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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박영석 대장의 극한 상황 속 의사결정

“과감한 ‘공격’보다 과감한 ‘후퇴’가 더 중요”

박용 | 41호 (2009년 9월 Issue 2)
박영석(46·골드윈코리아 이사) 대장은 2005년 세계 첫 산악 그랜드슬램(히말라야 14좌, 7대륙 최고봉, 지구 3극점 등반)을 이룬 세계적인 산악인이다. 그가 8000m 이상 고봉 등 극지를 공략하는 전술은 ‘극지법’이다. 단독 등반보다는 물량과 인원을 동원해 캠프를 꾸리고 조금씩 정상을 공격하는 방식이다. 원정대장은 극한 상황에서 일사불란하게 팀을 이끌어야 한다. 대장은 팀원에게 정상 공격 등의 임무를 부여하고, 베이스캠프에서 대원들을 진두지휘한다. 군대의 야전 사령관이나 마찬가지다.
 
20여 년간 원정대를 이끌어온 박 대장을 8월 말 서울 성북구 월곡동 세계탐험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에게 극한 상황에서 팀을 이끄는 리더의 ‘실전(實戰) 의사결정’ 기술에 대해 물었다.
 
“1초만 판단이 늦어도 사지에 떨어지는데 이것저것 따질 시간이 어디 있나. 팀장은 자신은 물론 팀원들의 생명까지 걸고 냉정하고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게 팀장의 능력이다.”
 
박 대장은 지금까지 등반 과정에서 불의의 사고로 9명의 팀원을 잃었다. 2007년에는 한솥밥을 먹던 후배 2명을 산에서 잃고 은퇴까지 고려했을 정도로 시련을 겪었다. 그는 “극한 상황에선 여러 가지 상황을 배려하는 덕장(德將)이 설 자리는 없다”며 “순간적인 상황 판단 능력과 과감한 실행을 할 수 있는 맹장(猛將)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탐험대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무법자다. 모든 의사결정을 하고, 대원들의 생사까지 좌우할 수 있다. 내 결정 하나로 전 대원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어려운 자리다. 원정대의 위계질서는 군대보다 엄격하다. 무조건 상명하복이다. 선배는 후배들한테 모든 것을 준다. 대장이 자기 것만 챙기면 어떤 놈이 목숨을 걸고서 따라오겠나. 후배들은 죽으라면 죽는 시늉을 할 정도로 따라와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극한 상황에서 원정대를 지휘할 수도, 꾸려나갈 수도 없다.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거긴 전시다. 몇 초 몇 분 안에 결정하고, 지시하고, 움직여야 한다. 산을 내려와 술 마실 땐 덕장이 통하지만, 산 위에서는 맹장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산에서는 혹독한 박 대장이지만, 평지에서는 후배들을 살뜰히 챙긴다. ‘박영석 사단’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자녀 등록금이나 생활비가 없어 쩔쩔매는 후배들에게 돈을 쥐어주고, 직장도 구해준다. 후배들과 생활하는 그의 집은 원정대 합숙소다. 박 대장은 “부인과 자식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볼까 말까 한다”며 “이렇게 하면서 후배들과 서로 믿음을 쌓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팀원들과 신뢰 관계가 형성됐더라도 극한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하다 보면 갈등이 생길 수 있을 텐데.
“무조건 명령하지는 않는다. 먼저 ‘이런 상황인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새로운 루트를 내는데 이쪽 상황이 좋지 않으니까 오른쪽으로 치고 넘어가면 어떨까’ 하고 팀원들의 의중을 떠본다. 하지만 결정은 내가 내린다. 대원들은 따른다. 리더가 믿음을 주지 못하면 대원들이 안 따라온다. 체력적으로 문제가 있는 대원은 베이스캠프에서 쉬게 한다. 대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내린 결정에 대해 대원들이 토를 단 적은 한 번도 없다.”
 
