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Z Consulting
편집자주
트리즈(TRIZ)는 창조적 문제 해결 이론(Theory of Inventive Problem Solving)을 뜻하는 러시아어 ‘Teoriya Resheniya Izobretatelskikh Zadatch’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입니다. 모든 발명 과정에는 공통되는 법칙과 패턴이 있다는 믿음하에 A분야 문제에 대한 해법을 B분야에서의 문제 해결책을 참조해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TRIZ입니다. 쉽게 말해 ‘재발명을 통한 문제 해결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년간 TRIZ 컨설팅 외길을 걸어 온 송미정 박사가 TRIZ를 활용해 현장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실전 솔루션을 제시합니다.
질문 1상어와 연잎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자연의 산물이다”라고 대답한다면 맞다. 그런데 그것뿐인가? 여기까지는 유치원생도 할 수 있는 대답이다. 공통점은 이 생물들 자체는 아니며 이 생물들의 일부분끼리 공통점이 있고 그 공통점이 인간의 생활에 유익한 기술과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그 공통점은 무엇일까? 하나하나 생물들마다 짚어보면서 공통점을 읽어보자.
상어에게 조물주가 주신 선물 먼저 상어에서 주목할 부분은 매끈한 피부다. 상어의 피부에는 미세한 굴곡이 있다. 이 굴곡으로 인해 헤엄칠 때 물이 만드는 마찰저항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와류를 쫓아냄으로써 저항을 최소화한다. 이 덕분에 상어는 에너지 소모도 줄이고 속도도 더 높일 수 있다. 상어처럼 물속에서 날렵한 활동이 필요한 사람들이 상어의 피부를 입는다면 더 날렵해지지 않을까? 실제로 상어의 피부를 본뜬 수영복이 첨단 경기용 수영복으로 개발돼 올림픽 수영선수들이 다수 착용하고 있다. 물뿐만 아니라 공기 중에서도 아주 빠른 속도로 나는 비행기의 경우 물속에서 상어가 받는 저항과 유사한 문제가 발생한다. 만약 이 경우에도 비행기가 상어와 같은 피부를 가졌다면 저항을 감소시킬 수 있다.
연잎이 깨끗한 이유 식물의 잎을 관찰하던 한 식물학자는 관찰 전에 잎을 닦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연잎이 깨끗한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마치 플레밍이 파란 곰팡이가 핀 유리컵에만 원래 키우던 세균들이 자라지 않았던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연잎은 다른 식물들보다 더욱 지저분한 늪에서 자라는 식물인데도 그 표면이 너무 깨끗했다. 유난히 깨끗한 연잎에 흥미를 느꼈던 식물학자는 잎 구조를 면밀히 살펴보게 됐고 관찰 결과 잎 표면에 세밀한 돌기로 이뤄진 미세한 요철 구조가 있음을 발견했다. 바로 이 요철 구조 때문에 물이 떨어져도 잎이 물에 젖지 않고 잎 위에서 물방울로 또르르 잎을 타고 떨어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먼지 같은 더러운 물질도 물방울과 함께 잎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연잎을 씻어주기 때문에 잎이 언제나 깨끗할 수 있었다.
연잎 효과(lotus effect)라고도 하는 이 원리는 스스로 깨끗해지는 표면 구조나 코팅 물질을 개발하려는 연구로도 응용되고 있다. 특히 태양광, 태양열 발전에서는 전지의 표면이 먼지로 오염이 되면 발전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먼지가 붙지 않거나 저절로 제거되는 표면을 함께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
질문 2 나미비아 사막의 딱정벌레, 게코도마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사막의 딱정벌레가 생수를 마시는 방법 남아프리카 나미비아 사막은 강수량이 적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곳에 사는 ‘스테노카라(Stenocara)’라는 학명(學名)의 딱정벌레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도 끄떡없다. 아침마다 안개에서 생수를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개에서 생수를 만들어내는 비결은 바로 딱정벌레 표면에 있는 돌기 구조 덕분이다. 딱정벌레의 등에는 1㎜ 간격으로 지름 0.5㎜의 돌기가 촘촘하게 늘어서 있다. 이 돌기의 끝부분은 물과 친하지만 돌기의 아랫부분은 물과 친하지 않은 소수성을 가지고 있다. 아침마다 안개가 끼면 딱정벌레는 바람 부는 방향을 등지고 물구나무를 선다. 그러면 안개 중의 수증기가 돌기 끝에 붙고 점점 커진 물방울이 자기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굴러 떨어지는데 이때 바닥면이 물을 밀어내니 물방울은 딱정벌레의 입으로 또르르 굴러 떨어진다.
