畵中有訓

강태공, 세상과 인재를 낚다

136호 (2013년 9월 Issue 1)

 

 

편집자주

미술사와 문학 두 분야의 전문가인 고연희 박사가 옛 그림이 주는 지혜를 설명하는 코너畵中有訓(그림 속 교훈)’을 연재합니다. 옛 그림의 내면을 문학적으로 풍부하게 해설해주는 글을 통해 현인들의 지혜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태공조위>라는 그림

 

18세기 전반기에 제작됐을 것으로 보이는 <예원합진>강태공의 모습이 그려진 화면이 있다. 푸른 옷에 민머리로 두 손을 모아 읍()을 취한 노인이 강태공이다. 그의 낚싯대는 곁에 드리워져 있다. 황색 옷에 금관을 쓰고 신하와 가마를 거느리고 선 사람은 주 땅의 지도자 주백(周伯)이다. 장차 주()나라의 문왕(文王)이 될 사람이다. 이 그림의 왼쪽 면에는 <사기(史記)> ‘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에 실린 강태공 전기 일부가 백하선생 윤순(尹淳)의 필적으로 간추려 옮겨져 있다.

 

“여상(呂尙)은 동해가 출신이다. 집안이 가난하여 늙도록 물고기를 잡았다. 주백(周伯)이 장차 사냥을 하려고 점을 치니, 잡을 것은 보좌할 인재라 하였다. 과연 위수의 남쪽에서 여상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는 크게 기뻐하며 수레로 모시고 돌아와 스승으로 세웠다. - <사기>”

 

이 글에서 여상(呂尙)은 강태공이다. 성이 강(), 이름은 상()인데, 강 씨의 조상이 여()지역을 다스린 바 있어여상이라 불린다. 우리에게 익숙한강태공태공망(太公望)’에 강 씨 성을 더한 말로태공망은 주백이 꿈꾸어 바라던[] 사람을 뜻한다.

 

그림 위 왼편에태공조위(太公釣渭, 강태공이 위수에서 낚시하다)’라 적혀 있다. 그림 속 강태공은 위수에서 낚시하다 낚싯대를 내려놓고 주백에게 예를 올리는 중이다.

  

 

직구(直鉤), 강태공의 곧은 갈고리

 

주백 앞에 일어서기 전, 강태공은 낚시를 하고 있었다. 강태공의 낚시 법은 유별났다. 곧은 갈고리, 직구(直鉤)’를 매달아 물에 드리우는 낚시였다. 직구에는 미끼를 달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나마 직구를 물 위로 번쩍 들어 올려 흔들거리며목숨을 버릴 놈만 물 위로 올라와 물거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무왕벌주평화(武王伐紂平話)>라는 책에 전하고 있다. 이 세상에 스스로 죽고자 하는 물고기가 있을 리 없다. 굽어진 갈고리에 미끼를 꿰어 물속으로 적당하게 드리우면 살고자 하는 물고기가 그걸 물어 죽는 것이 상식이다. 강태공의 직구낚시는 미치광이의 짓 같다.

 

고기를 잡으려면 제대로 잡아야 안주도 삼고 반찬도 조달한다. 고기를 잡을 것이 아니라면 물가에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강태공의 부인이 일찌감치 달아나 버린 것은 이해하고 남을 일이다. 조선의 최립(崔岦)이 가난한 선비는 직구낚시를 할 수 없다고 시를 읊었다.

 

강태공의 낚시는 낚시가 아니었다. 후대 문사들의 시문은 강태공의 낚시를 제대로 표현했다. 그의 낚시는 고기를 잡는 데 뜻을 두지 않은 낚시라고, 세상을 다스릴 인재가 때를 기다리고 앉은 낚시라고. 그렇다면 강태공의 직구낚시는 인재를 찾아 나선 주백의 눈에 들 때까지 눈에 띄는 모습을 유지했던 일종의 퍼포먼스였을까?

 

강태공와 주백의 만남은 실제로 어떻게 이뤄졌을까? <사기>를 저술한 한()나라의 사마천(司馬遷)은 이 문제에 집중했고, 그들이 만나게 된 사연에 얽힌 세상의 이야기 세 가지를 기록했다. 낚시하던 강태공이 어떻게 주백의 마음에 들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로 만들어져 떠돌고 있었는데 기원전 12세기경의 이야기라 역사가 사마천으로서도 정확한 내용을 가려내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사마천이 제시한 분명한 점은 하나였다. 평민 출신 강태공과 지도자 주백이 만났고 강태공이 참모로 오른 역사적 사실이다. 주백의 아들 주 무왕(武王)이 주()를 세울 때 강태공의 활약은 하늘을 나는 새매와 같이 용감무쌍했다고 <시경>의 노래가사로 전한다. 주백이 본 강태공은 물가에 쭈그리고 앉았던 늙은 홀아비가 아니라 가슴속에 웅걸한 새매가 꿈틀대는 인재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소신(所信)의 결행, 강태공과 백이숙제

 