등반 성공률이 60% 가까이 될 정도로 높다.
하지만 거꾸로 본다면 40%의 실패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의사결정에서 실패는 항상 안고 가야 하는 요소다. 요즘 젊은이들은 실패가 두려워 도전을 안 한다. 실패가 두려워 의사결정을 못해서는 안 된다. 실패가 어영부영한 성공보다 100배 낫다. 단, 실패할 때는 100% 최선을 다해 실패해야 한다. 그래야 그 실패가 내 것이 된다. 100% 최선을 다하지 않은 실패는 다른 실패로 이어진다. 뭐가 모자라 실패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퍼펙트한 실패’를 하고 돌아설 땐 후회가 없다. 후배들도 그걸 믿는다.”
 
의사결정에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사례는 무엇인가?
“물론 대원들을 잃었을 때다. 내가 판단을 잘못해서…. 뼈를 깎는 심정이다. 2007년 에베레스트 남서벽 신루트 개척에 도전했을 때 정상 공격에 나섰던 후배 둘을 눈사태로 잃었다. 10년간 한솥밥을 먹던 친구들인데…. 당시 시간에 쫓겼다. 위치도 나빴다. 날이 나빴고, 캠프를 칠 자리도 마땅치 않았다. 골짜기니까 눈이 쓸려올 자리이긴 한데, 그때는 눈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날 밤은 거기서 때우라고 했다. 그런데 밤새 눈이 내렸다. 내가 있던 베이스캠프에서는 보통 대기하고 먼저 연락하는 일이 드물다. 처음엔 눈이 그렇게 쓸려오고 있는지도 몰랐다.
 
베이스캠프로 대원들의 무전이 왔을 때 ‘텐트가 터질 위험이 있으니 지금이라도 빨리 나오라’고 했다. 대원들이 ‘신발을 신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 무전이 끊겼다. 무전이 5분, 10분만 빨랐어도…. 후배들을 위로 올려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니면 빨리 내려오게 하든가 다른 쪽을 찾아보게 해야 했다.”
 
박 대장이 이끌던 ‘2007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대’의 고(故) 오희준, 이현조 대원은 에베레스트 남서벽 해발 7700m의 캠프 4에서 눈사태를 맞아 1200m를 추락한 끝에 유명을 달리했다. 두 대원의 시신은 신발 한 짝만 신은 채로 발견됐다.
당시 충격으로 은퇴까지 고려했다고 들었는데.
“은퇴하려고 했다. 전시도 아닌데 한두 명도 아니고 9명이나 ‘죽였다’. 내가 은퇴하면 더는 죽이지 않을 것 아니냐. 그래서 은퇴하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원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함께 에베레스트 남서벽 신루트 내자’고 후배들과 철석같이 약속했는데, 내가 도망간다면 비겁자가 되고 평생 짐이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올해 5월 남서벽에 다시 도전했다. 성공하고도 기쁘지 않았다. 단지 후배들과 한 약속을 지켰다는 생각뿐이었다.”
 
예기치 않은 보급 문제로 첫 번째 북극점 도전에 실패했다.
“항상 히말라야 등반만 하다가 처음으로 극지 탐험을 했다. 말로 들었던 것과 실제 가본 상황이 너무 달랐다. 지구상에 지옥이 있다면 아마 북극일 것이다. 북극점 도전에 실패하고 돌아올 때, 아쉬움보다는 ‘내가 이 징글징글한 곳에 다시 와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처음이라 짐도 많았고,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진행도 더뎠다. 갑자기 항공사가 착륙이 어렵다며 보급을 중단했다. 이미 60일치 식량을 다 썼기 때문에 보급을 받지 못하면 끝까지 갈 수 없었다.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북극점 도전에서는 남은 식량을 버리는 과감한 의사결정을 했다.
“배수진을 쳤다. 이번에는 보급품 때문에 썰매가 너무 무거워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15일 안에 도착하지 못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상황을 판단할 때 딱 2가지 선택지만 있었다. 실패냐 성공이냐. 식량과 연료를 버리고 마지막 도전을 결정했다. 15일치만 남기고 식량과 연료를 절반이나 버렸다. 그리고 속도를 냈다. 밤낮없이 계속 갔다. 성공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을 더 지체하면 눈이 녹아 갈 수가 없었다. 두 번째 북극점 도전에 성공했을 때는 기쁨보다는 ‘이곳에 다시 오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들더라.”
 
