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오경 총론

仁의 고향 한국, 이제 유학에서 미래를 찾자

109호 (2012년 7월 Issue 2)





1.
인문학이란?
최근 우리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기이한 현상 중의 하나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꼽을 수 있다. 대학들은 사회인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강좌를 운영하느라 분주하고, 출판사들은 인문학에 관한 책들을 출판하느라 바쁘다.
 
사람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사람들이 그간 물질적 가치를 향해 정신없이 달려오다가 정신적 가치를 상실해버렸기 때문이다. 정신적 가치를 잃어버리면 마음이 황폐해진다. 뿌리가 망가지면 잎과 가지가 일시에 시들어버리듯 마음이 황폐해지면 사람들의 삶이 전반적으로 위기 국면을 맞이한다. 오늘날 서구의 경제위기를 시발점으로 하여 전 세계에 불어닥치고 있는 총체적 위기는 사람들이 마음을 챙기지 않고 방치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은 다시 마음을 챙기는 것이다. 오늘날 인문학이 주목받고 있는 것은 인문학이 바로 마음을 챙기는 학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흔히 우리들이 말하는 인문학이란 대부분 서구의 물질주의를 바탕으로 성립된 것이기 때문에 마음을 챙기는 학문이라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에 대한 기대가 크면 클수록 오히려 실망이 더 커진다. 그러면 마음을 챙긴다는 것은 무슨 말이며 마음 챙기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인문학이란 어떤 학문일까?
 
마음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진심(眞心), 양심(良心), 공심(公心), 욕심(慾心), 도심(道心), 사심(私心), 사심(邪心) 등등 수도 없이 많다. 이런 마음들을 가꾸고 챙기는 것이 다 마음 챙기기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이 중에서 진심(眞心), 양심(良心), 공심(公心), 도심(道心) 등을 챙기는 것만이 마음 챙기기에 해당한다. 이런 마음은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마음이라고 한다. 우리는 한마음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외국인들은 쓰지 않는다. 이 한마음이란 말에는 한국인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한국 사람들은 옛날부터 이 한마음을 중시했고 이 한마음을 챙겨왔다. 우리가 싸울 때 흔히 하는 말 중에 “이놈아. 네가 인간인가? 제발 인간 좀 되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외국인들에게 하면 큰 일이 날 것이다. 이 말을 들으면 그들은 바로 거울을 꺼내 얼굴을 보고는 “내 얼굴이 너에게는 원숭이로 보이느냐”라고 하면서 거칠게 항의할 것이다. 심지어는 총알이 날아올 정도의 사건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이 말을 하는 것은 얼굴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을 가졌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이때 말하는 인간의 마음이 바로 한마음이다. 한마음을 가지지 않은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다. 사람이 짐승으로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인간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했고 그 방법을 찾았다. 그것은 동굴에 들어가, 햇빛을 보지 않고, 마늘과 쑥을 먹으며, 한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실제로 곰이 동굴에 들어가 인간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곰이란 곰처럼 돼 버린 인간을 말한다.
 
한국인들은 옛날부터 한마음을 챙겨왔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때는 불교를 통해서 한마음을 챙겼고 조선시대 때는 유학을 통해서 한마음을 챙겼다. 한마음은 모두의 마음이기 때문에 한마음을 챙길수록 사람들은 모두 하나가 된다. 모두 하나가 되는 마음은 따뜻하다. 모두 하나가 되면 ‘나’와 ‘너’가 ‘우리’로 바뀐다. 한국인들의 마음이 따뜻한 것은 이 때문이고, 한국인들이 ‘우리’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늘날 한류문화의 붐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는 한국인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다. 경쟁이 치열한 때에는 차가운 마음을 가진 냉철한 사람이 유리하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경쟁력이 약하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후진성을 면치 못한다는 평가를 받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이 황폐해져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난 뒤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인들의 따뜻한 마음은 차가워진 마음을 달랠 수 있다. 최근 한국의 문화 예술이 각광을 받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 사람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인문학의 핵심은 이 한마음을 챙기는 것이다. 그런데 한마음을 잘 챙기는 사람들이 한국인이기 때문에 오늘날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인문학은 한국학으로 귀결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인들은 좋은 점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문제점도 또한 많이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정리를 잘하지 못하고 마무리를 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창의력이 왕성하고 아이디어가 뛰어나지만 그것을 정리해 실용화하는 능력은 떨어진다. 창의력이나 아이디어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잘할 수 있지만 정리하는 일은 몸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등한한다. 한국인들이 정리를 잘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국인의 한마음도 한국인의 손으로 정리되지 못했다. 대신 이웃 나라 중국의 공자에 의해 정리됐다. 공자 사상의 핵심은 인()이다. 인은 공자가 만들어낸 사상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이 가지고 있던 한마음을 정리한 것이다. 유학은 중국에서 만들어져서 한국에 수입된 것이 아니다. 원래 우리의 것이 중국으로 흘러들어가 공자의 손에 의해 정리됐다가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온 우리의 사상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의 찻잔 문화와도 같다.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는 찻잔은 그 제조법이 일본에서 들어왔다. 그러나 그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임진왜란 때 건너간 우리의 도공들에게서 비롯됐다. 우리의 도공들에게서 비롯된 우리의 문화가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 정리된 뒤에 되돌아온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찻잔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찻잔 문화가 그냥 그대로 우리의 것은 아니다. 일본인의 손에 의해 일본의 방식으로 변질되고 포장된 일본의 문화다. 일본의 찻잔 문화에 포장돼 있는 일본의 요소를 걷어내고 난 뒤에 남는 원형, 그것이 우리의 찻잔 문화다. 한국인과 유학의 관계도 이와 같다.
 

