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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다! 자신에게 정직하고, 오늘에 성실하자

195호 (2016년 2월 lssue 2)

Article at a Glance

태도는 마음의 거울이며, 생각을 비춰준다. 그리고 태도는 일상 속 실천과 훈련을 통해 형성될 수 있다. 이성에게 사랑받는 사람들은 이성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좋아하면 마음이 가는 대로 표현하고 어떻게 하면 상처받지 않을지를 묻지 않는다. 나 자신에게 진실하고 상대에겐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사랑을 받는다. 자기 자신에 대한 정직함은 내 삶의 태도와 직결된다. 남의 눈을 의식하는 결정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현재가 축적돼 미래가 된다. 과거의 성실함은 미래의 보답으로 이어진다. 내가 무리한 만큼 앞으로 전진하고, 선택의 폭이 넓어지며, 기회가 열린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굳이 그 말을 할 필요는 없다.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사랑을 해본 사람은 누구나 이 사실을 알고 있다. 미움도 존경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의 태도에 모든 것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일도 그렇다. 그 사람이 일을 좋아하는지, 지겨워하는지 역시 그 사람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태도는 마음의 거울이다. 이는 생각을 비춰준다. 이번 호에서는 그런 태도에 관한 책, <태도에 관하여>를 소개한다.

 

일이란 무엇일까? 좋아한다고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좋아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그렇지 않다. ‘어떻게 하면 소설가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소설가 김영하 씨는하지 마세요라고 단호하게 답한다. “넌 할 수 있어란 말보다 훨씬 상대를 배려하는 답이다.

 

“간절히 원하면 된다. 넌 할 수 있다.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같은 말은 그럴 듯하지만 사탕발림일 가능성이 높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도, 호락호락하지도 않다. 간절히 원한다고 다 될까? 그렇지 않다. 물론 원하지 않는 것보다는 될 확률이 높을 수는 있다. 근데 그것도 원하는 내용에 따라 다르다.

 

글을 쓰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일용직 노동자처럼 매일 꾸준히 쓰는 것이다. 비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가를 꿈꾸면서도 좀처럼 글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창작자들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 꾸준히 글을 쓴다. 그게 최고의 비법이다. 비가 오나 날이 맑으나, 숙취에 시달리든 팔이 부러졌든, 그 사람들은 그저 매일 아침 8시에 자기 책상에 앉아 할당량을 채운다. 얼마나 머리가 비었건, 얼마나 재치가 달리건. 그들에게 영감 따윈 허튼소리에 불과하다.”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에세이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에 나오는 말이다 

 

 

태도에 관하여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

 저자 임경선, 한겨레출판, 2015

 

관대함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할까? 드라마를 보면 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일상을 접고 그저 사랑만 한다. 가능하지도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 비현실적이다. 사랑하는 데 비결 같은 건 없다. 굳이 있다면 스스로 매력적이고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대로이면서 상대에게 높은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밀고 당기기도 덜 좋아하는 사람만이 행사할 수 있는 행동이다.

 

사랑받기 위해 무리하는 것도 곤란하다. 무리한다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무리하면 안 되는 이유는 언젠가는 무리한 대가를 상대에게 요구하려 하기 때문이다. 상대에게도 그렇지만 나 자신에게도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 서로를 사랑한다면 힘 닿는 데까지 자유롭게 해줘야 한다. 우리는 세상 모든 것을 통해 배울 수 있다. 연애도 그렇다. 연애를 통해 나밖에 몰랐던 내가 타인을 향해 깊은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성에게 사랑받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바로 이성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상대를 좋아하면 마음이 가는 대로 표현하고 어떻게 하면 상처받지 않고 사랑할 수 있을까를 묻지 않는다. 상처받을 것을 알아도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그것을 웃돌아 기꺼이 상처받는 일을 자초한다. 사랑에 관해 취해야 할 단 하나의 태도가 있다. 나 자신에게 진실하고 상대에게는 관대한 것이다. 사랑하는 상대 앞에서는 자신 있게 무력해질 수 있다. 작가 아니 에르노는 소설 <단순한 열정>에서 사랑하는 상대에 대해그 사람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나 그 사람 덕분에 남들과 나를 구분시켜주는 어떤 한계 가까이, 어쩌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고 표현한다.

