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변화의 시대다. 1970년 앨빈 토플러는 ‘미래의 충격’이라는 책에서 ‘항상성(permanence)’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올해는 지난해와 다르고 심지어는 오늘이 어제와 너무 달라 충격을 느끼는 시대가 온다고 했는데, 우리는 이미 이러한 시대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머리 좋은 경제 분석가들도 경제전망치를 한 해에도 수차례 변경한다. 서브프라임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란 우려는 했지만 지금 이 지경까지 되리라고 누가 알았겠는가. 심지어는 일기예보조차 맞지 않으니 자연계도 ‘미래의 충격’ 시대란 말인가.
변화의 시대에 살아남는 자는 이미 150년 전에 찰스 다윈이 설파한 것처럼 ‘강한 자(the Strongest)’가 아니라 ‘적응하는 자(the Fittest)’다. 그래서 기업들은 정보기술(IT)을 도입하고, 마케팅 전략도 바꾸고,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을 아무리 해도 조직이 굳어 있거나 막혀 있다면 말짱 ‘도로아미타불’이다. 비즈니스(업무)의 변화는 1회에 끝나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직은 속성상 ‘안정’을 추구하며 ‘관성(inertia)’을 갖게 마련이다. 일하는 습관, 조직의 분위기, 사람들의 행동양식은 한 번 굳어지면 잘 바뀌지 않는다.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룰을 만들면 그 룰에 얽매이게 돼 목적보다 형식을 우선하는 ‘목적수단 전치 현상’이 일어난다. 변화의 시대에 진정한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조직을 바꿔야 하고, 조직 구성원들의 사고나 행동의 결정체인 문화까지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조직을 바꾼다는 것, 집단의 행동양식을 전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성공 보다 실패하는 사례가 많다. 미국 하버드대의 코터 교수는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에 활동한 100여 개의 크고 작은 조직의 변화를 살핀 결과 극히 일부만이 만족할 만한 성공을 거뒀다고 보고했다.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콘퍼런스보드 역시 원가절감을 위해 다운사이징을 시도한 기업 가운데 45%만이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그래서 조직변화에 대한 조언도 넘쳐나고 있다. 학자들의 연구서도 있고, 컨설턴트의 레서피도 있다. 실제 사례나 실무자들의 현장 경험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잭 웰치 이야기도 있고, 르노닛산의 카를로스 곤 이야기도 있으며, 삼성의 이건희 회장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아직 조직변화에 대한 정형화된 이론이나 공식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것은 영원히 기대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인정되는 ‘지침(가르침)’은 있다. 조직변화라는 것이 전혀 새로운 영역이라기보다 행동과학의 종합판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많은 문헌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을 나름대로 추려보고자 한다. 문헌에서 주장한 것에 더해 필자가 조직문화나 인력관리 변화 작업을 하면서 현장에서 경험한 것, 대학행정에 참여하면서 실제로 시행해 본 것을 다듬어서 ‘조직변화이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조직변화에 대한 오해부터 풀어야 할 것 같다.
Ⅱ. 조직변화의 신화와 진실
조직변화에 대한 많은 신화와 오해가 있다. 사실 이런 것들이 전면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다. 부분적으로 맞고 일리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믿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믿음들은 속에 숨겨진 진실을 가릴 수도 있고, 전체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위험이 있다. 그래서 신화를 파헤칠 필요가 있다. 흔히 발견할 수 있는 4가지 신화를 검토해 보자.
신화 1 비전을 먼저 수립해야 추진력이 커진다. 어떤 변화를 시도하든 변화에는 방향, 곧 비전이 필요하다. 비전은 조직의 목표, 이상적인 미래상을 말한다. 5년 후, 10년 후 우리는 어떤 회사가 돼야 하고 어떤 멋진 모습을 가져야 한다고 정하는 것이 비전이다. 현대 리더십 이론도 비전에 근거해 조직을 이끌어 가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는 서둘러 비전을 선포하고, 장밋빛 미래상을 펼친다.
변화의 방향과 목표를 뚜렷하게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는 변화의 시작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비전보다 변화를 준비시키는 것,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것, 위기의식과 긴박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출발점이다. 거대 조직일수록, 과거에 성공한 기업일수록, 큰 변화를 노릴수록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네트워크 시대를 맞아 고전하던 IBM은 1990년대 들어 급기야 엄청난 적자를 기록했다. 침몰하는 거함을 구하기 위해 나타난 사람은 식품회사 나비스코의 CEO를 맡던 루이스 거스너였다. 그는 젊어서 맥킨지에서 활동한 전략 전문가였다. 1993년 4월 1일 거스너가 IBM 수장으로 등장한 이후 언론과 시장에서는 전략가인 거스너가 IBM을 살릴 멋진 비전 또는 전략을 발표하기를 기대했다. 거스너의 발표를 애타게 기다리던 언론도 취임 100일까지는 그런대로 참고 있었다. 그러나 100일이 넘자 언론은 거스너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거스너도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드디어 그는 1993년 7월 27일 맨해튼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