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과 대화를 하다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었습니다. 이 분은 “PC 앞에 앉으면 생각이 제한된다”고 하시더군요. 왜냐고 물으니 “PC를 앞에 놓고 있으면 문서를 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기기 때문”이랍니다. 강박관념 때문에 일단 일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아이디어를 떠올리거나 생각을 정리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지요.(여기에 제가 사족을 하나 붙이면 언어적 사고, 특히 글은 하나의 생각에서 다음 생각으로 넘어가는 선형적인 방식을 사용한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습니다. 선형적 사고는 생각이 여러 방향으로 자유롭게 전개되는 것을 제한합니다. DBR 13호 스페셜리포트 참조)
No Time to Think
PC 사용은 생각의 범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제가 아는 대학교수 한 분은 요즘 학생들의 ‘겉핥기식 지식’에 대해 개탄을 하시더군요. 학생들이 인터넷에서 검색해 찾아낸 ‘인스턴트 지식’만을 바탕으로 숙제를 제출하고 판단을 내린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러니 ‘겉똑똑이’는 많지만 실제 문제 해결에 필요한 창의적이고, 자기만의 생각을 가진 학생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지적은 해외에서도 나옵니다. 디지털 분야에서 세계적인 인지도가 있는 데이비드 M. 레비 미국 워싱턴대 교수가 올해 3월 ‘구글 기술 좌담(Google Tech Talk)’에 들고 나온 주제는 ‘생각할 시간이 없다(No Time to Think)’였습니다. 그는 “정보화·자동화가 인간에게 더 창의적인 생각을 할 시간과 여유를 가져올 것이라는 20세기 과학자들의 전망이 이미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고 단언했습니다. 대신 정보화·자동화는 일과 삶의 속도를 빠르게 했고, 이 결과 우리는 생각할 시간이 예전보다 더 부족해졌다는 것입니다.(Youtube 사이트에서 ‘No Time to Think’를 검색하면 관련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진정한 경쟁력은 생각에서 나온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오늘날 진정한 경쟁력은 생각의 힘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기술과 품질이 전 세계적으로 평준화된 현재 상황에서 창의적 사고를 통한 차별화만이 기업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생각의 힘은 중요합니다. 역사상 천재들은 보통 사람들과 생각하는 방법이 달랐습니다. 오늘날에도 일 잘하는 사람들은 뛰어난 사고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최고 인재만을 선발한다는 글로벌 컨설팅 회사의 입사 시험문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고력 테스트’입니다. ‘현재 서울 시내 지하철에 타고 있는 사람은 총 몇 명인가’와 같은 다소 황당한 문제를 얼마나 논리적으로 풀어내는지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일전에 만나 뵌 서남표 KAIST 총장께서는 “대학은 지식이 아닌 방법론(사고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쓸모가 없어지지만 생각하는 능력을 두고두고 써먹을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독자 여러분도 인터넷이 없던 시대를 한번 되돌아보면 어떨까 합니다. 저의 경우 확실히 인터넷을 사용한 이후에 생각의 깊이와 폭이 단편적으로 변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깊이 있는 생각을 하고 싶다면 PC가 없는 곳에서 손으로 메모해 가며 생각에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요? 앞서 말씀드린 저의 지인은 생각을 깊이 해야 할 때면 PC가 없는 커피숍을 종종 이용한다고 하시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