2.
한국인과 유학의 관계
공자는 유학을 만든 사람이 아니다. 공자는 “나는 전해 오는 것을 이은 것이지 새롭게 만든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공자는 이전부터 전해오던 사상을 정리하고 체계화한 사람이다. 공자가 정리한 유학사상의 모델은 4300여 년 전 요임금의 사상이다.
 
요임금 사상의 핵심은 중용사상이다. 중용은 동부지방에 살던 사람들의 사상과 서부지방에 살던 사람들의 사상을 조화시키는 사상이었다. 당시에는 중국이라는 나라도 없었고 한국이라는 나라도 없었다. 다만 작은 규모의 씨족국가나 부족국가 같은 형태의 수많은 나라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그 나라들의 문화의 내용을 크게 분류하면 동부지역에 속하는 나라들의 문화와 서부지역에 속하는 나라들의 문화로 분류할 수 있다. 동부지역의 문화와 서부지역의 문화는 그 내용과 성격이 서로 상반된다고 할 정도로 매우 달랐다. 동부지역은 풍요롭고 자연재해가 적다. 이런 풍토에서 사는 사람들은 여유가 있다. 삶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대밭에서 자라고 있는 대들은 지상에서는 각각 다르게 자라고 있지만 지하에서는 하나의 뿌리로 연결돼 있다. 그러므로 지하의 본질을 안다면 지상에서 각각의 삶을 산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하나다.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사람의 몸으로 보면 모두 남남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의 마음은 하나로 연결돼 있다. 이렇게 연결돼 있는 마음이 한마음이다. 모두가 다 같이 가지고 있는 한마음은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마음이고 하늘마음이다. 하늘마음으로 사는 것이 본질적인 삶이 되고 참된 삶이 된다. 이러한 삶의 방식 때문에 동부지역의 사람들에게는 삶의 밑바닥에 하늘이 자리 잡는다. 동부지역의 사람들은 하늘을 중시하고 종교문화를 발달시킨다. 동부지역의 사람들은 하늘의 뜻에 따르는 삶을 참된 삶으로 여기기 때문에 하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위로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은 새이므로 민속적으로는 새가 신이 되고 새가 앉아 있는 곳이 나무이므로 나무를 신으로 삼기도 한다. 오늘날 한국의 민속에서 보면 마을 어귀에 솟대를 세우기도 하고 마을 어귀에 있는 나무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삼기도 하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에 반해 서부지역은 척박하고 자연재해가 많다. 큰 지진도 일어나고 가뭄이 계속되기도 한다. 이런 풍토에서 사는 사람들은 여유가 없다. 삶에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자기의 몸 하나를 건사하기 바빠서 자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 지상에 자라고 있는 대들이 지하에서는 한 뿌리로 연결돼 있다 하더라도 줄기와 잎들의 삶을 유지하기에 바쁘다면 지하의 본질을 알 여유가 없다. 그렇게 되면 지상의 대들이 모두 하나라는 사실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각각 다른 개체로 살아간다. 각각 다른 개체로 살다 보면 한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한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하늘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부지역의 사람들은 몸의 삶을 강조하고 무력을 중시한다. 몸은 물질이기 때문에 서부의 문화에서는 물질을 중시하고 땅을 중시한다. 땅 아래에 물이 있고 물 깊은 곳에 용이 살고 있으므로 서부지역의 민속에서는 용을 신으로 삼고 물을 신()으로 삼는다.
 
