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뻔한 교훈은 오히려 毒

임용한 | 26호 (2009년 2월 Issue 1)
미국의 작가 어윈 쇼의 ‘젊은 사자들’과 노먼 메일러의 ‘나자
와 사자’는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대표적인 전쟁소설이다. 그러나 두 소설의 내용이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젊은 사자들’은 유럽 전선을 무대로 국적과 사회적 배경이 다른 세 사람의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나자와 사자’의 전선 배경은 태평양전쟁으로,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인간군상과 사건들의 모순 및 아이러니를 소재로 했다.
 
두 소설은 모두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어졌다. 여기서 둘의 공통점이 생겨났다. 원작 소설에서의 비극적 결말이 영화에서 ‘해피엔딩’으로 바뀐 것이다. 전사한 주인공들은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온다.(말런 브랜도가 연기한 독일 장교만 제외하고) 그 이유는 뻔하다. 영화의 주인공이 죽으면 관객이 40% 줄어든다는 통계도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수익성만 추구하는 할리우드 자본의 폐단 같은 것을 논하고 싶지 않다. 할리우드 영화보다 훨씬 고상하고 심오해 보이는 우리의 역사책도 마찬가지니까. 물론 역사책에는 패전과 전쟁의 비극에 대한 수많은 글이 있다. 그러나 그 글들을 가만히 보면 2가지 특징을 찾을 수 있다. 하나는 ‘백성들이 혹독한 고초를 겪었다’든가 ‘처참한 패배였다’는 식으로 총괄적으로 언급하며 뭉뚱그리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희생양을 찾아 모든 것을 그의 실수로 떠넘기는 것이다.
 
희생양을 찾는 이유
지도자의 책임회피’ 내지는 ‘정치적 음모’ 등의 이유로 희생양 만들기가 성행했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당시에는 그런 목적에서 희생양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역사책에 기술된 더욱 근원적인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나쁜 기억보다 좋은 기억과 성공 사례를 좋아하고 그것을 간직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피해갈 수 없으며, 망각할 수 없는 사건도 있는 법이다. 이때 인간은 두 가지 방법으로 불쾌함에 대처한다. 가슴속 가장 구석진 곳에 처박아 놓고 거들떠보지 않거나 한두 사람의 실수나 사소한 잘못, 우연 때문이었다고 치부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패배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진다. 지난 번 패배는 실수였다는 말은 다시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충분히 대처할 능력이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런 자세는 자신의 경험이나 사건을 분석할 때 기계적이고
빤한 결론을 가져다 붙이는 아주 나쁜 습관을 남긴다. 우리 역사에서 그런 사례를 하나 찾아보자.
1361년 11월 16일 지금의 황해도 황주군과 개성 사이에 있는 절령(자비령)에는 수만의 고려군과 민간인이 집결해 있었다. 이곳에서 개경까지는 하루 이틀 길로, 이 방어선은 개경 방어의 마지노선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지역이었지만 고려군의 병력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 일대 8개 군의 주민 전부를 징발해서 이곳에 모았다. 가족의 목숨을 담보로 이곳을 지켜야 할 만큼 상황이 절박했다.
 
고려군이 상대해야 하는 적은 중국에서 흘러들어온 홍건적이었다. 고려군은 처음에 홍건적을 상대로 잘 싸웠다. 그런데 당시 고려는 거듭되는 외침으로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왜구의 침공이 동시에 발생해서 관료들의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군대와 물자가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홍건적의 2차 침공 때 고려군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11월 9일 청천강변에 있는 안주성이 함락됐다. 보통 때 같으면 서경과 대동강을 거점으로 2차 방어선을 쳤을 것이다. 그러나 고려군은 서경도 포기하고 바로 절령까지 후퇴했으며, 민간인까지 끌어 모았다.
   
16일 새벽 5000명의 홍건적 중장기 부대가 소리 없이 접근해 목책으로 만든 성벽을 돌파했다. 고려군은 혼란에 빠졌으며, 대학살이 벌어졌다. 일반 주민과 부녀자와 아이들까지 모여 있었으니 혼란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사망자 수는 기록에 나오지 않지만 조선시대까지도 이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엄청난 비극이었다. 조선시대에 이 지역에서 떠도는 전설에 따르면 시체가 들판을 뒤덮었으며, 비 오는 날이면 귀신들이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이 귀신들의 원한으로 전염병이 하도 많이 발생해 나중에 조정에서 귀신들을 위로하고 전염병을 예방하는 제단을 세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길은 개성과 평양을 연결하는 주도로이기 때문에 많은 문인과 학자가 지나다니면서 이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비감한 심정으로 한 편의 시를 남기곤 했다. 그 시 가운데 한 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적이 먼 거리를 달려와 성 밑에 이르니/ 요사스러운 기운이 천지를 뒤덮었다/ 지휘관이 접전할 기회를 그르쳐/ 아군이 낭패하고 오랑캐가 함성을 지르네/
 
이 시에서 작가는 나름대로 당시의 패배를 분석하고 있는데, 요지는 이렇다. 홍건적은 장거리를 이동해 왔으니 지쳤을 것이다. 그러므로 고려군이 바로 홍건적을 공격했으면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능한 지휘관이 바로 공격하지 않아 전투의 타이밍을 놓쳤고, 이것이 큰 비극을 낳았다는 것이다.
 