강태공이 주 무왕을 도와 활약하던 시절에 다른 나라의 두 왕자가 주의 백성이 되고자 왔다. 백이와 숙제다. 백이와 숙제는 왕자로 태어났으나 왕의 자리를 탐하기보다 도가 행해지는 주에서 신하가 되길 바랐다. 도덕적 완벽주의자들이다. 그러나 두 왕자가 도착했을 때, 주 무왕은 은나라로 출전하고 있었다. 백이숙제는 무왕의 말고삐를 붙들고 출전을 말렸다. 무왕은 이들을 처단코자 했는데 곁에 있던 강태공이 두 왕자를 살려주었다. 강태공은 백이숙제의 의로움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태공은 무왕과 출전해 은나라를 정벌하고 주나라를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후대의 학자들은 강태공의 정벌을 역사적 업적으로 평가한다. 한편 백이숙제는 도가 행하여지지 않는 나라의 곡식을 먹을 수 없다고 버티다가 굶어 죽었다. 후대의 학자들은 이들의 맑은 심성도 매우 사랑했다.

 

강태공의 업적은 주나라의 건립이고, 백이숙제의 아름다움은 이를 반대했던 무결점의 도덕이었다. 평민 출신 강태공은 주 건립을 도운 뒤 제나라를 세웠고 왕자 출신 백이숙제는 도덕을 지키려고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다. 이들의 우열을 논할 수 있을까. 이들이 행한 역사적 실현방법은 달랐지만 소신을 굳게 세워 결단코 실천한 행적은 두고두고 그림으로 그려진 경외의 대상이었다. 강태공이 낚시하는 모습과 백이숙제가 수양산에서 고사리만 캐먹는 모습이 옛 병풍 위에 나란히 그려져 있다. 강태공의 의롭지 못한 출전을 빈정대며 두 왕자를 두둔한 조선학자의 경우나 백이숙제를 개인주의자로 낙인찍어 그 묘를 깨부순 중국근대 어느 지도자의 경우는 극단적 해석의 예로 오히려 역사에 남을 일이다.

 

기다림, 칠십에 출세

 

강태공이 위수에서 낚시하다 주백을 만났을 때 나이가 70세였다. 쭈그리고 앉아 70이 된 노인이 출세를 기다릴 수 있었을까. 공자의 수제자 안회는 젊어서 요절했고 조선의 대학자 이율곡은 49세에 세상을 떠났다. 70으로 출사를 기약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강태공은 70세에 때를 만나 출사하여 주백을 섬겨 도를 세우고 그의 아들 주무왕을 받들어 은을 정발하고 주나라를 세우는 역사를 일구었다.

 

<맹자>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요절과 장수를 의심하지 않고 몸을 수양하고 기다림이, ()을 세우는 것이다 (夭壽不貳, 修身以俟之, 所以立命也).” 기약하지 말고 기다리라. 네 심신을 수양하며 기다리라. 실로 강력한 가르침이다. 요절과 장수, 기다림의 대상도 모두 하늘의 뜻이다. 기약을 버리고 수양한 70세 노장의 저력과 지혜라면 현자에 버금갈 수 있다.

 

토마스 만의 소설 <선택된 인간>의 주인공 그리고리스는 어떠한가? 그는 나라를 평정하고 영웅이 돼 여왕과 결혼하는데 그 여왕은 그의 어머니였고 그의 아버지는 여왕의 쌍둥이 오빠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간이기에 저지른 자신의 죄 앞에 주저앉아 그리고리스는 모든 것을 버리고 바닷가 바위에 몸을 붙이고 비바람을 다 받으며 참회하느라 인간의 형상을 잃어버릴 지경에 이른다. 17년을 바위에 붙어 지냈을 때 그의 몸은 자연의 일부처럼 굳어 있었다. 마침 세상에는 새 교황의 자리에 오를 인격이 없어 문제였다. 그리고리스가 교황으로 발탁됐다. 이 소설은 서양 특유의 신화적 분위기가 가득하지만 수행으로 오랜 세월을 인고해 성인으로 만들어진 한 인간을 바라보면서 숙연한 결론을 맞이하게 해준다. 그리고리스는 선택된 인간이 됐다. 제대로 선택되는 자의 조건은 지난한 세월의 고된 단련과 인고라는 점에서 강태공과 상통한다.

 

강태공의 낚시 이미지며 강태공과 주백의 만남 장면은 지극히 평온해 보일 수 있지만 평온과 우연으로 강태공의 역사가 나올 수는 없다. 옛 그림에 드러나고 숨은 것은 그 내용을 곱씹어야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세월의 요동에 흔들리지 말라는 위안이며 지혜로운 인재를 찾아내라는 교훈이다.

 

고연희 이화여대 강사 lotus126@daum.net

필자는 한국한문학과 한국미술사로 각각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시카고대 동아시아미술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이화여대, 홍익대, 연세대, 덕성여대 등에서 강의했다. 조선시대 회화문화에 대한 문화사상적 접근으로 옛 시각문화의 풍부한 내면을 해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조선후기 산수기행예술 연구> <조선시대 산수화, 필묵의 정신사> <꽃과 새, 선비의 마음> <그림, 문학에 취하다> <선비의 생각, 산수로 만나다> 등의 저자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86호 Leadership for the New Era 2019년 12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