이처럼 동부지역의 문화와 서부지역의 문화가 상반되기 때문에 동부지역의 사람들과 서부지역의 사람들이 중원에서 만나면 오해가 일어나고 충돌이 생긴다. 이 충돌에서 일어나는 혼란을 해결한 사람이 요임금이고, 요임금의 사상이 중용사상이다. 요임금의 중용사상은 동부지역의 문화와 서부지역의 문화를 아우르는 것이고 그 아우르는 방식은 동부지역의 문화를 핵심으로 하고 서부지역의 문화로 포장하는 것이다. 이 요임금의 중용사상을 이어받아 체계화하고 정리한 것이 공자의 유학사상이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면 유학사상의 알맹이에 해당하는 인()은 고대 동부지역 사람들에게 중시됐던 한마음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고대 동부지역의 문화를 고스란히 이어오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므로 유학사상의 핵심은 한국사상이라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유학사상이 바로 한국사상이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학사상의 핵심이 한국사상이라는 말이다. 한국의 유학은 고대 우리 조상들의 사상이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인의 손에 의해 포장된 뒤에 다시 돌아온 우리의 사상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렇게 설명을 해도 납득하지 못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을 위해 좀 더 구체적인 증거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번지라는 제자가 인()에 대해 물었을 때 공자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인자(仁者)가 어려운 일은 남보다 먼저하고 챙기는 것은 남보다 나중에 한다면 인()이라 할 수 있다.(仁者先難而後獲可謂仁矣 [論語] 雍也篇)
 
인자(仁者)를 ‘어진 사람’이나 ‘인자한 사람’으로 번역한다면 인자의 마음이 인()일 것이다. 그런데 공자의 답변은 그렇지 않다. 인이 되기 위해서는 인자에게 조건이 붙는다. 인자가 ‘어려운 일은 남보다 먼저하고 챙기는 것은 남보다 나중에 한다면’이란 조건을 충족해야 인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음미해 보면 인자라 하더라도 어려운 일을 남보다 뒤에 하고 챙기는 것을 남보다 먼저 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자를 ‘어진 사람’이나 ‘인자한 사람’으로 번역하면 안 된다.
 
그렇다면 인자(仁者)란 무슨 뜻인가? 옛날에는 이()와 인()을 통용했다. 이()라는 말 대신에 인()이라 해도 됐고, 인()이란 말 대신에 이()라 해도 됐다. 이 내용은 각종 사전에 나와 있기 때문에 의심할 필요가 없다. 이()는 대()와 궁()을 합한 말이므로 ‘활을 잘 쏘는 키 큰 사람’이란 뜻이고, 인()은 인()과 이()를 합한 말이므로 ‘사람이 둘이서 함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둘이서 함께 있다는 것은 혼자서 잘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이서 함께 있을 수도 있고 넷이서 함께 있을 수도 있지만 대표적으로 둘이서 함께 있는 것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활을 잘 쏘는 키 큰 사람’과 ‘혼자서 잘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란 말이 통용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오늘날의 상황에서 보더라도 활을 잘 쏘는 사람은 한국인이고 혼자서 잘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한국인이다. 한국인들은 식당에 식사하러 갈 때도 혼자서 가는 일이 드물고, 술집에 술을 마시러 갈 때도 혼자서 가는 일이 드물다. 이러한 특징은 옛날의 우리 조상들에게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이 동부지역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에게 붙인 별명이 ‘활을 잘 쏘는 키 큰 사람’이었고 ‘혼자서 잘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활을 잘 쏘는 키 큰 사람’이란 말과 ‘혼자서 잘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란 말이 통용됐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면 공자의 말이 비로소 이해가 된다. 인자(仁者)란 어진 사람이란 뜻이 아니라 ‘동부지역에 살던 사람들’이란 뜻이고 오늘날의 국가관에서 보면 ‘한국인’이란 뜻이다. 한국인의 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 공통적인 정서는 ‘나 = 너’, 즉 내가 너이고 네가 나라는 것이다. ‘나 = 너’라는 등식에서 보면 나와 너는 ‘우리’로 바뀐다. 한국인들이 ‘우리’라는 말을 많이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 = 너’라는 한국인의 정서는 장점으로 발휘될 수도 있고 단점으로 발휘될 수도 있다. 흔히 말하는 한국인의 장점은 정이 많다는 것이고 마음이 따뜻하다는 것이다.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이기 때문에 네가 울면 나도 울고,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며, 네가 슬프면 나도 슬프다. 그래서 한국인은 정이 많고 마음이 따뜻하다. 그러나 ‘나 = 너’라는 정서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단점은 ‘너의 것은 나의 것이고, 나의 것은 나의 것’이 되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부모의 재산을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돈 많은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할 경우에는 으레 그 친구가 밥값을 지불할 것으로 기대한다. 힘든 일은 남이 하기를 바라고 수입은 자기가 먼저 챙기기도 한다. 잘못은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잘한 것은 자기의 덕이라 으스대기도 한다. 이러한 단점은 제거해야 한다. 한국인들의 이러한 단점만 제거하고 나면 남는 것은 한국인들의 장점인 따뜻한 마음이다. 한국인의 단점을 제거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어려운 일을 남보다 먼저하고 챙기는 것을 남보다 나중에 하는 것이다. 한국인의 단점을 제거하고 난 뒤에 남는 한국인의 따뜻한 마음, 그것을 공자는 인()이라 설명했다.
 