무모하고 용감한 비판
이 벌판에 원혼이 있었다면 이런 무모하고 용감한 해석과 비판 때문에 더욱 눈을 감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홍건적은 11월 9일에 현재의 평남 안주성을 함락하고, 15일께 황주에 도착했다. 6일 동안 서울에서 천안 정도의 거리를 이동한 것이니 싸우지 못할 정도로 무리하게 이동한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새벽 기습을 감행할 수 있는 원기 왕성한 5000명의 철기병을 보유하고 있었다.
 
절령 방어전을 지휘한 안우·이방실·김현배는 누구보다도 실전 경험이 풍부한 장군들이었다. 그들은 1355년 고려군을 이끌고 지금의 중국 저장성에까지 진군해 홍건적과 싸웠으며, 그 후로 이때까지 6년 동안 쉬지 않고 전투를 벌여왔다. 나중에 홍건적에게 함락된 개경 수복전도 이들이 지휘하지만 홍건적의 전투력을 파악하는 능력이 그 누구보다도 탁월하고 정확했다. 이런 장군들에 대해 군대를 지휘한 적도 없고 전쟁터에는 가보지도 못한 문관들이 너무도 쉽게 정죄(定罪)를 했다. 절령 패배의 원인은 기록이 분명하지 않지만 고려군의 전력고갈이 주 원인이었을 것이다. 옛날 전쟁에서는 전사자보다 병사자가 훨씬 많았다. 보급과 장비가 열악하고 항생제가 없어 추위와 피로로 인한 감기와 폐렴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런데 당시 고려군은 전쟁 초기부터 보급이 형편없었으며, 병력 보충과 교대도 되지 않아 병사들은 굶주리고 한겨울에 도롱이를 입고 버티는 형편이었다. 노련한 장군과 베테랑 병사들이 처절하게 싸워왔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모르는 문관들은 관념적인 비판을 해댔다. 조선시대의 사례를 보면 이 시의 작가뿐 아니라 많은 문관이 이런 경향을 보였다. 앞의 시는 300년 전의 사건을 언급한 것이어서 그나마 나은 편이다. 임진왜란 때나 병자호란 때의 사례를 보면 당장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황에 대해서도 ‘매복해서 기습공격을 했으면 쉽게 이겼을 텐데 무리하게 공격하다가 패배했다’는 식으로 제 멋대로 상황을 해석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매복공격은 소규모 수색대나 완전히 지리멸렬한 패잔병 부대에게나 통하는 방법이다. 규모를 갖추고 정상적으로 이동하는 부대를 매복으로 잡는 것은 현실에서 거의 불가능하다. 더욱이 당시 일본군이나 청군은 매복 작전에 당할 만큼 어수룩한 군대가 아니었다.
 
아픈 기억 직시하며 정확한 사태 분석 필요
이처럼 용감하고 무모한 태도는 사실과 현상을 정확히 분석하려고 들지 않고 사실에 적합해 보이는 교훈이나 명제를 멋대로 찾아서 붙이는 습관 탓에 발생한다. 교훈과 명제는 진실로 인도하는 표지판일 뿐이지 사실 전체는 아니다. 앞의 시를 예로 들면, 장거리 이동이 병사들을 피로하게 하고 전투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장거리를 이동한 군대를 바로 공격하면 격파할 수 있다는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장거리 이동을 한 적군을 과감하게 공격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명제를 외워서는 제대로 된 리더가 될 수 없다. 이런 명제는 진리도 교훈도 아무것도 아니다. 훌륭한 리더가 되려면 적군의 이동거리, 기후, 훈련 상태, 보급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해서 그들이 현재 어느 정도로 지쳤고 전투력은 몇 퍼센트 감소했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는 훈련을 거듭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명제와 명제의 사용법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감정의 논리를 이겨내 아픈 기억을 직시하고 분석하려는 노력과 훈련이 부족하다. 오히려 이와는 정반대로 빤한 교훈을 외우고 남발하는 것이 지식의 목적이자 전부인 줄로 아는 사람이 아직도 너무나 많다. 사용법을 모르는 명제는 교훈이 아니라 무서운 독이다.
  • 임용한 임용한 | - (현)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 『조선국왕 이야기』, 『전쟁의 역사』, 『조선전기 관리등용제도 연구』, 『조선전기 수령제와 지방통치』저술
    yhkmyy@hanmail.net
    이 필자의 다른 기사 보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