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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실비 우지엘 액센츄어 COO

“익숙한 TOP 아닌 낯선 BOP에서 성공해야 진정한 승자”

박용 | 77호 (2011년 3월 Issue 2)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인도,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의 신흥시장이 대세다. 경기 침체에 신음하는 선진국과 달리 가파른 회복세를 보이며 성장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다국적기업들의 시선도 신흥시장에 쏠리고 있다. 일반 생활용품업체부터 자동차 이동전화 등 제조업체는 물론 컨설팅회사와 같은 지식 집약적 기업들까지 신흥시장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선진국 시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다국적기업도 저소득층이 다수를 차지하는 신흥시장의 거친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이 저소득층이 포진한 신흥시장 공략 방법에 머리를 싸매고 있는 이유다.
 
기업 고객들의 고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글로벌 컨설팅회사의 최고경영진은 신흥시장의 성장세와 새로운 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신흥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비결은 무엇일까. 한국 기업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은 1월 말 한국을 방한한 실비 우지엘(Sylvie Ouziel) 액센츄어 경영컨설팅 글로벌 COO(Chief Operation Officier)에게 2000년대 후반 이후 기업들의 관심을 끌어온 신흥시장 저소득층(Bottom of the Pyramid) 대상 전략 방향과 실행 방안을 물었다. 우지엘 COO는 액센츄어에서 17년간 근무하며 제약 및 헬스케어, 소비재, 건설 및 산업자재 분야와 인수후통합(PMI), 국제 경영 분야에서 다양한 컨설팅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영 전문가다.
 
“1년 반 전 글로벌 화장품 회사의 최고경영자에게 인도 진출 전략을 물었더니, 특별한 대책은 없고 기존 유통망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조직에 부담을 주는 변화는 시도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최근 인도에 가보니 그 회사는 현지 시장에 맞는 제품들과 유통체계로 무장해 있었다. 인도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현지화가 불가피했던 것이다.”
 
우지엘 COO는 “다국적 기업에 신흥시장 진출은 선택이 아닌 시간의 문제”라며 “다국적 기업이 신흥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현지화(Be local)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컨설팅회사인 액센츄어조차도 신흥시장에 맞는 현지화 전략을 새로 개발해 도입하고 있다고 했다. 얼핏 뻔한 얘기처럼 들리는 신흥시장 현지화 전략의 개념과 실제 사례에 대한 우지엘 COO의 견해를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글로벌 기업들은 신흥시장(Emerging Market)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신흥시장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 중이다. 신흥시장에 진출하는 모든 기업들은 ‘Be local!’ 즉, 현지화를 외치고 있다. 영국 유통회사인 테스코도 선진국 이외 지역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 유통회사들도 최근 동남아시아부터 동유럽에 이르는 신흥시장에 진출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최근 엑센추어는 한 유통회사의 의뢰로 총 22개 신흥시장의 비즈니스 패턴을 조사했다. 사업 패턴만 조사한 게 아니다. 고객사가 각 시장의 다양한 제약조건을 이해하도록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려고 했다. 예를 들면, 중국이나 인도에서는 정전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따라서 전기가 다시 들어왔을 때 처음부터 세탁 과정을 다시 시작하게 설정된 세탁기라면 현지 시장에서 문제가 될 것이다. 이런 제약조건을 파악하고 작은 것 하나도 바꾸는 게 현지화다. 현지에 맞는 적정 가격과 유통망을 설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인도에서 청바지 사업을 하고 싶어하는 회사도 있었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인도 구매력을 고려하면 서구시장 판매가격의 10% 정도의 가격표를 붙여야만 청바지가 팔릴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 회사는 비즈니스 모델을 완전히 바꿨다. 원단만 인도로 보내고, 인도 현지의 재봉사들이 직접 청바지를 만들어 판매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인도의 ICICI은행은 인프라가 거의 없는 낙후된 농어촌 지역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폰 뱅킹의 단계를 뛰어넘어 바로 모바일 뱅킹을 도입했다.
 