게코도마뱀 매달리기의 비밀 게코(gecko)도마뱀은 바닥뿐 아니라 벽, 천장에서도 떨어지지 않는 매달리기 선수다. 게코도마뱀의 매달리기 기술의 비밀은 발바닥에 있다. 이 도마뱀의 발바닥은 평평하게 돼 있지 않고 길이 50∼100마이크로미터(μm), 지름 5∼10μm인 수백만 개의 미세한 털로 덮여 있다. 이 털은 다시 수백 개에 달하는 주걱 모양의 섬모(길이 1∼2μm, 지름 200∼500나노미터)로 갈라진다. 벽면, 천장면과 털 하나하나 사이에는 약한 접착력(반 데어 발스 힘-분자 간에 작용하는 인력 중 가장 보편적인 인력)이 존재하지만 이것이 수백 만개나 있으니 강한 접착력을 발휘한다. 이 접착력의 원리를 이용해 끈끈한 접착물질이 남지 않고 깨끗하게 붙었다 떨어지는 접착 테이프나 게코도마뱀의 발바닥을 가진 우주·심해용 특수 로봇 등을 개발하는 연구가 해외와 국내 대학, 연구소 등에서 진행되고 있다.
상어, 연잎, 나미비아 딱정벌레, 게코도마뱀 등 위에서 예로 든 생물들의 공통점은 바로 표면의 ‘미세한 분할’이다. 각 생명체의 생존에 관건이 되는 특수한 기능이 모두 재질은 같아도 미세하게 분할된 표면을 통해 발휘되고 있다.
도마뱀은 도마뱀이고, 상어는 상어이며, 연잎은 연잎이라는 식으로 각각의 기술을 개별적으로 인식한다면 그 지식의 수준은 1차원적이다. 다양한 여러 가지 것들을 비교해 공통점이나 상관관계를 파악해 범주화를 해야 비로소 고차원적 지식이 되며 필요할 때 적재적소에 가져다 쓸 수 있게 된다. 과학기술 연구자들은 수치화된 데이터에 대해서는 이러한 과정을 잘 수행하는 편이나 서로 다른 곳에 존재하는 비수치화된 정보에 대해서는 범주화를 수행하는 데 애로를 많이 느끼곤 한다. 따라서 더욱 더 이 부분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학습과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이론적으로 ‘안다’고 하더라도 연습을 해야만 ‘할 줄 알게’ 된다.
인터넷 덕택에 개별 지식을 ‘두뇌에 저장’한다는 게 점차 무의미해지는 지금, 우리가 갖춰야 할 재능은 여러 가지 것들 사이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하고 그것을 어디다 쓰면 좋을지에 대해 생각하는 재능이다. 이것을 일반인들이나 학자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창의적 사고’라고 부른다.
