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자서전

‘인생은 눈덩이와 같다’

24호 (2009년 1월 Issue 1)

투자의 귀재이자 오마하의 현인으로 잘 알려진 워런 버핏. 그와 점심 식사를 하려면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 2008년 ‘버핏과의 점심’ 자선 경매 행사의 낙찰가는 무려 22억 원이었다. 재미난 점은 실제로 버핏과 고가의 점심을 나눈 사람은 그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고 말했다는 데 있다. 그 식사시간 동안 둘 사이에 도대체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갔기에 22억 원의 점심 식사 값이 아깝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버핏과의 점심’이 비싼 이유는 희소성 때문일 것이다. 엄청난 부를 쌓고, 전 세계 경제에 영향력을 미치며, 재산의 87%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공표한 유명인이지만 사실 버핏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부모로부터 태어났으며, 어떤 교육을 받았을까. 현재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겪으며, 어떤 경험을 쌓았고, 기회와 위기는 어떻게 다뤘을까.
 
어린 시절부터 돈에 흥미를 붙인 아이
버핏은 어린 시절부터 돈에 민감했다. 그는 1930년 8월 30일에 태어났다. 짓궂은 운명의 장난인지 이날은 미국 주식시장이 단 하루만에 140억 달러 이상의 자본을 잃은 1929년 10월 29일 검은 화요일로부터 열 달이 지난 뒤였다. 훗날 ‘대공황’으로 불리게 되는 당시에 140억 달러는 미국 정부 연간 예산의 약 4배 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버핏이 숫자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6살에 유치원을 다니면서부터다. 버핏이 좋아하는 선물은 시간을 확인하는 데 쓰는 스톱워치였다. 그는 수집, 계산, 숫자 기억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아했다. 버핏은 어린 시절부터 돈을 벌기 시작했다. 10살 때부터는 오마하대의 축구 경기가 있을 때마다 땅콩과 팝콘을 팔았으며, 12살이 되었을 때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코카콜라나 신문·잡지를 팔았다. 이로 인해 보통 아이들이 용돈을 타 쓰던 나이에 버핏은 이미 상당한 돈을 벌어 수중에 넣을 수 있었다.
 
버핏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주식중개업 서적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으며 보냈는데, 10번째 생일에 받고 싶은 선물로 ‘뉴욕증권거래소 방문’을 말하기도 했다. 어린 버핏은 하룻동안 자신이 사랑한 모든 것을 보고 경험했으며, 35살이 될 때까지 백만장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12살이 되었을 때 버핏은 120달러를 모았다. 1942년 봄에 그는 누나인 도리스를 파트너로 등록한 다음 시티 서비스 우선주를 3주 샀다. 주가는 38.25달러에서 27달러까지 떨어졌다. 주가가 40달러로 회복됐을 때 버핏은 주식을 팔아 순수익 5달러를 두 누이에게 남겼다. 그러나 그는 얼마 후 주가가 202달러까지 고공행진을 하자 충격을 받았다. 버핏은 주식을 팔지 않고 좀 더 기다렸다면 그와 누이가 가질 수 있는 순수익은 500달러에 육박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은사에게 배운 돈과 주식의 의미
버핏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은사는 벤 그레이엄 교수다. 펜실베이니아대 졸업을 앞둔 버핏은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에 합격했다. 버핏은 그곳에서 그레이엄 교수의 보통주 평가 강의에 등록한다. 그레이엄이 책에 적은 모든 내용을 줄줄이 꿰고 있었던 버핏은 그곳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그레이엄의 수업은 3가지 주요 원칙에 초점을 맞췄다.
 
①주식은 투자자인 당신이 값을 치르고자 하는 모든 비즈니스에 대한 분할 가치다. 이는 그저 분리된 종잇조각이나 숫자가 아니다.
 
②투자는 항상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안전 마진을 마련해야 한다. 즉 불가피하게 실수했을 때 가진 모든 것을 잃지 않도록 많은 여지를 남겨야 한다.
 
③시장은 기복이 심하기 때문에 가치 인식에 과도하게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 가끔은 주식을 저렴한 가격에 매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기회를 활용하라.
 