공자 사상의 핵심이 인()이고 옛날 동이족의 따뜻한 마음이라면 공자는 우리 조상인 동이족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고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다. 공자는 동이족의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고 피력한 적이 있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뗏목을 타고 바다에 뜨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다. 공자의 말을 들은 어떤 사람이 동이족의 나라는 변방에 있는 누추한 곳이니 거기에 가서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했을 때 공자는 “거기에는 군자들이 살고 있으니 무슨 누추함이 있겠느냐”고 답했다. 이에서 보면 우리 조상들이 살던 동이족의 나라는 공자 사상의 핵심인 인()의 발상지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면 한국인이 유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가 확실해 진다. 한국인은 유교적이다. 한국의 불교가 유교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한국의 불교가 한국적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한국의 기독교 또한 유교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한국의 기독교가 한국적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한국을 이해하는 지름길은 유교의 핵심을 이해하는 것이다.
 
유학에 대한 호칭은 몇 가지가 있다. 유교라 하기도 하고, 유도라 하기도 하며, 유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학은 배우는 입장에서 붙인 이름이고, 유교는 가르치는 입장에서 붙인 이름이며, 유도는 실천하는 입장에서 붙인 이름이고, 유술이란 어떤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경우에 붙인 이름이다.
 

3.
공자의 유학과 오경
우리는 유학의 경전을 사서삼경(四書三經), 또는 사서오경(四書五經)이라고 한다. 이 중 공자 당시에도 있었던 것은 오경이다. 공자가 생존했던 때 사서란 없었다. 공자가 교과서로 썼던 책들 역시 오경이다. 오경은 <시경(詩經)> <예기(禮記)> <서경(書經)> <춘추(春秋)> <주역(周易)>이다. 이 중에서 <시경(詩經)> <서경(書經)> <주역(周易)>을 삼경(三經)이라 하기도 한다. 그러면 오경의 내용은 무엇인가?
 
①시경(詩經) <시경>은 공자가 춘추시대에 불리던 3000여 편의 노래가사를 근거로 하여 중복된 것이나 합당하지 않은 것 등을 빼고 새롭게 편찬한 305편의 노래가사의 묶음을 말한다. 당시의 노래가사가 모두 후대에 시로 불려진다. 시의 체제는 형식적인 면에서 보면 민요에 해당하는 풍()과 조정에서의 공식행사 때 사용하는 아()와 왕실에서 조상에 제사지낼 때 그들의 공덕을 찬양하는 내용인 송()으로 돼 있다. 내용적인 면에서 보면 시인의 심정을 직설적으로 읊는 부()와 시인의 심정을 다른 사물에 빗대어 비유법으로 표현한 비(), 다른 사물을 보고 일어난 느낌을 읊는 흥()의 세 요소로 돼 있다. 시는 형식적으로 보면 풍()이 제일 많고 내용면에서는 흥()이 제일 많다. 흥으로 돼 있는 시의 내용은 다른 생물체의 삶의 모습이나 다른 물체의 존재형태를 보고 거기에서 느낀 것을 자신의 삶에 반영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시는 마음의 표현이다. 시는 순수한 정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고 순수한 정이 욕정으로 발현되는 것을 참는 마음의 상태를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시를 읽으면 정이 순화되고 느낌이 순수해진다. 정이 순화되지 않으면 모든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떤 일을 추진하기 전에 먼저 정을 순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시를 읽는 것이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임을 알 수 있다.
 
