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은 <史記(사기)>에서 재벌을 소봉(素封)이라고 했다. 이른바 무관(無冠)의 제후다. 소(素)는 ‘희다’는 뜻이지만 색깔 없는 모자, 즉 아무런 지위도 없지만 제후 이상의 권력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일국의 대통령이 외국을 국빈 방문할 때 함께 대동하는 대기업 회장들을 최대한 우대하는 이유는 그들이 가진 경제적 힘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때론 돈이 사람을 황제보다 더 위대한 존재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사마천은 <화식열전(貨殖列傳)>에서 돈을 버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며 인간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상인이 천시 받던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획기적인 발상이다.
사마천의 경제관을 종합하면 이렇다. 첫째, 돈이 있어야 예절도 안다.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倉實而知禮節), 의식이 족해야 명예도 안다(衣食足而知榮辱). 예는 돈이 있어야 생기고 돈이 없으면 없어진다(禮生於有而廢於無).’ 예절과 윤리는 경제적 기반이 튼튼해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곳간에서 인심난다. ‘군자가 부자가 되면 자신의 은혜를 베풀 수 있고(君子富好行其德), 소인이 부자가 되면 자신의 능력을 원하는 곳에서 발휘할 수 있다(小人富以適其力).’ 돈은 배려의 기초가 되고, 일반인들은 자신의 능력을 원하는 곳에 사용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는 것이다. 셋째, 돈 있는 곳에 사람이 모여든다. ‘연못이 깊으면 물고기가 생기고(淵深而魚生之), 산이 깊으면 짐승이 모여들고(山深而獸往之), 사람이 부자가 되면 인의가 실현된다(人富而仁義附).’ 돈은 사람에게 인정을 베푸는 도구이며, 사람들을 모으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넷째, 돈을 버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희희낙락 돈을 향해 모여들고(天下熙熙皆爲利來)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이익을 향해 달려간다(天下壤壤皆爲利往).’ 돈을 벌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이다. 돈은 사람의 본능이며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할 수 있고 사람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자본관이 사마천 <사기>에서 보여진다.
아울러 부자가 되기 위한 방법을 당시 성공한 재벌의 투자원칙을 통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첫째, 남들과 다른 방향으로 가라! ‘남들이 버리면 나는 사라(人棄我取), 남들이 사들이면 나는 판다(人取我與).’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의 투자 원칙과 같다. 남보다 반 발 앞서는 것이 투자의 원칙이다. 구체적으로 ‘가뭄이 들었을 때 배를 사고, 비가 내리면 수레를 사는 것도 역발상의 투자 원칙이다. 비쌀 때는 분뇨처럼 방출하라(貴出如糞土), 쌀 때 보석처럼 매입하라(賤取如珠玉).’ 남들과 같이 움직이면 이미 늦은 것이다. 둘째, 때를 놓치지 마라!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면 맹수처럼 독수리처럼 달려든다(猛獸摯鳥之發).’ 독수리가 먹이를 발견하고 수직 하강해 감아 채듯이 일단 때가 왔다고 생각하면 과감한 결단과 실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셋째, 사람을 얻어야 한다. ‘돈을 잘 버는 이는 사람을 적절하게 뽑아서 때를 타게 만든다(擇人而任時).’ 결국 내가 모든 것을 다할 수는 없다.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해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제대로 사람을 뽑아 그 능력을 발휘하게 만들어야 한다. 결국 人事(인사)의 능력이 돈 버는 비결이다. 넷째, 내 돈을 벌어주는 사람과 동고동락한다. ‘음식을 절제하고(能薄飮食), 사치와 욕심을 참고(忍嗜欲), 의복을 간소화하고(節衣服), 노동자들과 고락을 함께 한다(與用事僕同苦樂).’ 부자는 내 돈을 벌어주는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동고동락의 자세가 필요하다.
돈을 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며, 돈은 잘 사용하면 사람에게 자비와 자유를 줄 수 있다. 돈은 쫓아간다고 벌리는 것도 아니다. 상황을 읽어내고 과감한 결정과 실행을 하는 이가 얻는 전리품이다. 무엇보다 부자가 되려면 내 돈을 벌어줄 사람을 잘 선택해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돈 버는 방법이나 돈을 버는 이유는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