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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광효과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

심영섭 | 24호 (2009년 1월 Issue 1)
상대방에 대한 정보도 없이 졸지에 끌려 나간 미팅 자리에서 척 보기에도 ‘너 뭐 믿고 여기 나왔니’ 싶은 남학생이 앉아 있다고 치자.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남성 파트너가 일류대에 다닌다거나 학생회장이라는 꼬리표라도 달았다면 슬금슬금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상향조정되는 경험을 한번쯤은 했을 것이다. ‘앗, 저 뻐드렁니도 꽤 귀엽게 보이는데’했던 경험.
 
1차 세계대전 중 미국의 심리학자 에드워드 손다이크는 상사의 부하 평가 방식을 연구했다. 그는 장교들에게 부하들의 지능, 체격, 리더십, 성격 등을 평가하라고 명령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우수한 병사’라고 판정받은 일부는 거의 모든 항목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고, 나머지 다른 병사들은 모든 항목에서 평균 이하 점수를 받았다. 장교들은 미남이며 품행이 바른 병사가 사격 실력도 좋고, 전투화도 잘 닦고, 하모니카도 잘 분다고 생각한 듯하다. 손다이크는 이것을 후광효과(The Halo Effect)라 불렀다.
 
이렇게 한 번 내린 긍정적 또는 부정적 인상이 다른 영역의 대인 평가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후광효과다. ‘고양이와 개에 관한 진실’이란 영화에서 우마 서먼이 분한 노엘은 늘씬한 키에 아름다운 금발이 인상적인 미녀. 사람들은 그녀를 친절하고 관대하고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의 남자관계는 미니시리즈를 만들어도 될 정도로 복잡하며, 지적 수준도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를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로 읽을 정도로 낮다. 그런데도 그 눈부신 미모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를 보기만 하면 한여름 고드름 녹듯 녹아내린다.
 
이렇듯 사람들이 일반적인 인상을 토대로 구체적인 특성을 추론하는 이유에 관해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의 인지적 자원이 한정되어 있어 사람들이 직접 평가하기 어려운 것들을 일종의 어림짐작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에 한 번 내린 자신의 평가를 바꾸기 싫어하는 인지 부조화 현상까지 겹쳐져 후광효과를 배가시킨다고 주장한다.
 
후광효과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
후광효과가 알려주는 교훈은 간단하다. 세상사는 복잡하기 때문에 인간의 제한된 인지 및 판단 능력으로는 모든 것을 명쾌하게 판단하기가 극히 어렵다.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명쾌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에 매달려 전체 모습을 색칠하고 그 이상의 판단을 거부하는 함정에 빠지므로 이를 조심해야 한다.
 
사실 일상생활뿐 아니라 경영에서도 후광효과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입사 면접자가 가진 지원자 정보 가운데 출신학교, 성적, 최종학위 등에 따라 그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일을 더 잘하고 리더십도 뛰어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대표적이다. 기업이 공정공시를 통해 발표하는 재무 실적은 무엇보다 명확한 것처럼 보이므로 실적이 좋으면 그 기업이 우량 기업이라고 쉽게 믿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최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필 로젠츠바이크 교수는 자신의 저서 ‘헤일로 이펙트: 기업의 성공을 가로막는 9가지 망상’에서 이 후광 효과에 취하면 기업을 망칠 수도 있다고 경고해 화제를 모았다. 컨설팅회사 맥킨지 역시 어떤 기업에 관한 베스트셀러가 주는 후광효과를 경계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예를 들어보자. 전설적인 경영자 리 아이아코카가 크라이슬러 회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그는 명확한 비전,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기술, 자신감, 개인적 매력 등 리더십의 주요 가치를 모두 지닌 사람처럼 보였다. 그가 윌리엄 노박과 함께 쓴 자서전 ‘아이아코카’는 출간 6개월 만에 무려 170만 부가 팔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당시 크라이슬러는 24억 달러를 상회하는 기록적인 이익을 남겼다. 아이아코카의 리더십 후광 효과가 크라이슬러의 실적 향상에 일정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러나 이후 크라이슬러의 실적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다른 해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아코카는 회사를 너무 독선적으로 운영해 크라이슬러의 기업 문화를 경직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불명예 퇴진했다.
 
비슷한 예로 1990년대 말 네트워크 장비업체 시스코의 성장 시기에는 언론과 학계가 입을 모아 인수합병(M&A) 위주의 성장 전략을 칭송했다. 2000년대 들어 정보기술(IT) 거품이 꺼지자 이들은 일제히 시스코의 전략적 결함과 주먹구구식 합병관리 등을 꼬집기 시작했다.

이런 사례 모두 후광효과에 의한 착시현상이 일정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필 로젠츠바이크 교수와 맥킨지 보고서는 전략, 리더십, 조직관리, 기업문화에 대해 이야기 하는 베스트셀러를 답습하거나 지도자의 후광 효과에 도취되지 말 것을 입을 모아 경고한다. 경영학계의 명저로 일컬어지는 톰 피터스의 ‘초우량 기업의 조건(In Search of Excellence)’,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 같은 베스트셀러에 등장하는 조직 구조를 일단 도입해 보자는 식의 접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모든 기업에 맞는 성공의 방정식은 없으며, 주식 시장처럼 경영 환경 역시 극도의 불확실성을 내포하므로 경영자는 성공 비결을 찾기보다 성공 확률을 높이는 것에 치중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후광효과 구축보다 내실 다지기가 먼저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고양이와 개에 관한 진실’의 또 다른 주인공 에비 번스는 애완동물에 대한 라디오 토크쇼를 진행하는 성공한 베테랑 커리어우먼이다. 그러나 그녀는 노엘과 달리 키가 작고 흑발이라는 이유로 늘 남성들에게 외면당한다.
 
사실 에비는 똑똑하고 유머감각이 풍부하며 바이올린도 잘 켜지만, 그녀의 평범한 외모는 남성들에게 후광효과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두 사람 앞에 나타난 사진작가 브라이언은 후광효과의 연속인 여성 노엘을 에비로 착각하고 그녀와 사귀기 시작한다. 그러나 만나면 만날수록 말이 통하지 않는 노엘보다 애완동물에 대한 부드러운 애정과 명석한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에비에게 더욱 마음이 끌리고 결국 에비와 해피엔딩의 결말을 맞는다.
 
이렇듯 후광효과는 잘 사용하면 기업과 경영자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 그러나 자칫하면 불필요한 허세나 편견을 낳을 우려도 있다. 또 기업이 아무리 노력해도 후광효과가 조직의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후광효과는 면접이나 세일즈 또는 고속도로에서 고장이 난 자동차를 수리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고객으로부터 장기간 신뢰를 얻거나 동료나 부하 직원으로부터 믿음직한 상관이라는 평가를 가져오지는 못한다. 결국 한 기업이 스스로의 후광 효과를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실을 다지고 장기간의 신뢰를 얻는 것뿐이다.
 
편집자주 제품의 기능보다 꿈과 상상력이 중요한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스토리텔링의 보고입니다. 유명 영화평론가 심영섭 씨가 영화를 통해 본 경영 원리와 스토리 경영의 가능성에 대해 연재합니다. 새롭고 신선한 비즈니스의 영감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필자는 서강대 생명공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심리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8년 씨네21 영화평론상을 받으면서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심리학과 영화를 접목해 새로운 영화평론의 장르를 개척하고 있다. 현재 한국영상응용연구소 대표이자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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