②예기(禮記) <예기>는 예의 내용을 주로 엮어놓은 것이다. 예란 성인(聖人)의 삶의 방식에서 유래한다. 성인의 마음은 한마음으로 가득하다. 성인의 마음에는 욕심이 없다. 그러므로 남들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 성인은 그것을 자기 일처럼 좋아하고 축하를 하지만 보통의 사람은 욕심이 있기 때문에 심술이 나고 패악을 부린다. 이 두 사람의 행동 중에서 성인의 행동은 아름답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의 행동은 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인의 삶의 방식을 따라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예다. 그러므로 성인은 예를 실천하지 않는다. 성인은 예에 해당하는 행동방식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무심히 행동할 뿐이다. 그 행동이 아름답기 때문에 그것을 보는 사람이 그와 같은 것을 기억하고 행동하는 것이 예이다.예를 실천하는 사람은 외형적인 행동방식은 성인의 그것과 같지만 마음가짐은 다르다. 성인의 마음은 기쁨에 충만해 있고 행동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예를 실천하는 사람의 마음은 욕심이 많이 남아 있고 그 때문에 행동이 부자연스럽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예를 실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욕심을 없애고 한마음을 회복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그래서 한마음이 완전히 회복되면 비로소 그의 행동이 성인의 행동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렇게 되면 그는 더 이상 예에 맞는 행동을 기억하거나 실천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의 마음은 한마음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마음이 내키는 대로 행동하면 된다. 그러면 그것이 모두 예가 된다.
 
<예기>는 공자의 삶의 방식을 중심으로 후대에 기록해 놓은 것이므로 공자가 공부했던 내용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공자가 공부했던 예의 내용은 주례(周禮)와 의례(儀禮)다. 예기(禮記)와 주례 및 의례를 합해 유교에서는 삼례(三禮)라고 한다.
 
③서경(書經) <서경>은 상고시대 임금인 요임금이 다스렸던 당()에서 비롯해 순임금이 다스렸던 우()나라, 우임금이 건국한 하()나라, 탕임금이 건국한 은()나라, 문왕이 건국한 주나라에 이르기까지의 역대 성왕(聖王)들과 현상(賢相)들의 정치상의 발언과 행위를 기록한 책이다.
 
사람은 정치적 동물이다. 정치를 하는 방법은 복잡하고 세밀하다. 그러므로 복잡하고 세밀한 것에 몰두하다 보면 큰 틀을 잃어버리기 쉽다. 정치라는 것의 큰 틀은 정치가 최초로 시작됐던 그 옛날에 정해진 것이다. 정치의 큰 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초에 행해진 정치의 내용을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서경>은 옛 성왕들과 현상들의 마음 씀씀이를 기록해 놓은 책이고 정치방식을 기록해 놓은 책이다. 정치의 근본 원리가 여기에 있다. 오늘날 사람들이 정치의 큰 틀을 이해하기 위한 지름길은 <서경>을 읽는 것이다.
 
④춘추(春秋) <춘추>는 원래 노()나라의 역사서였으나 공자가 춘추에 있는 기록 중에서 은공(隱公)부터 애공(哀公)까지 12공 242년간의 내용을 독자적인 역사의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필삭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전해지는 <춘추>라는 책이다. <춘추>의 내용은 주로 제왕들과 고관들의 언행을 기록하고 거기에 평가를 내린 것이다. 춘추시대의 제왕들이나 고관들은 그 이전의 성왕이나 현상(賢相)들과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언행에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 그러므로 당시의 제왕들이나 고관들의 언행 중에서 바른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변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필요성에서 공자가 춘추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일일이 변별해 놓은 것이 바로 <춘추>다. <춘추>를 통해서 사람들은 시비판단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할 수 있다.
 
