편집자주
21세기 초경쟁 시대에 인문학적 상상력이 경영의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DBR은 ‘CEO를 위한 인문고전 강독’ 코너를 통해 동서고금의 고전에 담긴 핵심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사상과 지혜의 뿌리가 된 인문학 분야의 고전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하루에 5000번 절하는 사람이 있다. 전도섭(46)은 길 위의 참회자이자 김밥 장수. 밀리는 차들은 물론 쌩쌩 달리는 차들에까지, 그는 안타깝게도 여지없이 90도 꺾은 공손하기 짝이 없는 허리 절을 한다. 하루에 7000번 절한 적도 있다. 하루 오십 개 파는 김밥은, 그의 절 공덕에 비하면 덤 같은 보시!’ -엄원태 ‘전도섭’ 중.
 
고속도로를 오가다 보면 차가 밀려서 속도를 낼 수 없는 공간에는 어김없이 물건을 파는 행상들이 있다. 그들은 뻥튀기나 오징어 등 간단한 군것질거리를 들고 자칫 흉기가 될 수 있는 차로 가득 찬 도로 위를 겁도 없이 다닌다. 여름에는 걸림 없이 내리꽂히는 빛 화살과 아스팔트를 달군 복사열을 견뎌야 하고, 겨울에는 사방에서 몰아치는 매서운 추위를 온몸으로 받는다. 물건을 파는 그들에게서는 세상살이의 처절함이 느껴진다.
 
그들 가운데 전도섭 씨가 있다. 고속도로에서 김밥을 팔면서 하루 5000번 절을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1년 365일, 허리를 90도로 꺾어 절을 하며 파는 김밥은 자칫 시간을 놓친 그 누군가의 허기와 전도섭 씨 네 식구의 삶을 해결해주는 귀한 요기다. 삶의 단애(斷崖)에서 죽음의 옷자락을 만났던 그였기에 세상에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고단하고 처절한 삶이 시어(詩語)의 담담함 속에 드러나 있다.
 
‘전도섭’이란 시는 영국에서 일어난 거리폭동 기사를 접할 때 우연히 만났다. 세상이야 어떻든 꿈과 비전으로 달뜰 시기인 10, 20대의 젊은이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약탈과 폭력, 방화로 무법천지를 만든 거리폭동은 ‘신사의 나라’라고 굳혀진 영국의 이미지를 무참히 깨뜨렸다. 특히 그 폭동에는 가난과 소외로 인한 사회불만세력뿐 아니라 중상류층의 소위 잘나가는 젊은이와 공무원도 다수 있었다고 하니 뭐라고 쉽게 규정하거나 결론 내리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뉴스를 보도하는 화면에는 이러한 혼란을 즐기는 얼굴도 잡혔다. 그들은 마치 축제를 즐기듯 물건을 약탈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사회가 규정한 질서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단정하고 깔끔한 사람이 익명이 되면 전혀 다르게 돌변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곤 한다. 평상시 얌전하고 성실하다는 평을 받던 사람이 흉악범으로 밝혀져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예비군복 입으면 다 똑같다는 말이 있듯이 사회적 신분과 주어진 역할을 벗어난다는 것은 한편으로 적나라한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사회의 혼란을 이용해 폭동에 가담해 약탈을 일삼으며 일탈을 만끽하는 젊은이가 있는가 하면 추위와 더위, 눈비와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도로 한가운데서 5000배를 올리는 전도섭 씨 같은 사람도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객관화된 모습은 전도섭 씨가 훨씬 비극적인데 그들은 왜 이리 다른 것일까? 무엇이 그들을 다르게 한 것일까?
 
맹자는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측은지심(惻隱之心)], 잘못된 행동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수오지심(羞惡之心)], 공경하고 배려하며 사양하는 마음[사양지심(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시비지심(是非之心)]은 사람들에게 본래 있는 것인데 다만 생각하지 않을 뿐이라고 말한다. 즉 내게 원래 갖추어져 있다 할지라도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데 생각을 하지 않으니 행하지 못하고, 행하지 않으니 그와 어긋난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되며 그것을 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것이 본래 모습인 줄 안다는 것이다. 내게 있는 것이기에 맹자는 ‘구하면 얻고 놓으면 잃는다(求則得之舍則失之)’라고 하여 원래 있었던 그것을 찾아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할 것을 요구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본래의 모습과 점점 거리가 벌어져 결국 본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맹자는 제나라 동남쪽에 있는 민둥산인 우산(牛山)을 예로 들어 말했다.
 
“우산은 원래 나무가 가득한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지만 큰 도읍의 교외에 있었기 때문에 매일 사람들이 드나들며 나무를 베니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남겨진 나무가 밤낮으로 자라고 비와 이슬 덕분에 싹과 곁순도 계속 나왔다. 그러자 소와 양을 싹을 따라 방목하니 도저히 나무도 싹도 자랄 수 없어 저렇듯 반질반질 민둥산이 됐다. 사람들이 그 반질반질한 모습을 보고는 ‘저 산엔 일찍이 재목이 없었다’고 하니 이것이 어찌 산의 참모습이겠는가?” <고자 상> 8장.
 
맹자는 민둥산인 우산이 처음부터 반질반질했던 것이 아니라 숲이 우거진 아름다운 산이었지만 쉬지 않고 나무를 베어내고 계속 나오는 싹마저 소와 양이 먹어버려서 아무것도 자랄 수 없게 됐다고 말한다. 이처럼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인의(仁義)의 마음이 담긴 본성이 있는데 매일 그것을 베고 잘라낼 뿐 아니라 순수하고 맑은 기운이 깃드는 새벽녘, 혹은 고요할 때 생기고 드러나는 선한 마음까지 남김 없이 잘라내 인의의 싹이 자랄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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