신흥시장에서 현지화로 성공하기 위한 핵심 요인은 무엇인가.
현지화의 최종 단계는 ‘발명(Invention)’이라고 생각한다. 선진 기술로 그 지역에 존재하지는 않았지만, 그 지역에 꼭 맞은 새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신흥시장 기업들은 흔히 도시 시장만을 조사하거나 인구의 극소수인 부유층만을 고려하는 우를 범할 때가 있다. 그러나 도시의 부유층만이 기업의 시장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도의 고드레지(Godrej)는 시골 저소득층 거주민을 대상으로 69달러짜리 저가 냉장고인 ‘ChotuKool’을 개발했다. 이 제품은 가격이 저렴할 뿐 아니라 전력공급이 끊겨도 몇 시간 동안 냉각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 전력 사정이 나쁜 인도에서 대박을 터트렸다. 드라이클리닝 키오스크를 도입해 성공한 회사도 있다. 사파리컴은 은행 영업망이 넓게 분포돼 있지 않고 교통여건도 열악한 아프리카 케냐에서 구형 핸드폰으로도 언제 어디서나 간단하게 금융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모바일 뱅킹시스템인 엠페사(M-Pesa)를 내놨다. 이 서비스는 이제 케냐의 대표적인 결제수단으로 자리잡았다. 다국적 시멘트회사인 세멕스(CEMEX)는 멕시코에서 빈곤층을 대상으로 ‘패트리모이노 호이(Patrimoino Hoy·지금 내 집 마련하세요)’라는 프로그램을 실시해 큰 성공을 거뒀다. 이 프로그램은 마이크로랜딩(Microlending·소액대출)과 커뮤니티 저축(Community money-pooling)을 한데 묶은 개념이다. 멕시코의 전통적인 ‘탄다스(Tandas·한국의 ‘계’와 유사)’를 응용해 살림이 넉넉지 못한 사람들이 작은 단위의 그룹을 구성해 일주일에 각자 일정 금액을 적립하면 그에 맞는 건축재료와 기술자문을 건축 계획에 맞게 순차적으로 지원해주는 상품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회사가 이익을 거뒀음은 물론이고 많은 고객(CEMEX에서는 이들을 ‘partner’라 부른다)이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선진국 시장에서는 어색한 아이디어지만, BOP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개개인이 가난하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모아둔 돈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 것이다. 신흥시장에 진출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지에는 적합하지만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상품, 비즈니스 모델, 유통체제를 발굴해내는 창의성이다.
비정부기구(NGO)와 영리기업이 손을 잡는 사례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신흥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다. 단순한 원조만으로는 빈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NGO들이 기업들과 손을 잡고 빈곤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니레버와 옥스팜은 여러 지역 단체들과 함께 아프리카에서 주민들이 잘 몰랐던, 상품가치가 높은 아프리카의 토종 작물들을 경작하고 수확하는 것을 돕는다. 그리고 이 작물을 공정한 가격에 장기간 구입해주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사회단체 지원이 아니다. 다수의 현지인들이 빈곤에서 벗어나 자사의 상품을 살 만한 경제력을 갖게 도와주는 윈-윈 프로젝트라고 볼 수 있다.
 

