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이요. 아니, 그냥 서울로 가주세요! 제가 급해서 그러는데 죄송하지만 속도를 좀 더 내주시면 안 될까요?”
택시가 고속도로로 들어서고 나서야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온 몸의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다.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전화를 받은 것은 어제 오후. 고향에 내려갔다 온 하루 동안이 마치 1년 같다.
이번 신제품 성공 이후에 회사에서는 젊은 인재들로 구성된 ‘차세대 전략기획팀’을 신설해 전폭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나는 신제품 개발 과정에서의 노력과 공로를 인정받아 신설팀의 팀장이 되었다. 기획 분야로 옮긴 뒤 약 1년 반 만의 성과다. 그동안 회사와 내 미래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뛰어 왔던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아니 잠을 자는 동안 꿈속에서도 내 관심은 온통 회사 일뿐이었음을 한 치의 부끄럼 없이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또다시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내 앞에 다가온 것이다.
각각 주임과 대리로 승진한 손대수와 임 주임을 포함한 새로운 조직이 구성됐으며, 신사업 실행 계획을 발 빠르게 전개하고 있던 중요한 시기였다.
평소에도 혈압이 높아 약을 복용하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가셨다. 아직 의식이 없으시다는 어머니의 전화에 덜컥, ‘왜 하필 오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어 흠칫 놀랐다. 전화로 이런저런 상황을 전해 들으면서 “일단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하고 계세요. 전 급한 일을 마저 정리하고 주말에 내려가겠습니다”라고 했지만 “아버지만큼 급한 일이 뭐가 있느냐. 지금 너무 무섭고 당황스러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어머니 말씀을 어찌할 수 없었다.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나를 보던 팀원들이 자초지종을 묻고는 자식 된 도리가 우선이니 회사 일은 걱정 말고 당장 아버지께 다녀오라고 했다. 그러나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없으면 안 될 텐데….’
팀원들에게 떠밀리다시피 고향 가는 기차를 타고 나니, 이번에는 또다시 아버지에 대한 걱정이 밀려온다.
‘대체, 얼마나 안 좋으신 거지? 그러게 평소에 관리 좀 잘 하시라니까….’
병원에 도착해 보니 아버지 상태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의식도 돌아오고 손수 몸을 움직여 식사도 할 수 있게 된 아버지는 바쁜 아들을 시골에까지 내려오게 한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신 모양이다.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이제는 다 좋아졌으니 어서 빨리 올라가라”고 하셨다. 찾아뵙지 못한 몇 달 사이에 몇 년은 더 늙으신 듯한 아버지의 주름진 손마디를 보니 마음 한 편이 먹먹해졌다.
내일 가도 된다고 안심시켜 드리고 밤새 아버지의 병실을 지키면서 ‘지금 내가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고향을 떠나올 때 빨리 돈을 벌어서 호강시켜 드리겠다는 아들을 보고 대견해 하시던 부모님이 반백의 노인이 될 때까지 난 아무것도 해드린 게 없다. 따뜻한 밥 한 끼는커녕 가끔 오는 안부 전화조차 귀찮아할 뿐이었으니….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병실의 희미한 조명등에 의지해 일을 하고 있는 나를 보니 또다시 한숨이 나온다.
날이 밝자 이번에는 부모님의 성화에 떠밀려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 경기도 안 좋은데 회사에 밉보이면 안 된다며 이른 새벽부터 아침밥을 챙겨주시는 어머니. 사실 회사 일 때문에 마음이 놓이지 않던 차에 못이기는 척 주말에 다시 오겠노라고 약속하고 택시를 탄 것이었다.
어제 급하게 조퇴한 게 타격이 좀 크겠네. 출근하면 당장 어떤 일부터 처리해야 하지? 주말까지 일을 다 마칠 수 있을까? 어머니한테 주말에 다시 온다는 얘길 괜히 했나? 손대수가 마무리 좀 해 놓았으려나? 헉! 내가 할 일을 손대수가 해결했다면, 그것도 문제 아냐? 휴∼ 무슨 생각을 해도 머리가 아프긴 마찬가지구나. 정말 쉬고 싶다.
이번 일 마무리하면 휴가라도 낼 수 있을까? 여행을 좀 하면서 그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팀장으로서의 새로운 미래를 계획하고 싶다. 그렇게 바라던 팀장이 됐지 않은가! 앗, 그런데 결혼은 언제쯤 할 수 있을까.
편집자주 이번 호를 끝으로 ‘강대리 팀장 만들기’ 시리즈를 마칩니다. 지난 1년 동안 성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6회에 걸쳐 연재된 강대리 팀장 만들기는 곧 단행본으로 묶어 출간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