질문 3 마트의 포장두부, 노래하는 고속도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필자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식품점에서 두부를 잘라주는 일을 많이 도와드렸다. 당시에는 한 판으로 만들어진 두부를 금에 따라 정확히 잘라 비닐봉지에 넣어서 손님들에게 판매했다. 두부의 경도는 날마다 일정하지는 않았다. 경도가 매우 낮은 날에는 어린 필자가 두부를 잡으면 두부가 찢어지기 일쑤였다. 이렇게 찢어진 두부는 손님에게 팔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한 판 중 한 모 이상은 찢어져서 팔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한 판 두부는 요즘은 시중에서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요즘은 한 모씩 잘라서 그릇에 넣고 물까지 충전해 유통 과정에서 손을 탈 일이 거의 없다. 예전에는 판으로 만들어 팔던 두부였는데 한 모씩 분할해서 포장하니 유통하거나 판매하거나 보관할 때 두부가 찌그러지지 않아서 좋다. 이것은 판두부에 ‘분할’의 원리가 가해진 후 더욱 쓸모 있어진 것이다. 요즘 들어서는 한 모 포장이 아니라 반 모 포장두부도 나오고 있고 가구 수, 입맛 등의 특성에 따라 고객층도 ‘분할’해 다양한 포장두부를 판매하고 있다.
고속도로는 차가 달리는 곳이다. 고속도로의 표면을 약간 분할한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바로 노래를 하게 된다. LP판의 표면에는 음악에 대응하는 홈이 파져 있다. 이곳에 레코드판의 바늘이 닿으면 음악이 재생된다. 레코드판 표면의 홈이 음악을 만든다는 것은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고속도로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홈을 만들면 노래를 한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 완전히 동일한 원리로 노래를 한다. 레코드판 바늘의 기능은 자동차의 바퀴가 대신하며 레코드판 홈의 형태가 음악이라면 고속도로 표면의 분할된 구역이 음악을 만들기 때문이다. 레코드판도 빨리 돌리면 음악 속도가 빨라지고 천천히 돌리면 속도가 느려지는 것처럼 노래하는 고속도로도 차가 빨리 달리면 빠른 속도로, 느린 속도로 달리면 느린 속도로 노래가 나온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너비 2.4㎝, 간격 10.6㎝의 홈이 있으면 ‘도’ 소리가 나오고 간격이 줄어들수록 소리가 높아져서 ‘레, 미, 파…’ 등의 음을 만든다. 이런 홈의 개수가 긴 거리 동안 이어지면 긴 박자를 표시하고 짧은 거리 동안 이어지면 짧은 박자가 된다. 물론 빨리 달리면 긴 박자도 빠르게 느껴진다.
이런 노래하는 고속도로가 무엇에 효과가 있었을까? 바로 운전자에게 주의를 집중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 노래하는 고속도로는 일본에서 처음 소개됐고 한국의 고속도로 몇 군데에 이 아이디어를 적용했다. 안전운전을 위한 여러 가지 장치들 중 이 아이디어는 도로에 약간의 요철을 만드는 것 외에 그다지 많은 번거로움이 없다.
좋은 생각을 하는 원리들은 의외로 간단하다. 자연에서조차 분할, 미세화가 생명체의 진화 과정에서 선택된 아주 유용한 원리다. 기술 시스템에서도 ‘분할’은 역시 원래의 것을 더욱 쓸모 있게 만들 수 있는 유용한 원리다. 트리즈의 각종 원리들은 위에서 필자가 정리한 것처럼 다양한 사례들을 관찰함으로써 내린 귀납적, 경험적 자료들이다. 비슷한 문제가 있는 경우 당연히 비슷한 원리로 풀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원리 자체를 내가 알고 있는 여러 가지 대상들에 적용함으로써 다양한 생각을 유도해낼 수 있다.
창의성에 이르는 왕도는 주변의 사물과 대상들을 하나하나씩 세밀하게 관찰하되 그것들 전체를 아우르는 상위의 원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평소에 꾸준히 생각하는 것이다. 트리즈는 관찰 방법과 문제 해결의 원리들에 대한 큰 방향성을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모순을 만드는 바로 그 요소나 절차에 이 원리를 적용해보자. 분명 원래보다 더욱 쓸모 있는 어떤 생각으로 안내해 줄 것이다.
송미정 삼성종합기술원 CTO 전략팀 부장 triz_institute@hanmail.net
필자는 KAIST에서 화학공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제 트리즈 협회 공인 Level 4 전문가로, 삼성종합기술원에서 200건 이상의 연구 개발 과제 컨설팅을 수행했다. 저서로 <회사를 살리는 아이디어 42가지(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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