현지기업이나 비영리단체를 제외하고 글로벌 기업이 BOP에서 성공한 사례가 드물다는 비판이 있다. 글로벌 기업이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최근 다국적 기업의 성공 사례가 나오고 있다. 앞에서 말한 사례의 일부는 다국적 기업이다. 인도에서 성공적으로 현지화를 이뤄낸 화장품회사도 프랑스 회사다. 엄밀히 말하면 M-Pesa를 내놓은 케냐 최대 이동통신 업체 사파리컴(Safaricom)은 영국 보다폰이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다. 테스코도 영국의 글로벌 기업인데 중국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그럼에도 실패하는 기업이 많은 이유는 대부분의 글로벌기업들이 선진국에서 운영하던 기존 모델을 그대로 가져다 신흥시장에 적용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접근하면 먹히지도 않고, 먹힌다 하더라고 마진이 내려갈 수밖에 없다. 처음엔 일부 시장점유율을 얻는 데 성공할 수 있겠지만 거기서 나오는 수익은 서구 시장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의 몇 퍼센트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현지의 니즈와 시장 상황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현지에 진짜로 적응하는 게 중요하다. 일부 유럽기업들은 선진국에 내놓았던 기존 상품으로 신흥시장의 부유층만을 공략해서 성공적으로 진출했다는 자평을 내놓기도 하지만 그걸 성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신흥시장에서 점유율 1위인 한 제약회사의 전체 매출의 25%는 신흥시장에서 나온다. 하지만 수익은 전체의 13%에 불과하다. 굉장히 제한적이고, 불안정한 신흥시장의 TOP(Top of Pyramid)만 공략하는 것보다, 완전히 새로운 모델을 들고 와서 현지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BOP(Bottom of Pyramid)를 대상으로 성공을 거두는 편이 회사에 더 이익이 될 것이다. 앞서 말했던 18개월 만에 방향을 완전히 전환한 회사도 전자에서 후자로 전략을 바꾼 예라고 볼 수 있다.
 
BOP 시장에서는 상품 외에 서비스 혁신도 필요하다.
경영컨설팅 서비스 회사인 우리도 중국이나 인도와 같은 시장에 진출할 때는 많은 것을 바꾸었다. 엑센츄어가 중국에 진출했던 초기에 한 국영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 세일즈를 하려고 했는데, 그쪽에선 자신들은 컨설팅을 받지 않아도 될 정도의 능력이 있다며 거부감을 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프로젝트를 파는 게 아니라 결과를 파는 모델로 전환했다. 당시 중국의 한 통신사는 가입자 모집 작업에 너무 많은 비용이 드는 반면 효과는 미미하다는 고민을 갖고 있었다. 그 회사는 무작위로 선정한 대상에게 대량으로 문자를 뿌리는 마케팅을 하고 있었다. 이 방법은 돈도, 시간도 많이 들 뿐 아니라 고객 반응률도 겨우 0.5%정도에 불과했다. 우리는 “당신들이 갖고 있는 잠재 가입자들의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신규 가입자를 대신 유치하고 그 결과에 따라 돈을 받겠다”고 제안했다. 우리는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한 타깃 마케팅 등 숙련된 테크닉을 이용해 단기간에 저비용으로 신규 가입자를 모집했고 무려 20%의 반응률을 끌어냈다. 그 회사가 산 것은 마케팅 프로젝트가 아니다. 더 저렴한 비용이 드는 소비자(cheaper consumer)를 원했던 것이다. 이러한 일은 중국에서만 통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인도의 자동차회사가 동남아시아 시장에 진출할 때도 중국에서의 거래와 비슷한 제안을 했다. 동남아 시장에서 추가로 판매되는 차 한 대당 일정 금액을 받기로 한 것이다. 신흥시장에서는 프로세스에 대해 지적하고 그걸로 돈을 받는 데 거부감을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신흥시장에서는 기업의 마인드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별개다. 신흥국가 BOP 시장 현지화 전략을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현지 연구개발(Local R&D)팀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특히 현지인으로 구성할 수 있으면 더 좋다. 자기 회사의 장점이 되는 기존 기술과 상품을 잘 알고 있으면서 이를 현지에 맞게 재창조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요즘 기업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중국, 인도에 R&D팀을 구축한다. 하지만 대부분이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현지의 유통망이 성숙되지 않아 신상품을 개발하고 유통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생태계(ecosystem)를 밑바닥부터 구성해야 하거나 유통망을 더 짜임새 있게 만들어야 한다. 선진국 시장에 진출할 때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됐던 여러 가지 부분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성하는 게 매우 어렵다. 그래서 현지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본사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낼 수 있는 R&D팀이 필요하다.
 