식량과 연료를 버릴 때 팀원들의 반응은 어땠나?
“거기까지 갔을 땐 100% 날 따라온다. 대장을 신뢰하고 믿으니깐. 믿음이 없으면 같이 갈 수가 없다. 재산은 말아먹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우린 아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 일상적인 삶에서부터 신뢰가 쌓이지 않으면 전시에 부하들이 대장을 따르겠나. 모두 도망가지…. 전쟁터랑 똑같다. 하도 붙어사니 후배들 눈빛만 봐도 ‘지금 무슨 생각하는구나’ ‘저 친구는 분명 짐 쌀 거야’ 그런 예감이 든다.”
 
기한을 넘겼을 때 플랜 B는 있었나?
“구조를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구조를 받으려면 일단 비행기가 앉을 수 있는 얼음판을 찾아야 했다. 북극점에 도달하고 구조를 기다릴 때 식량이 딱 떨어졌다. 사흘을 굶으며 기다렸다. 그때 태풍이 몰아쳐 구조해줄 비행기도 들어오지 못했다. 그래도 버티고 기다렸다. 구조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때 북극에서 가장 경험 많은 파일럿이 우릴 구하러 왔다. 바람이 잠잠한 태풍의 눈 사이로 비행기를 몰고 들어왔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우리가 활주로 500m를 닦아놓고 깃발을 꽂았는데, 바람을 이용해 마치 헬기처럼 수직 착륙을 했다.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 파일럿도 상당한 경험이 있었기에 그런 판단을 했을 것이다.”
 
극한 상황에선 시간도 촉박하고, 정보도 적고, 스트레스도 많다. 그런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리더는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나?
“결단력이다. 그런 데서 질질 끌면 큰일 난다. 내 예감은 그렇다. 난 내 자신을 믿는다. 누군가 ‘당신의 멘터가 누구냐’라고 물으면 ‘나’라고 대답한다. 내가 날 못 믿는데, 어떻게 대원들의 목숨을 담보로 결정을 내릴 수 있겠나.”
 
극한 상황의 의사결정에서는 경험과 직관도 중요한 것 같다.
“판단과 동시에 행동이 나와야 한다. 경험이 없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른다. 후배들도 경험이 많지만, 대장이 훨씬 경험이 많으니 쫓아와준다. 직관도 중요하다. 경험이 많은 리더는 바람과 구름 모양을 보고 날씨가 어떨 거라고 예감한다. 개미도 홍수가 나기 전에 땅 위로 올라오지 않는가.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건 거의 경험에서 나온다. 동물적 감각이 현장에선 살아난다.”
노련한 현장 리더들은 머릿속에서 상황에 따른 대안을 실행해보는 멘털 시뮬레이션을 통해 의사결정을 한다고 들었는데.
“그렇다. 내가 실제로 경험했던 일을 토대로 결정하는 거니까 거의 맞아떨어진다. 예를 들어 에베레스트 남서벽 신루트를 개척할 때는 출발 전에 사진 촬영을 하고 미리 루트를 그려본다. 막상 현장에 가면 루트를 변경할 일이 생긴다. 일정을 조정할 수도 있다. 준비를 철저히 하되, 현장에서 부딪히는 상황에 대해서는 경험에서 얻은 감으로 대안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그때그때 결정한다.”
 
자신을 너무 믿게 되면 독단에 빠져 반대 의견을 무시하거나, 자신의 결정을 사후 합리화할 수도 있다.
“글쎄. 이건 인간과의 머리싸움이 아니라 자연과의 싸움이니까. 난 8000m만 40번을 등반했다. 거기서 나오는 경험이 있다. 내가 그동안 거의 모든 상황을 맞닥뜨려봤으니 머뭇거리지 않고 결정한다. 과감한 어택(attack)보다 과감한 백(back)이 더 중요할 때도 많다. 정상이 100m밖에 남지 않았어도, 이대로 올라가면 내려올 때 문제가 생겨 조난당할 수도 있다면 그 상황이 일어나기 전에 반드시 하산 결정을 해야 한다. 8000m 높이에서 조난을 당하면 다른 구조자가 올 수도 없다. 내 발로 걸어 내려와야 한다. 대부분의 인사 사고는 내려올 때 일어난다.”
 
