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 글은 하버드대 로스쿨의 협상 프로그램 연구소가 발간하는 뉴스레터 <네고시에이션>에 소개된 ‘Is Your Meditation Fair?’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콘텐츠 공급(NYT 신디케이션 제공)
최근 승진에서 탈락한 한 영업 담당자의 이야기다. 62세인 그는 자신이 승진에서 누락된 이유가 나이가 많기 때문이라고 짐작했다. 상사가 나이 때문에 자신을 고의로 탈락시켰음을 입증해주는 증거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상황에서 그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과연 무엇일까? 가장 쉬운 방안은 그냥 포기하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는 방법이다. 고용 차별을 이유로 관계 당국에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만약 회사 내에 중재 프로그램이 있다면 중재를 요청할 수도 있다.
사내 중재 프로그램은 고용 현장에서 빚어지는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종종 쓰인다. 중재를 선택하면 양 당사자는 중립적인 입장에 있는 중재자와 한자리에 모인다. 중재자의 주재하에 각자의 생각을 피력하고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합의를 도출해낸다.
사내 중재 과정의 가장 이상적인 방안은 양측이 불만사항을 충분히 토로한 후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조직에 최소한의 비용을 부담하는 해결책을 수립해나가는 방식이다. 중재의 우선 목표는 갈등 상황에 있는 양측이 중재 과정에서 동등한 만족감과 결과물을 얻을 수 있도록 균형을 유지시켜 주는 데 있다.
최근 발표된 중재에 관한 연구는 이와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많은 사례에서 분쟁 당사자는 갈등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서로 달랐다. 당연히 중재 과정에서 얻는 만족도 또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이번 연구에 따르면 기업 경영진은 사내 중재 프로그램을 만들 때 직원을 위해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중재 자리에 나온 당사자가 상사와 부하 직원일 때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공평한 해결책을 찾는 과정이 상당히 어려울 수 있다. 만일 피해 당사자가 앞서의 영업직원처럼 승진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자신의 상사가 연장자 차별을 하고 있다는 이의 제기를 하고 중재 자리에 나와서 상사의 얼굴을 맞대면하고 있는 상황이 결코 편안할 수는 없다. 심지어 양측이 합의에 도달해도 사무실에서 다시 잘 일할 수 있을지 고심해야 한다.
벨기에 루벵대의 카탈린 볼른과 마틴 유웨마, 독일 만하임대의 패트릭 뮐러는 상사와 부하 직원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중재의 역할에 대한 연구 결과를 니고시에이션 저널 2010년 10월 호에 기고했다. ‘왜 중재에 대한 부하 직원들의 만족도가 낮은가? 불확실성의 역할(Why Are Subordinates Less Satisfied with Mediation? The Role of Uncertainty)’이라는 이들의 논문을 살펴보자. 연구팀은 네덜란드의 노동 중재 면담 50건의 속기록, 이들 중재의 당사자 100인 가운데 49명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상사와 부하 직원들은 자신들의 중재 ‘결과’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특히 중재 결과에 대한 만족도는 조직 내 서열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중재 ‘과정’에 대한 부하 직원들의 만족도는 상사보다 훨씬 낮았다.
중재 기간에 불확실성을 크게 경험했다고 생각하는 부하 직원들은 그렇지 않은 다른 경험자들에 비해 중재 과정에 대한 만족도가 낮았다. 불확실성의 경험 유무는 중재 과정에 대한 상사들의 만족도에는 큰 상관이 없었다.
연구진은 이 결과에 관해 다음과 같은 해석을 내렸다. 상사와 비교할 때, 부하 직원들은 중재 과정에 대한 경험 자체가 적다. 생소한 중재 과정 내내 자신들이 혹시라도 불리한 입장에 있는 게 아닐까 불안해 하는 경향이 있다. 당연히 중재 기간 동안 불확실성과 불안감을 경험할 확률도 높아진다.
이번 연구는 중재자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조직 내 서열상 수직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분쟁의 당사자일 때는 그들 사이의 복잡한 역학 관계를 반드시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특히 중재자들은 대화가 시작할 때 중재의 흐름과 목표, 과정에 대해 대안과 함께 양쪽 당사자에게 세심하게 설명해야 한다. 이는 특히 하위 직급에 있는 분쟁 당사자에게 중요하다. 이들은 앞으로의 중재 과정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해 상사보다 더 많이 불안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때로는 피해 당사자가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상대방을 대상으로 중재를 해야 하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 앞의 예를 분석해보자. 해당 직원은 상사가 고의로 자신을 승진에서 탈락시켰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이미 자신의 문제를 상사에게 얘기하고 서로 이 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해봤을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얻지 못해 중재를 신청했다.
이처럼 분쟁의 당사자 중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문제의 심각성을 더 크게 보고 있는 상황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많은 중재는 분쟁을 둘러싼 ‘갈등의 비대칭성(conflict asymmetry)’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이는 중재 과정 및 결과에 관한 만족도의 차이로 이어진다.
갈등의 비대칭성이 중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호주 멜버른대 비즈니스 스쿨의 카렌 젠, 네덜란드 리든대의 조이스 루퍼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의 어크게 나투아, 암스테르담의 TNO 직업 및 고용 연구소의 세스 반 덴 보쉐는 공동으로 교육 현장에서의 27개 분쟁 당사자들을 면담해서 최근 겪은 중재의 경험과 그 만족도에 대해 물었다. 그 결과물은 네고시에이션과 갈등 관리 연구소의 2010년 11월호에 ‘왜곡된 갈등: 비대칭적 갈등의 중재 효과(Crooked Conflicts: The Effects of Conflict Asymmetry in Mediation)’로 실렸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분쟁에서 한쪽은 다른 한쪽에 비해 경험하는 갈등의 폭이 훨씬 깊다. 양 당사자가 비슷한 수준의 갈등을 경험하고 있는 분쟁에 비해 양 당사자의 갈등 경험치가 차이가 날 때 중재 과정 및 결과에 대한 만족도가 훨씬 낮았다. 이러한 불만족은 중재자가 편파적으로 피해 당사자에게 기울어져 있다고 상대편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갈등의 비대칭성이 유발하는 악영향을 줄이기 위해 중재 시작부터 중재자들에게 갈등에 대한 당사자 간의 시각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라고 요구한다. 중재자가 특정인에게 편견을 갖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지 않으려면 갈등의 크기를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는 피해자가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발산하고, 가해 당사자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피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 2건의 연구 사례는 비교적 한정된 범위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분쟁 당사자의 관점 차이가 사내 중재의 성공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시사하는 데는 충분하다.
번역 |박미라 mira_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