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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cs

행복은 ‘많이’가 아닌 모든 것을 ‘적당히’

박세영 | 346호 (2022년 06월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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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ed on “Optimal Retirement with Borrowing Constraints and Forced Unemployment Risk”(2020) by B.-G. Jang, S. Park, and H. Zhao in Insurance: Mathematics and Economics, 94: 25-39.

무엇을, 왜 연구했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을 억제하기 위한 각종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는 재택근무•영업시간 제한 등을 통해 사람들의 인적 교류를 차단했다. 이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일을 떠나 여가를 누리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질병관리청의 ‘지역사회 건강 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이후 지난 2년 동안 사람들의 신체 활동은 줄고 우울감과 스트레스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와 ‘우울감(Blue)’이 합쳐진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로 일상에서 느끼는 우울감과 무기력증이 증가했다. 감염에 대한 공포 또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갑자기 주어진 많은 시간을 홀로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느끼는 막막한 심정이나 외로움도 코로나 블루의 주된 원인으로 밝혀졌다.

라틴어의 ‘오티움’은 여가 또는 휴식을 뜻하는 단어로 2020년 정신과 의사인 문요한 작가의 『오티움(살아갈 힘을 주는 나만의 휴식)』이란 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저자는 오티움을 가지면 ‘능동적 여가 활동’을 통해서 삶에 기쁨과 활기를 되찾을 수 있고 그 활동을 지속함으로써 어떤 불행이나 고통도 스스로 극복해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고 주장한다.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바라봤던 능동적 여가, 즉 오티움을 경제학에서는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을까? 포항공대와 영국 러프버러 경영대 공동 연구진은 기존의 효용함수 극대화 이론에서 초점을 맞췄던 소비 이외에 여가라는 새로운 경제 변수를 추가적으로 고려해 개인의 행복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는 생애주기(Life-Cycle) 전략을 소개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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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발견했나?

경제학에서는 개인의 행복을 ‘효용(Utility)’을 통해서 측정하는데 이때 효용함수는 통상적으로 소비를 통해 얻는 개인의 만족을 숫자에 대응시킨 행복의 크기를 의미한다. 여기서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Neoclassical Economists)은 효용함수 극대화 이론을 개발해 개인의 행복을 최대화할 수 있는 최적 소비(Optimal Consumption) 전략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행복을 극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최대의 소비를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소비 그 자체가 바로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존재한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렸던 지난 2년 동안 각종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로 인해 돈은 있으나 양질의 소비를 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사라져버린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여행을 예로 들어보자. 여행을 위해 쓰는 돈은 전혀 아깝지가 않다. 반드시 무언가를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여행을 떠난다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설레고 즐겁기 때문이다. 여행이라는 양질의 소비를 통해 행복을 극대화하는 사례다. 그러나 지금은 예전처럼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 자체가 제한돼 있다. 돈이 충분히 있어도 최적의 소비를 하는 기회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은 심각한 경우 어떤 이에게는 비자발적 실업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꼭 코로나19 사태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경기 침체기 때 비자발적 실업에 노출될 수 있다. 또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른 질병과 갑작스런 장애(Disability), 자연재해 등이 비자발적 실업을 야기하기도 한다. 문제는 비자발적 실업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크지만 한편으로는 실업 이후 누릴 수 있는 여가의 질이 크게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소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기존 연구의 대부분은 실업 또는 은퇴 이후 질적인 여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따라서 돈이 충분히 있고 양질의 소비를 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질병과 장애로 능동적 여가를 보낼 수 없는 이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마땅한 해결책을 제공할 수 없다.