 

 

살아 생전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는 것처럼 멋진 일은 없다. 이 소설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을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실로 그러하다.

 

사랑에 대한 착각이 있다. 사랑은 좋고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러하듯 큰 기쁨에는 그 뒤에 보이지 않는 짐들이 딸려 있다. 예민함, 오해와 질투, 구속과 의심, 육체적이고 심리적인 피로, 확실한 이별 같은 것 등이 그것이다.

 

정직함

 

우리는 자신에게 정직해야 한다. 뭔가 결정을 할 때도 남이 아닌 자신을 위한 결정을 해야 한다. 근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남의 눈을 너무 의식한다. 뭔가 결정을 해야 하는데 판단이 서지 않을 때가 있다. 직장을 계속 다닐 것인지, 결혼이나 이혼을 결정할 때라든지 등…. 이럴 때는 본인이 예컨대 룩셈부르크에 있다고 가정하면 도움이 된다. 거기서는 아무도 당신을 모른다. 그럼 온전히 자신을 위한 결정을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진리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은 우리에게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 일을 생각하느라 당신 생각까지 할 여유가 없다. 남들은 우리를 의식하지 않는데 남을 지나치게 의식해 남을 위한 결정을 한다는 것은 코미디다. 남이 아닌 자신을 위한 결정을 해야 한다.

 

삶에서 대인관계는 참으로 중요하다. 대인관계를 잘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힘을 키워야 한다. 남이 좋아하건, 그렇지 않건 꿋꿋하게 혼자 힘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당신을 좋아한다면 당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당신은 모두를 기쁘게 할 수는 없다.” 파울로 코엘료의 말이다.

 

객관적으로 너무 좋은 사람이지만 나랑은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건 누구 잘못도 아니다. 반대로 객관적으로는 하나도 괜찮지 않은데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도 있다. 그게 인간관계다.

 

사람 관계에는 세 종류의 옵션이 있다. 정면 돌파하기, 피하기, 놔주기가 그것이다. 두 사람 관계가 자연스럽게 소멸되는 경우가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두 사람이 서로에게 충분히 매료되지 않았거나 둘 중 누군가는 좋아하는 척하며 무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관계는 화학작용이다. 두 사람 사이에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것이 관계다. 객관적으로 너무 좋은 사람이지만 나랑은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건 누구 잘못도 아니다. 반대로 객관적으로는 하나도 괜찮지 않은데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도 있다. 그게 인간관계다.

 

대인관계에서는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무리하지 않는다는 것의 정의는나 자신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상황에 맞추지 않는다는 뜻이다. 꿈은 없어도 되는데 나는 없으면 안 된다.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건 엄청난 대가를 요구한다. 우유부단은 건강하단 신호다. ‘오늘도 무사히란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무사란 아무 일도 없다는 뜻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면 세상을 떠나 인큐베이터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저자는 이보다는오늘도 나답게살고 싶단다. 인간의 불완전함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최고의 성취자이다.

 

 

결혼을 앞둔 여성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이 남자, 괜찮을까요?”. 조건이 석연치 않을 때 나오는 대사다. 그녀의 가장 큰 두려움은 결혼으로 삶의 질이 지금보다 떨어지는 것이다. 신데렐라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현상 유지는 해야겠는데 확신이 서지 않는 것이다. 이 남자가 괜찮은지 아닌지를 다른 사람이 알 수는 없다. 이런 질문은 사실 그 사람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인 것이다.

 

사랑이냐, 현실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내가 뭘 원하는지, 어떤 가치가 내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우선순위를 알려면 평소 내 마음의 소리를 듣는 훈련을 해야 한다. 돈이든, 사랑이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솔직히 인정할 줄 아는 여자가 낫다. 원하는 걸 정확히 알면 얻기가 쉽고 그러면 나름 만족하며 살 수 있다. 근데 자신이 좋은지, 아닌지를 자신이 아닌 남에게 묻는 사람이 많다. 참으로 딱한 일이다.

 

여성인 저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돈이 문제라면 내가 벌겠다고 생각하면 된다. 남자는 의존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다. 상대에게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맡긴 채 나중에 관계가 어그러지면역시 내 몸이 목적이었냐는 식으로 자신을 연민하는 것, 자발적인 성 관계임에도 연애가 뜻대로 잘 풀리지 않으면당했다라고 피해의식을 앞세우는 것은 스스로 자기 몸을 도구로 보는 것이다.

