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물, 수증기. 외부 환경 변화에 따라 동일한 물질이 고체, 액체, 기체로 상태가 변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물리학 전문 용어로는 ‘상전이(相轉移)’. 온도나 압력 등 외부 조건에 따라 물질이 한 상(phase)에서 다른 상으로 바뀌는 현상을 뜻한다.
상전이의 경계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욕조에 가득 담긴 물이 얼어붙기 직전을 생각해 보자. 물 분자들은 살얼음 표면에 달라붙어 얼어붙고, 얼음 분자들은 인접한 물속으로 녹아든다. 얼음과 물이라는 두 개의 상은 분리돼 있지만 여전히 서로 연결돼 순환한다. 이처럼 상전이의 경계에서 두 가지 상이 공존하는 현상을 ‘상분리(相分離)’라고 하며, 어느 쪽 상태도 압도적이지 않은 채 균형을 이뤄 순환하는 관계를 ‘동적 평형(動的平衡)’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렇게 상분리를 유지하며 동적 평형을 이루는 조직을 만드는 게 위대한 기업으로 거듭나는 비결이라고 강조한다. 어떤 조직이든 크게 두 가지 그룹으로 나눠볼 수 있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예술가 그룹(물)’과 기존 영역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관리하는 ‘병사 그룹(얼음)’이다. 두 그룹은 언뜻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관계다. 예술가 그룹에서 선보인 창의적 아이디어를 병사 그룹에서 꾸준히 관리해 줄 때 혁신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결국 핵심은 혁신적인 발명품을 개발하는 예술가 그룹과 기존의 영역을 지키는 병사 그룹을 분리해 엉뚱해 보이는 아이디어들이 짓밟히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조직 구조(상분리)를 만들고, 두 그룹 간 원활한 협조가 이뤄지며 지속적인 피드백이 오가는 구조(동적 평형)를 설계하는 것이다. 이는 물이 창의성과 효율성, 혁신과 안정이라는 두 개의 힘이 동적 균형을 이루며 선순환하는 시스템이다.
책 제목인 ‘룬샷(loonshot)’은 ‘아이디어 주창자가 미치광이 취급을 당하거나 대다수가 무시하고 홀대하는 프로젝트’를 의미한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없다며 조롱하고 멸시하던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꾼 발명으로 이어진 사례는 세상에 많다. 애플 아이폰도 처음엔 ‘쓸모없는 발상’이라는 취급을 받던 룬샷이었다.
흥미롭게도 터치스크린에 고해상도 카메라를 장착하고 온라인 앱스토어를 만드는 초기 스마트폰의 구상은 애플보다 노키아에서 먼저 나왔었다. 하지만 노키아 경영진은 개발자들의 이 제안을 묵살했고, 몇 년 뒤 애플에서 실제 아이디어가 구현돼 ‘대박’을 터뜨리는 걸 지켜봐야 했다. 똑같은 아이디어가 노키아에선 폐기됐고 애플에선 육성됐던 이유는 ‘룬샷 배양소’를 육성하고 유지하는 회사의 ‘구조’ 때문이라는 저자의 통찰을 곰곰이 되새겨볼 만하다.
이방실smile@donga.com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