이와 달리 본 연구에서는 코브•더글라스(Cobb-Douglas) 효용함수1 를 통해 기존 연구에서 초점을 맞추고 있는 소비 이외에 ‘여가’를 추가적으로 고려해 개인의 행복을 측정했다. 특히 연구진은 은퇴 이전에 소비를 극대화하는 기존의 의사결정은 은퇴 이후 질적인 여가를 누리기 위한 최고의 선택이 아니라면서 오히려 은퇴 이전에는 적정 소비를 통해 충분한 금융자산을 확보하고 은퇴 이후에는 소비를 줄임으로써 능동적 여가를 위해 금융자산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해법을 제안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소비’라는 경제 변수는 소득의 큰 변동성(Volatility)에 비해 과도한 평탄성(Excess Smoothness)을 갖는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실증 연구를 통해 사람들은 은퇴 이후 소비를 크게 줄인다는 사실이 밝혀져 왔다. 기존 연구에서는 소비가 과도한 평탄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은퇴 이후 소비가 크게 줄어드는 사건 자체에 대한 의미 있는 설명력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를 은퇴 소비 퍼즐(Retirement Consumption Puzzle)이라고 부른다. 소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기존 연구는 은퇴 이전이라고 할지라도 최대의 소비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은퇴 이후에 소비를 크게 줄이는 사람들의 선택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처럼 은퇴 이후의 능동적 여가를 효용함수 극대화의 또 하나의 목표로 삼는다면 은퇴 이후에 소비를 크게 줄이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이는 은퇴 이후에 소비를 줄임으로써 확보한 금융자산을 활용해 질적인 여가를 누릴 수 있기에 소비에 대한 개인의 행복이 여가에 대한 효용으로 상당 부분 보상될 수 있다.

연구 결과가 어떤 교훈을 주나?

본 연구의 결과에 따르면 소비만을 극대화하는 기존의 선택은 궁극적인 행복을 보장할 수 없다. 적정 소비를 통해 금융자산을 충분히 확보한 후 이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능동적 여가를 누리는 것이 행복과 삶의 질 관점에서 바람직하다. 사실 적정 소비와 행복의 상관관계는 우리 일상의 삶에서도 쉽게 확인해볼 수 있다. 이케아를 방문하면 ‘Lagom ar Bast’라는 스웨덴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라곰(Lagom)은 스웨덴어로 ‘딱 알맞은 양’ 또는 ‘모든 것을 적당히’ 정도로 번역된다. OECD 행복 지수 7위를 기록하고 있는 스웨덴의 행복은 ‘적당한 양이 최고다’라는 라곰에 기반한 라이프 스타일에 있다. 이케아 또한 라곰을 따라 값비싸고 화려한 디자인보다 단순하고 실용적인 가구를 추구한다.

1960년대 경제학자 슈마허(E.F.Schumacher)가 제시한 ‘중간 기술(Intermediate Technology)’에서 좀 더 발전한 개념인 ‘적정 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이란 과거의 원시적인 기술보다는 훨씬 우수하지만 선진국의 거대 기술(Super Technology)에 비하면 소박한 기술을 의미한다. 현재 적정 기술은 라이프스트로(LifeStraw)와 같은 구호 제품과 수동식 물 공급 펌프(Super MoneyMaker Pump)와 같은 농업 관련 기술, XO-1 컴퓨터와 같은 교육용 제품 등을 생산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슈마허의 적정 기술은 제3세계의 빈곤 문제는 물론 거대 기술로부터 야기된 여러 사회적•환경적 문제들을 해결해 인간의 행복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해왔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영끌 투자’와 ‘빚투’ 현상을 두고 경제학에서는 자신의 생각 없이 남들이 하는 행태를 무작정 따라 하는 ‘레밍효과(Lemming Effect)’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물질 만능주의와 소비 지향적인 삶은 결코 우리의 궁극적인 행복을 보장할 수 없다. 레밍처럼 쉼이 없고 끊임없는 생산과 노동을 수반하는 삶은 결국 환경을 파괴하고 우리의 행복을 희생시킨다. 이제 행복의 목적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어쩌면 행복은 ‘무조건 많이’가 아니라 ‘모든 것을 적당히’ 하는 라곰에서부터 쉽게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박세영 노팅엄경영대학교 재무 부교수 seyoung.park@nottingham.ac.uk
필자는 연세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포항공대에서 투자/위험관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여신금융협회 조사역으로 재직한 후 싱가포르국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쳐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영국 러프버러경영대에서 재무 조교수로 재직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포트폴리오 이론을 중심으로 한 투자/위험관리와 은퇴, 보험, 연금 등 생애주기 전반에 걸친 자산 관리 등이다.
  • 박세영 | 노팅엄경영대 재무 부교수

    필자는 연세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포항공대에서 투자, 위험관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여신금융협회 조사역으로 재직한 후 싱가포르국립대 박사후과정을 거쳐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영국 러프버러경영대에서 재무 조교수로 재직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포트폴리오 이론을 중심으로 한 투자/위험관리와 은퇴, 보험, 연금 등 생애주기 전반에 걸친 자산관리 등이다.
    seyoung.park@nottingham.ac.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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