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보다 봉사를 택한 周公의 리더십

40호 (2009년 9월 Issue 1)

형보다 뛰어난 아우
기원전 11세기에 상(商)나라를 멸망시키고 주(周)나라를 건국한 무왕(武王)은 기라성 같은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기용함과 더불어 적절히 견제함으로써 주나라의 기반을 닦아나갔다. 무왕을 보좌한 인재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존재는 무왕의 친동생 주공(周公)이었다. 주공은 무왕을 도와 상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紂) 임금을 토벌해 주나라 건립에 공을 세운 개국공신이기도 하다.
 
무왕이 죽고 어린 성왕(成王)이 뒤를 잇자 주공은 조카를 도와 국정을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주공은 상나라의 후예인 무경(武庚)이 일으킨 반란과 자신의 섭정에 불만을 품은 삼감(三監)의 반발 등을 진압해 위기에 처한 주나라를 살리고 권력 기반을 단단히 다지는 데 막강한 역할을 해냈다.
 
주공은 ‘주나라의 예’ 또는 ‘주공의 예’라고 불리는 주례(周禮)로 대변되는 예악(禮樂)을 제정해 나라를 떠받치는 기둥으로 삼았다. 그는 또 역사상 가장 중국적인 제도로 평가받는 ‘봉건제’라는 통치 질서를 창안한 주인공이었다. 예악과 봉건은 이후 중국의 모든 왕조를 지탱하는 기본 질서로서 수천 년 동안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공자(孔子)는 이런 주공을 꿈속에서조차 사모할 정도였고, 유가에서는 주공을 성인으로 떠받들었다. 주공은 형님인 무왕이 일찍 세상을 뜬 탓에 자신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책임을 떠안게 됐다. 동시에 이 때문에 평생 주변으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며 살아야 했다.
 
 

 
주변의 의심과 반발에 강온책으로 대응
어린 조카인 성왕이 즉위하자 주공은 선왕들에게 고하는 의식도 생략한 채 즉각 섭정(攝政)이 되어 대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어린 왕의 즉위로 민심이 흩어지고 이민족이 침입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주공의 친형인 관숙(管叔)과 친동생인 채숙(蔡叔)이 멸망한 상나라 유민들을 이끌고 있던 무경과 결탁해 ‘주공이 장차 성왕을 해치고 왕위에 오를 것’이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주공의 섭정을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평소 주공을 잘 알고 이해하던 집안 형제인 소공(召公)조차 주공을 의심하고 나섰을 뿐 아니라, 심지어 개국공신이자 아버지 문왕의 스승과도 같았던 강태공마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여기에 변방의 이민족들도 호시탐탐 주나라의 내분을 예의주시하며 기다렸다. 그야말로 주 왕조는 정권 초기에 겪는 심각한 병목 위기에 빠졌다. 이에 주공은 강태공과 소공 앞에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이렇게 해명했다.
 
“내가 오해를 무릅쓰고 섭정을 하려는 것은 천하 백성들이 우리 주나라로부터 마음이 떠나는 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태왕, 왕계, 문왕께 고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세 왕께서 오랫동안 걱정하고 애쓴 끝에 천하가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무왕께서 일찍 세상을 떠나셨고 성왕은 아직 어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나라를 일으키려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섭정을 하는 목적입니다.”
 
주공은 진솔하게 자신의 의도를 밝혀 강태공과 소공의 의심을 거두었다. 그러나 관숙과 채숙은 이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이민족까지 끌어들여 반란을 일으켰다. 주공은 왕명을 받들어 이들을 정벌해 형 관숙은 죽이고 동생 채숙은 추방함으로써 난을 진압했다. 또 상나라의 유민들을 잘 다독여 용서하고, 동생 강숙(康叔)과 집안 형님인 미자(微子)로 하여금 이들을 다스리게 했다. 이렇게 주공은 무력을 동원한 강경책과 진심 어린 설득을 통한 온건책으로 정권 초기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면서 주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권력욕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혼
조카 성왕이 19세가 되자 주공은 즉시 정권을 조카에게 넘기고 신하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때까지도 주공에 대한 의심을 풀지 않고 있던 조정 신하들과 불만 세력들은 비로소 주공의 진심을 확인하게 됐다.
 
하지만 주공에 대한 의구심은 조카에게 정권을 깨끗이 돌려준 뒤로도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누군가 성왕에게 주공을 모함하자 성왕은 주공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다시 섭정을 하던 때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자 주공은 어떤 변명도 하지 않은 채 남방 초나라로 망명해버렸다.
 
