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숙종(肅宗, 재위 1674~1720)은 46년간 조선을 통치하며 여러 업적을 남겼지만 잦은 환국으로 신하들 간 갈등과 대립을 격화하고 당쟁을 극단으로 치닫게 만들기도 했다. 경신환국(庚申換局), 기사환국(己巳換局),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이어지는 순정 때 환국은 모두 숙종이 강제로 집권 세력을 교체하고 일당이 독점하는 정권을 출범시키는 형태로 진행됐다. 이러한 숙종의 정국 운영 방식은 서인과 남인 간의 관계를 단순히 반대파가 아닌 ‘원수’로 만들었다. 또한 왕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언제 또 정권 교체를 당할지 모르므로 아예 상대 붕당을 멸절시키겠다면서 서로가 무리수를 두게 했다. 그 결과 우리 정파가 아니면 악이고 적이며 척결해야 할 원수로 여기는 퐁조가 이때부터 생겨났다.
1674년 8월 18일, 경신 대기근이라는 미증유의 위기를 극복한 현종이 승하하고 닷새 후 조선의 제19대 군주 숙종(肅宗, 재위 1674~1720)이 보위에 올랐다. 그는 열네 살의 어린 나이였음에도 수렴청정(垂簾聽政) 없이 곧바로 친정(親政)에 나섰다. 신하들로부터 자질과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을 뿐 아니라 정통성 또한 완벽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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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숙종은 46년간 조선을 통치하며 여러 치적을 남겼는데 밝은 면만 있지는 않았다. 특히 잦은 환국(換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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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신하들 간의 갈등과 대립을 격화하고 당쟁을 극단으로 치닫게 만든 점은 그가 저지른 큰 실책이다.
일당 독점의 시작16세기 중반 붕당이 태동한 이래, 동인과 서인이 격렬하게 부딪혔던 기축옥사(己丑獄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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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인 강경파가 다른 당파를 탄압한 폐모살제(廢母殺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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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붕당들이 사생결단했던 시기가 없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시대에 공존의 틀이 무너진 적은 없었다. 인조반정으로 서인이 정권을 잡았지만 남인 역시 중용됐고 서로 견제와 균형 속에서 국정을 이끌었다. 민생과 직결되는 개혁이나 국가적 재난 앞에서는 합심해 난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이 같은 추세는 이념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던 예송(禮訟) 후에도 유지됐다. 2차 예송이 남인의 승리로 끝났지만 조정의 요직은 여전히 서인이 다수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