또 검증과 실험(Test & Experiment) 접근 방법을 권하고 싶다. 신흥시장은 엄청난 규모와 빠른 성장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기존 시장과는 근본적으로 상황이 다르므로 현지 팀이 시작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회사에서 내놓은 상품이 실제로 시장에서 잘 통하고 있는지도 끊임없이 검증해야 한다.
 
현지 경쟁자는 해외진출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다. 현지 기업들은 현지에 대한 이해도 훨씬 뛰어나며 현지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들과의 협력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적지 않다. 현지의 어떤 경쟁사가 얼마나 빨리 우리를 모방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자동차 유리를 만드는 한 다국적 회사는 중국에 들어가서 조인트벤처를 설립한 후 정확히 6개월 뒤에 다른 지역에서 똑같은 기술로 자사와 똑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가 생긴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현지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게다가 현지 회사는 중국 군대에 납품까지 하게 됐다. 결국 그 기업은 중국 시장에서 경쟁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신흥시장에서는 지적재산권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하며 여러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현지 기업과의 협력과 경계 사이에서 알맞게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래서 중국에 진출한 한 통신회사는 어느 한 직원도 모든 알고리즘을 알지 못하게 한다. 치밀하게 대비하는 것이다. 이처럼 조심하지 않으면 앞서 언급한 자동차 유리 제조회사처럼 1년 만에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다.
 

세계 최대 휴대전화업체인 노키아는 인도 시장에서 절대 강자였다. 하지만 최근 현지화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자칫 품질 차별화도, 저가의 현지 기업들과의 경쟁도 어려운 어정쩡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업들이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재미있는 것은 기업이 현지 기업과의 경쟁을 피하면 결국 시장도 피하게 된다는 점이다. 어떻게든 경쟁에 맞서야 하고 이겨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자동차유리 제조회사는 본부에서 건설과 수도 파이프관련 사업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그 회사는 자동차 유리로 중국 시장 첫 진출이 실패로 돌아가자 다신 중국에 진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중국시장에 진출하지 않는다면 어차피 중국기업에 그 시장을 빼앗기는 것이고, 그 기업이 중국시장에서 성공해 다른 지역으로 진출하게 되면 또 다시 경쟁자로 만나야 한다. 결국 언젠가는 경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적극적인 중국 진출 전략으로 선회했다. 이 회사는 이전의 실패를 교훈 삼아 두 번째는 성공을 거두었다.
 
해외 기업들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신속하게 신흥시장에 진출할 필요가 있다. 중국 기업은 기술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식의 안일한 생각을 갖고 진출하면 ‘가운데에 낀(stuck in the middle)’ 상황을 피할 수 없다. 게다가 레노버와 같은 중국 거대기업들은 모방에서 벗어나 스스로 혁신을 시도할 뿐 아니라 서구시장으로 진출을 꾀하고 있다. 중국 기업이 새로워지고 있는 것이다. 차이나텔레콤(China Telecom)은 잘못된 청구서를 보내면 청구된 금액의 2배를 보상하는 정책을 사용해 과거 싸구려 이미지를 벗고 고객에게 믿음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신흥시장 진출은 선택사항이 아닌 시간의 문제다. 해외 기업들은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신속하게 신흥시장에 진출해 지속적으로 가격을 내리는 방법을 찾으면서 동시에 끊임없는 혁신으로 경쟁우위를 지켜야 한다.
 
