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생명체로 유명한 뱀상어, 악어, 바퀴벌레 등의 장수 비결 중 하나는 가리지 않고 먹는 ‘잡식성’이다. 식량이 풍부할 때 많이 먹어 두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에서 버틸 수 있다. 반대로 멸종 위기에 몰린 동물은 식성의 폭이 좁은 경우가 많다. 기업 역시 매출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향후 몇 년 간 버틸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해 두는 것이 좋다. 진짜 능력은 위기 상황에서 나타난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2015년 10월 한국의 한 셰프를 소개했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음식을 만들고 있는 곳이 있다. 뉴욕도 아니고 코펜하겐도 아닌 한국의 외진 암자에 있는 한 비구니 스님이 경이로운 채식 요리를 만든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미셸 브라, 알랭 파사르 같은 반열에 있는 세계적인 셰프다.”
우리나라에 뉴욕타임스가 인정하는 세계적인 스님 셰프가 있다고? 그것도 외진 암자에? 누구지? 세상의 눈이 뉴욕타임스가 가리킨 곳으로 향했다. 이제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사찰 요리 전문가 정관 스님이다. 스님은 전남 장성 내장산 기슭에 있는 백양사 천진암에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사찰 요리를 공양한다. 우리나라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 (Chef’s table)’에도 출연했다. 전 세계 유명 셰프들 가운데 단 여섯 명만 나오는 프로그램이다.
정관 스님은 몇 년 전 뉴욕에서 사찰 요리 한 상을 냈다. 국수말이와 우엉양념구이에 탱자로 만든 청(淸)을 얹었는데 먹고 난 이들이 기립 박수를 쳤다. 청은 외국인들에게 낯선 식재료인데 맛도 맛이려니와 이 청을 소개한 스님의 한마디가 맛을 더했다. 1 1 ‘사찰음식을 한류로 만든 천진암 정관 스님’, 매일경제신문, 2018년 10월24일. 스님은 "음식이 지닌 깊고 그윽한 스토리텔링에 다들 감동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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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된 탱자나무에서 딴 탱자로 청을 담궈 3년을 숙성시킨 것입니다.”
낯설지만 새로운, 정말이지 기가 막힌 맛이 300년이나 된 나무의 열매에서 온 것이라니. 맛이야 두말할 나위 없었겠지만 스토리가 한층 그 맛을 돋웠을 것이다.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맛이 그 오랜 시간에서 오는 것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자신들의 역사를 통틀어 봐야 200년이 조금 넘는지라 전통을 상당히 존중하는 미국인들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생명은 유한해서 그런지 우리는 오랜 시간을 살아온 생명체에게 생각 이상의 가치를 부여한다. 사람의 일생인 몇십 년 살기가 이렇게 힘든데 몇백 년, 아니 몇천 년을 사는 게 보통 일이 아님을 잘 아는 까닭이다.
서광원araseo11@naver.com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필자는 경향신문, 이코노미스트 등에서 경영 전문 기자로 활동했으며 대표 저서로는 대한민국 리더의 고민과 애환을 그려낸 『사장으로 산다는 것』을 비롯해 『사장의 자격』 『시작하라 그들처럼』 『사자도 굶어 죽는다』 『살아 있는 것들은 전략이 있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