 

어른의 성에서 고려대상은 첫째, 강요가 아닌 자발적 선택이라면 결과를 수용하고 책임지는 것이다. 둘째, 자기 몸을 도구로 삼지 않는 것이다. 셋째, 함께 피임을 할 수 있는 상대인지 사전에 확인하는 것이다. 넷째, 내가 정말 하고 싶은지, 내 감정에 솔직한 것이다. 어른이 돼서도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할 자유마저 없다면 무슨 재미로 어른을 할까?

 

성실함

 

뭔가 갑자기 일어나는 일은 없다. 과거가 현재가 되고 현재가 축적돼 미래가 된다. 지금의 나는 과거에 내가 했던 행동과 태도의 결과물이고 미래의 나 또한 지금 내가 하는 일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하루키는 작가가 되기 전 재즈카페 피터캣의 주인으로 7년 일했다. 작가로 성공한 후에도 바로 접지 않았다. 일상성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흐트러지지 않기 위해, 작가라고 으스대지 않기 위해서다. 훗날 전업작가가 돼서도 재즈카페 주인으로서의 힘겨운 육체노동을 경험한 것이 글쓰기의 기본 뼈대가 됐다고 고백한다. 저자도 그렇다. 과거 직장생활 경험이 없었다면 글 쓰는 직업은 시작할 수도, 유지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일에 대한 소재를 가질 수 있었다. 덕분에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을 생생하게 그릴 수 있었다. 또 글을 썼기에 상담을 할 수 있었고, 상담을 했기에 라디오 방송이나 강연을 할 수 있었고 그 모든 경험을 토대로 소설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장르에도 도전할 수 있었다.

 

시마과장 시리즈를 그린 일본의 만화가 히로카네 겐지도 만화가로 데뷔하기 이전 전자제품 회사인 마쓰시타의 마케터였다. 그는 오랜 회사생활을 접고 만화가로 데뷔했다. 처음에는 평소 좋아하던 영화 등을 주제로 만화를 그렸지만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 자신이 잘 아는 것, 직접 경험한 것에 대해 만화를 그리며 성공한다.

 

83년 시마과장 연재를 시작했는데 당시 샐러리맨이 주인공인 만화는 네 칸 만화뿐이었어요. 제대로 된 스토리가 있는 만화는 없었지요. 회사다운 회사를 다니다 만화가가 된 사람이 거의 없었죠.”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 얘기할 때, 자신이 잘하는 것을 활용해 무언가에 새롭게 도전할 때 자신감도 더 생기고 실력도 더 발휘한다. 어떤 일을 어디서 하더라도 일의 본질은 같다. 최선을 다해야 하고, 사람들과 조율할 줄 알아야 하고, 규칙을 따라야 하며,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자유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엄정하게 치를 수밖에 없다. 육체적 고통은 물론 미움받을 용기, 그리고 외로워질 가능성도 떠안는다. 내가 선택한 자유가 결과적으로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구속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기꺼이 감당하고, 책임지고, 그 대가를 치를 수 있는 사람만이 자유를 가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독립적으로 하고 싶다고 한다. 사실 자유는 아무것도 없는 그 자체다. 자유란 없던 일을 만들어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때 느끼는 자유의 무게는 조직 속에서 느꼈던 통제의 무게보다 곱절은 무겁고 부담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를 꿈꾸는 사람은 이 부분을 생각해야 한다. 그만큼 내게 자유가 소중한지, 그만큼 자유가 나를 이롭게 할 것인지…. 이런 것들을 자꾸 생각하다보면 대개의 사람들은 자유롭지 않을 자유를 택하게 될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반드시 자신이 좋아하는 일 혹은 자신이 꿈꾸던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은 버려도 좋다. 대부분 사람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서 살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충분히 살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또 그런 일에도 좋아하는 요소는 분명 있고 그것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대학을 갓 졸업한 사람들이나의 천직을 찾지 못하겠다고 괴로워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부분 사람은 그 나이에 자신이 뭘 원하는지, 뭘 잘할 수 있는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안다고 확신해도 나중에 바뀔 확률이 훨씬 높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지금 내가 가진 걸 내던질 이유는 없다.

