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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트렌드

창업 교육은 로또 아닌 ‘배움의 한 방식’

이기대 | 253호 (2018년 7월 Issue 2)
편집자주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가 그동안의 경험과 노하우를 토대로 6회에 거쳐 DBR에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주목할 만한 흐름과 변화, 그 주역들을 소개합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 장병규 위원장의 저서 『장병규의 스타트업 한국』에는 대학가의 ‘흔한’ 창업 이야기가 나온다. ‘그날도 연구실에서 밤을 새운 피곤한 날이었다. 알고 지내던 선배가 기숙사를 향해 지친 걸음을 하던 장병규를 불렀다. “병규야, 후배들 모아서 개발팀 하나 꾸려줄 수 있니? 내가 사업을 하려는데.”’ 시가총액 5000억 원대를 넘나드는 네오위즈의 시작이었다.

실제로 대학생 창업을 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은 위의 사례와 비슷하다. 대학 중퇴자들이 창업한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와 페이스북의 성공 신화와 유사하다. 한 살이라도 젊어서 창업을 해야 혁신적 아이디어가 나올 것이라는 긍정적인 사고에 기반한다. 하지만 실제 스타트업을 바라보는 현실은 사뭇 다르다. 청년들이 겪고 있는 극심한 취업난과 관련이 깊다. 공무원시험에 올인하는 이른바 ‘공시족’ 50만 명 시대다. 졸업과 동시에 백수가 되느니 뭐라도 해보는 게 낫지 않겠냐는 안타까운 심정이 반영됐다.

이러한 생각마저도 그렇게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다. 대부분의 젊은이는 여전히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것을 꺼린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스타트업에 대한 인식 변화를 관찰할 목적으로 매년 10월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를 발간한다.
4년제 대학 졸업예정자 200명에게 ‘본인이 창업을 고려하는 수준’을 질문하면 ‘고려’ 또는 ‘매우 고려’한다는 긍정적인 답변이 2017년에는 30%였다. 나머지는 부정적이거나 모르겠다는 답변이다. 2015년과 2016년의 23%대에 비해 약간 나아지기는 했으나 부정적인 답변이 여전히 더 많다. 스타트업으로의 취업도 인기가 없다. 2015년 27.6%, 2016년 25.8%, 2017년 19.5%에 불과하다. 4년제 대학생들에겐 공무원 시험 응시와 대기업 취직이 우선이다.

사실 대학 내외의 창업 인프라만 잘 활용한다면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우선 학생들의 무관심과는 달리 대학은 창업 분위기 조성에 열심이다. 교육부와 중소벤처기업부의 공동 조사에 따르면 2016년 전국 422개 대학 가운데 74%인 313개 대학에 창업 관련 과목이 개설됐다. 개설된 강좌 수가 1만461개에 달하며 38만 명이 수강했다. 전년 대비 강좌 수는 145%, 수강 인원은 33%가 증가했다. 창업 교육은 학부에서 멈추지 않는다. 국민대와 성균관대, 연세대, 부산대, 계명대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창업전문가 석사 과정을 운영한다.

캠퍼스 창업에 공을 많이 들이는 학교들은 강의 외에도 다양한 지원을 펼친다. 카이스트는 2012년부터 E*5 KAIST라는 창업 오디션 프로그램을 매 학기 운영한다. 카이스트 학생이 1인 이상 포함된 팀에 참가자격이 주어지며, 3개월 동안 멘토들과 함께 단계별 미션을 수행한다. 아이디어의 구체화나 사업계획의 정교화, 시장 조사, 발표 연습 들이 주요 미션이다. 한 학기의 여정이 끝나면 멘토들이 모여 세 팀을 뽑는데 최종 우승팀은 1000만 원의 법인 설립 자본금을 지원받는다. 카이스트 출신들에 대한 선호가 크다 보니 유명 액셀러레이터 심사역들이 멘토단에 자원한다. AXEL-K라는 액셀러레이션 프로그램도 있다. 레이저 커터나 3D프린터 등의 장비는 Maker’s Cafe라는 공방에서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다.

한양대는 서울대와 함께 벤처 창업가를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이다. 한양대 창업지원단의 지원프로그램도 종합선물세트 느낌을 준다. 비전공자도 수강 가능한 수십 개의 창업 전공과목, 분기마다 열리는 포럼, 재학생과 동문이 함께하는 창업경진대회, 창업 준비생들에게 필요한 공동 창업 공간과 3년 차 기업까지 수용하는 저렴한 임대 사무실, 각종 지원이 가능한 보육센터, 동문이 참여하는 엔젤클럽까지 없는 것이 없다. 올해 3월에는 ‘247 스타트업돔’이라는 창업자 전용 기숙사를 열었다. 국내 최초다. 기존의 사법고시생 기숙사 일부를 개조해서 제공한다는 점에서 시대의 변화가 느껴진다.