숙부의 예상 밖의 행동에 성왕은 크게 놀랐다. 그러다 우연히 문서 보관소에 있는 주공의 축문을 읽게 됐다. 성왕이 어렸을 때 큰 병이 나자 숙부 주공은 자신의 손톱을 잘라 황하에 던지며 “왕이 아직 어려 식견이 없사옵니다. 하늘의 명을 어지럽히는 자는 바로 저 단입니다. 그러니 병이 나더라도 제가 나야 합니다”라고 빌었다. 그 후 성왕의 병은 완쾌됐다. 뒤늦게나마 숙부의 마음을 알게 된 성왕은 눈물을 흘리며 주공을 돌아오게 했다.
귀국한 후에도 주공은 조카 성왕이 행여 정치를 잘 못할까 걱정돼 역사에서 성공한 제왕과 실패한 제왕의 사례를 일일이 들어가며 간곡히 충고했다. 그는 죽기에 앞서 “내가 죽으면 동도인 성주(成周)에 묻어 내가 감히 지금 왕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마음을 전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주공 자신이 왕의 숙부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왕의 신하로서 왕이 머물고 있는 성주에 묻히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조카 성왕은 주공을 동도에 묻지 않고 할아버지 문왕과 아버지 무왕이 묻혀 있는 필(畢)이라는 곳에다 장사를 지냈다. 그러면서 “내가 숙부의 유언을 따르지 않는 것은, 우리 주 왕조의 대업을 문왕께서 열었기에 주공은 당연히 문왕께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성왕은 숙부 주공을 문왕이나 무왕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대우했던 것이다.
 
죽어서도 인정받는 리더
주공은 살아서는 내내 주변의 의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한 번의 섭정이 죽는 순간까지 그의 발목을 잡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주공은 개의치 않았다.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대신해 노(魯)나라 봉지로 떠나는 아들 백금(伯禽)을 앉혀놓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동생이며, 지금 왕인 성왕의 숙부다. 어디로 보나 나는 결코 천한 신분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목욕 한 번 하다가 감던 머리카락을 세 번씩이나 움켜쥐고 나오고, 밥 한 끼 먹다가 세 번씩이나 먹던 것을 토해내면서’까지 인재를 우대했다. 오로지 천하의 유능한 인재를 잃을까 걱정되어서였다. 노나라로 가더라도 결코 사람들에게 교만하게 굴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
 
‘일목삼착(一沐三捉), 일반삼토(一飯三吐)’라는 유명한 고사성어가 바로 이 주공의 일화에서 나왔다.
 
예악을 제정할 당시 주공은 아침에는 100편의 글을 쓰고 저녁에는 70여 명의 인재들과 면담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도 남아 있다. 그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 하층민도 다수 포함돼 있었고, 유능한 인재라면 천 리 길도 마다 않고 직접 찾아가 모셔왔다. 좋은 정책과 솔직한 의견을 제안하는 자문 그룹이 무려 100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는 평생을 주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침식을 잊어가며 고군분투했다. 이런 그를 주위에서는 색안경을 끼고 오해했고, 심지어는 이민족까지 끌어들여 반란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그는 평생 의심 속에서 살았다. 하지만 그는 누가 뭐라 해도 권력욕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주공은 망명에서 돌아와 조카 성왕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부모가 오랜 세월 이룩한 창업을 자손들이 교만과 사치에 빠져 잊어버리고, 결국은 그 때문에 가업을 망치니 자식 된 자로서 어찌 몸과 마음을 근신하지 않으리오!”
 
3100년 전 주공의 리더십에서 우리는 사욕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라와 백성만을 위해 봉사하는 리더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 자신이 당대 최고의 능력 있는 통치자이자 인재였음에도 주공은 결코 자만하지 않았다. 사람이 찾아오면 누가 됐건 ‘일목삼착’ ‘일반삼토’ 하면서까지 맞이했다. 주나라가 서주 400년, 동주 500년, 총 900년 동안 존속한 것은 결코 우연이거나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공자가 왜 꿈에서조차 그를 그리워했겠는가?
 
필자는 고대 한·중 관계사를 전공하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년 동안 사마천의 <사기>에 대해 연구해오고 있으며, 2002년 외국인 최초로 중국 사마천학회의 정식 회원이 됐다. 저서로 <난세에 답하다> <사기의 인간경영법> <역사의 등불 사마천, 피로 쓴 사기>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34호 세계관의 세계 2021년 12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