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幸福)에서 쾌족(快足)으로!

102호 (2012년 4월 Issue 1)





누가 봐도 행복한 사람들이 있다. 돈을 소유한 것으로 따지면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고 지위로 말하면 어디 가서 주눅 들지 않을 만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누가 봐도 행복한 사람이다. 거기에 학벌 좋고 자녀들 모두 잘 성장했다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행복(幸福)하다고 해서 마음이 항상 유쾌하고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비록 행운()과 복록()은 얻었을지언정 그것이 늘 마음을 유쾌하고 만족스럽게 만들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돈을 지키기 위해 형제간에 소송을 하고 지위를 얻기 위해 친한 사람들과 싸운다면 아무리 돈과 지위가 있더라도 마음은 불쾌하고 불만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행복(幸福)’은 동양에서 그리 오랜 역사를 가진 단어가 아니다. 행복이란 단어는 비교적 근대에 생겨난 말이고 영어의 ‘Happiness’를 직역한 말이다. 행복의 행()은 운()이 좋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하며 행복이란 단어는 운()과 관련한 인생의 복()을 의미한다. <중용(中庸)>에 보면소인들은 아주 위험한 곳에서 요행을 기다린다(小人行險以徼幸)’는 구절이 나온다. 상식을 벗어난 행동으로 부귀를 추구하고 지위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을 소인(小人)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반면군자는 평범한 곳에서 다가오는 운명에 휘둘리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람(君子居易以俟命)’이다. 지금의 처지에 연연하지 않고 어떤 상황이 다가와도 유쾌하고 통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의 철학을 가진 사람이 군자라는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운이 좋아 돈을 벌고 지위를 얻었다고 늘 지금의 내가 만족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어쩌면 운이 좋고 복은 받았지만 마음 속 한편이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불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운도 없고 복도 없지만 오히려 내 마음은 만족스러울 수 있다. 결국 나에게 다가오는 행운과 복이 내 마음의 만족도를 반드시 높이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행복(幸福)이란 말 대신에 쾌족(快足)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의 내 마음 상태가 유쾌()하고 만족()스럽다는 뜻이다. 비록 세속에서 말하는 행운(幸運)과 행복(幸福)은 없더라도 마음만은 쾌족할 수 있는 것이다. 강진에서 18년간의 쓰라린 유배생활을 경험했던 다산 정약용은 비록 그의 인생이 불행했다 하더라도 그의 삶의 자세는 늘 쾌족(快足)했다. 장군은 보민(保民)과 보국(保國)을 위해 임금의 명령도 거부할 수 있다(君命有所不受)고 생각한 이순신 장군은 비록 탄핵을 받고 백의종군했지만 마음은 늘 쾌족한 상태를 유지했다.

 

리더십 교과서 <대학(大學)>에서 말하는 쾌족(快足)은 자신의 뜻()에 성실()한 것이다. 자신의 뜻에 성실한 사람(誠意)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毋自欺). 자신의 깊은 영혼 속에서 울리는 소리를 늘 신중하게 듣고 사는 것이다. 나의 뜻을 속이지 않고 사는 것을 신독(愼獨)이라 한다. 남이 보든 안 보든 내 뜻에 최선을 다해 사는 삶이 신독(愼獨)의 삶이다. 남의 시선과 기대에 연연하지 않고 내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는 삶의 자세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언제나 마음이 만족스럽다. 그 만족의 상태를 자겸(自謙)이라고 한다. ()은 만족스러운 것이다. 남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만족스러운 상태를 바로 쾌족(快足)이라 한다. 행복지수가 높은 사람보다 쾌족지수가 높은 사람의 삶이 더욱 아름답다. 행복한 국민이 있는 국가보다 쾌족한 마음의 자세를 가진 국민이 있는 국가가 더욱 살고 싶은 나라다. 행복(幸福)을 넘어서 쾌족(快足)한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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