원정대장 의사결정의 최종 목표는 정상이 아니라 안전한 하산인가?
“그렇다. 이번에 에베레스트 남서벽에서 마지막 정상으로 갈 때 상황이 너무 어려웠다. 그 순간 ‘아, 이러다 하산 못하겠다. 여기를 넘으면 퇴로가 막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자꾸 늦어졌다. 그 선을 넘으면 어떤 사고가 나도 마지막 캠프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때 정상에 올라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려가려면 무조건 정상에 올라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됐다. 시간은 늦어졌지만 무사히 반대편으로 내려왔다. 내가 반대편의 지리를 몰랐다면 그 상황에서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동안의 노하우, 판단력, 정보가 있었기에 하산까지 염두에 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어택’보다 ‘백’의 의사결정이 주효했던 적은 언제인가?
“정상을 200∼300m 앞두고 제트 기류 때문에 내려온 적이 있다. 아마 더 버텼다면 날아갔을 것이다. 과감히 내려오기로 결정했다. 내년에 다시 오면 되니까. 산이 어디 가나, 사람 목숨이 더 중요하지. 에베레스트 정상이 8850m인데, 8700m에서 돌아 내려온 적도 있다. 날씨가 계속 나빠지고 눈이 쏟아졌다. 나는 지금도 그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50m만 더 올라가면 남봉인데, 이미 손발이 얼어 감각이 없었다. 계속 올라갔다면 손발을 다 잘라야 했을 것이다. 다시 등반도 할 수 없었을 테고.”
 
등반 준비와 팀원 구성은 어떻게 하는가?
“팀원은 보통 7명 내외다. 항상 모든 등반 준비가 다 돼 있다. 지금도 대형마트 한 번 ‘털면’ 바로 출발할 수 있다. 등반을 준비할 때는 팀원들과 함께 책, 사진, 자료를 보면서 계획을 짠다. 생전 처음 가는 루트는 어느 루트로 올라갈지 미리 고민한다. 올라갈 대상의 사진을 찍어 정상까지의 루트를 그리는 식이다. 밑에서 본 걸로 안 되면 비행기 타고 항공 촬영도 한다. 새 대원을 쓸 때는 추천을 많이 받는다. 대학생들을 한두 명씩 데려간다. 후배를 키우기 위해서다. 산악 경험도 많고 군대도 다녀온 고학년으로 뽑는다. 등반 능력은 안 본다. 여기 올 정도면 끈기, 체력은 기본이다. 히말라야 가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되나. 가서 가르치면 된다. 대신 인간 됨됨이를 본다. 베푸는 마음, 여유, 더불어 사는 마음, ‘나’가 아닌 ‘우리’를 중요시하는 사람을 쓴다.”
 
젊은이들에게 해줄 얘기가 있다면.
“요샌 대학 산악회에 신입 대원들이 별로 안 들어온다. 정말 괜찮은 인재를 얻기가 힘들다. 다행히 내가 인복이 있어 지금까지 왔지만…. 선진국의 역사는 탐험의 역사다. 탐험으로 신대륙을 개척했다. 우리나라는 안주하려고만 든다. 그게 아쉽다. 우리 같은 사람(산악인)한테 ‘어차피 내려올 걸 왜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올라가느냐’고 빈정거리는 사람도 많다. 외국에선 그렇게 얘기하지 않는다. 황인종이라고 무시하는 것 같다가도, 내가 탐험가라며 명함을 주면 바로 ‘서(sir)’라고 부른다. 난 산을 타는 1차적 탐험가지만 의사, 정보기술(IT), 게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가는 사람들도 일종의 탐험가다. 미래를 이끌어갈 어린이들은 우리를 보면서 개척의 꿈과 열정을 얻는다. 기성세대는 그런 걸 잘 모르니까 답답하다. 신념도 없이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도 있다.”
 
인생에서 가장 성공적인 결정은 무엇인가?
“산악인의 길을 택한 일이다. 요샌 대학 졸업해도 자신한테 정말 맞는 길을 찾는 사람이 드물다. 난 내가 하고 싶은 걸 택했고,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것이다. 이룬 업적이 아무리 많아도 하기 싫은 일이라면 잘못 선택한 것이다.”
  • 박용 박용 | - 동아일보 기자
    -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부설 국가보안기술연구소(NSRI) 연구원
    -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정책연구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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