최근 제너럴일렉트릭(GE)은 신흥시장에서 거둔 혁신의 성과물을 선진국 시장으로 역수출하는 역혁신(Reverse-innovation)을 통해 성과를 내고 있다.
“신흥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R&D 규모가 작아서는 안 된다. 회사의 역량이 허락하는 한에서 크게 유지하는 게 맞다. 필립스의 경우에는 R&D본부를 아예 신흥시장으로 옮기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역혁신은 이미 전 세계가 지구촌이 됐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살펴봐야 할 문제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요거트 제조회사 다농(Danone)은 신흥시장에서 1센트에 요거트를 팔았다. 그러자 프랑스 소비자들이 프랑스에서도 가격을 내리라고 거세게 요구했다. 세계 곳곳의 뉴스가 빠르게 전파되는 세상에서는 이런 요소들까지 고려해야 한다. 또한 선진국의 소비자들이 이제는 신흥시장의 소비자들이 원하는 가치들을 원하고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난 제품, 오래 쓸 수 있는 제품 등이 주는 가치 말이다. GE는 신흥시장에서 개발한 휴대용 초음파진단기를 역으로 선진 시장에서 내놓고 숨겨진 수요를 이끌어내 성공을 거뒀다. 선진시장의 소비자들은 과거엔 크고 비싼 차를 좋아했지만, 이제는 싸고 질 좋은 차를 원한다. 물론 독일인들은 빼고 말이다.(웃음) 10년 전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로건(LOGAN·르노닛산 그룹의 한 브랜드)이 유럽에서 부상하고 있다. 우리 회사의 경우에도 중국이나 인도에서 사용한 결과 중심의 판매 시스템을 서구 고객사가 요구한 일도 있었다.
 
신흥시장의 혁신에 현지화가 중요하듯이 역혁신을 할 때도 서구시장에서의 현지화가 필요하다. 자동차라면 안전 검사를 훨씬 엄격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인도의 저가 냉장고 ChotuKool을 개발한 회사는 그 제품을 휴가 때만 사용하는 별장용 냉장고나 자동차에 설치할 수 있는 냉장고로 바꿔 서구시장에 내놓고 있다. 이전에 없었던 상품으로 이전에는 없었던 세그먼트(segment)를 새로 만든 것이다.
 
신흥시장, 특히 BOP 시장에 대한 관심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일시적 현상인가, 아니면 앞으로 지속될 트렌드인가?
“계속 될 것이다. 왜냐하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과 소비자 모두 마인드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번 금융위기가 빠르게 전 세계를 강타해서 모든 이들이 쇼크 상태에 빠졌다. 특히, 다국적 기업의 젊은 CEO들은 이 같은 위기를 처음 겪었다. 이들은 현금유동성 확보와 지속적인 원가절감 등을 중시하는 등 위기 전보다 훨씬 몸을 사릴 것이다. 이번 위기 이후에 이전엔 빈번했던 무리한 인수합병(M&A)이 사라지고, 사내 정치적 분쟁을 최소화하는 PMI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여러 학자들이 세계적 규모의 위기가 또 올 것이며 이 같은 위기의 발생 주기가 더 짧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CEO들은 지금보다 더 신속하고, 가치 지향적인 의사결정을 할 것이다. 소비자들도 더 현실적인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이들이 암울한 미래를 걱정하며 몸을 사리는 우울한 세상은 아니다. 명품시장이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을 보라. 소비자들이 일부 상품에 대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지만 다른 것에 대해서는 소비를 최적화(optimize)하고 있는 것이다.
 
원가절감을 위한 생산기지 건설이나 해외 시장 다각화 이상의 신흥시장 전략을 고민하는 한국기업에 해주고 싶은 조언은?
“많은 기업들은 신흥시장에서 현지 기업들이 본래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던 시장을 위협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알아채고 해외에 진출한다. 한국기업들은 탁월한 브랜드와 기술력을 갖추고 있고 수출경험도 풍부하다. 충분히 신흥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현지화(localization)와 현지 기업에 대한 대비가 핵심이다.”
 
 
박 용 기자 parky@donga.com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박예솔(연세대 경영학과 2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 박용 박용 | - 동아일보 기자
    -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부설 국가보안기술연구소(NSRI) 연구원
    -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정책연구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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