⑤주역(周易)어린 아이가 부모와 함께 외출을 할 경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부모는 어린이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준다. 부모는 전지전능한 해결사다. 그래서 어린이는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어른에게는 어릴 때처럼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전지전능한 해결사가 없다. 그래서 어른들은 많은 문제에 부딪쳐 고통을 받는다. 그런데 사실은 어른에게도 어릴 때의 부모 같은 전지전능한 해결사가 있다. 그 해결사가 바로 하늘이다. 하늘은 어린이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부모처럼 사람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전지전능한 해결사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것은 하늘의 지시를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린이에게 일어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문제점은 부모를 잃어버릴 때이다. 부모를 잃어버려 부모의 말을 들을 수 없으면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다. 어른들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도 이와 같다. 어른들의 문제는 하늘을 잃어버리고 하늘의 뜻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하늘의 뜻을 듣고 따르기만 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이 되지만 하늘의 뜻을 들을 수 없다면 문제가 생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늘의 뜻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인데 그 방법이 <주역>이다.
 
모든 존재는 본질적으로 하나로 연결돼 있으면서 현실적으로 각각 구별된다. 그것은 대밭에 있는 대나무들이 지상에서는 각각 구별되는 개별적 대나무로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지하에서 한 뿌리로 연결돼 있는 것과 같다. 하나로 연결돼 있는 그 본질을 태극이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는 본질적으로 태극이다. 현실적으로 구별되는 각각의 삶을 살다가 보면 서로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태극의 입장이 되면 모두 조화를 이룬다.
 
사람들의 삶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그것은 욕심에 좌우돼 갈등을 일으키는 삶과 태극의 입장에서 조화를 이루는 삶이다. <주역>을 읽는 목적은 욕심에 좌우되는 삶에서 조화를 이루는 삶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그러한 삶이 ‘다운’ 삶이다. 부모는 부모답고, 자녀는 자녀다우며, 선생은 선생답고, 학생은 학생다우며, 사장은 사장답고, 사원은 사원답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
 
오경을 통한 공자의 가르침은 제자들에 의해 전해지다가 100여 년이 지나 전국시대의 맹자에 의해 크게 부흥했다가 전국시대 말기의 순자에 의해 변질됐다. 순자는 사람의 마음보다 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몸이 살아가기 위해 벌이는 경쟁과 투쟁의 모습을 인간의 삶의 본질로 보아 성악설을 주장했다. 혼란한 전국시대의 여러 나라를 통일시킨 진()나라가 얼마가지 않아 망하고 뒤를 이어 한()나라가 등장했는데 한나라는 순자의 유학사상을 정치이념으로 통치했다. 한나라는 순자의 유학을 더욱 강화해 정치권력을 유지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변질시켰다. 유교 윤리의 핵심은 오륜이다. 오륜은 모든 인간관계를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그 다섯 가지 인간관계에서 지켜야 할 윤리를 설명한 것인데 그 내용은 모두 사람이 한마음을 바탕으로 해서 조화를 이루는 방법으로 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오륜 중심의 유교 윤리는 한나라 때 삼강 중심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변질됐다. 삼강(三綱)이란 임금이 신하의 벼리라는 군위신강(君爲臣綱), 아버지가 아들의 벼리라는 부위자강(父爲子綱), 남편이 부인의 벼리라는 부위부강(夫爲婦綱)의 세 윤리를 말한다.
 
강()은 벼리다. 벼리는 고기 잡는 그물의 굵은 밧줄을 말한다. 고기 잡는 그물은 굵은 밧줄과 가는 밧줄로 엮어져 있다. 굵은 밧줄은 사람이 잡고 끌어내는 중요한 부분이고, 가는 밧줄은 잡힌 고기가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얽어놓은 것인데 그것을 목()이라 한다. 굵은 밧줄이 끊어지면 그 그물은 쓸 수 없지만 가는 밧줄은 좀 끊어져도 크게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굵은 밧줄이 끊어질 것 같으면 가는 밧줄을 잘라서라도 그것을 이어야 한다. 임금이 신하의 벼리라는 말은 신하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임금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고, 아버지가 아들의 벼리라는 말은 아들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아버지를 지켜야 한다는 말이며, 남편이 부인의 벼리라는 말은 부인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남편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이 삼강의 윤리는 한나라 때 변질된, 잘못된 윤리이다. 후대에 유학이 비난받고 비판받는 것은 거의 한나라 때 변질된 유학 때문이다. 한나라 때의 유학은 공자와 맹자의 사상과는 반대되는 사상이므로 유학의 탈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유학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진정한 유학의 부활은 송나라 때 주자(朱子 : 이름은 朱熹)에 의해 완성됐다.
 
