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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가 되려면 먼저 자신을 알라

김영수 | 35호 (2009년 6월 Issue 2)
요리로 정치를 논한 이윤
성공한 리더의 뒤에는 특출한 참모가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춘추시대 환공(桓公)을 도와 제나라를 부국강병으로 이끌고, 환공을 최초의 패자(覇者)로 만들었던 관중(管仲)이다.
 
흥미롭게도 환공과 관중은 원래 원수지간이었다. 관중은 정쟁(政爭)의 와중에 활을 쏘아 환공을 암살하려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환공은 포숙(鮑叔)의 건의를 받아들여 지난날의 원한을 잊고 관중을 용서했으며, 그를 재상으로 발탁하기까지 했다. 제나라는 포숙의 사심 없는 양보와 환공의 통 큰 포용력, 관중의 재능이 합쳐짐으로써 제후국들을 호령하는 최강국이 될 수 있었다.
 
상(商)나라를 건국한 탕(湯) 임금은 역대 명군 반열에 오른 지도자다. 탕에게는 이윤(伊尹)이라는 뛰어난 참모가 있었다. 지난 호에서 잠깐 소개했듯이 탕이 무려 다섯 차례나 이윤을 찾아가 그를 발탁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이것이 유명한 ‘오청이윤(五請伊尹)’이라는 고사다.
 
탕 임금과 이윤에 관한 설화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가 전해진다. 이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이 ‘이윤부정(伊尹負鼎)’이다. 글자대로 풀이하자면 ‘이윤이 솥을 짊어졌다’는 뜻이다. 고대에는 다리가 3개 달린 세발솥을 ‘정(鼎)’이라 했는데, 이것은 고기 같은 음식을 삶는 조리 기구다. 솥을 짊어졌다는 말에서 이윤이 요리사 출신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윤의 초상화는 대부분 그가 세발솥을 들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설화에 따르면 이윤은 자신의 큰 뜻을 펼치게 해줄 지도자로 탕을 마음에 두었다. 그러나 좀처럼 탕을 만날 수가 없었다. 생각다 못한 그는 탕에게 접근하기 위해 요리 기구를 전부 싸 들고 탕의 아내가 될 유신씨(有莘氏)의 혼수품에 딸려가는 노예가 됐다(이윤은 유신 부락 출신이다).
 
이렇게 탕에게로 온 이윤은 일단 훌륭한 요리 솜씨로 탕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고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탕에게 요리법에 비유한 ‘치국의 도(治國之道)’를 이야기했다. 당시 이윤이 탕에게 들려준 나라 다스리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것의 이치는 같습니다. 모든 요리에는 그에 맞는 요리법이 있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그 방법을 알아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음식을 만들 때 솥 안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변화는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조미료를 언제 넣어야 하며, 얼마나 써야 하는지 등이 모두 알맞아야 합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국의 발전에 어떻게 순응할 것이며, 어떤 법도를 시행할 것이냐는 모두 형세에 대한 관찰이 전제가 돼야 합니다. 공을 성취하고 천하를 얻으려면 조건이 무르익은 상황에서 시기를 잘 파악해 과감히 결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윤은 정치의 요체란 정세 변화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있다고 봤다. 정세 변화의 기미를 제대로 파악하면 그에 맞춰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정책을 과감히 실행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이윤은 치국의 도를 요리법에 비유하면서 탕 임금에게 통치와 치국의 본질을 강론했다. 이윤의 수준 높은 정치론에 감명받은 탕은 그를 재상에 임명해 국정 전반을 이끌게 했다. 이렇게 해서 이윤은 중국 역사상 지도자를 가장 성공적으로 보필한 최초의 재상으로 남게 됐다.
 
리더의 9가지 유형, 구주론
<사기> 권3 ‘은본기’에 나오는 이윤과 탕 임금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이윤이 탕의 신하가 된 다음 ‘소왕(素王)’과 ‘구주(九主)’에 대해 논했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그것이 어떤 내용인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이 없다. 그러나 그 후 <사기>에 주석을 단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자료들을 끌어다 ‘구주’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내용을 보탰고, 이것이 이윤의 ‘구주론(九主論)’이 됐다.
 
사기에 대한 주석집으로는 <사기색은(史記索隱)> <사기집해(史記集解)> <별록(別錄)> 등이 있다. 특히 한나라 때의 학자 유향(劉向)의 <별록>에 쓰인 기록이 가장 상세하며, 후대의 기록들은 대부분 그의 주석을 인용했다. 유향이 말하는 이윤의 ‘구주’란 법군(法君), 전군(專君), 노군(勞君), 수군(授君), 등군(等君), 기군(寄君), 파군(破君), 고군(固君), 삼세사군(三歲社君) 등 9가지 유형의 리더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표1>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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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를 좀더 설명해보면 이렇다. 우선 ‘법군’은 비상시에 필요한 리더의 유형이기는 하지만 ‘전군’으로 흐를 위험성이 크다. ‘기군’과 ‘파군’은 망국의 리더로 최악이고, ‘수군’은 무능력한 리더의 전형이다. ‘고군’은 자기 수양은 등한시한 채 무력으로 주변을 위협하거나 정복하려는 유형으로, 매우 위험한 리더다. ‘삼세사군’은 어린 나이에 통치자가 된 리더로, 어떤 대신이 보필하느냐에 따라 리더의 자질이나 리더십이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가장 바람직한 리더의 유형으로는 백성들을 위해 노심초사 부지런히 일하는 ‘노군’과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며 논공행상 역시 원만하게 처리하는 ‘등군’을 들 수 있다.
 
이윤이 제시하고 있는 리더의 유형은 수천 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 사회의 리더 유형으로 치환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참신하다.

이상 ‘구주’의 내용을 보면 대단히 현실적인 리더십 이론가 이윤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는 이 9가지 리더 외에 ‘소왕’을 언급했다고 하는데, 이는 말 그대로 ‘무관의 제왕’을 말한다. 이윤은 제왕은 아니었지만 덕망이 높아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았던 이를 예로 들며 탕 임금에게 리더로서 갖춰야 할 자질을 강론한 것 같다.

이윤은 인품과 덕을 갖춘 인물들을 본받거나, 이런 인물의 도움을 받아 리더 자신의 언행을 바로잡으라고 충고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보다 구체적으로 역대 리더들을 9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그 장단점을 상세히 피력해 탕 임금의 통치 철학을 정립하는 데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것으로 추측된다.
 
리더의 기본 자질은 자신을 아는 능력
훌륭한 리더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보고, 자신이 가진 능력과 장단점을 파악해야 한다. ‘구주론’의 교훈도 자신을 아는 사람에게만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구주론’은 리더의 유형론이자, 리더의 자아 성찰까지 강조하는 리더십 이론이라 할 수 있다.
 
현대는 이른바 ‘셀프 리더십(self lea-dership)’의 시대다. 이는 모든 사람이 주체적으로 리더의 삶을 살아야 하며, 누구든 리더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리더에게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자질은 ‘자신을 아는 능력’이라는 점은 강조되지 않는 듯하다. 자신의 능력과 한계, 그리고 장단점을 정확히 아는 일이야말로 제대로 된 리더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필수불가결한 단계다. 이 단계를 빠뜨리거나 제대로 거치지 않으면 리더는 나쁜 길로 빠지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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