대학교가 제공하는 인프라 외에도 스스로 갖춰나가야 하는 역량도 분명히 있다. 자산관리 애플리케이션인 ‘뱅크샐러드’로 유명한 ‘레이니스트’ 김태훈 대표는 대학 재학 중에 첫 창업을 했다. 그는 캠퍼스 창업에 대해 “부족한 인적 네트워크를 해결하는 방법을 빨리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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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을 꿈꾸는 대학생이 정보와 동료를 찾아 헤맬 때 가장 도움이 되는 곳은 창업 동아리다. 중소벤처기업부 통계에 따르면 대학의 창업 동아리는 4000여 개에 달하며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유명 동아리들의 뿌리는 1990년대 말 닷컴 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대의 학생벤처네트워크, 연세대의 베리, 한양대의 한양벤처클럽, 서강대 블랙박스 등은 성공한 선배들과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이 동아리들에 대한 학교 당국의 지원도 적지 않다. 한양대의 경우 창업지원단에 등록된 100여 개 동아리에 시제품 제작비와 법인 설립 수수료, 지재권 취득 비용 등을 지원한다. 연세대도 200만 원의 지원금과 회의실 등을 지원한다. 회사가 계획대로 성장한다면 추가 지원도 기대할 수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정한 창업선도대학 43곳은 창업자들의 시제품 제작에 1억 원, 후속 지원으로 3000만 원까지 지원한다. 올해 890억 원의 예산이 배정된 사업이다. 성공한 동아리 선배들이 엔젤펀드를 꾸려 후배 기업에 투자하는 경우도 많다. 동아리에 창업자들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재학 중인 대학의 창업지원단 활동이 미미하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웬만한 대학에는 창업보육센터(BI, Business Incubator)가 있어서 창업 공간 해결에 도움을 준다. 한국창업보육협회가 운영하는 BI-NET에 따르면 창업보육센터를 갖춘 대학이 전국에 194곳이다. 대도시나 수도권에 편중되지도 않았다. 예를 들어 제주대의 경우 1999년도에 설립된 창업보육센터가 있으며 그곳을 거쳐 간 입주기업이 56개다. 국고의 지원을 받기에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재학생이나 동문이 대표일 경우 임대료를 할인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산 비전공자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어차피 다 공대생들 이야기 아니냐’며 심드렁해질 수 있다. 하지만 비전공자들도 충분히 소프트웨어 개발을 배워 시제품 앱 정도는 직접 제작할 수 있다. 개발을 배우고 싶어 하는 문과 출신들에게 대학가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단체는 멋사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멋쟁이 사자처럼’이다. 전국 약 90여 개 대학에서 비전공자들을 대상으로 무료 코딩 수업을 하는 멋사는 비영리법인이며 기업의 후원을 받아 운영된다. 교육방법은 기수마다 다른데 2013년에 배출된 첫 기수는 창업자인 이두희 씨가 직접 가르쳤다고 한다. 이후 규모가 커지면서 동영상 강의와 각 캠퍼스 운영진에 의한 전달 교육으로 진행하는데, 과정의 끝은 무박 2일의 해커톤이다. 배우는 프로그래밍 언어는 루비, 파이선이며 2000명 이상이 수강했다. 정부 지원을 받아 저렴한 비용으로 전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설 학원들도 많다.

이렇듯 최대 2년의 창업 휴학을 포함해 캠퍼스 창업을 위한 제도는 잘 갖춰져 있고, 자금이나 멘토링 등의 자원은 넘친다. 학생들이 도전할 마음만 있다면 첫 테이프를 끊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은 창업을 꺼리고, 정부와 학교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대학 창업자들을 구경하기 어려운 이유가 뭘까?

스타트업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 때문이다. 스타트업으로 인생 대역전을 꿈꾼다거나 취업 대신 창업의 길로 간다는 식으로는 학생들도 마음 편히 스타트업에 도전할 수 없다. 한국은 성과를 중시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강하다. 젊은이들이 창업에 실패한 후 느끼는 패배감과 좌절로 인한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사회에서 경력을 쌓고 상대적으로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이들과의 경쟁에서도 밀려 현실적으로 사회 경험 없는 대학생들이 창업으로 ‘대박’을 터뜨리기도 어렵다. 실제 스타트업 업계를 보면 학생 창업자들에 비해 기술적 우위와 경험을 지닌 경력자 창업이 선두권을 형성한다. 경험 많은 선수의 등장은 학생 창업의 성공 가능성을 더 낮출 수밖에 없다.

레이니스트의 김태훈 대표는 창업이 ‘배움의 한 방식’이라고 선을 긋는다. 창업을 시도하고 그 과정을 통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과 경험이 중요하다. 즉 창업은 ‘실천적 교육-사고-행동-가치창출’의 과정을 지속적으로 시도하도록 돕는 것이다. 실전을 통해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인 셈이다. 이것이 바로 창업 교육을 통해서 젊은이들이 배워야 할 점이다. 또한 창업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 대학 재학생들의 창업을 부추길 게 아니라 우선 이들이 스타트업에 취업해서 창업자의 언어와 스타트업 실무를 익힌 뒤에 창업하는 우회 전략과 장기적인 계획이 현실적이다.


필자 소개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 klee@startupall.kr
이기대 이사는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 버팔로 캠퍼스에서 컴퓨터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피치트리컨설팅, 드림서치 대표를 지냈고, IGAWorks에서 COO와 HR 담당 부사장으로 근무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네이버 등 인터넷 선도기업들이 함께 만든 민관협력네트워크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서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일하고 있다.
  • 이기대 | -피치트리컨설팅, 드림서치 대표 역임
    -IGAWorks에서 COO, HR 담당 부사장
    -(현) 민관협력네트워크 스타트업얼라이언스
    klee@startupal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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