한나라가 망하고 불교가 융성했으므로 한나라의 뒤를 이은 수나라와 당나라에서는 불교를 정치이념으로 삼았다. 불교가 정치이념이 되면 불교세력이 정치적으로 특혜를 받게 된다. 그 때문에 당나라 말기에는 불교사원이 지나치게 많아지고 승려가 타락했으며 국가의 재정이 불교 때문에 파탄의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유교 부활운동이었다. 당나라 말기에 부활하기 시작한 유교는 불교와 대항하기 위해서 형이상학적 성격이 강해졌다. 형이상학적 성격이 강한 유교가 송나라 때에 이르러 완성된 것이 주자학이다. 주자학은 독특한 성격에 따라 여러 호칭이 쓰인다. 리()라는 말이 중심이 되므로 리학(理學)이라고도 하고, 송나라 때 완성되었다고 해서 송학(宋學)이라고도 하며, 핵심적인 인물이 정자와 주자라 해서 정주학이라고도 하고, 성()과 리()가 핵심이라 해서 성리학이라고도 하며, 도를 실천하는 학문이라 해서 도학이라고도 하고,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학문체계라는 뜻으로 실학이라고도 하며, 새로운 유학이 등장했다고 해서 신유학이라고도 한다.
 
4. 주자학의 성립과 사서오경
주자학은 불교와 대립하기 위해서 유학의 형이상학적 성격을 강화시키고 공자사상의 계보와 체계를 확립했다. 먼저 형이상학적 성격이 강한 이론을 확립하기 위해 <예기>라는 책 속에 들어 있는 <대학>과 <중용>을 분리시켜 하나의 책으로 독립시키고, <맹자>를 부각시킴으로써 <논어>와 더불어 사서(四書)라고 하는 기본 교과서를 확정했다. 사서는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을 말한다. <논어>는 공자의 언설을 제자들이 정리한 것이고, <대학>은 공자의 제자인 증자의 말을 기록한 것이며, <중용>은 증자의 제자인 자사의 말을 기록한 것이고, <맹자>는 자사의 제자인 맹자의 말을 기록한 것이라고 하여, 사서를 확정함으로써 공자의 학통이 정리되었다. 공자의 유학에서는 오경이 중심이었지만, 주자학에서는 사서가 그 중심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면 사서의 내용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 것일까?
 
①대학(大學)대학은 대인이 읽어야 할 책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학은 유학의 내용과 체계를 소개하는 안내서이다. 따라서 처음 유학을 배우는 사람은 <대학>부터 읽어야 한다.
 
<대학>의 내용은 삼강령(三綱領) 팔조목(八條目)으로 돼 있다. 삼강령은 <대학>의 내용을 크게 세 가지로 소개한 것인데 그 내용은 명명덕(明明德), 친민(親民), 지어지선(至於至善)이다. 명명덕(明明德)은 자기의 밝은 덕을 밝히는 것이고, 친민(親民)은 모든 사람과 하나가 돼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덕을 밝히도록 인도하는 것이며, 지어지선(至於至善)은 나와 남이 모두 밝은 덕을 밝힘으로써 이 세상을 최고의 상태로 만들어 거기에 머물러 사는 것이다. 이 삼강령의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한 것이 팔조목이다. 팔조목은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여덟 가지다.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은 수신을 하는 방법이다.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는 수신한 결과 나타나는 효과이다. 개인적으로 수신이 돼 덕이 밝아지면 저절로 가정이 평화로워지고, 가정이 평화로워지면 나라가 다스려지며, 나라가 다스려지면 천하가 평화로워진다는 내용이다.
 
②논어(論語) <논어>는 공자가 수업시간에 제자들에게 당부한 말이나 제자들의 질문에 대답한 말 등을 공자 사후에 제자들이 모여서 편집한 책이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은 지나치거나 모자라는 것도 없고 치우치거나 편벽된 것도 없는 가장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말이다. 따라서 <논어>에 있는 공자의 말을 삶의 기준으로 삼으면 잘못될 일이 없다. 공자는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 정치를 하는 바른 방법과 정치원리, 교육의 원리와 교육 방법, 윤리의 내용과 바람직한 삶의 방법, 참된 행복에 대한 정의와 불행의 내용, 시와 음악에 대한 정의와 예술에 대한 설명 등 인생의 전 분야에 걸쳐 다양하게 언급했는데 그 내용들을 제자들이 장르별로 분류해 단행본의 책으로 묶은 것이 <논어>다. 공자는 <논어>에서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했기 때문에 공자의 말씀은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인생의 근본 문제는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③맹자(孟子) <맹자>는 맹자가 제자들에게 당부한 말이나 제후들과 문답한 말 등을 정리한 책이다. 맹자 자신이 직접 정리했다는 설도 있고 맹자의 제자들이 정리했다는 설도 있다.
 
