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예(禮)를 돌아본다

192호 (2016년 1월 Issue 1)

인간이란 동물은 여러모로 특이한 존재다. 생존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며 매우 중요시한다. 자연의 생물학적 법칙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또한 인간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경제성의 법칙에서도 벗어나 있는 듯 보인다. 몸을 보호해주는 자기 고유의 털을 벗고, 남의 털을 얻어(?) 입어야 하는 존재로 진화한 결과로서의 우리의 모습이 단적으로 이 점을 증명해 준다.

생물학과 경제성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인간의 쓸데없는 짓의 극치는 아마도 예(禮)가 아닐까 싶다. 그냥 내버려두어도 분명히 장성한 어른이 될 터인데 굳이 관례(성인식)라는 것을 치르고, 남녀가 서로 좋아해서 아이 낳고 살면 그만일 일에 적지 않은 돈을 들여 거창한 혼례(결혼식)를 올린다. ‘화장(火葬)을 해도 되고, 수장(水葬)을 해도 되고, 매장(埋葬)을 해도 되고, 풍장(風葬)을 해도 그만일’ 주검의 처리에 역시 많은 시간과 재물과 공을 들여 엄숙히 상례를 치르며,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영혼을 위해 밥상을 차려서 제례를 올리는 일 등에 인간은 큰 의미를 부여한다. 철학자 앙드레 베르제가 말했듯 인간은 ‘쓸데없는 행위를 할 필요를 느끼는 유일한 존재’인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러한 행위들이 결코 쓸데없는 짓이 아니다. ‘쓸데’라는 것을 생존과 관련된 것에 국한시킬 때 그렇게 생각될 뿐인 것이다.

삶의 흐름 자체는 연속적이지만 인간은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간의 의식(意識) 속에서 삶은 오히려 불연속적으로 취급되며 그 사이에는 각각의 크고 작은 절목이 존재한다. 마치 대나무가 일정 단위로 마디를 지으며 위로 뻗어가듯 인간은 삶의 중요한 시점마다 마디를 짓는 것이다. 예로 든 관혼상제와 같은 통과의례는 물론이요, 입학·졸업·입사·퇴사·취임·이임이나 각종 기념일 등등에 인간은 의미를 부여하고 거기에 희로애락을 투영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이러한 ‘쓸데없어’ 보이는 일들에 시간과 재화와 공을 들이는 것일까?

거기에는 ‘돌아보기’와 ‘함께하기’라는 중요한 의미가 들어 있는 것 같다. 인생의 절목으로 인해 인간은 크고 작은 신변의 변화를 겪는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고, 홀몸에서 동반자가 생기고, 삶에서 죽음으로 전환하는 큰 변화뿐만 아니라 각급 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고, 은퇴한 노년이 되며, 한 살 더 먹게 되는 것도 하나의 사건이고 변화다. 그 변화의 시점에서 일정한 절차와 격식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본다. 그리고 그 ‘돌아보기’는 혼자서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 안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해 주는 ‘함께하기’ 또한 마디 짓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옛사람들은 그 절목들을 엄숙하고 경건하게 진행하기 위해, 모든 절목의 의식에 예(禮)라는 형식을 빌렸다. 집 안에 사당을 두고, 관혼상제와 계절의 순환, 신변의 변화가 있을 모든 절목에 조상에게 고하며 의미를 다지고, 그것이 끝나면 사람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며 희로애락을 나누었던 것이다.

해의 의미도 이와 같을 것이다. 시간이라는 개념조차 없는 백지 상태의 자연에 인간은 눈금을 새겨 넣었다. 지구가 공전 궤도의 한 지점을 출발해 다시 그 자리에 오는 주기에, 자전 기간의 단위로 눈금을 매겨 놓은 것이 1년이다. 농경사회를 지나 다양하게 산업화된 오늘날, 우리가 가장 쉽게, 그리고 공통적으로 의미부여할 수 있는 마디라고 한다면 1년의 끝과 시작인 연말연시일 것이다. 이는 현대인 누구나가 ‘돌아보기’와 ‘함께하기’의 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시기다. 이럴 때일수록 예(禮)의 정신을 돌이켜서 한층 성숙한 ‘돌아보기’와 ‘함께하기’의 시간이 되면 어떨까 생각해 보게 된다.

이치억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 연구교수
필자는 퇴계 선생의 17대 종손(차종손)으로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면서 유교에 대한 반발심으로 유교철학에 입문했다가 현재는 유교철학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성균관대 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성균관대·동인문화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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