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000년 전에 쓰여진 주역에는 ‘궁즉변(窮卽變) 변즉통(變卽通) 통즉구(通卽久)’라는 구절이 나온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영원하다’라는 뜻을 지닌 이 말은 변화 관리에 골머리를 앓던 조직과 리더들에게 새로운 결의를 부여했다. 필자 역시 이 구절을 자주 머릿속에 떠올린다. 하룻밤 사이에 엄청난 변화가 이뤄지는 작금의 경영 환경에서 변화를 위해 궁한 시기만 기다리다가는 뒤처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청(靑)색으로 표현할 수 있는 리더십을 지닌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경청(傾聽)의 ‘청’과 같은 음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세상 사물을 투영하는 맑은 물빛처럼 조직원들의 목소리를 조직 운영에 반영하는 리더가 되고자 하는 바람에서다. 이는 경청과 소통의 리더십이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을 막론하고 어느 조직에서건 통(通)하고 변(變)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점을 직접 체득했기 때문이다.
어떤 조직에서건 그 조직의 핵심 자산은 사람이다. 조직원들의 목소리를 자주 듣고 그들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일은 리더의 핵심 과제다. 삼일에서는 매년 People Survey라는 이름의 설문 조사를 실시한다. 조직 운영, 업무, 개인 역량 계발, 리더십 평가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조직원들의 생각을 듣는 기회다. 이때 중요한 점은 단지 조직원의 의견을 조사하는 수준이 아니라 리더가 이를 경영 아젠다에 실제로 반영하고 구체적인 행동 방안들을 도출해 그 내용을 조직원들에게 알리는 쌍방향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People Survey에서 조직원들은 삼일의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활동이 다소 부족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회사는 1년 동안 이에 대한 개선 노력을 펼쳐 그 결과를 올해 조직원들에게 상세히 알렸다. 이러한 소통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올해 조사 결과, 조직원들은 자신의 목소리가 조직 운영에 반영됐다는 점에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조직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도 증가했다고 답변했다.
이 외에 신규 서비스 발굴역량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 직원 업무역량 계발 및 복지 제도 강화 제안 등 People Survey를 통해 등장한 다양한 의견들이 실제로 운영되고 있다. 조직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수렴하는 과정이 없었다면, 이토록 짧은 시간 내 이 정도의 변화를 이뤄내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민첩하게 변화할 줄 아는 능력은 21세기 기업이 지속적으로 경쟁하고 생존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이다. 하지만 궁한 위기에 몰려서야 변화를 시작하면 때는 이미 늦다.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조직의 첫 번째 요건은 소통하는 조직이다. 소통하는 조직이 되려면 조직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경청하고, 이를 조직 운영에 반영할 줄 아는 리더가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주역의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를 ‘청즉통(聽卽通) 통즉변(通卽變) 변즉구(變卽久)’로 바꾸고 싶다. 올해도 많은 리더들이 이 덕목을 잘 실천해 각자의 조직을 훌륭하게 이끌어나가기 바란다.
허용석 삼일경영연구원 원장 yongsukhuh@samil.com
허용석 원장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사, 미국 밴더빌트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제22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재정경제부 세제실장, 관세청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 <경영학 연습> <못난 나무가 산을 지킨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