맹자의 사상은 고대 동부지역의 문화와 사상을 대변한다. 맹자사상의 특징은 마음을 강조하고, 하늘의 뜻을 중시하며, 문제의 근본 해결책을 강구한다. 그러므로 맹자의 사상은 한국사상과 가장 유사하다. 그래서 옛날 우리의 선조들은 <맹자> 읽는 것을 가장 즐거워했다. 맹자도 공자와 마찬가지로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 정치를 하는 바른 방법과 정치원리, 교육의 원리와 교육 방법, 윤리의 내용과 바람직한 삶의 방법, 참된 행복에 대한 정의와 불행의 내용 등을 다양하게 언급했으므로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좋은 참고가 된다.특히 한국인에게서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한국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④중용(中庸) <중용>은 유학의 내용 중에서 형이상학적 이론들을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 율곡 선생은 사서를 읽는 순서를 <대학> <논어> <맹자> <중용>으로 정했다. <중용>은 하늘과 사람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하늘과 사람은 원래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연결되는 관계였다. 그러던 것이 사람들이 차츰 그 본래의 모습을 잊어버리고 하늘과 별개의 존재로 착각하게 됐고 그 때문에 고립됨으로써 많은 문제점이 노출됐다. 사람의 삶에서 나타나는 모든 문제는 하늘과 분리된 데서 비롯된다. 하늘과 하나로 연결돼 있는 끈을 도로 찾기만 하면 모든 문제는 바로 해결된다. <중용>은 그 방법을 제시해준다.
 
주자학은 사서와 오경을 기본 교과서로 삼아 공부하도록 유도하지만 한편으로는 우주만물의 존재구조를 리()와 기()의 두 요소로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인간의 마음과 몸의 관계를 설명한다. 사람은 만물과 마찬가지로 정신적 요소인 리()와 물질적 요소인 기()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만약 자기의 본질인 리()를 망각하면 물질적 존재로 착각하게 되고 그 때문에 온갖 고통을 받게 된다. 사람이 받게 되는 모든 고통은 리()를 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리()를 회복하기만 하면 모든 고통이 동시에 해결된다. 그래서 주자학은 리()의 회복을 치밀하게 추구한다.
 
중국 송나라 때 완성된 주자학은 고려시대 말기에 한국으로 수입돼 급속도로 확산됐다. 불교의 폐단 때문에 많은 문제가 노출되자 이성계가 혁명을 일으켜 주자학을 정치이념으로 하는 조선왕조를 출범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유학은 주자학에서 출발한다. 한국은 유학의 발상지이기 때문에 한국에 수입된 유학은 중국유학보다 더 발전할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 완성된 주자학이 조선에 들어와 화려한 꽃을 피운 것도 이 때문이다. 조선 성리학에서 피어난 꽃 중의 꽃은 퇴계 이황 선생과 율곡 이이 선생이다.
 
세종대왕은 유학의 원리로 훌륭한 정치를 이끌었다. 한글의 창제원리도 <주역>에서 힌트를 얻었다. 조선은 유학의 힘으로 500년을 유지했다. 그러나 말기에 유학이 정치가들에게 악용당하면서 많은 문제점이 노출된 것도 사실이다.
 
오늘날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다. 지금부터는 마음을 챙겨야 하는 시대가 전개된다. 옛날부터 마음 챙기는 일을 중시했던 한국인들은 이제 좋은 기회를 맞았다. 마음 챙기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가 유학공부다. 이런 때를 만나 유학공부에 몰입해 보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특히 한국을 이끌고 세계를 이끌어 가야할 한국의 리더들은 더욱 그렇다.
 
이기동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교수
 
이기동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교수는 일본 쓰쿠바대에서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대만 국립정치대와 하버드대 옌칭연구소에서 수학했다. 20여 년에 걸친 작업 끝에 2007년 사서삼경을 최초로 완역하는 등 유학(儒學)의 세계적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29호 Fly to the Metaverse 2021년 09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