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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팬데믹에 맞서려면

김현진 | 293호 (2020년 3월 Issue 2)
“직원들이 코드를 짜고 있는지, 고양이들과 놀고 있는지 알 수 없어 힘들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전사 재택근무를 실시하게 된 중국의 증강현실 솔루션 업체 ‘DDD온라인’의 창업주, 쳉 정 대표가 남긴 말입니다. 창업 이래 처음 도입한 재택근무의 실효성을 우려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재택근무 시행 초기 이 회사의 생산성은 정상 수준의 60%까지 하락했습니다. 하지만 직원들이 처음엔 낯설어했던 재택근무에 적응하고, 물리적 거리감을 좁혀줄 IT 협업 툴에 익숙해지면서 생산성은 2주 만에 정상 수준으로 회복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될 것으로 본 이 회사는 아예 재택근무제를 6개월가량 더 유지해보기로 했습니다.

2010년 전후 도입된 유연근무제가 본격 확산되지 못하고 답보 상태에 머물렀던 우리나라에서도 ‘코로나발(發) 재택근무제’가 급격히 확산되고 있습니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등 그동안 우리가 겪었던 감염성 질환이 남긴 교훈 덕분입니다. 이러한 질환을 겪으면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액션 플랜을 수립한 기업들은 이번 위기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 유사 감염병 때와 비교해 달라진 경영 환경 중 하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흐름이 본격화한 시점에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했다는 점입니다. 원격 근무에 적합한 업무 툴이 제대로 확보되지 못했던 2009년 신종플루 대유행 때와 달리 현재는 클라우드 시스템 기반의 모바일 환경 도입, 화상회의 시스템의 고도화 등으로 재택근무를 용이하게 해줄 IT 인프라 환경이 조성돼 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제조 현장, 위기 매뉴얼을 갖추지 못한 중소기업은 여전히 ‘셧다운’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11일 코로나19에 대해 감염병 최고 경보 단계인 팬데믹을 선포함으로써 전 인류의 위기 상황임을 공식화했습니다. 경제 분야에서도 발생 가능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위기 대응 전략을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할 시점입니다.

선진 기업들이 도입한 ‘팬데믹 플래닝(Pandemic Planning)’, ‘업무 지속 계획(Business Continuity Planning)’, ‘공급망 돌발 상황 관리(Supply Chain Incident Management)’ 등의 전략과 모범사례를 소개한 이번 호 DBR 기고문을 인용하면 그야말로 ‘최선을 바라되 최악에 대비해야 할 때’입니다. 이른바 ‘팬데믹 플랜’의 주요 구성 요소에는 전략적 의사결정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운영 체계 마련, 업무 전면 중단을 가정한 데이터 백업 체계 점검, 이해 관계자가 모두 함께 참여하는 복구 테스트 훈련 체계 조성 등이 포함됩니다. 감염병이 낳은 비대칭 인력 수요 관점에서 보면 우리보다 앞서 ‘코로나 쇼크’를 경험한 중국 혁신 기업들의 유연한 대처에서도 혁신의 실마리를 찾아볼 만합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오히려 수요가 급증한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신선식품 매장 허마셴셩은 대규모 유휴 인력이 발생한 식당, 호텔, 운송 관련 업체 32곳과 협약을 맺고 3만 개가 넘는 일자리를 채웠습니다. 공유 경제 모델을 기업 간 ‘직원 빌려주기’ 프로젝트로 확대 적용한 셈입니다. 국내 상황에 당장 적용하기 힘들더라도 ‘발상의 전환’ 측면에서 눈여겨볼 만한 사례입니다.

팬데믹 위기에 맞서는 대응 전략을 독자 여러분께 제공하기 위해 긴급 편성한 이번 호 스페셜 리포트는 기업의 근간을 지키기 위한 방법론이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됩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는 위협에 과도하게 압도되면 생명체의 방어 생존 회로인 ‘불안(anxiety)’이 과도하게 활성화된다는 점, 그리고 리더의 불안은 조직원들에게 전가돼 또 다른 ‘심리적 전염병’을 낳을 수 있다는 경고를 주목할 만합니다. 따라서 대비는 철저히 하되, 위기는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인류 역사상 대규모 재앙 끝에는 반드시 위기를 기회로 바꾼 자들의 번영이 뒤따랐습니다.

‘위기 속에서 기회 찾기.’ 진부한 교훈이 때론 가장 강력한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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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편집장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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