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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실패’의 고리 끊는 조직 혁신

신동엽 | 43호 (2009년 10월 Issue 2)
조직은 수단(means)일까, 목적(ends)일까? 필자가 매 학기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반드시 물어보는 질문이다. 언뜻 생각하면 간단한 질문 같지만,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이슈들이 얽혀 있는 복잡한 문제다. 특히 모든 조직의 리더들이 끊임없이 자문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조직은 수단이다
조직 그 자체나 부서, 사업 분야, 구조, 제도, 시스템 등과 같은 조직 구성 요소들이 수단인지, 목적인지를 물어보면 대체로 대답이 반반으로 갈린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조직은 당연히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대다수 경영자들은 조직의 생존을 위해 여러 수단을 동원한다. 이를 보면 조직 자체가 목적인 것 같기도 하다.
 
발생 순서를 중심으로 보면 조직은 수단이 맞다. 기업 조직을 예로 들면, 흔히 수익 혹은 이익으로 불리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려는 목적이 먼저 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업이라는 조직이 나중에 설립됐다. 기업 조직의 모든 구조, 제도, 시스템은 바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경제적 가치 창출에 동원될 수 있는 수단에는 조직뿐 아니라 개인, 가족, 지역 공동체, 국가 사회 등 다양한 대안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족 비즈니스에서는 가족들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주 단위가 되며, 개인이 주축이 되는 개인 사업도 매우 흔한 경제적 가치 창출의 수단 중 하나다. 그러나 기업이라는 조직이 다른 대안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기업을 통한 이익 추구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즉 조직은 그 발생의 원천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망치나 톱, 연장, 기계 설비, 컴퓨터 등과 같은 도구(tool), 즉 수단이다. 그러나 조직이나 기업에 대해서는 다른 연장이나 기계 설비에는 적용하지 않는 표현들, 예를 들어 ‘충성심(loyalty)’ 등의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컴퓨터에 대한 충성심’은 상상하기 어려우므로 분명 조직은 컴퓨터나 기계 설비 등과는 전혀 다른 뭔가 특별한 성격을 갖고 있다.
 
수단-목적 전도와 ‘말 안 듣는 도구’
필립 셀즈닉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초기 제도 이론(Old Institutional Theory)’을 주창한 조직 이론의 거장으로, 조직은 본질적으로 도구이기는 하나 다른 도구들과 달리 사용자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말 안 듣는 도구(recalcitrant tool)’라고 규정한다. 망치나 톱과 같은 도구는 사용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즉 목재를 자르기 위해 선택한 도구인 톱은 사용자의 뜻에 따라 목재를 원하는 모양과 크기로 잘라낸다. 그러나 셀즈닉 교수는 조직을 이런 다른 도구들과 똑같이 생각하다가는 큰코다친다고 경고한다. 조직이라는 도구는 사용자의 원래 의도와 상관없이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이곤 하기 때문이다.
 
다른 도구는 모두 수단으로 시작해 끝까지 수단으로 남는다. 예를 들면 망치는 항상 못을 박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조직은 다르다. 조직이 처음 생성될 때는 다른 도구와 마찬가지로 어떤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일단 설립되면 점차 원래의 목적보다는 오히려 그 자신의 생존과 성장이 더 중요한 목적으로 자리잡게 된다. 심지어 원래 목적을 이루는 걸 방해하기까지 한다.
 
즉 셀즈닉 교수는 ‘말 안 듣는 도구’인 조직의 특수한 성격 때문에 원래 수단으로 머물러 있어야 할 조직이 목적이 돼버리는 ‘수단-목적 전도(means-ends displacement)’ 현상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많은 경영자들은 원래 조직이 왜 생겼는지 하는 본질적 목적을 잊어버리고, 그 조직이 유지해오던 기존 구조나 제도, 시스템, 관행 등을 그대로 반복하게 된다.
 
영원히 실패하는 조직
조직 이론가인 린 저커 로스엔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는 셀즈닉 교수가 말한 ‘수단-목적 전도’와 ‘말 안 듣는 도구’ 현상이 결합해 ‘영원히 실패하는 조직(permanently failing organization)’이라는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조직이 수단이라면 한두 번 실패할 수는 있겠지만, 영원히 실패할 수는 없다. 사용자에게 중요한 것은 목적의 달성이지 특정 수단에 대한 집착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떤 망치로 못을 박으려다 망치에 이상이 있어 온 벽에 흠집만 난다면, 사용자는 그 망치를 버리고 새로운 망치를 구입할 것이다. 그러나 조직은 원래 목적을 이루는 데 실패하더라도 살아남는 데에는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원래 목적 달성에는 계속 실패하는 ‘영원한 실패(permanent failure)’라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영원히 실패하는 조직’은 실제 잘 나타나지 않는 예외적 상황일 것 같지만, 현실에서 기업은 물론 대학이나 병원, 공공조직 등 모든 유형의 조직에서 생각보다 훨씬 더 자주 볼 수 있다. 원래 설립됐을 때의 목적이 환경 변화로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는데도 계속 존속하는 정부 공공기관의 부처와 규정들이 대표적인 예다. 거주 인구가 급속히 감소해 담당 과업의 양이 대폭 줄었음에도 계속 성장하는 지자체 조직들도 마찬가지다. 경제적 가치 창출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는데도 계속 존속하는 기업의 부서나 사업 분야들 역시 ‘영원히 실패하는 조직’의 예다.
 
구체적 사례를 살펴보자. 1991∼1996년의 6년간 한국 30대 재벌 그룹 계열사들의 평균 EVA (Economic Value Added)는 마이너스였으며, 70% 정도의 재벌 계열사들이 마이너스 EVA를 기록하고 있었다. EVA는 기업 조직의 본질적 목적인 ‘경제적 가치 창출 정도’를 뜻한다. 당시 재벌 가운데 아무리 경제적 성과가 부실해도 계열사를 없앤 사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우량 계열사들이 창출하는 자원들이 계속 부실 보전에 투입됐다. 이들 부실 계열사들은 원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수단으로 설립된 기업 조직이었으나 경제적 가치를 오히려 파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생존한 ‘영원히 실패하는 조직’이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 경제는 외환위기를 맞게 되고, 30대 재벌 중 16개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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