그레이엄 교수는 주식에 대한 버핏의 인식에도 큰 영향력을 미쳤다. 그레이엄 교수를 만나기까지 버핏에게 주식은 돈을 벌어들이는 수단이었다. 버핏은 돈과 주식에 대한 그레이엄 교수의 생각을 이렇게 전한다.
 
“언젠가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채닌 빌딩 지하 식당에서 식사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레이엄이 저에게 말하더군요. ‘한 가지 기억할 것이 있네. 돈이 자네와 나의 생활 방식에 큰 차이를 만들지는 않는다네. 우리 둘 다 지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매일 일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돈은 자네의 삶의 방식에 큰 차이를 만들어주지 않으니 지나친 돈 걱정은 하지 말게.’”

“공포를 매수하고 탐욕을 매도하라”
버핏은 항상 멀리서 숲을 보는 사람이었다. 특히 붐에 대해서는 경계의 시선을 항상 유지해 왔다. 모두가 탐욕을 부리던 1990년대 후반 버핏은 테크놀로지 주식에 투자하지 않았다. 1999년 말에 파트너인 제너럴 리가 2억7500만 달러의 사기로 덜미가 잡히고, 코카콜라는 유럽에서 심각한 신용 문제를 겪었지만 결과적으로 버핏은 손실을 보지 않고 기회를 잡았다. 2000년 3월이 되자 테크놀로지 주식 붐이 사실상 끝이 났기 때문이다. 버핏이 한 일은 공포의 시기에 옥석을 고르는 일이었다.
 
멀리서 숲을 보는 시각을 유지했기 때문에 버핏은 주식 분야뿐 아니라 사회 활동에서도 뼈있는 발언을 많이 한 것으로 유명하다. 우선 상속세에 대한 확고한 입장이다. 버핏은 상속세를 폐지하자는 계획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높여왔다. 상속세는 반드시 필요하며, 그래야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일궈낸 지배계급이 미국에서 세습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한다. 또한 그는 스톡옵션에 대해서도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 왔다. 그는 코카콜라 및 다른 기업들에 대해 장부에 기입하는 스톡옵션 비용이 그들의 성과보다 보장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엄청난 회계 사기가 일어나는 것을 멀뚱히 바라보기만 한 회계사와 감사관에 대한 로비도 공공연하게 반대해 오고 있다. 그의 가장 최근의 발언은 2002년에 파생금융상품의 위험성을 글로 적으면서 이것이 머지않아 전 세계 금융 위기를 유발할 것이라고 예측한 점이다. 버핏은 이를 ‘대량 살상 금융 무기’라고 묘사하곤 했다.
 
버핏과 그의 회사 버크셔해서웨이도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기복을 겪었다. 그럼에도 2006년 버크셔해서웨이 주식은 주당 10만 달러가 넘는 거래를 기록한 미국 최초의 주식이 되었고, 2007년 말에는 주당 14만 달러를 기록했으며, 시가 총액은 2000억 달러 이상으로 성장했다. 버핏의 개인 자산만 600억 달러를 훨씬 넘는다.
 
2008년 버핏은 78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세계 최고 갑부라는 영예의 관을 쓰게 됐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정력적으로 버크셔해서웨이를 이끌고 있으며, 은퇴할 생각은 꿈도 꾸지 않고 있다.
 
“인생은 눈덩이와 같다. 중요한 것은 젖은 눈과 긴 언덕을 찾는 것이다.” 버핏은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눈덩이 굴리기로 간략하게 정리한다. 그래서인지 버핏은 현재의 금융 위기를 젖은 눈과 긴 언덕으로 보고 있다. 버핏은 최근 “공포를 매수하고 탐욕을 매도하라”고 조언했다. 공포의 시기에는 저평가된 주식을 매입하고, 모두가 탐욕을 부리는 시기에는 주식을 매도하라는 것. 1990년대 테크놀로지 주식 붐에 대한 그의 경고와 행동은 옳았다. 이번 금융 위기에 대한 경고도 옳았다. 그에 따르는 행동까지 옳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편집자주 이 책을 쓴 앨리스 슈뢰더는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를 졸업하고 월스트리트에서 애널리스트로 활동했으며, 모건 스탠리 이사를 역임했다. 이 책은 슈뢰더를 오랫동안 지켜본 워런 버핏의 정중한 부탁으로 저술됐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83호 Future Food Business 2019년 10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