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휴대전화가 꺼져 있는 건 아닌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요?”
“문자 메시지도 남겼고?”
“그럼요. 부장님 결정 기다리느라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고 몇 번이나 남겼는걸요.”
지금 시간은 벌써 오후 4시. 오전부터 자리를 비운 강 부장은 아직도 사무실에 돌아오지 않았다. 문제는 그가 오늘 안에 결정해야 할 중요 사안(여름 판촉 행사 관련)이 있다는 것. 영업 부원들은 물론이고 다른 관련 부서원들도 영업부 최종 결정권자인 강 부장이 나타나지 않아 일에 손을 대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벤트 에이전시에서도 계속 전화가 오는데 어떡하죠? 무작정 기다려달라고 할 수도 없고…. 오늘 안에 결정하지 않으면 행사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고요.”
“그렇다고 부장님 결제 없이 일을 진행할 수는 없잖아.”
“지난겨울에도 유명 백화점에서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하려고 했다가 부장님이 증발하시는 바람에 결국 아무것도 못했잖아요. 우리가 찜해뒀던 장소는 경쟁사가 가져갔고요. 기억 안 나세요? 그때 우리가 알아서 처리 못했다고 부장님이 얼마나 화내셨어요? 그냥 차장님께서 판단을 해주시고 부장님께 사후 재가를 받는 게 어떨까요?”
아무 말 없이 지켜보던 김기본 차장이 그제야 말문을 열기 시작한다.
“그래, 언제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으니까 우리끼리 회의해 결정하자고. 자, 문제가 뭐였지?”
그런 김 차장을 나만희 과장이 만류하고 나선다.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부서가 주관하는 제일 큰 행사 중 하난데 부장님 컨펌을 받아야죠. 부장님은 큰일 있을 때 꼭 이러시더라. 일 주임, 업체들한테는 최대한 양해를 구해봐. 조아라 씨, 전화 더 해보고 안 받으시면 다시 문자 보내!”
같은 시각, 회사 인근의 PC방. 강 부장은 고스톱 게임을 모니터 가득 띄워놓고 삼매경에 빠져 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휴대전화 진동 소리에 난감한 얼굴로 액정 화면을 들여다보는 강 부장.
“하, 이거 참. 왜 아직도 전화질을 하는 거야? 이쯤 되면 자기들이 알아서 좀 할 것이지. 퇴근 시간이 지나야 좀 잠잠해지려나? 전화 오는 것도 신경 쓰이는데 그때까지 사우나나 해야겠네.”
마침 그때 문자 메시지가 도착한다.
‘부장님, 퇴근 전에 안 오시면 부서원 모두가 댁으로 찾아뵐게요. 워낙 중요한 문제라서요. *^^*’
낭패다.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는 강 부장.
다시 사무실.
“흠흠. 거래처에 갔더니 나를 놔줘야 말이지. 자, 이제 회의를 해볼까? 그래, 뭘 결정해야 하지?”
“이번 여름휴가 시즌 판촉 행사 말인데요. 해변 콘서트를 할까요, 말까요?”
“작년까지 계속 했던 건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 했던 대로 하면 되지.”
“그런데 올해는 경기가 너무 안 좋아서요. 상반기 매출이 너무 떨어져 경리팀에서는 예산을 대폭 줄이라고 하거든요. 부장님께서도 아시다시피 해수욕장 행사는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습니다.”
“음… 그럼 올해는 취소해야겠네?”
“그런데 우리 회사 이름을 걸고 하는 해변 콘서트는 이미 10년이 넘은 전통 있는 행사라 무리를 해서라도 이어가자는 의견도 있어서요.”
“흠… 그럼 올해도 계속 진행해야지.”
“그러기엔 예산 문제가…. 게다가 많은 돈을 들였는데도 매출 효과가 없으면 우리 영업부에서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구먼.”
오랜만에 진지한 얼굴로 깊은 상념에 빠진 강 부장. 부서원들이 숨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서서히 고개를 든다.
“자네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이럴 때일수록 머리를 모아야지. 중요한 일일수록 중지를 모으고, 우리 모두가 책임을 공유해야 하는 거라고.”
스토리 김연희 작가 samesamesame@empal.com/ 인터뷰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리뷰 김현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hkkim@lgeri.com/ 자문 김용성 휴잇어소시엇츠 상무 calvin.kim.2@hewit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