 

특히 그중에서내가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제법 잘하는 일을 경시하는 것은 많은 문제를 야기시킨다. 왜냐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대개내가 아직은 잘하지 못하는 일이고 그래서 그 분야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해야 하는 일로 기초 체력을 다지고 그 다음 단계로 올라서는 것이 낫다. 궁극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실제 하게 됐을 때 충족감을 느끼려면 그 일은 내가 제법 잘하는 일이어야 지속 가능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현실적으로 무리할 수밖에 없다.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이렇게 됐다는 것은 대개 거짓말이다. 원래 하던 대로 하고 있다면 어떤 변화도 일어날 수 없다. 내가 무리한 만큼 앞으로 전진하고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기회가 열리는 것이다.

 

공정함

 

댓글에 유난히 민감한 연예인들이 있다. 상처를 받아 자살까지 기도한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낮은 자존감 때문이다. 왜 자기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 얘기에 그렇게 상처를 받을까? 나는 나고, 남은 남이다.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 또한 내가 진다. 그게 인생이다. 다 할 일 없는 사람들, 남 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미생활이다. 그들의 취미 또한 내가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적어도 그런 취미에 놀아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 자존감은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남이 뭐라 하든 난 괜찮은 사람이야, 난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라고 생각하는 마음이다. 자존감은 사랑과 존중을 먹고 자란다.

 

 

자존감은나를 사랑하자같은 일차원적 자기 암시로 얻어지지 않는다. 남과의 비교를 통해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자존감은 나 자신을 아는 것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나 자신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좋은 점을 극대화하려는 선한 에너지가 나를 존중하도록 만들어준다. 주변 환경과 상관없이 나 자신과의 관계에 있어 노력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존중감을 만든다. 나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애쓸 때 타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다. 상대의 결핍이나 불완전함을 이해할 포용력을 갖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자나 자신의 껍데기 안에 있는 사람은 타인에 대해서도 가혹하거나 깎아내리려 한다. 남에게 좋은 사람이 돼야만 했던 시절이 있다. 왜 그랬을까? 자존감 부족을, 나의 불안정한 자아를, 타인과의 관계, 즉 인정욕구로 채우려 했던 것이다. 그러려면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있어서는 안 됐다. 그중 자발성이 제일 중요하다. 조직 안에서 최대한 자발적이고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한 개인이 돼서도 그럴 수 있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한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자존감을 의식하지 않는다. 우리가 공기를 의식하는가? 누가 공기를 의식하는가? 폐가 나쁜 사람들이다. 몸이 아파야 몸을 의식한다. 자존감 얘기가 많이 회자된다는 것은 그만큼 자존감 없는 사람이 많다는 반증이다. 자유가 가장 큰 호사이다. 얻는 데 가장 품이 많이 든다. 밑바닥에는 노력과 자기규율 등이 필요하다. 100의 대가를 치르고 1의 자유를 얻을 수도 있다.

 

 

저자는하면 된다라는 명제를 좋아하지 않지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근데 이런 일을 할 때 보통은 상한선을 생각하지만 저자는 하한선을 정한다. 어떤 부분은 양보할 수 있지만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을 미리 정하고 그게 침해 당하면 그만두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발성이 중요하다. 남에게 밀려서 뭔가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아서 시작하는 것이다. 남이 내 껍데기를 벗겨주진 않는다. 내 껍데기는 내가 깨고 나가야 한다. 연애 같은 것도 그렇다. 연애는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시작된다. 근데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도와줄 수는 없다. 안에서 자발적으로 생겨야만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의 출발점은 생각이다. 생각이 태도를 결정하고, 태도가 그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고, 행동이 인생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자신의 생각과 태도를 살펴봐야 한다.

 

“태도를 바꿈으로써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 세대가 발견한 가장 위대한 진실이다.” 위대한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말이다.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 kthan@assist.ac.kr

 

필자는 서울대 섬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애크론대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핀란드 헬싱키경제경영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받았다. 대우자동차 이사, IBS컨설팅그룹 상무, 한국리더십센터 소장 등을 지냈고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겸임 교수를 맡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21호 Power of Voice 2021년 05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